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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일진회, 中1 학생을 노린다

baromi 2005. 3. 9. 18:48
공포의 일진회, 中1 학생을 노린다
여름방학 직후 2학년들이 물색
죽을만큼 매맞는 '물갈이' 통해 '딴사람' 돌변



[조선일보]

일진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이 조직에 연루된 경험을 가진 학부모들이 공포에 떠는 이름이다. 일진회에 대해 직간접으로 들어본 다른 학부모들은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제발 일진회 같은 데 연루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고 말할 정도다. 우리나라의 10대들에게 일진회는 그 어떤 악독한 테러 집단보다 가공할 위협적 존재인 것이다. 그 일진회의 공포가 지금 지역 구분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구광역시 북부경찰서는 지난 5월 27일 학생들을 상대로 상습적으로 금품을 뜯고 폭력을 휘둘러온 일진회 소속 D고교생 5명을 구속하고 10명을 불구속했다. D고교의 경우 일진회 회원들은 한 학년에 20여명씩 모두 60여명에 달했다. 이들 고교생 5명은 지난해 5월부터 120여차례에 걸쳐 학생들의 현금, 가방, 운동화 등을 상습적으로 빼앗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앞서 3월 17일 포항 남부경찰서는 포항 모 고교 재학생 20명을 붙잡아 11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모두 일진회 소속으로 상습적으로 후배들에게 폭력을 휘둘러 500여만원을 빼앗았으며, 대학생 신분증을 위조해 유흥업소 등을 출입하면서 학교에서 갈취한 돈을 유흥비로 써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 4월 말 중학생들을 상대로 돈을 빼앗고,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빼앗아 오라고 협박·폭행한 고등학교 1학년생 K모군 등 4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K군 등 4명이 중학생들을 상대로 2년에 걸쳐 돈을 빼앗고 폭력을 행사했으나 피해 중학생들은 보복이 두려워 이 같은 사실을 숨겨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해 4월, K군을 중심으로 ‘논현 팸(패밀리)’이라는 조직을 결성해 ‘필요한 자금은 후배들을 시켜 충당하자’는 등의 행동강령을 정하고 조직적으로 이 같은 짓을 저질러왔다. 이들은 빼앗은 돈을 K군에게 상납하고, 액수를 채우지 못한 조직원은 대걸레로 심하게 구타했다.

이들의 범죄행각은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끝에 드러났다. 경찰이 G중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학년 학생 260명 가운데 45명이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답했고 이를 단서로 이들을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은 이들 조직의 명칭은 다르지만 조직의 활동으로 미뤄 일진회와 유사하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남에 사는 대기업 임원 S씨는 일진회라는 말만 나오면 지금도 치를 떤다. S씨는 딸을 일진회의 굴레에서 빼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3년 전 해외 유학을 선택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이 어느날 선배들로부터 돈을 빼앗긴 채 매를 맞고 돌아왔다. 남의 일로만 들어왔던 학원폭력이 S씨에게 닥친 것이다. S씨는 피해를 당한 다른 부모들과 함께 가해 학생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가해 학생들은 경찰에서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쓰고 풀려났다. S씨는 “딸의 문제는 이렇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입장이었던 딸이 2학년이 되어서는 가해자로 바뀌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동네 중학생들이 내 딸을 초등학교 때부터 눈여겨봐왔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조직원으로 만들려고 집단으로 괴롭힌 것이다. 일진회 선배들은 공부도 잘하고 인물도 좋고 집안 환경도 괜찮은 아이들을 주로 고르는 것 같았다. 그래야 또래 집단에서 ‘말빨’이 먹힌다고 생각한 것 같다.”

딸이 일진회 멤버가 되면서 생긴 첫 번째 변화는 귀가 시간이 늦어진 것이었다.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잦아지자 자연 엄마와의 갈등 빈도가 높아졌다.


피해 학생이 가해 학생으로 변해

“여학생 10명과 남학생 10명이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아이들을 불러다 괴롭히고 돈을 빌려서 안 갚기도 했다. 딸은 이들과 어울려 다니면서도 나쁜 일을 하고 있다는 죄의식이 없었다. 딸의 말과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는 것 같았다. 일진회 학생들은 회원이 사소한 시비에 휘말리면 이를 집단적 폭력으로 보복하곤 했다. 이들은 학교 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해 갖가지 일에 개입하면서 요주의 대상으로 주목받게 된다. 아내와 내가 딸을 일진회에서 빼내려고 한 것은 딸이 일진회원들과 몰려다니면서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S씨는 학교 징계위원회에 나가 딸의 선처를 호소하는 입장이 되었다. S씨는 딸을 일진회에서 강제로 격리하기 위해 해외 유학을 생각해냈고, 결국 이를 실행에 옮겼다. 딸을 통해 일진회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된 S씨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어린 중학생들의 눈에 일진회는 학교 내에서 굉장한 파워를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일진회를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는 이중적 심리를 갖는다. 일진회는 전국적인 네트워크는 없지만 너무나 쉽게 조직원들이 재생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 같다.”

