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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회심자료]루터는 회심하지 않았었다!

baromi 2006. 10. 30. 23:15

(양무리교회칼럼)

 

루터는 회심하지 않았었다!

                                                                                                                           성은목사

 

종교개혁의 봉홧불을 올린 루터, 그의 95개조문으로 말미암아 중세의 암흑을 밝히는 종교개혁이 시작된 지 489년째가 되는 해이다. 95개조문이란 95개종류나 되는 어떤 항의내용문이 아니다. 95개조항으로 나눠져 있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논문이다. 95개의 문단으로 나눠서 논리를 전개해 가면서 주장하는 바 그 논지를 펼치고 있는 글이다. 그 논지가 무엇인가? 바로 참된 회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면죄부 문제가 강조되고 있는 것은, 그렇게 면죄부를 팔고 사는 것으로 참된 회개가 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 당시 만연되어 있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489년이 지난 지금에도 만연되어 있는 잘못이 있다. 루터가 그렇게 강조하였던 참된 회개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회심에 대한 오해가 그것이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루터의 회심에 대한 오해이다. 루터가 언제 회심을 했나? 95조항으로 된 항의문을 내걸기 전에 그는 이미 회심을 했을 것 같다. 회심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참된 회개를 운운하는 항의문을 작성할 수 있을 수 있었겠는가 바로 이런 생각이야말로 오해이다. 회심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게 되는 오해인 것이다. 참된 회개에 대한 박사학위 100편을 쓴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회심을 아직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루터가 95조문을 작성할 당시에도 회심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는다(충격은 커녕 전혀 관심조차도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나의 이 글도 관심두고 있지 않다!). 

 

루터는 자신의 회심을 기록하는 글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그러던 중 나는 이미 그 해에 시편해석을 새롭게 시도하였다….바로 그때에 방해거리가 되었던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차가운 피가 아니고 로마서1장의 한 마디,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라는 말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라는 그 말을 증오했었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들의 용례와 관습에 의해서 나는 그 말을 형식적 의, 혹은 적극적인 의에 관하여 철학적으로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아 왔었다. 그 교사들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며 불의한 죄인들을 그 의로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Meanwhile, I had already during that year returned to interpret the Psalter anew.....up till then it was not the cold blood ab out the heart, but a single word in Chapter 1,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that had stood in my way. For I hated that word "righteousness of God," which, according to the use and custom of all the teachers, I had been taught to understand philosophically regarding the formal or active righteousness, as they call it, with which God is righteous and punishes the unrighteous sinner.)

  

 루터는 게속 기록하기를, 어떻게 하나님의 의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는지를 말한다. 곧 그의 회심을 간증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해”(that year)란 언제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의 논적 테쩰(Tetzel)이 죽은 해(1519 7)인 것을 윗글의 앞 뒤 문맥을 통해서 관찰할 수 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암시하는가? 그가 1517년10월31 비텐베르그대학교회의 정문에 95개조항을 내걸었다면(사실 좀 과장된 면이 있는 표현이다!), 그의 회심은 거의 2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참된 회개를 설명하는 95개항목으로 된 논문을 썼는데도 아직 그는 회심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목사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회심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 장로여도 그렇다. 선교사여도 그렇다. 그런데, 손목사가 목사된 지 6년 뒤에나 회심을 했다고 하면 제대로 믿어주는 사람이 드물다. 어떤 사람은 나의 말을 듣고는 화까지 내기도 한다. 왜 화를 내는지 도대체 이해하기가 어렵다. 자신도 아직 회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떠올린 것일까? 하나님께서만 아실 일이다. 최소한 회심을 철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않은가.

 

이번 종교개혁기념 489년이 지나면서 아직도 이것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지 못한 것은(아니면 철저했었는데, 그 철저함을 잊어버렸다고나 할까?), 아직도 개혁되어야 할 것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루터가 95개조항을 쓴 바로 그 때에조차도 아직 회심하지 않았다고 하는 바로 그 사실이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주일마다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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