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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로역정강해(4): 크리스챤의 첫시험들

baromi 2011. 6. 29. 12:19

천로역정강해(4):

크리스챤의 첫시험들

마태복음13:18~23

 

 

2. 크리스챤의 순례시작-최고집씨는 동반거부 - 유약한씨는 가다가 포기.

 

그러자 그 사람은 전도자가 가르쳐 준 방향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그가 채 멀리 가기도 전에 그의 아내와 자식들이 그가 뛰어가는 것을 보고는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그는 계속 뛰어가면서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하고 소리질렀다.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평원 한 가운데를 향하여 그냥 달려갔다.

 

이웃 주민들도 그가 뛰어가는 것을 보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비웃고, 어떤 사람들은 협박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서 돌아오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들 중의 두 사람은 강제로라도 그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이들 두 사람의 이름 중 하나는 최고집(Obstinate)씨였고 다른 하나는 유약한(Pliable)씨였다. 뛰어가고 있던 사람은 벌써 상당히 뛰어가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두 사람은 따라잡기로 결심하고 급히 뛰어나 이내 그를 따라잡았다.

 

“여보시오. 이웃 친구들! 무슨 일로 날 따라오는거요?”하고 뛰어가던 사람이 멈춰 서서 물었을 때 그들은 대답했다. “당신을 설득시켜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려고 왔소.” 그러나 그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결코 그렇게 할 수는 없소. 비록 내가 태어난 고집쟁이기는 하지만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멸망의 도시입니다. 조만간 우리는 그곳에서 죽을 것이며 죽으면 무덤보다 더 비천하고 무서운 곳, 저주와 형벌롸 유황불이 활활 타고 있는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러니 당신들도 마음을 돌이켜 나와 함께 갑시다.” “뭐라구요? 친구들과 평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버리고 떠나라구요?” 고집씨가 놀라서 말했다.

 

 그러자, 크리스챤(그 사람의 이름은 크리스챤이었다)은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 버리고 떠나야 할 수많은 것들이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참된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 가치도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이 나와 함께 가기만 하면, 그리하여 그 참된 진리를 붙잡기만 하면 당신들은 나와 함께 복락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찾아가려고 하는 그곳은 모든 것이 풍족하여 마음껏 쓰고도 남음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눅15:17). 자, 함께 갑시다. 내 말을 한 번 시험해 보십시오.”

 

최고집:“이 세상 모든 향락을 다 버리면서까지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들이 도대체 무엇이오?”

크리스챤:“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결코 썩지 아니하고 더럽혀지거나 쇠하지도 아니하는(벧전1:4,6;히11:6,16) 기업을 얻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늘나라에 안정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들이며 때가 이르면 그것은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알고 싶으시다면 여기 이 책을 읽어 보세요.”

최고집: “흥! 그까지 책은 치워버리십시오.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소. 안가겠소?”

크리스챤: “안갑니다. 난 돌아갈 수 없소. 나는 이미 손에 쟁기를 잡고 있기 때문이오”(눅9:62).

최고집: “그렇다면, 여보시오. 약한씨! 이 사람은 버려두고 우리끼리 돌아갑시다. 이 사람처럼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어떤 환상을 하나 붙들면 지혜로운 충고를 해 주는 일곱 명의 현인들보다도 자신이 더 지혜로운 줄로 생각하니까.”

유약한: “그렇게 무턱대고 비난하지 말아요. 이 착한 크리스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이 우리가 찾는 것들보다 더 나을는지도 모르지 않소. 나도 이 분과 함께 동행하고픈 마음이 드는군요.”

최고집: “뭐라구요? 바보가 하나 더 생겼군. 내 말대로 어서 집으로 돌아갑시다. 이처럼 정신이 이상한 친구가 당신을 어디로 끌고 갈 지 누가 알겠소? 정신을 가다듬고 지혜롭게 분별을 해서 어서 집으로 돌아갑시다. 돌아가자구요.”

크리스챤: “유약한 형제, 나와 함께 갑시다. 나와 함께 동행하면 내가 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많은 영광스러운 일들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여기 이 책을 읽어보세요. 이 안에 기록되어 있는 진리는 그것을 지으신 분의 피로 증명되어 있답니다”(히9:17,22).

유약한: “여보시오, 고집쟁이 선생, 나는 이제 결심을 내리게 되었소. 나는 이 착한 크리스챤과 동행하여 같은 운명에 나 자신을 맡겨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챤형제, 당신이 소망하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알고 계십니까?”

크리스챤: “전도자라는 분이 내게 길을 알려주었지요. 저 앞에 보이는 좁은 문을 향하여 속히 가면 누군가 나와서 지시를 해 줄 것입니다.”

유약한: “자, 그럼 크리스챤형제, 우리 함께 갑시다.”

 

말을 마치자 그들은 함께 좁은 문을 향해 떠났다.

 

최고집: “그럼 난 집으로 돌아가겠소. 당신들처럼 얼빠진 정신이상자들과 동행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오.”

(번역:유성덕, 리더스다이제스트:2009)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름번역은 손성은목사의 것.

