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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異色 주장] “북한 지하교인 1995년 이후 최소 3720명 처형”

baromi 2009. 11. 7. 21:29

[異色 주장] “북한 지하교인 1995년 이후 최소 3720명 처형” 논문)
 
“북한의 1000여개 지하교회에 13만5000여명의 신자 활동 중”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
북한 지하교인이 손으로 쓴 찬송가.
겉 표지는 김일성 생일기념 노트로 위장돼 있다.
 6ㆍ25 전쟁이 끝난 후부터 현재까지 최소 1만5000명의 북한 기독교인이 종교를 이유로 처형당한 사실이 미국 풀러 신학대학원 李盤石(이반석) 목사의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에 대한 선교학적 이해>란 제목의 이 논문은 1953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된 관련 문헌과 국방부 자료, 증언 등을 종합한 결과 총 1만5657명의 북한 지하교인이 정권에 의해 ‘순교’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논문은 9월말 미국 선교학회를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그동안 북한 지하교회 교인들의 공개처형 소식은 몇 차례 보도됐지만, 사례를 종합해 학술논문으로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문의 저자인 이반석 목사는 “1만5657명이란 숫자는 기록으로 드러난 사례만 합산한 것”이라면서 “실제 순교자 수는 그보다 두 배 정도인 3만여명으로 예측된다”고 했다. 1958년 ‘중앙당집중지도사업’을 비롯해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처형 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는 분석이다.
 
  10년 동안 진행된 연구 과정에서 약 120권 분량의 문헌 자료가 수집됐고, 그 가운데 761건의 순교 사례가 정리됐다.
 
  1996년 12월, 月刊朝鮮은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 100여개의 지하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손자에게 고발당해 순교한 신자, 성경 밀수하다 총살당한 사례, 라디오 부품 조립해 한국 방송을 듣는 신자 등 그동안 ‘지하’에서만 존재하던 북한 지하교회의 현실이 이 기사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탈북자들의 증언과 관련 보도가 이어졌지만, 지금도 일부 북한 전문가와 기독교계 인사들은 지하교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한 탈북자는 지하교회가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자의 주장에 대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못 본 것일 뿐”이라며 “북한 전역에 수많은 지하교회들이 핍박 속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문의 저자는 “현재 북한 지하교회 신도가 약 13만5000명에 이르며, 1000개 이상의 지하교회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논문은 戰後(전후) 북한 기독교의 역사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눈다. 1953년부터 1972년까지는 교회말살 정책이 시작되고 지하교회가 조직된 시기로, 이 기간 동안 최소 1만897명이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958년 시작된 중앙당 집중지도사업 이후 거의 모든 종교가 자취를 감췄다. 전문가들은 당시 약 30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사라졌다고 추정한다.
 
 
  평안북도에서만 최소 9444명 희생
 
평양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 동상 앞에서 참배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 美 국무부는 북한을 2001년부터 7년 연속 ‘종교자유탄압 특별관심국’으로 지목했다.

  1972년부터 1988년까지는 지하교회가 수난을 당한 시기다. 299명이 처형당하는 동안 지하교회는 더 지하로 숨을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이후 7년 동안 순교자 수는 두 배 이상 증가해 741명에 이른다. 그중 427명이 네트워크 조직으로 적발됐다. 논문은 이를 지하교회의 再(재)성장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했다. 1995년부터 북한 지하교회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교인 수가 크게 늘어났고, 순교자 수가 동시에 증가했다. 기록에 의하면 최소 3720명이 이 기간 중 기독교도라는 이유로 희생됐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적발된 지하교인들은 대부분 잔인하게 처형됐다. 1973년 11월 30일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벌어진 공개처형 현장에 대한 탈북자의 증언이다.
 
  “안전원들이 달려들어 세 명의 노인들을 끌어다 철판 위에 눕히고 머리를 압축판 쪽으로 밀어 넣었다. 군중에서 선동적 외침이 나왔다. ‘저 인간쓰레기들을 인민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작동 구령과 함께 25t급 프레스가 서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압축판이 노인들의 머리를 향해 조여 들고 있었다. 잠시 후 두개골 터지는 소리와 함께 뇌수와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논문은 지역별 순교자 통계를 통해 북한 지하교회가 전국에 퍼져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가장 많은 기독교인들이 적발된 곳은 평안북도, 총 9444명이 처형됐다. 이 중 9185명이 1953년과 1972년 사이에 처형됐는데, 1958년 ‘중앙당 집중지도’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희생된 것으로 분석된다.
 
  함경북도의 경우 32명에 불과했던 순교자가 1995년 이후 2111명으로 증가했다. 중국 접경지역을 통해 기독교가 유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평균 150명 단위의 ‘네트워크’ 규모로 적발된 수가 131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볼 때, 지하교회의 조직화가 상당히 진전됐음을 알 수 있다.
 
