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글에 아래와 같이 하나 하나 토를 달겠습니다. 왜 거꾸로 이해하시는 지요?(홀리죠이)
* * * *
(김병구)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왜 비성경적인가
성도견인론,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만 초점 맞춰…인간의 의무를 부정
(홀리죠이)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왜 성경적인가?
성도견인론,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 초점 맞춰...인간의 책임을 강조함. 김병구님은 칼빈의 성도견인론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상하신 분. 그러면서 하시는 선교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김병구)
칼빈은 하나님 주권의 절대성 때문에 인간의 행위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수 없으므로 성도견인의 교리에 따라 구원 받은 성도는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홀리죠이)
윗문단의 첫번째 문장은 문법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칼빈이 주어라면 영향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동사이므로.....아주 뜻이 묘하게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해서 그 주어를 "성도의 구원"이라고 해 봅시다.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의 절대성을 강조할 때에 인간을 기계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김병구님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행위가 조건이 되어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한 은혜의 구원에 반응해야 합니다. 반응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반응때문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힘에 의해서 반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 반응 자체가 은혜가 되고 선물이 되는 것이지요.
님께서 얼마나 칼빈의 절대주권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지 잘 보여주고 있군요.
(김병구)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를 하나님 혼자서 행사하시는 은혜로만 구원이 이루어지고, 인간의 행위는 구원에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Institute Book II Ch 3, 11, 12).
(홀리죠이)
칼빈이 그런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그가 인정하면서 인간의 반응이 어떠해야 할 지를 또한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칼빈을 바보처럼 여기시는군요.
(김병구)
은혜구원론의 원조인 바울 사도는 칼빈의 견인론을 뒷받침하는 위의 빌립보서 2장 13절의 바로 앞 절인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빌립보 교인들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 말씀은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뜻을 행하도록 하심은 사실이지만, 인간은 그 성령님의 인도와 명령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이뤄가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홀리죠이)
그 "구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구원"이라는 말이 어떤 뜻을 가지고 있나요? 님께서는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자이군요. 그것도 전혀........그래서 힘써 이루어가기 위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힘을 쓰시는 군요. 그것은 불교입니다. 님께서는 지금 불교교리를 가르치십니까? 진정 복음을 "선교"하시기 원하시다면,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얻은 것은 '이미" 과거의 일입니다. 참된 회개와 믿음의 반응을 보였다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는 남은 죄가 여전히 남아있지요. 칼빈은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 죄를 죽여가야 하고 또한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힘써 살아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의 권면입니다. 칼빈이 정확하게 해석한 것입니다.
칼빈이 통곡을 하겠습니다.
(김병구)
그런데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에만 초점을 맞추고, 신자는 자신의 구원에 관련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비성경적이다.
(홀리죠이)
아이구 두야~ 칼빈이 복통을 일으키겠습니다. 칼빈은 신자가 자신의 구원에 관련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기독교강요 세 번 읽었습니다. 궁금하시면 제가 찾아드릴까요? 어느 곳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지를?
(김병구)
둘째로 성경은 아래 말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신자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말씀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 13)
그런데 칼빈의 성도 견인론은 신자에게는 자유가 없음을 전제로 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다.
(홀리죠이)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신자에게는 자유가 없음을 전제로 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론을 어디에서 주장하고 있나요? 도대체 칼빈의 글을 읽었나요? 몇군데 읽은 흉내 내면서 인용하지 말고 통채로 여러 번 읽으십시오. 신자에게 왜 자유가 없어요? 자유가 있지요? 펄펄 넘치도록 있지요. "신자"는 "자유"를 얻은 자들입니다. 님께서는 지금 이 중차대한 논의에 있어서 개념적으로 충분히 정립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자유"가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
약물로 중독된 사람이 중독이 되면 될 수록 죄의식이 약화가 됩니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하는 의지도 약화됩니다. 그래서 범죄를 저지른다고 합시다. 약물의 힘에 의지해서 말입니다. 그럴 때에 이 사람이 죄를 저지른 것은 약물 때문이기 때문에 책임이 경감됩니까? 그러면 죄를 짓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약물을 과다복용하면 되겠군요. 인간의 죄악의 본성때문에 인간이 구원에 이를 선을 행할 수가 없어도 그 저주의 책임, 그 심판의 책임은 바로 죄악의 본성을 지니고 있는 인간 바로 그 자신입니다. 바로 장로님께서 책임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칼빈의 자유론입니다.
님의 논리는 참으로 허무맹랑합니다.
(김병구)
칼빈의 성도견인론이 결정적으로 비 성경적인 이유는 그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진리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21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구원교리의 핵심을 선포하셨다.
(홀리죠이)
왜 칿민의 성도견인론이 예수님의 구원진리선포하신 것과 불일치하나요? 마7:21에서 "주여주여 하는 자들"이 구원받은 자들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장로님께서는 주변의 사람들이 "주여주여"하면 모두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값싼 구원론"을 가지고 있습니까? 참 어처구니 없군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바로 "참된 구원을 오직 믿음으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던 자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그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있게 되고 또한 그렇게 행하게 됨으로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께서 참으로 이런 구원을 아시게 되고 체험하시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김병구)
그리고 모든 성경의 말씀과 비유들은 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진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창의구원만 받으면 신자는 자신의 행위에 관계 없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칼빈의 성도견인론은 근본적으로 비 성경적인 그릇된 구원관이다
(홀리죠이)
위의 문장에서 "자신의 행위에 관계없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전혀 이상하군요. "칭의구원"이 무엇인 지 아는 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칼빈과 그의 후계자들은 "칭의"를 받은 자는 성화의 능력을 이미 공급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느낍니다. 또한 그러한 새로운 본성을 따라서 행합니다.
장로님은 도대체 "칭의"가 무엇인 지 아십니까? 칭의의 은혜와 그 감격이 무엇인 지 체험하셨습니까?
(김병구)
그런데 칼빈의 성도 견인론은 신자에게는 자유가 없음을 전제로 하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다. 근 500년 전에 칼빈이라는 젊은 신학도가 약관 27세의 나이에 저작한 한 서적에서 비롯된 성도견인론이 오늘날 한국의 주류 교회의 목사님들에 의하여 신봉되고, 또 성도들에게 유일하고 확실한 구원교리로 가르지고 있는지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홀리죠이)
약관 27세............? 예수님은 33살때쯤에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고 구원을 완성하셨지요. 그 약관 33세의 청년의 죽음에 의해서 죄인들이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저작들을 남긴 청교도신학자들 대부분이 약관 20대초반 혹은 후반, 30대경에 죽었습니다. 생명의 진액을 쏟아부으면서 살았습니다.
죽지 못해서 벽에 똥바르면서 사는 이 세대와는 다르지요. 그리고 그가 기독교강요를 초판에 내었던 이후 거의 그의 반평생 개작하고 또 검토하고 또 숙고하고 또 개정하고....그렇게 해 왔었습니다. 도대체 몇 년도 판 기독교강요를 보셨습니까? 27세때 쓴 기독교강요는 최종판과 비교하면 4분의 1도 안됩니다.
님의 글을 보면 볼수록 슬픔이 밀려옵니다.
제발 통촉하시길~
한백성 홀리죠이.
ps. 저의 글에 답변하지 않으신 채로 계속 님의 그 이상한 선교회를 선전하시는 글을 계속 올리시면 저는 이곳 카페지기로서 지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고 또한 기회있는 대로 님의 선교회에 들어가서 님의 글들을 비판하는 글들을 올리게 될 것을 미리 경고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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