앞서 소개한 대구 D고교 일진회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학교의 일진회는 구성된 지가 10년이 넘으며 전체 학생 960명 중 60여명이 일진회 회원”이라며 “교내에서 워낙 악명이 높아 피해 학생 대부분이 진술을 회피, 피해 사실을 밝히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포항 모고교 일진회 사건도 상황은 비슷했다. 기숙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일진회가 하급생들을 상대로 장기간 돈을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해왔지만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경찰이 일진회 폭력의 단서를 잡은 것은 경기도에 주소를 둔 한 학생의 부모가 “아이가 학교에서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면 학교에 안가려고 하느냐?”고 항의했기 때문이다.

일진회 학생, 피해자 학부모, 경찰, 진로상담 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일진회 활동의 그 전모가 그려진다.

중학생들이 일진회에 가입하는 시기는 보통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지낸 후이다. 빠른 경우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난 뒤에 선배들의 콜(call)이 있는 경우도 있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출신 학교별로 기싸움을 벌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별로 ‘짱’이라는 학생이 있어서 이 아이를 중심으로 1학년생끼리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데, 이때 자연스럽게 1학년 짱이 탄생한다.

2, 3학년생(주로 2학년)들이 쓸 만한 1학년 일진회 후배들을 물색하는데, 일진회로 활동할 ‘재목’은 한눈에 알아본다고 한다. 눈에 띄는 학생들이 보이면 자연스럽게 이들을 접촉한다. 낯선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일진회에 가입되는 학생들의 조건은 지역마다 다르다. 첫째는 부모의 경제력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부모가 먹고 사는 데 급급해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을 때 부모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쉽게 일진회에 가입한다. 가정에서 정에 굶주린 아이들은 친구와 선배들의 관계에서 깊은 연대감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는 경제력이 있어도 부모가 폭력적인 경우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부모의 폭력에 저항을 못하다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억눌린 분노가, 부모가 싫어하는 일진회 가입으로 저항하게 된다. 셋째는 S씨의 딸처럼 외적으로 가정환경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도 있다. 갑자기 성적이 떨어졌을 때 부모가 자녀를 다그치기만 하면 아이들이 일진회 가입으로 반발하는 경우도 있다.


고3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소멸

일단 중학생 자녀가 일진회에 가입하게 되면 이들은 절대로 부모나 교사의 말을 듣지 않는다.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일진회에 들어가는 순간 완전히 딴사람처럼 돌변하면 부모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런 돌변의 비밀은 일진회 가입 의식에 있다. 2, 3학년 일진회 고참들이 1학년 예비 일진회 멤버를 찜하게 되면 몇 차례 비공식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일진회 가입 의식인 이른바 ‘물갈이’가 거행된다. ‘물갈이’에는 졸업한 선배들(고 1, 2)이 참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같은 중학교 학생들끼리 모여서 진행한다. ‘물갈이’ 의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끔찍한 폭력으로 일관한다. 주로 인적이 드문 야산, 고수부지, 공터 등에서 행해지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것은 그래도 나은 경우다. 대부분의 경우는 선배들이 1학년 신참들을 엎드려뻗치기 시킨 뒤 돌아가면서 각목으로 때린다. 워낙 매질이 심해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죽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렇게 ‘물갈이’를 통해 선배들로부터 죽을 만큼 맞아본 아이들은 내성이 생겨 여간해선 학생부 교사나 부모님의 매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학교 교사와 부모들은 아이들을 일진회 선배만큼 죽도록 때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진회 강령은 주로 ‘선배 말에 무조건 복종한다’ ‘일진회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다한다’ ‘싸움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무조건 이긴다’ ‘탈퇴시 줄빠따를 100대 이상 맞는다’ ‘선배가 돈이 필요할 때 후배는 무조건 상납해야 한다’ 등 5가지다. 일단 일진회에 가입하면 탈퇴할 경우 가해질 선배들의 매질이 무서워 결코 탈퇴하겠다는 생각을 못한다. 이 경우 부모들은 일진회의 마수(魔手)로부터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의 전학이나 해외 유학을 생각하게 된다.

