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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딜 수 없는 김장로님께 드리는 뼈아픈 충고

baromi 2005. 3. 22. 18:22

(김병구)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딜 수 없기에

(홀리죠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갖는다고 해서 모두 진리를 위해서가 아니고 복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거짓된 복음을 참 복음인 줄 알고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딜 수 없"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로님의 연배를 고려하면서 그래도 지금까지 가능한 한 장로님을 대접해 드리면서 부드럽게 대우해 왔다고 생각됩니다. 저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저의 토를 단 글들을 님의 선교회에 올리지 않는 것도 그런 예의중의 하나였습니다.

 

저의 질문에 답도 없이 그저 님의 글만을 올려대는 님의 처사를 생각하면서 저도 저로서 조처를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연민"으로 이 글을 씁니다.

 

(김병구)


바른구원관선교회는 특정 신자, 목사, 또는 특정 교회를 공격하여 험집을 낼 목적으로 성경의 구원교리, 즉 칭의구원을 받은 신자는 반드시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성경의 구원교리를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홀리죠이)

바른구원관선교회라는 이름부터 "특정신자, 목사, 또는 특정교회를 공격하고 험집을 내"고 있습니다. 곧 성도의 견인론과 칭의구원보장론을 믿고 있는 신자들, 목사들, 교회들을 공격하고 험집을 내고 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양의 탈을 쓰고 있는 늑대와 같은 처사입니다. 님의 글은....그렇게 위선적이고 위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칭의구원을 받은" 신자는, 그것으로 "성화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올바른 "칭의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지요. 님의 "칭의구원"은 거짓된 "칭의구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른구원관"이 아니고 "틀린구원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른"구원관이라고 하니, 저의 "심장이 터지도록 연민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김병구)

예수님을 영접한 신자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부음받음(로 5:5)으로, 그리스도로 부터 얻은 자유(갈 5:1)를 행사하여 순종함으로 영생에 이르거나, 불순종함으로 영적 사망을 당하는 책임을 지게 된다는 성경의 구원교리를 믿지 않고, 신자를 자유의지가 없는 로봇으로 취급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론에 근거한 비 성경적인 성도견인론을 신봉하여, 칭의구원만 받으면 영생은 반드시 얻는다는 잘 못된 생각으로, 육신대로 살다가 지옥 불에 떨어질 형제 자매들이 무수할 것임을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견딜 수 없기에, 부족하고 자격 없는 존재이지만, 성경적 구원교리를 역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홀리죠이)

신자를 자유의지가 없는 로봇으로 취급하는 것이 "절대주권론"입니까? 참으로 안타깝군요. 어떤 사람, 어떤 신학자가 "하나님의 절대주권론"을 주장하면서 인간이 자유의지가 없다고 합니까? 하이퍼 칼빈이즘에 속하는 이근호목사조차도 그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근호목사의 신학을 그렇게도 경고하며 비판해 온 것이 바로 이곳 양무리마을입니다.

 

비판하셔도 허수아비를 두고 비판하시는 장로님의 노고가 참으로 가련하기만 합니다. 그것도 님의 생각 속에 가상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그렇게 헛수고를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무언가를 비판해야만 님의 위상이나 명예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겠지요? 우쭐해 지구요? 한국교회의 개혁의 선구자가 되시는 느낌입니까? 교회개혁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몸부림치십니까?

