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기세덱의 반차(班次)를 쫓은 '예수그리스도께' 십의 십(전부)를 드리며..
교회개혁/205번의 한우리님의 글 대한 논의를 옮겨오면서....
지금까지 카페에서 전개된 논의들을 살펴보면 율법에 대한 논의들 속에 포함된 다양한 주제(안식일. 십일조....)들을 통해서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었고, 권기현 목사님의 표현대로 "율법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안에서 단번에(once-for-all) 성취되었고, 끊임없이 지어져가고 있는 그분의 몸(교회) 안에서 구약 시대보다 훨씬 더 진전되고 강화되어 우리의 무릎을 쳐서 그분께 굴복케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전개되어 왔습니다. 물론 공감하는 분도 계시고 그렇지 않는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205번 한우리님의 똑같은 글이 숭사리카페에 올려져 있고 여기에 대한 토론이 진행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숭사리의 많은 회원들이 저희 카페의 회원이고 저 또한 숭사리의 회원으로
여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던 터에 제가 숭사리의 카페와 이 토론에 참여하시는 몇 분들의 논의 속에서 발견 할 수 있었던 것은 논의의 목표와 원리의 실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심각한 우려를 214번에 개진한 바 있습니다.
저는 이 토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경륜 속에 나타난 언약이 우리의 삶과 인생에 중요하듯이 이 교리가 잘못 이해되고 전달되면 교회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곧 잘못된 신관, 인간관, 구원관, 교회관, 종말론....으로 우리를 이끌게 될 것이고 주님의 계시는 모순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실제로 연약하고 위기에 처한 교회가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잘못된 교리를 참인 양 붙들고 있는 자들도 있고, 겉으로는 인정하지만 삶과 교회의 처지라는 우상에 매달려 주님의 말씀을 그릇 되이 호도 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언제 그런 교회가 잘못되지 않다고 한 적이 있습니까? 이것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자들을 진짜 경계해야 할 것은 이들이 구약의 율법이 나타내는 많은 성례전적 예표 아래의 '실체'(그리스도)를 부정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저와 많은 분들이 진심으로 우려하는 것은 구약이 나타내는 많은 성례전적 예표 아래 있는 '실체(그리스도)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예로 자신이 주님의 몸이라 일컬으며 성전이라 주장하면서 '보이는 교회'를 부정하는 자들처럼 판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자신이 '성전'되게 한 것이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입니까? 적어도 이것을 주장하려면 자신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임을 명백히 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의 폐해를 주장하기에 앞서 주님의 언약을 깊이 상고하고 그 원리를 찾아가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새 언약이 새 언약인 것은 율법과 관계된 옛 언약을 바로 바라 볼 때 가능합니다. 느보산님 제가 보기에 언약의 유기적 통일성을 간과하면서 까지 십일조폐지를 주장하는 숭사리 카페의 집착이 정말 어디에서 기인한 것입니까? 로데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로데님의 언급처럼 나눔의 정신과, 평균의 원리가 어디에서 나오느냐 것입니다. 십일조 폐기를 주장하며 그 정신까지 폐기시키는 오류를 범 할까 두렵습니다.
그럼 제가 생각하는 그 '정신'에 대해서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느보산님의 언급처럼 멜기세덱의 반차를 언급한 구약의 구절은 창세기 14장 17-20절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시편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시편 110편 4절이 그것이고 신약에서는 이 의미를 잘 풀어 나타내주고 있는 히브리서 7장이 있습니다.
멜기세덱은 예스그리스도의 예표이며, 그리스도는 실체입니다. '의의 왕'이란 뜻의 '멜기세덱'이란 고유명사 '화평의 왕'이란 '살롐왕의 직분' 그리고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여호와 우리의 의'(렘23:6, 33:16) '평강의 왕' 그의 왕직과 제사장직...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칠 때 레위는 그의 조상의 허리아래 있었고 이것은 곧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영원한 왕" 이라는 시편기자의 언급은 중요합니다. 이 글이 기록된 시기는 레위의 반차가 유일한 제사장의 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아론의 제도가 확립된 시기에 시편기자가 언급한 멜기세덱의 반차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 하필 더 오래된 '멜기세덱의 반차'를 언급하는 것입니까? 몇 분들의 견해에 따르면 시기적으로 오래된 '멜기세덱의 반차'는 폐기되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현존의 반차가 불완전한 것이기에 제사장직의 변역은 율법의 변역을 전제한 것입니다.(히 7장)
정리하면 우리가 율법을 깊이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쫓기 위함입니다. 시편기자가 언급한 것 같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분의 인생 족보는 유다지파에 속한 것이고 제사장직의 승계가 필요 없는 영원한 제사장에게 10의 10(전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기자와 히브리서 기자가 주장하는 십일조입니다. 느보산님 십분의 일과 십일조의 의미가 무엇이 다른 지요, 그리고 숭사리의 지체들과 느보산님이 주장하시는 십일조폐기는 무엇이며 제사법과 의식법폐지의 '범위'는 무엇입니까? 제가 조심스럽게 판단하기에 멜기세덱의 십일조를 부정하는 것은 멜기세덱의 '실체'보다 잘못된 형태의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십일조에 관련된 언약을 간과하면서 십일조 보다 더 많은 연보를 주장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 인지요? 참으로 '모세와 선지자'들을 믿고 있습니까?
엠마오 도상에서 주님께서 글로바와 친구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십시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자들이여"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말 믿겠느냐 하시니라(요 5:46,47) (눅 24:25-27, 44절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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