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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로역정강해(6):`실망의 수렁`은 왜 있는가?

baromi 2011. 9. 27. 23:27

천로역정강해(6):

'실망의 수렁"은 왜 있는가?

예레미야17:9~11

 

(본문)

 

수렁 속에 홀로 남은 크리스챤은 그의 집쪽에서는 멀고 좁은 문쪽으로는 가까운 늪의 가장자리로 기어오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그는 늪의 가장자리에 이르렀으나 등에 짊어진 무거운 짐 때문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이때 나는 꿈 속에서 정도움(Help)이라는 이름을 지닌 한 남자가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을 보았다.

 

 

크리스챤: “선생님, 전도자라는 사람으로부터 이 길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또한 장차 다가올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는 이 길로 나아가 저쪽에 있는 문으로 가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지요. 그래서, 그곳을 향해 가던 도중 그만 이 수렁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도움: “왜 당신은 앞을 잘 살펴보지 않았소>”

크리스챤: “두려움에 몰려 다른 길로 도망하려다 그만 여기에 빠진 것입니다.”

정도움: “자, 그렇다면 손을 이리 주시오.”

 

 

정도움은 손을 내밀어 그를 끌어 올린 다음 어서 가던 길을 재촉하라고 그에게 일렀다. 그때 나는 크리스챤을 끌어내 준 정도움에게로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선생님, 이 길은 멸망의 도시로부터 떠나 저쪽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이라고 들었는데 어째서 도중에 있는 이 수렁을 고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했더라면 미숙한 여행자들이 좀 더 안전하게 저쪽 문을 향해 갈 수 있었을 터인데.” 그러자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이 깊은 수렁은 고칠 수가 없는 곳입니다. 죄가 있다고 판결받은 자들로부터 나오는 온갖 더러운 찌꺼기와 허물들이 끊임없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마침내 ‘실망의 수렁’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또한 죄인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대, 그의 영혼 속에 일어났던 온갖 두려움과 의심과 실망시키는 염려들(discouraging apprehensions)이 이곳으로 흘러와 고여있기 때문에 이곳은 늘 좋지 못한 수렁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장소가 깊은 실망의 수렁으로 남아있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1600여년 동안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국 측량기사의 지시에 따라 많은 일꾼들을 보내어 이 수렁을 메워보려고 온갖 노력을 해 보았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이 수렁을 메우기 위하여 천국의 각 지역으로부터 춘하추동을 가리지 않고 건전하고 유익하며 훌륭한 교훈들을 모아 이만여 대의 수레에 실어 이곳에 쏟아넣었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누구나 이 수렁을 메우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재료라고 말하는 것들만 쏟아 넣었는데도 여전히 이곳은 실망의 수렁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결과는 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실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 수렁의 한가운데에 매우 훌륭하고 튼튼한 디딤돌을 갖다 놓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 수렁 자체가 온갖 더러운 오물과 진흙탕물을 토해놓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혹 그것들이 보였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머리가 어지럽고 혼동이 되어서 발을 헛디디고 말아 결국 수렁에 빠지게 되지요. 그러나 일단 문쪽으로 올라서기만 하면 그곳의 땅은 단단하답니다“(삼상12:22).

 

 

이때 나는 꿈 속에서 유약한씨가 벌써 자기집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이웃 사람들은 그를 만나기 위하여 와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가 집에 돌아온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칭찬해 주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가 바보처럼 크리스챤을 따라가 위험한 모험을 한 것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놀려대었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이 한 번 크게 마음을 먹고 모험을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지. 사소한 난관 때문에 단박 모험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야”라고 한 마디씩 하면서 그를 비웃기도 했다. 그리하여 유약한씨는 풀이 죽은 채 그들 가운데에 앉아 있었는데, 마침내 차츰 용기를 얻게 된 그는 화제를 바꾸어 크리스챤을 몹시 비난하고 조롱하기 시작했다. 유약한씨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

(유성덕 역, 크리스챤 다이제스트:2009)

'정도움'이란 이름번역과 '실망의 수렁'이란 번역은 손성은의 것.

 

크리스챤은 누구든지 순례자입니다. 하지만 순례자라고 해서 모두가 크리스챤은 아닙니다. 소위 순례자들 가운데서도 가짜가 있다는 것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경고합니다. 진정한 순례자는 어떤 자들입니까? 좁은 문을 통과해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장망성을 떠나서 좁은 문에 이르기까지 크리스챤에게 일어나는 사건 두 가지를 보여줍니다. 첫째는 ‘실망의 수렁’입니다. 둘째는 ‘도덕의 마을’입니다. 지금 우리는 ‘실망의 수렁’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실망의 수렁’(the Slough of Despond)에 빠졌던 유약한씨는 실망하고는 화를 내면서 집으로 되돌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주에 유약한씨만 이 수렁에 빠진 것이 아니고, 바로 참된 순례자요 크리스챤인 주인공도 이 실망의 수렁에 빠졌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실망의 수렁’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천로역정을 번역하는 사람들이 이 수렁을 “절망의 수렁”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실망의 수렁”이라고 해야 합니다. “절망”과 “실망”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절망”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인공 크리스챤이 좁은 문을 통과한 한참 뒤에 경험하게 됩니다. 의심의 성의 주인이 바로 “절망거인”(Despair the Giant)입니다. 이 절망의 문제는 그때 다뤄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신앙생활의 초기에 좁은 문을 향해가는 과정[이것은 반드시 유형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장망성을 떠나서 바로 좁은 문을 통과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에서는 “절망”(despair)이 문제가 아니라 "실망"(despond)이 문제가 됩니다.

