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자료

[스크랩] 곤잘레스: 초대교회사(94- )

baromi 2006. 10. 31. 11:59

p.94. 그렇다면 철학자들과 기독교 사이의 이러한 부분적 일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저스틴은 그 대답을 로고스의 교리에서 찾고자 하였다. 로고스는 'word'와 'reason'을 동시에 의미하는 헬라단어이다. 헬라철학에서 오랫동안 견지해 온 전통에 의하면, 인간의 지성은 모든 실재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로고스, 혹은 우주적 이성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실재를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만약 우리가 2+2=4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우리들의 지성과 우주 속에 2+2=4로 만드는 이성, 혹은 질서인 로고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4복음은 예수님 안에서 로고스 혹은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저스틴에 의하면 성육신에서 발생한 사건은 온우주를 떠받치고 있는 이성,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이다.

  제4복음에 의하면, 이 로고스야말로 모든 이들을 비추는 진정한 빛이시다. 이는 곳 성육신 이전에 이미 모든 진정한 지식의 근원이셨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미 히브리인들의 신앙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에 기초하고 있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이전에 그들에게 계시되셨다고 하였다(고전10:1-4). 이제 저스틴은 비록 희미하기는 했지만, 이교도들 가운데서도 또한 동일한 로고스를 알고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고 첨가하였다. 즉 플라톤의 저술 가운데에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면 이러한 진리는 하나님의 로고스에 의해 허락된 것인데, 이 로고스는 곧 예수님 안에서 성육신한 바로 그 로고스인 것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볼 때에 고대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기타 지혜자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의 지혜는 결국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곧 성육신이 불필요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옛날 이러한 철학자들은 '부분적으로' 로고스를 알았는데 반해 성육신을 통해 그를 본 자들은 그를 '온전히'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스틴의 주장에 따르면, 비록 이교도들에 의해 생성되었다 할지라도 고전문화속에서 발견되는 모든 선한 것들과 진리들은 기독교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곧이어 그들의 신앙과 고대 문화사이에 계속 다리를 놓고자 시도하는 기독교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업적과 그 속에 내재하는 위험들은 앞으로 다른 곳에서 언급하게 될 것이다.

 

저스틴에게 질문해야겠다. 2+2=4를 알게 되면 '부분적으로' 로고스를 알게 되고 그 부분적인 지식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가?

 

p.99. "오류는 절대 그 자체의 모습으로 우리들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반대로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오류가 진리 자체보다도 더욱 진리라고 믿게 된다"(리용의 이레니우스).

 

p.99. 가장 많은 배경을 가진 초심자들이 초대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교회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으며 교회가 갖는 메시지의 우주성에 대한 증명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또한 이 때문에 그 메시지를 여러 가지로 다르게 해석하는 경향도 나타났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는 메시지의 본질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험은 당시에 유행했던 혼합절충주의, 즉 어떤 일관된 체계의 교리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체계로부터 서로 다른 요소들을 종합하여 진리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 때문에 더욱 증가되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장하였으나 어떤 이들은 그의 멧지의 핵심 자체를 오염시키거나 부인하는 모습까지도 보이게 되었다.

 

p.106. '신약전서'라 불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우선 복음서들이 교회의 일반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런체 처음 교회들이 정경 가운데 한 개의 복음서 이상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후기에 들어서서는 4보음서 가운데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는 자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초대기독교인들 역시 이러한 차이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자들은 한 가지 이상의 복음서를 사용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곧 마르시온과 영지주의의 도던에 대한 직접적 반응이었다....마르시온에 의해 조작된 누가복음에 대항하여 교회는 여러 복음서들을 수용하였다. 어떤 때는 3개, 혹은 4개였는데, 왜냐하면 4복음서는 공관복음서들보다 늦게 교회의 공인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였던 비밀의 전통과 사적인 해석들에 대항하여 교회는 공개된 전통을 주장하였다. 즉 모든 이들에게 열려져 있는 바 복음서들의 복수성을 채용한 것이다.

 

p.108-111. 사도신경의 기본골격은 아마 150년 경 로마에서 이루어진 듯 하다,. 당시에 이것은 '신앙의 상징'이라고 불리웠다....그러나 이때의 상징이란 단어는 현재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이는 황제나 장군들이 그의 사절들에게 주는 증명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수신자들이 이를 통하여 진정한 사자를 식별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찬가지로 로마에서 편찬된 '상징'이란 것을 통하여 기독교신자들이 당시 유행하고 있던 여러 이단들, 특히 영지주의와 마르시온주의에 대항하여 진정한 신자들을 식별할 수 있는 증거라는 의미였다. 누구든 이 신경을 고백할 수 있는 신자는 영지주의자나 마르시온주의일 수 없었다.

  이러한 '상징'은 특히 세례문답 때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질문의 형식으로서 세례받기를 원하는 신자에게 주어졌다.

 

  "그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가?

   그대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셨으며, 이 때문에 죽으시고 제3일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로 승천하시고 성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가?

   그대는 성령과 거룩한 교회와 몸의 부활을 믿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읽어보면, 곧 두 가지 점에 착안할 수 있다. 우선 이 가운데에는 후에 [사도신경]이라 불리운 신경의 핵심적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이 신경이 세례때에 사용되었던 삼위일체적 문답을 통하여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신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진실한 신앙의 시험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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