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스크랩] 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52

baromi 2007. 10. 19. 07:31

제 52문: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은 당신에게 어떤 위로를 합니까?

답: 모든 비참함과 핍박 중에도 내가 머리를 위로 쳐들고 심판자 곧 이미 이전에 나를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위에 서시고 또 나로부터 모든 저주를 송두리째 가져가신 그 심판자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가 자신의 원수이며 나의 원수들을 영원한 저주로 던져버리시며 또 나를 모든 택한 백성들과 더불어 자기에게로, 하늘의 기쁨과 영광으로 영접하실 것 등의 위로를 합니다.

-Quid consolatur reditus Christi ad iudicandum vivos & mortuos?

-Quod in omnibus miserijs & persecutionibus, erecto capite, eundem illum qui se prius rpo me iudicio Dei statuit, & maledictionem omnem a me abstulit, iudicem e coelo expecto, qui omnes suos & meos hostes, in eternas paenas abijciat: me vero cum omnibus electis ad se in coelestia gaudia, & sempiternam gloriam traducat.

 

(분석)

-그리스도인들은 위로가 필요하다.

-위에 공의로운 심판자가 있다

-이 심판자는

-내 대신에 심판을 받으셨다

-내가 받을 저주를 가져가셨다

-원수들을 저주로 버리신다.

-이 심판자는 자기 백성들을 영광으로 영접하신다.

 

(해설)

제 52문은 우선 기독교인들의 시간관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는 미래의 한 시점으로 그 눈길이 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을 되돌아본다.

 

1. 그리스도인은 위로를 필요로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현재는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교회의 비하상태라 부른다. 성경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핍박이 따른다고 했다. 만일 이 힘든 기간 동안 하나님의 위로가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로가 전혀 필요 없는 듯이 잘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이들은 경건하게 살고자 힘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제 52문은 참된 위로는 오직 하늘에 계신 주님께만 있음을 가르친다. 그러면 이 주님은 어떤 분일까요

 

 

2. 공의로운 재판관

 

그는 우리 대신에 우리 자리에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으신 분이다. 그 때 주님은 나의 모든 저주를 거두어 가셨다. 그 덕분에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고 최후의 심판 때 저주의 심판으로 받지 않는 것이다. 나를 위해 엄청난 일을 해 주신 그 분이 공의로운 심판자로 등장하기 때문에 나는 큰 위로를 받는다는 말이다.

동시에 그는 심판자이다. 이 세상에는 온갖 부정과 불의 그리고 불공정, 억울함 있다. 시편에는 이런 억울함을 호소하는 기도가 많이 나온다. 하박국은 앗수르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노략하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진리를 위해 산다고 핍박한다.

이 세상에 재판관이 있어도 공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음을 본다. 돈을 받고 불의하게 재판하는 자들도 많이 있다. 이 세상 재판관을 우리는 믿을 수 없다. 그런세 성경은 하늘에 공의로운 재판관이 있다고 가르친다. 이 공의로운 재판관이 등장할 때 억울함을 당하던 많은 신자들은 그 눈에 눈물을 씻을 것이다.

그러면 이 공의로운 재판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을 통해 교회와 만물의 머리가 되신 것처럼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 앞에서 머리로 나타날 것이다. 그는 영화로운 육체를 지닌 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또 감각으로 알아 볼 수 있게 올 것이다(마 25:31; 살전 4:16; 요 19:37). 그리고 산자와 죽음 자를 심판하실 것이다(요 5:22; 행 17:31; 마 25:32).

-심판하실 내용: ① 마음의 생각(고전 4:5), ② 내 뱉은 말들(마 12:26), ③ 행위(고후 5:10).

-심판의 표준: ① 이방인은 ‘양심의 법에 따라’(롬 2:12,15), ② 유대인들은 모세 율법에 따라(눅 16:29; 롬 2:12), ③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듣기는 들었으나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복음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요 3:36; 12:48).

-그 심판은 정확하고 정밀하게 수행될 것이며 감추어진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계 20:12; 전 12:1; 시 25:7). 또 이 심판은 철저하게 공의로우며 치우치지 않을 것이다(벧전 1:17; 계 6:15-17; 눅 23:30; 행 17:31).

 

2) 이 세상 심판에 대한 예표 사건

-노아의 홍수사건(찬 6-7장), 소돔 고모라(창 19장), 홍해의 애굽 군대 심판(출 14장), AD 70년의 예루살렘 몰락(마 24; 눅 21).

 

3) 이 재판관은 내 대신에 원수를 갚아 주신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원수이며 나의 원수들을 영원한 저주로 던져버리시며”만일 공의로운 심판이 없다면, 그래서 원수들이 여전히 불의함 속에서 형통하며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그런 상황 자체가 지옥일 될 것이다. 또 최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모든 성도들은 마음의 후련함을 맛보지 못한 채 억울함 속에서 절규하게 될 것이다.