  지하교회 네트워크는 현재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논문은 희생된 지하교인들의 조직 형태를 크게 4가지로 분류했다. 개인과 가족, 그룹, 네트워크다. 그룹은 4~8명 정도가 모인 신앙조직을 말하고, 이러한 그룹들이 서로 연결돼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지금까지 총 209명이 개인으로 적발됐다. 가족단위로 희생된 사람은 143명이다. 그룹과 네트워크로 적발돼 집단 처형된 지하교인은 각각 6677명과 8628명이다.
 
 
  지하교회, 1995년을 기점으로 급속 성장
 
평양 봉수교회 예배 광경. 북한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국내외 북한전문가들은 서방국가와 남한의 지원을 받기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교인 수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조직규모도 함께 성장했다. 1995년 이후 통계를 보면 그룹의 평균 인원은 10.3명. 네트워크는 150명이다. 지금까지 최대 규모로 알려진 네트워크는 적발된 신자 수만 2000명을 넘어섰다.
 
  논문은 “주민감시구조가 엄중한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을 수 없다”는 일부 남한 기독교계 인사들의 주장에 대해 “네트워크 조직으로 순교된 수많은 사례들이 북한 지하교회의 존재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며 반박했다.
 
  북한의 기독교 전파는 주로 가족과 知人(지인)들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 3710명의 북한 지하교인들이 신앙을 갖게 된 계기를 분석한 결과, 개인 전도가 1750명으로 가장 많았고, 두 번째는 부모로부터 전도(1358명)였다. 1945년 이전부터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177명에 이르고, 탈북자들에 의한 전도는 338명이다. 그 외 공식 국외 여행, 라디오, 비디오, 성경책 직접 계시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특히 ‘1995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우선 지하교회의 형태와 운영 방식 등 모든 체제가 급변했다. 1995년 이전에는 6·25 전부터 신앙을 지켜온 高(고)연령층이 지하교회의 주축이었다. 이들은 주로 가족과 친척을 중심으로 전도활동을 했다.
 
  1995년 이후 중국을 공식·비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40대 미만의 ‘젊은 세대’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절대적 폐쇄’보다는 가능한 수준의 개방을 통해 이전보다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하교회의 빠른 성장과 네트워크 단위로 적발되는 빈도가 늘어나는 것 모두 세대 교체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논문에 따르면, 1986년 스위스 글리온에서 개최된 ‘남북기독자협의회’에서 남북 기독교 대표자들은 조국이 독립한 지 50년이 되는 1995년을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했다. 희년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선포해 노예는 자유의 몸이 되고, 가난한 자의 빚은 탕감되는 해를 말한다. 논문은 선교학적 관점에서 1995년이 남북 기독교의 희년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북한의 ‘공식적’ 기독교 인구는 1만2000여명이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은 “북한에 현재 517개의 가정교회가 있으며, 199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우릴 향해 부르짖고 있다”
 
  북한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북한 헌법 제5장 68조 내용이다.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사회질서를 해치는데 리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국내외 대북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柳錫烈(유석렬) 前(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조그련 위원장인 姜永燮(강영섭) 목사는 해방 이후 기독교 탄압에 앞장 선 인물”이라며 “조그련은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설파해 한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선교기금을 지원 받으려 한다”고 했다.
 
  국제 기독교 단체인 ‘오픈 도어즈 인터내셔널’의 아시아 책임자 첼링 씨는 “북한에 현재 최소 10만에서 최대 40만에 이르는 지하교회 신자들이 존재한다”며 “이들 중 수만명이 지금도 강제수용소에서 고통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기독교 인구를 약 1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美(미) 국무부는 북한을 중국·이란·미얀마·사우디아라비아 등과 함께 2001년부터 7년 연속 ‘종교자유탄압 특별관심국’으로 지목했다. 한국 통일연구원이 펴낸 <북한 인권백서 2007>은 “북한에서 종교를 전파하는 행위는 중범죄로 분류돼 가족 전체가 정치범 수용소에 가거나 공개 처형된다”며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지하교인 집단총살은 최근까지 자행되고 있다. 미래한국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5년 4월 기독교 라디오방송을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한 평안남도 남포시 주민 102명이 한꺼번에 적발돼 40명은 총살됐고, 62명은 정치범 수용소인 요덕 15관리소로 보내졌다.
 
  탈북자들은 끊임없이 북한 지하교회의 수난을 호소하고 있다. 李民馥(이민복) 기독북한인연합 대표는 1995년 탈북난민 1호로 남한에 왔다. 그는 “지하교회가 진짜 교회고 북한에서 선전하는 교회는 가짜”라면서 “왜 남한 기독교계가 가짜 교회에 지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탈북하기 전 북한에서 기독교와 무속신앙 등 종교 활동의 흔적을 수 차례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1967년, 제가 11살 때였습니다. 평양에 대홍수가 일어나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어요. 그때 15년 가까이 하수도에 숨어 모임을 가졌던 ‘악질반동’들이 발각돼 처형당했습니다. 처형 현장을 다녀온 어른들이 ‘산보 가듯 밝은 얼굴로 죽었다’며 ‘공산당을 위해 죽을 각오를 가졌다는 사람들보다 더 정신력이 강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나중에서야 그들이 지하교인이라는 걸 알았죠.”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파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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