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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사, 우상숭배일까 아닐까? 박일민교수

baromi 2009. 3. 2. 15:08

 

 

 

 

제사, 우상숭배일까 아닐까?

2006년 09월 28일 (목) 00:00:00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해지던 때, 성도들은 많은 핍박을 받아야 했다. 핍박의 이유는 많았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전통적으로 이어 내려온 효행 실천을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성도들은 그토록 많이 행해오던 조상을 섬기는 온갖 제사나 성묘 때에 절하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면서 성도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적절한 타협점을 모색해 보려는 시도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제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제사가 우상숭배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1. 우상숭배란 무엇인가

성경에는 우상 또는 우상과 같은 의미로 번역된 단어가 수없이 많이 있다. 그 대부분은 부어 만들거나 새겨 만들거나 깎아 만들거나 빚어 만든 것을 막론하고, 신을 형상화해서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상은 어떤 형태로 만들어 놓은 형상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우상은 넒은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쾌락이나 부귀나 명예나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추구하는 것 즉 탐심도 우상이 될 수 있고(엡 5:5, 골 3:5), 국가나 국가 지도자 또는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계 13:14).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상숭배란 자기가 믿는 신을 형상화한 상(像)이나 조각물을 만들어 놓고 절하거나 예배하는 행위, 또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형상화하여 섬기거나,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이나 경배를 다른 것에게 돌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II. 우상숭배의 결과

하나님은 홀로 한 분뿐이시다(신 4:35). 그러므로 사람이 경배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삼거나, 그것에 절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을 질투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기를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출 34:14)고 하였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람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에도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지 말라는 금령을 먼저 주신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십계명의 첫 세 계명을 어기는 중대한 죄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여, 스스로를 지면에서 멸절케 만든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신 6:5)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숭배한 죄의 대가를 삼사 대의 후손들에게까지 미치게 하겠다고 하셨다(출 20:5). 이스라엘에게 쫓겨난 가나안 원주민들의 예가 이를 잘 증명해준다(창 15:16, 신 9:5, 18:12).

참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섬기려 한다면, 그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께서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 10:21)고 하셨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하나님을 섬기려 했다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던 예를 통해서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출 32:8).

그러므로 성도는 어떠한 죄라도 범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특히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대해서 더욱 민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보이는 형상은 물론, 보이지 아니하는 어떤 것이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대항하거나 대신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국가나 국가 지도자, 조상, 자기 자신 등 그 어떤 것이나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도 없도록 해야 한다.

III. 제사와 우상숭배

우리 민족은 조상에 대한 예를 지킴에서 매우 각별하다. 돌아가신 날을 기리는 일에서부터 각종 절기의 차례에 이르기까지 조상을 향해 수많은 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성묘할 때마다 제사를 간략하게 축소한 형식의 예를 수시로 갖춘다.

대부분의 제사는 음식을 진설하고, 위패나 영정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지방(紙榜)을 불태우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조상 섬김은 조상에 대한 단순한 예를 갖추는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많이 약화되었다고 하나, 본래가 조상을 신격화하여 섬기던 조상신 숭배가 그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숭배는 그 대상에게 절을 하거나 소원을 비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상숭배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을 같은 뜻으로 사용했다(삼상 15:23, 계 9:20). 존경과 섬김의 표로서의 절은 살아 있는 인격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살아 있는 국가 지도자나 어른에게 절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미 돌아가신 조상이나 생명이 없는 물건을 대상으로 하여 절을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것들은 절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절하고 복을 비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후손이 조상의 돌아가신 날에 그 조상을 생각하고 그분의 교훈을 되새기거나, 그 조상의 가문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어 후손들이 나누어 먹으면서 그 조상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 제사 방식에서 행해지는 대로, 돌아가신 분을 위해 음식의 진설하는 것이나 위패나 영정이나 무덤 앞에서 절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돌아가신 조상이 그 음식을 먹거나, 절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명령하시고, 그 명령을 약속이 있는 첫 계명으로 삼으셨다(출 20:12, 엡 6:1-3). 그러므로 성도는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돌아가신 이후에 제사를 드리는 방식이 아니라, 살아 계시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 섬겨드리며, 돌아가신 이후에는 그분들이 남기신 훌륭한 교훈이나 업적을 잘 이어가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IV. 제사음식

