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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로역정강해(18-1):십자가체험(수요설교)

baromi 2011. 9. 30. 10:45

천로역정강해(18):

십자가체험: 죄의 짐이 굴러가다

히브리서12:2/스가랴12:10

 

공부하는 학생이 문제지를 풀다가 답이 무언지 궁금해집니다. 쉽게 답안지를 보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답안지를 따로 떼어놓습니다. 그런 채로 있다가 문제지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답안지만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문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답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렇게 필요해 보이지 않게 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라보라고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면 왜 무거운 짐이 벗겨집니까?

 

 

우리는 천로역정강해를 통해서,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들, 곧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사람들조차도 아직 죄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의 짐 때문에 사명을 성취하지 못합니다. 행복한 신앙생활, 교회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히브리서를 처음 받은 사람들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래서 1절같은 권면이 필요했었습니다. 오늘 2절은 예수님을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믿음의 주”이고, 둘째는,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다. 이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바로 두 종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주”로서의 예수님을 알고 또한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죄의 짐을 벗어버리게 하시는 예수님은 알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히브리서독자들에 이것이 필요한 것처럼, 바로 우리들 중에도 이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로역정강해는 바로 이런 주제에 대해서 어떤 책보다도 성경을 더 밝혀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부분들이 그렇습니다. 전체적으로 신앙의 6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인 좁은문을 거쳐서 우리들은 이제 2단계의 결정적인 부분을 살펴보게 됩니다. 앞으로 3단계, 4단계, 5단계, 6단계가 남아 있습니다. 그만 두어야 하니, 너무나 아쉽습니다. 하여튼, 먼저, 천로역정 본문을 봅시다.

 

 

우리의 주인공은 곧 바로 “구원의 언덕”에 이르게 됩니다. 그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 양 옆으로는 “높은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 언덕에서의 체험은, 제 삼자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언덕에 오르면서 크리스챤은, “무척 고통스러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결정적인 사건을 바로 눈앞에 두고 힘쓰고 애쓰는 모습입니다. 아직 무엇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까?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의 본질, 그 핵심, 그 정곡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고, 하나님의 계시의 은총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또한 바로 내가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무척 고통스럽습니다.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챤은 “쉬지 않고 계속 뛰어가서” 마침내 하나의 십자가 앞에 서게 됩니다. 하나의 십자가가 아니고, “그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보고 그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막 올라가려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실은 “쉬지 않고 계속 뛰어가”는 순간에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죄를 내려 놓으려고 힘쓰지도 않았습니다. 실은, 순간순간마다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존 번연은, 이 순간에 주인공 크리스챤이 특별하게 무슨 일을 하였다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단지, “막 올라가려는 순간 그의 어깨로부터 짐이 풀어져 등에서 벗겨지더니 계속 미끄러져 내려와 마침내 무덤의 입구에서 그 속으로 굴러 떨어져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순간”입니다. 십자가를 참으로 이해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빛이 영혼 속에 환하게 비춰지는 “순간”, 그 한 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그 죄의 짐이 어디로 굴러들어갔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묻히셨던 그 무덤인데, 빈무덤입니다. 그 빈무덤이 죄의 짐을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의 생명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집어 삼키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생명이 왕노릇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좁은 문”을 통과할 때에 “도움”이라는 문지기가 있었습니다. 그 문지기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그리스도께서는 2부에서 크리스티아나에게 설명하기를, “두번 째 용서는 곧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동산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구원의 동산에서 담대의 입을 통해서, 존 번연이 설명하는 것은, “행위를 통한 용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해석자(성령)의 집”에서 가르치고 있는 일곱 가지 교훈의 핵심입니다. 그 핵심을 2부에서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차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존 번연은, 2부의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의를 행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신데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를 완성하신 분이심을 설명하고, 그래서, 죄인들에게 당신의 의를 나눠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옷이 두벌이나 되시기 때문에 불쌍한 우리들에게는 그 옷을 얼마든지 나눠주실 수 있으시다고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죄를 짓는 존재이고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행함과 공로로 인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얻게 되는 의로움(칭의적인 것만 아니라, 실제적인 의)을 깨닫고 또한 받아들이게 될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죄와 허물로부터의 참된 해방과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인 구원의 동산에서 경험하게 되는 죄의 짐이 굴러가게 되는 체험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죄만 아니라, 앞으로 짓게 될 모든 죄의 저주조차도 벗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체험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1부에서의 크리스챤의 체험과 2부에서 그 부인 크리스티아나의 체험이 다릅니다. 크리스티아나는 이런 남편의 체험을 듣고는, “마음의 상쾌함과 기쁨이 이전보다 열 배나 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대한 애정이 강력해집니다. 저에게 있어서도 이런 체험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의 목회수련 후에도 마음에 무언가 허퉁빈 것이 무엇인지 영국으로 도망을 갔더랬습니다. 존번연이 존 기포드목사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았던 것처럼, 저는 피터 마스터스목사님을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일종의 “해석자의 집”에서 교훈을 받은 셈입니다.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가, 참된 용서가 무엇인가 몸부림치던 어느날 십자가가 저에게 분명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죽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함 받고, 또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죄를 더 짓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사도가 선언합니다. 이 두 번째 용서를 통해서, 우리 안에 죄를 혐오하는 성질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런 일이 우리 안에 일어나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일을 소망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스가랴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우리가 찌른 그를 바라보는 것입니다(슥12:10). 그리하여 진정으로 애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위적인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심령에 부어주시는 애통으로 애통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분명하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죄의 저주만 아니라(이것은 좁은 문에서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이제는 죄의 능력까지도 이기게 되는 생명의 왕노릇을 체험하게 됩니다(롬5:17). 오늘 히브리서12장2절 후반에 있는 말씀처럼,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시는 그 통치에 순종하면서 주님의 뜻을 성취해갑니다. 사명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이제부터의 순례의 길은 바로 이런 삶을 위해서 구비되는 길입니다. “아름다움의 궁전”을 향하게 되지요. 이곳은 세 번째 단계인, 성경적으로 개혁된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리고 이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여기에서 주인공 크리스챤은 “용사”로서 탈바꿈 합니다. 그리고는 1)사탄과 싸움, 2)세상과의 싸움, 그리고 3)육체와의 싸움을 치룹니다. 허영의 시장을 지나는 것도 이 과정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면서 “기쁨의 산”을 향하게 됩니다. 아주 성숙한 크리스챤의 상태인 네 번째 단계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강을 바로 앞두면서도 가장 행복한 다섯 번째 단계인 “?랴의 땅”에서 마지막 생활을 하다가(우리 교회에 이 단계에 이르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활해야 할까요?-천로역정이 귀한 힌트를 제공해 줍니다), 마지막 단계인 영원한 시온성에 이르게 됩니다. 순례의 길에 승리합시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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