 

님의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까? 님의 논리는 결국 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른구원관선교라고 틀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국교회의 개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르짖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절대주권론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십시오. 가증스럽습니다. 님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다른 편의 입장을 그렇게 왜곡시키기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것도 여러 번 그런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도 그렇게 왜곡된 견해를 가지고, 또한 선전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지나쳐서 교만한 것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 그런 고집스러움을 가지고 계신다면, 저로서도 그렇게 대우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병구)

신자에 따라서는 성화가 없으면 영생이 없다는 성경의 구원교리를 모르고서도 칭의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훌륭하게 거룩한 삶을 살아 영생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성화가 있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된 이후에야, 저희들의 생각과 성품이 크게 달라졌음을 고백합니다.우리 주님께서 산상수훈의 처음 부터 끝까지 성화의 삶을 그렇게 혹독하도록 가르치시는 이유는 저희같은 사람들이 전형적인 신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라도 성경적 구원교리를 외치지 않고서는 가슴이 찢어지는 연민의 정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홀리죠이)

칭의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곧 성화를 이룰 수 있는 기질을 부여받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의 변화입니다. 그런 마음의 변화가 칭의가 주어질 때 동반됩니다. 문제는, 님처럼 그렇게 성화가 조건이 되어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칭의의 과정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어서 우리가 죄인이지만 법정적으로 의롭게 여기심을 받고 또한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의가 우리에게 들어오지만, 그 실제적인 의가 조건이 되어서 우리가 의롭다고 칭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님께서는 지금 "장로"면서도 싱가폴장로교회의 장로면서도 그 장로교회의 신조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가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체험했다고 그것을 함부로 방자하게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 이전의 신조들을 엄밀히 살펴보시고 겸손하게 자신의 깨달음을 그 신조들에 비추어 보십시오. 그 신조들이 작성된 것은 성경의 박사들이었던 청교도신학자들이 경건하게 기도하면서 작성했던 것입니다. 님보다도 더 성경을 더 많이 압니다.

 

겸손의 영이 님을 통치하시길...

 

(김병구)

작은 수의 교계 지도자들이 토해내는 교회가 세상보다 부패했다는 탄식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요?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돌리도록 하라(마5:16),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라고 율법과 복음의 완성인 산상수훈에서 우리를 가르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날 한국의 교회와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성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실까요?

 

(홀리죠이)

 

한국교회가 필요한 것은 "소금이 아니던 자들이 어떻게 맛을 확실하게 내는 소금"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소금도 아닌데 어떻게 소금맛을 내겠습니까? 어떻게 "칭의"를 제대로 모르는데, 성화의 삶을 살겠습니까? 지금 장로님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잘못 진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는데, 그것을 다시 끼울 생각을 하지 않고, 둘째단추 세째단추만 고칠려고 합니다. 모양이 흉한 것은 여전합니다. 장로님이 성화교리를 강조하는 것은 좋은 것이로되, 칭의의 복음을 오해토록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자들을 빛이라 소금이라 하였습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들이 착한 행실을 하려면 그 착한 행실을 할 수 있는 본성을 가져야 합니다. 만일 그런 본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아예 "신자"가 아닙니다. 아예, 빛도 아니고 아예 소금도 아닙니다. 어떻게 빛도 아닌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소금도 아닌데 소금맛을 내라고 합니까?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있습니까?

 

구스인이 그 피부색을 바꿀 수 있습니까?

 

샘의 근원이 부패해 있는데, 어떻게 맑을 물을 기대합니까?

 

오, 김병구 장로님, 님의 샘의 근원은 바로 고치셨습니까?

 

저의 안타까움은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님의 근원부터 치료하소서. 그리하면 다른 사람을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병구) 

저희는 오늘날 교인과 교회의 부패의 근본원인은 목사, 장로, 그리고 신자들의 육신대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대로의 삶의 원인은 목사와 장로가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말씀대로 배우지 않았고, 신도들을 말씀대로 가르치지 않았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산상수훈 보다 칼빈의 성도견인론를 철석같이 믿도록 가르친 한국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의 책임이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홀리죠이)

틀렸습니다. 님의 진단이 근원적으로 미흡합니다. 오늘날 교인과 교회의 부패의 근본원인은 아예, "목사"로 하나님께서 부름받지 않은 자가 "목사"로 세움을 받았고, "장로"로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자들이 교회를 치리한다고 하고, "신자"가 아닌 자들이 "신자"라고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바로 이런 경우가 한국교회에 태반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그 퍼센테이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만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잘못된 진단으로 이미 그들이 "참된 목사"요, "참된 장로"요, "참된 신자"인 줄로 알고, 그들이 "육신대로 살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성화의 도리를 강조합니다.

