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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그들"이 "네피림"이 될 수 없는 이유

baromi 2006. 8. 9. 08:30

왜 네피림을 '거인들'로 보려고 하는 것일까?

 

창세기6장4절을 둘러싼 해석의 논의를 진행하면서 저는 간혹 묵상해 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를,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신화에 대한 갈망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곤 합니다. 인간의 고대사를 보면, 신들과 인간 사이에 있는 어떤 존재들을 상정하곤 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일종의 semi-gods같은 존재들, 그것이 거인들과 같은 보통 이상의 인간적 존재로서 묘사하면서, 신과 인간 사이의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로 표현하곤 합니다. 왜 이런 존재를 상상하는 것일까? 그런 심리구조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지금 논의에 참여하는 분들이 이런 심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인간과 신 사이에 어떤 존재를 상정함으로 인하여 인간구원을 위한 어떤 중보적 존재에 대한 희망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그 중보적 존재란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이런 신화들을 통하여서 왜곡되어 표출되고 또한 인간의 심층의식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런 설에 대해서는, 좀 자료를 모아서, 정리한 뒤에 쓰기로 하고......,

 

오늘은 왜 창세기6장4절의 '그들'이 '네피림'이 될 수 없는가를 입증하려고 합니다.

 

첫째, 영어문장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번역들은 히브리어원문의 '버감 아하레이 켄 아쉐르'부분을 and also afterwards, when 식으로 번역하는 것 같습니다. 이 번역에 있어서 하나로님은 when이라는 번역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영어번역상으로 보면 전혀 그런 문제의식에 전혀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해서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

 

when은 히브리원문의 <아쉐르>의 번역어인데, 문제는, 이 when이 앞 문장의 어디를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어번역문들을 보면, 그것을 알기 쉽게 하려고, -을 and also afterwards 앞뒤에 넣고 있습니다. when 곧 아쉐르가 받고 있는 것은, 두 개의 -- 그 사이에 있는 말(and also afterwards)과 첫번째 -의 앞에 있는 "당대에"(in those days)라는 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해 집니다!

 

when, 곧 아쉐르는 네피림이 있던 그 당대의 상황을 묘사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당대에 네피림이란 있었다. 그런데, 그 당대가 어떤 상황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성적 결합을 통하여 아들을 낳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그 당대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버감 아하레이 켄이라는 말을 곧 and also afterwards라는 말을 삽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넣은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곧 네피림이 있었던 당대와 당대 이후에도 계속되는 상황의 설명이 바로 when, 곧 아쉐르 이하의 설명이라는 것이지요. 쉽게 설명하면, 네피림이 있던 그 당대부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성적 관계를 가지기 "시작"했고, 또한 이런 성적 교합관계는 "계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네피림"의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성적 교합을 하고 그 자녀들을 계속 낳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존재하였느냐 아니냐 하는 것은 히브리어원문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단지, 이런 두 개의 사실을 근접시켜서 설명하는 것은, "네피림"이란 존재들이 이런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성적 교합에까지 이르고 또한 그 자녀들을 낳게 되는 그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름에서 유추될 수 있는 것처럼, '네피림'들이 사람들의 '떨어짐'을 부추겨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성적 교합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의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오히려 거꾸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교합을 통해서 낳아진 자녀들이 '네피림'이었다는 식의 추측은 문법적으로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추측입니다.  

 

(네피림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이 문제와 별도로 논의할 예정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한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곧 아쉐르 뒤에 나오는 그 당대에 대한 상황의 설명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아주 특이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표현들에 주목하게 되면 '그들'에 대한 정체가 분명해 집니다. 결코 '네피림'이 될 수 없음이 확정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점에 대해서 대부분의 영어번역자들이 주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쉐르 이후에 주어진 문장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여 (자녀들을)낳았다"는 문장과 그 뒤에 이어지는 "그들이 용사라 고대의 유명한 자들이었다"는 문장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영어번역들이 그 두 문장 사이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번역해 두었습니다. 곧 마침표(.)를 찍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원문에는 마침표도 없고, 문장을 마친다는 어떤 표시도 없습니다. 또한 접속사 <버 w>조차도 없습니다. 바로 이것, 접속사 <버 w)조차도 없다는 이 사실은 무시되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실에서 뒷문장에 바로 나오는 "헴마", 곧 <그들>이 누구인지를 강하게 추측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쉐르(when)이라는 단어 뒤에 있는 두 "문장들" 사이에 <버 w>라는 접속사조차도 없다고 하는 것은, 소위 우리가 염두에 두고 있는 두개의 문장, 곧 <하나님의 사람들과 사람의 딸들이 성적 교합을 통해서 (자녀들을) 낳았다>는 문장과, <그들이 용사들이며 당대의 유명한 자들이었다>는 문장이 실은 두 개의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어구문에 있어서 <버w>의 역할은, 단어와 단어 사이에, 구와 구 사이에, 그리고 문장과 문장 사이에 들어가서, 그 앞뒤의 다양한 관계들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어, 혹은 구, 혹은 절 두개 연이어서 나오면서 그 사이에 <버 w>가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아주 특이합니다.

 

그런 예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창세기10장11절 같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글개역성경에는 "여호와의 동산같 애굽땅과 같았더라"는 표현의 "고"에 해당되는 부분에 <버 w>가 있음직도 한데, 원문상으로는 그것이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땅을 묘사하고 있는 이 표현은 이렇게 있어야 할 <버 w>를 생략함으로 인하여, "여호와의 동산"과 "애굽땅"을 아주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는 역할을 합니다. <버 w>가 있어도 물론 관계가 없을 부분인데 이렇게 <버 w>가 없음으로 인해서, 그 두 지명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게 느껴지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창세기6장4절의 <아쉐르> 이후의 소위 두 "문장"의 관계도 그렇게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말은 "그들"(헴마)이라는 말이 <아쉐르> 이후, 곧 그 땅에 네피림이 있었던 당대의 상황 설명하는 그 설명 중에 모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곧, "헴마"의 지시대상어를 <아쉐르> 앞에서 찾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입니다. 바로 <아쉐르> 뒤, 곧 그 당대의 상황을 설명하는 그 설명들  속에서 그 지시대상어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 지시대상어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자녀들)>입니다. 여기서 (자녀들)이라고 한 것은, 형식문법상 존재하지 않지만, 의미론적으로 존재하는 지시대상어라는 것입니다.

 

앞글에서 저는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수 없다고 하였고, 그것에 저스티스님도 동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사람의 딸들>은 그 후보자목록에 들지도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후보자 목록은 무엇입니까?

 

저의 글을 읽으시면서, "이들"이 "네피림"일 수 있는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 진다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다면, 저의 글이 성공했다고 여겨지겠습니다.

 

실은 더 나가야 할 길이 너무 많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는 놀라운 메시지들에 대해서 우리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빨리 이런 기초작업에서 벗어나서 더욱 놀라운 우리 주님의 계시의 감격과 흥분이 우리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창세기6장4절은 우리들에게 그런 감격과 흥분으로 안내하기에 충분한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로 고심하는 모든 형제들, 혹은 자매들에게 주님의 평강이 넘치시길~

 

한백성, 홀리죠이.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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