성경질문자료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는 이유와 살려준 이유는?...

baromi 2005. 3. 10. 14:38

출애굽기 4:24-26 에 보면

모세를 택하고 준비시키신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죽이려하는데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애굽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면서 모세를 죽이려 했던 장면에서 하나님은 결코 강제로 인간을
다루시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요, 어쨌든 모세를 죽이려는 이유가 모세의 우유부단내지는
불순종 때문이었다고 추측하기에는 무리인 것처럼 보이는데 성경에 쓰지 않은 어떤 모세의
결정적인 불순종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모세를 죽이려다가 살려준 이유로서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잘라 내던지면서 모세는 자기 피남편이라고 했다고
씌여있는데 그 십보라의 행동이 하나님의 작정을 돌이킬만한 요건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모세를 살려주셨거든요.

이 사건에서 십보라의 행동,할례,피남편, 하나님의 모세를 죽이려 하심과 돌이킴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고자 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이 본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 본문을 우선 아래에 옮겨 놓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24)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25)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먼저 어떤 사람은,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고 할 때의 "그"를 모세가 아니라 게르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예,황창기교수). 하지만, 그런 해석은 문법적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을 지 몰라도, 문맥상 적당치 못한 해석이라고 저는 봅니다.

 

님께서 질문하신 질문을 보면, "그"를 모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 죽이는 이유가 문맥상 그 아들의 할례문제와 관계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문제는, 아들의 할례문제가 그렇게 모세를 죽이려고 할 만큼 중요한 사연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것은 바로 이 사건의 앞에 기록되어 있는 22-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내 장자라고 하는 말씀이 나오고, 또한 바로가 거절하게 되면 바로의 장자를 죽이겠노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곧 "장자"의 문제가 엄청나게 중요하게 대두됩니다. 그리고 이 장자의 중요성은, 이스라엘의 혈통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게 되는 것과 관련시키게 되면, 성경의 중심사상에 해당됩니다. 이것을 본문에 적용해서 해석하게 되면, 모세는 지금 곧 하나님의 장자인 그 이스라엘의 장자로서 그 이스라엘을 구출하러 갑니다. 모세는 "장자"로서 흠이 없어야 하고, 그것은 자신의 "장자"가 흠이 없어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됩니다. 모세는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장자를 구출하러 가는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장자가 최소한 하나님 앞에서 율법적으로 흠이 없어야 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애굽의 장자들처럼 죽어야 했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게 된다면, 모세의 장자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곧 모세 자신의 하나님의 장자를 구출하러 가는 자격에 큰 결격사유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를 "죽이려"하셨다는 것은, 지금 모세가 행하려고 하는 일의 중요성을 그만큼 강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모세가 바로 앞에 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장자를 구출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나단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인류의 구속과도 관계됩니다. 흠없는 자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도 실상은 흠이 있었지요. 아들의 양피를 베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바로 메시야의 도래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곧,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오게 될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메시야의 도래 말입니다.

 

할례가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는 십자가상의 구원을 압축적으로 상징합니다. 참으로 귀한 상징입니다. 구약에서 할례를 그렇게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육체를 껍질을 벗기는 그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새언약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새언약은 새창조와 연결됩니다.

 

십보라는 놀랍게도 이방인인데 불구하고 그 새언약을 예표하는 행위를 합니다. 이방인이 깨닫게 될 복음의 이해를 십보라가 예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우리도 또한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구속사업에 참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님께서는 마음의 할례를 받으셨습니까? 이런 질문이 이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는 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부족한 답변입니다만, 우선 간단하게 대답해 드립니다. 더욱 깊은 묵상이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홀리 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