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51문

baromi 2007. 10. 19. 07:30
 

제 51문: 우리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합니까?

        

답: 첫째 그가 성령으로 자기의 지체인 우리 안에 하늘의 은사를 붓는다는 것, 둘째 그가 자기의 능력으로 우리를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고 방어하시는 것입니다.

Quid nobis prodest gloria nostri capitis Christi?

Prium, puod per Spiritum sanktum, in nos sua membra, caelestia dona effundit.  Deinde, puod nos sua potentia, contra omnes hostes protegit ac defendit.


(해 설)


제 51문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왕직분(王職分)을 잘 요약한다. 왕은 그 백성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좋은 것을 부여하신다. 동시에 그는 자기 백성들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신다.


1. 성령을 보내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심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실 수 있게 되었다.  승귀하기 이전까지는 그 분 자신도 성령에 의존하여 살아야만 했다(행 2:32 ; 엡 4:8). 승귀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다음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왕으로 즉위하신 사건을 의미한다.

인간은 원래 성령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창조함을 받았다. 성령이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없도,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으며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살 수 없다. 인간에게서 성령이 떠난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범죄하고 성령이 떠난 이후 얼마나 불행해졌으며 또 얼마나 비인간적인 존재가 되었는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특별은혜 차원에서 성령이 다시 오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귀를 통해서였다. 일반은총 차원에서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일정한 기간 동안 성령은 피조물을 붙드시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신다.


2.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의 은사는 두 가지이다.

  

① 특별은사: 이것은 특별한 시대에 특별한 사명을 위한 것인데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사도시대에는 매우 강력하게 나타났으나 교회가 정착되어감과 더불어 이런 은사는 많이 사라졌다. 

② 정상적인 은사: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필요한 은사로 세상 끝날 때까지 있는 은사이다. 이를테면 믿음의 전제가 되는 신인식(神認識), 믿음 소망 사랑, 성령의 여러 가지 열매(갈 5:22).

올레비안은 말했다: “그 첫째 유익은 아버지께서 단지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위해 성령을 주시고 다스리시며 또 복음 선포와 성령의 능력으로 택한 백성들을 생명 있게 만드시고 여러 가지 은사로 교회 전체를 꾸밀 뿐 아니라 각자에게 은사를 주어 머리의 영광, 몸 전체의 세움, 각 지체의 구원 축복 등으로 이끄시는 유익인데 왕이신 그리스도는 각자의 지체 안에서 자기의 영광과 다른 지체들의 세움을 위해 역사하시기를 좋아하신다.  그는 어떤 지체도 필수적인 은사가 없이 자기 구원에 이르게 하시지 않는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몸의 형통을 위해 봉사함이 없이 공허하게 살게 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각자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활용해야 한다.


3.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심


지상에서 진심으로 주 예수를 믿고 말과 행위로 신앙고백하는 자들에게는 원수가 많다(눅 21:17). 그러나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승리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우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우편 곧 권능의 자리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또 의지하며 살면 늘 승리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 51문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살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을 살게 만든다. 이 세상 사람은 인간의 눈만 피하게 되면 온갖 악한 짓을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 순간 함께 하심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나 안보나 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원론에 빠지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윤리 이원론에 빠진 것은 바로 이 내용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명목상으로는 교회의 중직(장로, 집사, 권사)을 가지고 살지만 이 세상에 나가서는 비 기독교인처럼 비도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런 자들은 하늘에 계시며 우리를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Her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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