 

 

곧 크리스챤의 생활 초기에 크리스챤생활에 대한 실망감이 몰려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실망감이라고요? 바로 크리스챤생활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이 실망감은 장망성을 떠나기 이전에 느꼈던, 장망성생활에 대한 실망감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실망 때문에 순례의 길을 작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순례의 길을 떠나서 보니깐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괴롭습니다. 불편하기 짝이 없습니다. 해서 되돌아 서 버립니다. 누구와 같이 말입니까? 바로 유약한씨와 같이 말입니다. 씨부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돌아버리는 가짜 그리스도인들만에게 실망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된 순례자들에게도 이런 실망의 유혹들이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라 하더라도, 이런 실망은 찾아옵니다. 왜 실망하게 될까요? 이 실망의 종류와 형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크리스챤의 삶에 대해서 가르침받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실망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배웠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 이유와 대처방법을 미리 배워두었다고 하면, 실망도 약할 수가 있고, 또한 잘 빠져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예, 이 실망의 수렁을 거치기는 해도, 빠져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실은, 크리스챤의 아내인 크리시티아나는 이 실망의 수렁을 통과하기는 하지만, 빠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빠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미 잘 통과하신 분들이 우리들 중에도 많이 있습니다.  

 

진짜 크리스챤으로 부름을 받아서 좁은 문을 향해서 나아가는 중에,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하게 되면, 건강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건강하게 되지를 않습니다. 부자가 될 것으로 배웠는데, 그렇게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실망하게 되지요. 그래서, 되돌아가 버리면 그 자체로서 그 사람은 가짜 크리스챤이었음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런 실망의 과정을 거쳐서, 크리스챤의 삶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워가게 됩니다. 진짜 크리스챤입니다. 사실, 이런 실망의 수렁은, 번영의 신학, 치유신학이 판을 치고 있는 최근의 한국교회에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번연이 말하고 있는 “천국측량기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 나름대로 하나님께 보냄을 받았다면서 이 실망의 수렁을 메꿔보려고 하지만(2부에서는 이 점이 더욱 강조됩니다!),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 버립니다. 잘못된 방식으로 수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실망의 수렁의 정체를 제대로 알아야 이 수렁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가 있습니다.  

 

이 실망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좁은 문쪽을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정도움씨가 나타나서 크리스챤을 건져주는데, 존 번연은 꿈속에서 이 정도움씨에게 다가가서 이 ‘실망의 수렁’에 대해서 질문하자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이 깊은 수렁은 고칠 수가 없는 곳입니다. 죄가 있다고 판결받은 자들로부터 나오는 온갖 더러운 찌꺼기와 허물들이 끊임없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마침내 ‘실망의 수렁’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또한 죄인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 깨닫게 되었을 대, 그의 영혼 속에 일어났던 온갖 두려움과 의심과 실망시키는 염려들(discouraging apprehensions)이 이곳으로 흘러와 고여있기 때문에 이곳은 늘 좋지 못한 수렁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 실망의 수렁이 어째서 생긴 것이냐 하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곧 우리들 마음에 있는 부패한 마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온갖 추잡하고 더럽고 음란한 것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신앙생활초기에 이러한 것들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면서 우리가 실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란게 이렇다고 예레미야선지자가 말했습니다:“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롐17:9),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9~20상). 

 

우리가 번연의 천로역정의 이 대목에서 배워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의 초기에(아니 어느때라도!) 신앙생활에 실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죄악때문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교회에 대한 실망, 교인들에 대한 실망, 하나님에 대한 실망, 이 모든 실망들이 대부분, 우리가 잘못된 지식에 근거해서 잘못된 예상과 기대를 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정도움씨가 나타나서 수렁에 빠진 크리스챤을 왜 금방 건져 주지 않습니까? 이런 잘못을 깨닫고 있느냐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망 속에서도 배워야 할 것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이 “두려움에 몰려 다른 길로 도망하려다” 그만 여기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실망 자체가 두려움이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절망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가 있습니까? 크리스티아나는 어떻게 그렇게 했습니까? 이 '실망의 수렁'의 한 가운데로 무엇이 놓여져 있습니까? 튼튼한 디딤돌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때를 따라서 온갖 더러운 오물과 진흙탕물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볼 수가 있습니다. “발을 헛디디고 말아 결국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지만, 2부에서는 분명히 빠지지 않고 건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튼튼한 디딤돌들”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언약의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실망할 때에 무엇을 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이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합니다. 언약의 말씀의 디딤돌을 딛고 실망의 수렁을 든든히 건너는 우리들 모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토론과제

 

 

1. 절망의 수렁에 빠진 크리스챤이 자신의 집에서는 멀고, 좁은 문쪽에서는 가까운 방향을 향해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롬6:1~2)

 

 

2. 도움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도와주지는 않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3. 크리스챤의 고백의 특징은 무엇입니까?(딤전1:19)

 

 

4. 도움이 크리스챤에게 도움을 제공한 시점은 언제입니까?(시32:5)

 

 

5. 절망의 수렁을 고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렘17:9;창8:21)

 

 

6. 인간의 부패는 어느 정도로 지독한 것입니까?(마15:18)

 

 

7. 절망의 수렁은 시험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두 가지 조처를 취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1) 고전10:13, 2) 삼상12:22

 

 

8. 변덕쟁이는 고향땅으로 돌아가서 어떤 대접을 받았습니까?(마5:13)

 

 

9. 그리고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마12:45)

 

(김홍만, 52주스터디 천로역정, 생명의 말씀사:2011)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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