 

어떻게 죽은 자들이 걸어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시체가 착한 일을 행할 수 있을까요?

 

님의 수고가 "경건"하나 참된 복음에 기초하지 않은 경건인 듯해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마치 바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기 전에 가졌던 그 열심있는 경건과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십시오. 그리하여 "복음"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다시 되돌아 보십시오. 장로님의 복음입니까? 하나님의 복음입니까? 장로님의 구원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입니까? 장로님은 연약해서 장로님의 구원도 철회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장로님의 구원과 그 복음을 하나님의 것과 비교해 보십시오.

 

장로님의 눈이 열려지기를....마치 바울의 눈에 가시가 벗겨지듯이...

 

(김병구)

우선 우리들의 교회 헌법에 우리들의 신앙 고백으로 규정하고 있는 성화를 통하여 영생을 얻을 것임을 가르치는, 사실상 성도견인론을 부정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종내는 우리 주님의 완성된 율법이요 복음인 산상수훈으로 돌아 갑시다. 우리는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배워서 전하는 대상, 환경, 여건에 적용하여 가르치는 서신서, 그래서 우리에게 혼동을 주기도 하는 서신서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선생님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직접배우지 않으시렵니까? 교과서를 두고 참고서만 뒤적이는 어리석음에서 이제는 벗어 납시다.

 

(홀리죠이)

 

보십시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가 어떻게 "사실상 성도견인론을 부정"합니까? 그 17장은 엄연히 성도의 경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읽어보셨습니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They whom God hath accepted in his Beloved, effectually called and sanctified by his Spirit, can neither totally nor finally fall away from the state of grace; but shall certainly persevere therein to the end, and be eternally saved.

 

그리고 그것을 더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2항과 3항입니다. 도대체 님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저의 것과 다른 것입니까? 인쇄가 잘못된 것입니까? 싱가폴장로교회에서 가르치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제가 이곳 런던에서 살면서 웨스트민스터국회의사당과 그 성당을 자주 구경하고 있습니다.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치지 마시고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왜곡하지 마십시오.

 

님이야 말로 지금 그 신앙고백서와 복음과 구원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님은 지금 사도들의 서신서와 예수님의 복음서를 이간질 시키고 있습니다. 교회만 분열하고 획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의 저자들을 이간질시키고 분열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이 님의 의견을 주장합니까?

 

아래에 이것에 대해서 질문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다시 주목해 보시고, 그 질문에 답변하시기 바랍니다. 답변없이 님의 글을 올리기만 하면 이제 더 이상 지켜볼 수만 없다는 것을 두 번째로 말씀드립니다.

 

(김병구)



칼빈의 성도견인론이 자취를 감추고 성경의 구원교리가 이 땅에 편만할 때에 가서야 한국교인들의 구원이 완성되고 한국 교회가 개혁되며 마침네 성령의 불 내리는 부흥이 한국교회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홀리죠이)

 

님이 생각하는 구원교리가 사라지고 칼빈의 성도견인론이 제대로 이해될때에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님이 좋아하는 로이드존스목사의 견해입니다. 로이드 존스목사는 말하기를 칼빈주의신학이 제대로 소개되고 강조될때에만 참된 부흥이 있다고 하였고, 그 신학에서 변질된 알미니안주의신학이 팽배하게 될 때에 거짓된 부흥이 있거나 교회에 냉냉함만 찾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님의 잘못된 구원교리로 한국교회의 참된 부흥이 임하게 되는 것을 방해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안타까운 마음, 터질 것 같은 심장의 고동으로...

 

 

 

한백성 홀리죠이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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