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와 논쟁

[스크랩]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육체를 입으시기 전부터, 그것과는 관계없이 하나의 개체요 하나의 위격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1)

baromi 2008. 1. 13. 20:23

존재가 곧 사역이라는 지방교회 나눔님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 참고할만한 글을 올립니다. 아울러, 여기서 지방교회에 대한 비판은 두가지로 나눌수 있습니다. 1) 존재에 대한 이단적주장과 2)사역에 대한 이단적 주장이 그것입니다.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1) 존재이신 삼위하나님께서 2격이신 그리스도가 취하신 인성(성육신,인생,죽음,부활)까지를 포함하여 "그 영"으로 발전하여 새로운 "그 영"하나님이 되었다는 잘못된 존재인식과

2) 잘못인식하고 있는 '그 영"하나님이 사람안에 들어옴으로 결국, 사람이 신격이 아닌, 생명과 본성에 있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신인합일' 사상이 그것입니다.

 

아래의 글은 이 두가지 중에서 첫번째 삼위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지방교회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하여 '나눔'님의 질문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나눔 (474번 덧글질문)

하나로님은 관념안에서 그 영(the Spirit)을 말할때 시간의 발전안에서의 완성으로 알고 있는것 같습니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이 있습니다. 부활전에는 그 영이 계시지 않은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부활은 너무나도 중요한 획입니다. 창조의 하나님과 부활의 하나님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모든 믿는이를 거듭나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질문입니다. 부활에 관련하여 고전15:45, 고후3:17절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사야9장6절을 하나로님께 질문을 드린것도 이와 맥락이 같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그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08.01.08 10:08

영존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전능하시는 아버지? 이러한 구절을 하나로님께서 어떻게 이해하시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성육신, 부활 이러한 문제이지 시간의 문제로 이해하여 양태론이라고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어째든 항상 온유한 영으로 답변을 주시는 님께 감사하게 생각하며, 다시 좋은 토론의 환경이 될때까지 강녕하시고 은혜위에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08.01.08 10:10

 

나눔 (476번 덧글질문)

존재론과 사역적 개념은 신학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개념을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존재와 삼위가 항상 함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삼위가 나뉨이 없는 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창조의 하나님과, 하나님 자신인 말씀이 육신이 되신 육신안에 그리스도와,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실제화이신 진리의 성령은 모두다 같은 존재의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사역적으로 성육신,인생,죽음,부활.... 존재와 다르다."이러한 하나로님 말씀을 성경을 보는 저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바로미님 존재가 바로 사역이라는 것을 알 때가 올 것입니다. 님의 존재가 바로 사역입니다.. 08.01.11 17:21

 

나눔 (476번 덧글질문)
하나로님, 주예수님의 성육신, 인생, 죽음, 부활은 구원의 사역적인 면이고 존재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예를들어 삼위의 구분이 없는 창조의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으로 믿으시고, 삼위중 아들하나님의 부활의 하나님은 존재가 아닌 사역(work)과만 관련시킨다면 창조의 하나님과 부활의 하나님은 존재에 있어서 다른 하나님이실까요? 두 하나님이신가? (이것이 사역적이라 생각하고 삼위하나님을 분리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와 부활후에 많은 아들을 산출하시고 맏아들이 되슨 예수그리스도는 둘 다 제2위격의 문제이므로 존재가 아닌 사역으로 해석하시나요? 08.01.1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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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에서 제33문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부분을 참고하여 올립니다.

 

(하이델베르크 제33문의 해설)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가 육체를 입으시기 전부터, 그것과는 관계없이 하나의 개체요 하나의 위격이셨고, 지금도 그러하시다.

 

고대와 현대의 이단들이 이 명제를 반대해 왔으므로, 그들의 논지를 반박하고 이 명제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기 전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가 인격적으로 존재하셨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논지들은 여덟가지 혹은 아홉가지로 압축시킬수 있을것이다.

 

1) 그리스도의 두가지 본성들을 명확히 구별하여 가르치는 성경본문들과 또한 말씀이 육신을 입어 사람이 되셨음을 확증하는 본문들이 이에 속한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히2:16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하심이라
딤전3:16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요일4:2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자 곧 인자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18:37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히2: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요8:58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그러므로 육신으로 나타났고,우리의 본성을 취하였고, 하늘에서 세상으로 내려왔고, 혈과 육에 참여한 바 되었고, 또한 아브라함 이전부터 존재한 한 본성이 있다. 그리고, 그가 취하시고 오셨고 또한 나타나신 또하나의 본성이 있다. 취하는것과  취함 받는 것은 동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인성을 취하였으므로, 그는 반드시 그 인성과 다를수 밖에 없으며, 그가 인성을 취하기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을 수 밖에 없다. 말씀이 인성으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그가 취하신 육신과  다르고 또한 그것과 구별된 하나의 개체 혹은 본질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논지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곧 취하는 자는 취함을 당하는 그것보다 먼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씀 혹은 성자는 우리의 본성을 취하셨고 육신이 되셨다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가 취하신 우리의 본성 혹은 육신보다 먼저 존재하신 것이다.