사도 바울께서는 고전 8장과 10장에서, 제사음식을 먹는 것과 관련된 문제를 길게 다룸으로써, 제사음식을 먹는 문제가 당시부터 상당한 논쟁거리이었음을 보여주셨다.

비록 제사에 진설되었던 음식이라 하더라도 음식 그 자체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러운 것이 있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 15:11). 따라서 사도 바울께서는 성도는 어떠한 음식이든 깨끗한 줄 알아야 하고, 불신자가 주는 음식이라도 제사음식인지의 여부를 묻지 말고 감사함으로 먹으라고 말씀했다(고전 10:25,27). 이 말씀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야 할 말씀이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의 경우에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본다.
첫째, 마음에 거리낌이 있는 경우이다. 음식 자체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음식을 먹는 것이 신앙 양심에 거리낌이 있다면, 차라리 안 먹는 것이 좋다. 음식에 문제가 있어 못 먹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유익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다. 못 먹는 것과 안 먹는 것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이것은 제사음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음식이나 기호품에도 적용되어야 할 태도이다.

둘째, 덕을 세워야 할 경우이다. 나 자신은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는 성숙된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만일 연약한 성도가 나를 보고 실족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성도를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이것은 덕을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하거나 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전 10:23). 사도 바울께서는 이런 이유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셨다(고전 8:13).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비판하려 하기보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수준에 맞추려 하셨던 사도 바울의 자세를 배워 덕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먹고 마시는 것 그 자체보다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으로 삶의 목표를 삼아야 한다(고전 10:31).

V. 조상의 복과 저주의 유전

조상이 누리던 복과 저주는 후손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조상이 일생의 삶을 통해서 뼈저리게 체득하여 남긴 교훈이나 모아놓은 유산은 후손에게도 많은 유익을 준다. 그러나 조상이 남긴 불명예나 가난은 후손들에게 큰 짐이 된다. 훌륭한 문인의 집 후손 중에서 문인이 많이 나오고, 용감한 무인의 집 후손 중에서 무인이 많이 나오는 것이 이를 잘 증명해준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서,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5-6)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조상의 복이나 저주가 문자대로의 수천대나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조상이 복을 남겼어도 후손의 허물과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조상이 저주를 받았어도 후손의 믿음과 기도는 그 저주를 하나님의 은혜와 복으로 바꾸어 놓고 말기 때문이다.

복과 저주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 가장 큰 영생의 복과 영벌의 저주는 오직 자기 자신의 믿음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조상의 믿음이 후손을 영생에 이르게 하거나, 조상의 죄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후손에게 선물로 주시는 믿음을 방해하지 못한다. 다만 조상의 믿음과 부모의 눈물어린 기도는 후손과 자녀에게 큰 감동을 주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고, 부모의 완악함과 부패함은 후손들의 양심을 더욱 무디게 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게 함을 매우 어렵게 할 뿐이다.

성도는 부모와 조상을 잘 섬겨 효도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효도는 살아 계시는 동안에 순종하고 섬기는 방법으로 해야 하고, 돌아가신 이후에는 그 교훈을 따르고 가문을 복되게 하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돌아가신 이후에, 제사로 효도를 하는 것은 우상숭배에 불과하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게 만드는 죄이다(갈 5:20, 고전 6:9). 제사음식은 더러울 것이 없으므로 얼마든지 먹을 수 있으나, 자신의 양심과 다른 사람의 덕을 위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성도는 자신으로 인하여 가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지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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