 

 

3. 심판을 기다리는 신자들의 태도

 

1)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날은 끔직하고 무서운 날이다. 신자들은 누구나 이 심판의 날이 올 것을 인식하고 기다리나 단지 언제 오는지는 알지 못할 뿐이다(욜 2:11; 히 10:27; 마 24:36). 불신자들은 그 날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느끼지도 못한다(창 19:14; 마 24:38-39).

2) 성도들에게는 이 날이 끔찍한 날이 아니고 위로의 날이다. 그 이유는 ① 그 심판자는 그리스도 곧 이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인간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어 그들의 죄를 짊어졌고 또 이를 통해 우리를 죄의 저주와 형벌로부터 해방시키심으로써 모든 죄사함을 받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심판을 받지 않게 하신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요 5:24; 3:18). ②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여 비참함과 핍박을 당하나 그리스도의 재림때 위로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심판의 날은 위로와 기쁨의 날인 것이다(행 14:22; 딤후 3:12; 눅 21:28).

3) 우리들은 이 심판의 날이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연기하신 듯이 수 세기(世紀)가 지나가게 하셨다(벧후 3:9). 이것은 그가 우리 인간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다(마 25:13).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 오실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갑자기 지금 주님이 오시는 듯이 살아야 한다(마 24:40-51; 요일 2:28; 4:17)

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는 년, 월, 일, 시간은 우리에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때의 징조를 통해 그의 재림을 짐작하는 것이다. ① 땅끝까지 복음 전파(마 24;14), ② 대 배도 사건(살후 2:3; 벧후 3:7), ③ 고통의 때가 옴(마 24:21-22), ④ 대자연의 변화, 인자의 표시가 나타남(마 24:29-30).

 

 

4. 심판을 통한 성도들의 구원

 

1)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시대적 죄악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만나는 환란과 핍박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리스도를 적대시한 데서 나왔다. 신자들은 더러 그리스도를 위해 이유없이 미움을 당하고 대적을 당한다(롬 12:18).

2) 이 원수들은 누구인가: 이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은 사단에게 속한 자들로 말과 행위로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참람하게 하며, 복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욕의 눈으로 자기의 아집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맛보았으나 다시 타락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다(히 6:6; 마 25:41; 살후 1:8-10; 요 19:37; 계 20:10). 그리스도의 원수는 그리스도인의 원수인 것이다(요 15:18-21; 벧전 4:4-5).

3) 그리스도인들의 위로는 이런 원수들이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는데 있지 않고 영원히 그런 환란과 핍박으로부터 해방을 받는데 있다(눅 21:28; 살후 1:6).

 

 

5. 심판 후의 영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화롭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친다.

 

A. 하나님의 자녀의 육체적인 변화

 

1) 택함을 받은 자들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완전해 진다. 그 이유는 부활한 육체가 새롭게 되어 영혼과 결합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육체가 영화롭게 되어 전인(全人)이 영육에 아울러 영원한 기쁨을 누리기 때문이다. 선택자란 하나님이 자기의 영원한 경륜과 뜻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고 참된 믿음을 통해 영생에 이르도록 보존하시는 자들이다. 저주를 받은 자들은 심판 때에 그 죄값을 받고 선택받은 자는 은혜의 선물로 영생을 받는다(롬 6:23; 요 14:3).

2)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잠자던 자들이 먼저 부활하고 그 다음 살아있던 사람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화된다(살전 4:16-18; 고전 15:53).

3)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약속하심에 따라 형벌을 받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 보좌 앞에서, 그동안 주 안에서 한 모든 일을 드러내기 위해 거기에 선다(고후 5:10; 마 25:34; 딤후 4:8).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세상에 대한 심판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참 신자와 가짜 신자를 구분하는 내용을 다룬다.

-1) 열처녀 비유(마 25:1-13: 이 비유의 주안점은 산 믿음과 죽음 믿음 사이의 차이점이다. 둘 다 외적인 그릇인 등을 모두 다 지녔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성령을 상징하는 기름을 지니지 않았다. 성령의 기름 바름을 받은 자들만이 신랑이신 예수를 만난다.

-2) 달란트 비유(14-30): 그 구별의 근거는 삶에 있어서 신실성과 불신실성이다. 은혜의 은사에 따라 신실히 행한 자는 은혜의 보상을 받는다.

-3) 양과 염소의 비유(31-46): 사랑의 행위 표시에 따라 구별됨.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 주님은 보지 않고 자기 이익중심으로 형제를 경홀(輕忽)히 대접하는 자는 버림받는다.

4) 택함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고전 3:10-15).

 

B. 피조물이 새롭게 됨

 

1) 인간의 죄 때문에 자연도 저주를 받았다(창 3:17). 이 저주 아래에 있는 피조물은 그 구원을 기다린다(롬 8:19-22).

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이 새롭게 된다(벧후 3:10,13). 그러므로 그의 재림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출처 : 백석대학교 권호덕교수
글쓴이 : 권호덕 Her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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