 

 

지금까지는 한 사람을 주님께서 순례자로 부르시는 첫단계인 각성단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는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되는 장면을 살펴보게 될 것인데, 우리는 이 단계에서 이 남자가 “크리스챤”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이름은 “노은혜”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은총 곧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가 없었는데, 이 “노은혜”씨가 전도자의 말을 듣고 순례의 길을 과감하게 떠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천로역정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헷갈립니다. 이 남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좁은 문을 통과하면서, 혹은 그 이후 구원의 언덕에서 십자가를 보면서 죄의 짐이 벗겨지는 것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이 남자의 구원은 바로 그가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이라고 불려지는 아주 초기에 받게 됩니다. (이 단계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의 관계는 곧 좀 더 자세히 설명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표징으로서, 쌍둥이현상을 이미 이 순례의 출발단계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쌍둥이 현상이란, 바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입니다. 과연 이 단계에서 이 남자가 이 현상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전도자에게 말하면서, 자신이 지고 있는 죄의 짐과 장망성이 당하게 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하면서 “이런 일을 생각하니 자꾸 눈물이 나옵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참된 회개를 이 남자가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 이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순례의 길을 떠나자 마자 이 장망성에서 함께 따라나온 두 사람 중에 “유약한씨”와의 대화를 통해서, 이 남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확신하고 그 확신의 이유는, 이 성경이 진리의 소유자이신 분의 피, 곧 그리스도의 피로 증명된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이 물론 구체적으로 순례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설명되어집니다. 분명한 것은, 이 남자는 이 단계에서 이미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그것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 저자 존 번연은, 이 남자를 “크리스챤”이라고 칭하고, 남자 자신도 자신을 “크리스챤”이라고 합니다. 크리스챤이란 자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잠시 그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참된 크리스챤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때 닥치게 되는 가장 큰 시험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 번째, 사랑하는 가족들의 반대입니다. 앞의 각성단계에서도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오늘 본문에서도 이 점이 분명합니다. 이 사람이 전도자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할 때, 가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가족들이 감정적으로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유혹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미리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마10:37)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부모나 자식의 육친의 정을 무시하고 절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사랑”하는 상태라면 아직 그는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순례자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귀를 틀어막은 채” “계속 뛰어가면서” 무엇이라고 소리질렀습니까?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이것은, 이런 육신의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첫째, 귀를 틀어막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가족의 울부짖는 소리는, 예수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정과 욕심”(갈5:24)들 중의 하나입니다. 귀를 틀어막는 것이 바로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둘째, “생명, 생명, 영원한 생명”이라고 외치는 것은, 영원한 목표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몰입하고 애쓰는 것입니다. 구원의 이유와 목표를 잊어버리게 되면, 시험에 떨어집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순례자의 기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된 순례자로 드러날 것입니다. 셋째로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평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사탄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돌아보면 마음이 약해졌을 것입니다. 롯의 아내처럼 돌아보면 그만 시험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공은, 이 시험을 이기고 크리스챤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장망성을 떠나게 되었지만, 이것은 비유입니다. 여전히 순례자는 세상에 살아갑니다.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가족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여전히 세상의 시험거리가 계속됩니다.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장망성에서 두 사람이 따라나서서 순례의 길을 떠나는 남자를 설득해서 되돌아가도록 하는 장면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낙심케 하거나 혹은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존 번연은 그러한 세력을 아주 대조적인 두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세력은, “최고집”(Obstinate)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유약한”(Pliable)입니다. 첫째는, 크리스챤으로서의 순례의 길을 떠난 사람 마음 속에 “고집”스러움이 남아 있어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을 쉬 받아들이려는 마음 보다도, 세상의 경험이나 가치관으로 판단하려고 해서 아예 말씀을 거부하는 경향입니다. 둘째는 “약함”인데, 이것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어려운 일들이나 힘든 일들을 당하게 되면 약해서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을 포기하게 하는 경향입니다.

 

 

주의 할 것은, 이런 사람에 대한 묘사는, 순례의 길을 나섰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가 버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또한 암시하기도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비유”로 경고하셨습니다. 길가에 씨가 뿌려지고, 자갈밭, 그리고 가시덤불에 씨가 뿌려집니다. 이 사람들은 순례의 길을 나서기는 했지만, 돌아서 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구원의 열매는 전혀 맺지를 못하고 맙니다. 먼저 돌아가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최고집”입니다. 이 “최고집”은, 이 세상의 일시적인 즐거움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전혀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것이 최고라고 고집하면서 살아갑니다. 성경을 읽어보라는 크리스챤의 말에 대해서 멸시의 말로 대꾸하는 것이 그 모양입니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길가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크리스챤과 약한씨를 두고는 “정신병자”라면서 돌아가 버립니다. 원래는 “크리스챤”도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은혜로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함께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 “유약한씨”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토론을 위한 문제

 

1)그 남자가 뛰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창22:3)

 

2) 귀를 틀어막고 애절한 가족의 소리를 듣지 않았으며, 한 번도 뒤돌아 보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눅14:26;렘20:10)

 

3) 그의 입술에는 무엇을 갈망하는 고백들이 있었습니까?(마7:14)

 

4) 뒤쫓아 오는 두 친구는 어떤 시험을 의미합니까?9눅9:62)

 

5)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친구들의 설득에 그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이런 신앙고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마13:44~46)

 

6) 믿음의 길을 향해 출발하려면 가장 먼저 전제되는 것이 무엇입니까?(엡2:3; 딛3:3)

 

7) 이름이 없던 그 남자에게 크리스챤이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믿음이 그에게 발생된 증거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빌3:7)

 

8) 크리스챤은 자신이 순례길을 떠난 이유와 목적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벧전1:4)

 

9) 영원한 기업을 찾고 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딤후4:8;마7:7;13:44~46)

 

10) 크리스챤의 권면은 무엇에 호소하고 있습니까?(고전2:4~5)

 

11) 크리스챤은 되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어떻게 말했습니까?(눅14:26)

 

12) 고집쟁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고후3:14)

 

13) 성경이 진리인 것은 무엇을 통해 확증됩니까?(히13:20~21;9:17~21)

 

14) 고집쟁이의 결말은 무엇입니까?(사53:6)

(52주스터디 천로역정, 김홍만, 생명의 말씀사:2011)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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