 

우리의 본성을 취하신 말씀과 또한 그가 스스로 취하신 우리의 본성을 서로 구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증언들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롬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벧전3:18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다윗과 조상들의 혈통에 속하지 않는  뭔가가 있으며, 또한 죽임을 당하지 않은 뭔가가 있는 것이다.

 

요2:19  너희가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헐어지는 본성이 있고 또한 헐어진 것을 다시 일으키는 또 다른 본성이 있으니, 곧 요한이 "독생자"라 부르는 "말씀"이 그것이다.

 

2) 두번째 논지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정당한 아들로 부르는 -그가 입양되셨기 때문이 아니라 성부의 본질로 나셨기 때문에 - 성경의 선언들에서 드러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롬8:32). 유대인들은 빌라도 앞에서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요19:7)라고 소리쳤다.  즉,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나님의 정당한 본성의 아들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유대인 자신들도 자기들이 그리스도께 씌우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이 되었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자기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른 곳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이고자 했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요5:18) 때문이었다. 곧, 그가 하나님을 자기의 정당하고도 고유한 아버지로 삼으셨고 이는 곧 하나님께만 고유한 그 권능을 자기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말들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정당한 본성적인 아들로, 곧 본성적으로 아들의 권리를 지닌 그런 아들로 부르셨다고 결론짓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정당한 아들이시며, 그의 안에는 그가 취하신 본성 이외에 또 다른 본성이 있으며, 그 본성에 따라서 그가 하나님의 정당한 아들이신 것이다.

 

3)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독생자라 부르는 성경의 선언들이 이 논지들에 포함된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요1: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3:16). 그리스도를 가리켜 독생자라 부르는 것은 그에게 다른 형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인성에 따라서는 그에게 형제들이 있다.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2:17),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2:11). 그러므로 그리스도께는 자신이 성부의 독생자이신 그런 또 다른 본성이 있으며, 그 본성에 따라서는 그에게 형제가 없는 것이다.

 

4)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기 전에도 그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그에게 적용시키는 성경의 모든 증언들이 이 논지에 속한다.

"땅의 모든 끝을 정한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30:4),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2),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요3:17).

성부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러나 인성이 세상속으로 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세상에 보내심을 받기 전부터 계셨다. 또한 육신을 입으시기 이전의 성자께 신적인 활동을 부여하는 성경의 모든 증언들도 이 존지에 포함된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아버지께서 행핫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1:19).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은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다 행하지 않으며,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행하지도 않는다. 지금 육신을 취하신 때에도 그러하니 그 이전의 태토에는 말할것도 없다. 그러므로, 성자께서는 태초로부터 그의 신성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신 것인데, 이는 그가 육체를 취하신 이후와는 매우 다른것이다.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자가 없느니라"(마 11:27).

아들이 자신이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기 전에 살았던 자들에게 성부하나님을 계시하셨다면, 그는 그 이전에 존재하셨을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글스도의 신성에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그리스도께 명확하게 적용시키는 증언들도있다. 이 증언들도 부지런히 살펴야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계해서만 그에게 적용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딤전3:16),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는 그가 육체 되시기 이전부터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려진 본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단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적적으로 잉태되신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 불려지신다고 말할수 없는 것이다.

 

5) 이 논지에는 "말씀"에 대해 말하는 성경 본문들도 해당된다. 

요한이 언급하는 "말씀"은 인성을 취하기 이전부터도 하나의 인격(a person)이셨다. 아들이 그 "말씀'이시다. 그러므로 아들은 육체를 입으시기 전부터 그것과는 관계없이 하나의 인격이시다. 요한복음 1장에 나타나는 "말씀"에 대한 묘사의 모든 부분들이 합쳐져서 위의 삼단논법의 주 전제의 진실성을 확립시켜 준다. 그리하여 그가 태초부터 계셨고 참으로 하나님이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지음 받았고, 그가 사람의 모든 생명과 빛의 주인이셨고, 그가 태초부터 세상에 계셨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살아있고 지성이 있는 인격적인 존재에게 해당되는 이 모든 사실들이 "말씀"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하나의 인격이셨으며, 인간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나시기 이전부터도 하나의 인격으로 존재하셨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입증해 준다 하겠다.

소 전제는 요1:14에서 입증된다."우리가 그의 (즉,육신을 입으신 '말씀'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또한 "말씀"이라 불리는 그분이 같은 장에서 또한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라 불리기도 한다(18절). 또한 요한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 "말씀"으로 말미암았다고 하고, 바울은 그것이 아들로 말미암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말씀"과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는 자는 예수께서 나시기 전에 존재하셨고, 이제는 그가 취하신 인성 속에 인격적으로 거하시는 하나의 인격(a person :  혹은 위격)이신 것이다.

 

6)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지혜이심을 증언하는 성경의 증언들도 여기서 살펴보아야 할것이다.  

 그 논지는 이것이다. 곧, 만물이 하나님의 지혜로 지은바 되었는데, 그 지혜가 영원하다. 아들아 바로 그 지혜다. 그러므로 아들은 영원하시며, 따라서 인성을 입으시기 이전부터 존재하셨다. 주 전제는 잠언8:22에 나타나는 바 지헤에 대한 내용에서 입증된다:

 

(계속됨)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하나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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