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의 십자가죽음시에 성부는 어디 계셨는가?라는 질문의 글을 올리셨기에
그렇다면 폴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는 질문을 제가 구체적으로 했습니다.
폴님의 답변입니다:
"만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실 때 성부가 그 이전까지는 함께 하셨다가 그 순간만 존재론적으로 분리되셨다고 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후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 의해 존재변화를 갖는다는 결론이 됨으로 옳지 않습니다."
이러한 폴님의 답변은 삼위의 상호내재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르게되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폴님이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 자체가 바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 자기모순적이기 때문에
폴님조차도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어떤 <순간만 존재론적으로 분리되셨다>고 한다면, <영원하신 하나님이 그 후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 의해서 존재변화를 갖는다는 결론이 됨으로 옳지 않습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어떤 순간에도 성부는 성자와 분리되지 않으셨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성부는 성자의 십자가형을 받는 그 순간에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부는 십자가형을 성자가 받을때 함께 십자가형을 받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위트니스 리는 이런 폴님의 이런 결론을 반대합니다.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성부가 십자가에 죽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성부가 사망에서 부활했다고도 말할 수 없다"(Elders' Training, Book3: The way to Carry Out the Vision(Anaheim: Living Stream Ministry, 1985, 69).
그렇다고 제가 위트니스 리의 견해를 수용하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위트니스 리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상호내재의 관점에서 왜 성부가 십자가에서 죽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지에 대해서 타당한 논리로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가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하니, 지방교회 측에 계신 분들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은 또 다르게 답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 다른 논리적 결론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존재론적 상호내재개념을 유지하게 되면, 이 문제는 제대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존재론적 상호내재개념을 없애야 합니다. 지방교회에서 이 개념을 혁신시켜서 정통신학을 보아야 정통신학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통신학을 주장하는 이들과 더불어서 제대로 교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글을 씁니다.
'(지방)교회와 논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위트리스 리 >>//침투했다/그 영( the Spirit)≠성령(Holy Spirit) //이해의 완결 도표(참조용) (0) | 2012.01.26 |
---|---|
[스크랩] Re:삼일하나님과 삼위일체 하나님 (0) | 2012.01.21 |
[스크랩] 삼위일체를 이해할 때 주의 점 (0) | 2012.01.21 |
[스크랩] 폴님의 분리개념과 홀리죠이의 분리개념 (0) | 2012.01.21 |
[스크랩] 정통교부의 상호내재개념과 위트니스 리의 상호내재개념의 본질적인 차이 (0) | 201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