일단 일진회에 가입하게 되면 학생들은 깊은 동류의식을 갖게 되어 각종 폭력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그때마다 일진회원들은 학생부에 불려가 훈육을 받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이를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훈육 횟수가 늘수록 학생들간의 연대의식이 공고해진다. 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군중심리에 의해 흡연, 음주, 삥뜯기(금품갈취) 등을 저지르는 것은 앞서 설명한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진 없는 학교는 거의 없다’고 할 만큼 일진회는 전국적 현상이다. 그 역사도 10년이 넘는다고 말한다. 2000년 서울 S여중 학생폭력 사건이 일진회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일진회는 지역마다, 학교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강남 일진, 강북 일진, 강동 일진, 신도시 일진, 중소도시 일진, 공립 일진, 국립 일진, 사립 일진….

일진회가 주로 중학교에서 극성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중학교에서는 대학입시에 대한 중압감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드물게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일진회 활동을 하는 학생도 있지만 이들은 친구들 사이에서 한심한 아이로 취급받아 ‘따’를 당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래서 고3이 되면 일진회는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게 일반적이다.


교육열 높은 지역선 활동 미미해

그렇다면 어느 지역의 일진회가 활발할까. 교사들은 대체적으로 대도시나 시골이 아닌 중소도시 일진회가 더 과격하고 극성이라고 한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일수록 일진회의 활동은 미미한 편이다. 서울에서 23년째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모 여교사는 “교사의 관심도와 교육열이 높을수록, 단체 생활에 관한 기본 예의 교육이 강할수록 일진회의 활동은 힘을 잃는다”고 말한다.

신도시에서 13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K교사는 이런 말을 한다.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학생을 바르게 인도하려는 교사도 있지만 아이들을 지도하다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은 교사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학생지도를 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체벌로 인해 학부모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다. 교사는 지도할 의무만 있고 권한도 권위도 없다. 요즘 학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아무리 잘못해도 절대로 때리지 말라고 요구한다. 자식 귀한 줄만 알지 망치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교사에게 지도 방법까지 제시한다.”

K교사는 초임교사나 경력이 짧은 교사들의 ‘관념적 관용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사는 엄한 얼굴과 자상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초임교사 중에는 무조건 학생들에게 잘해주면서 친구 같은 교사가 되고자 한다. 이런 교사가 일진회 학생들을 맡게 되면 대부분 학생들에게 끌려가 결국 이들을 망치게 된다. 관념적 관용에 빠져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지 못한다. 교직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그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연륜이 갖는 노하우를 전수받지 않는 분위기가 퍼져 있는 것이 문제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 사대 부속여고 정문에는 서울시교위 지정 ‘준법 우수학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한양대 사대 부속여고는 2003~2004년 학교 폭력과 왕따가 없는 선도학교로 선정되어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러가지 행사를 열고 있다. 한양대 사대 부속여고 모 교사는 “생활 지도가 굉장히 엄격, 철저하고 아이들도 순진한 편이라 일단 표면적으로 폭력 서클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난 5월 서울의 모 중학교 여교사가 폐암으로 서른네 살을 일기로 숨을 거뒀다. 빈소에 온 동료 교사들은 숨진 여교사가 일진회 학부모들로부터 당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암이 발병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여교사는 말썽을 피우고 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일진회 학생들을 훈육하고 혼낼 때마다 일진회 학생의 부모들로부터 “왜 우리 애만 더 야단을 치느냐?”는 등의 거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수년 동안 계속된 일진회 학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로 인한 스트레스가 결국 여교사를 요절케 했다는 주장이었다. 폐암 발병의 원인을 증명할 길은 없다. 그러나 동료교사들의 얘기 속에는 일선학교 교사들이 일진회 문제로 겪는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진회 학생들은 주로 중1부터 중3(혹은 고1)까지 활동하면서 전학이나 자퇴를 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소년원에 들어가기도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원래의 순한 학생으로 되돌아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일진회 활동을 ‘혹독한 사춘기’쯤으로 여기고 가정과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 부모와 교사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앞서 언급한 S씨는 이런 말을 했다.

“일진회 아이들과 휩쓸려 다니다가도 부모와 끈끈한 유대가 있는 아이들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부모와의 유대가 약한 아이들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는 아이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갖되 지나친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한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 maple@chosun.com )

*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