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전개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시의 총화(總和)로서 성경은 과연 무엇을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대 주제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오늘 첫 번째 강의(講義)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이 총체적으로 말씀하는 바에 우리의 신앙을 고정시키고 그 내용과 방향성을 신앙과 생명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데서 참된 성경적 신앙의 의미와 본질이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명제와 관련하여 다니엘서 2장 31∼45절에서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자태가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지를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본문의 역사적 배경
성경의 역사는 계시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깊은 곳에 간직해 두셨던 영원하신 계획과 목적을 마침내 인류의 역사 속에 언약을 도구로 펼쳐 보이신 구속사(救贖史)입니다. ‘구속사’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활동역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당신의 신묘막측 하신 구속사의 경륜을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모형(模型)적, 예표(豫表)적으로 계시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택하셔서 선민(選民)으로 삼으시고 열방 앞에 당신의 구속사를 나타내시는 계시적 도구로 삼으신 배경이 이렇습니다(신 7:7∼8). 따라서 이스라엘의 존재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언약(창 12:1∼3) 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신정(神政)통치 곧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열국을 하나님께로 인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친(親)백성들로 삼으시려는 거룩한 사역 곧 제사장 나라의 직분을 담당하는 자들로 존재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런 하나님의 구속사가 구체적으로 성취된 시기가 바로 다윗과 솔로몬 통치 초기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통일 이스라엘 왕국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를 역사 속에서 현시(顯示)하는 계시적 도구 내지는 한시적 예표로 선용됐기에 하나님 나라의 신정적 통치체제를 영속적으로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 통치 후기에 가서 통일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라져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라는 서로 다른 이름의 분열왕국으로 체제가 바뀝니다(왕상 12장). 이는 모세를 통해 주신 시내 산 언약(출 19장, 24장)에 대한 불순종으로 야기(惹起)된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의 일환입니다.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은 BC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백성들은 앗수르가 통치 관할하는 전지역에 포로로 잡혀가 흩어져 살게 됐을 뿐 아니라(디아스포라), 북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 지역에 이방인들을 집단 이주시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혼인시키니 그로 인하여 태어난 혼혈족 소위 ‘사마리아인’이 입니다. 유다의 포로귀환 시기 후부터 이들은 유대사회에서 동족(同族)으로 여기지도 않게 돼 일체의 교제권에서 외면당합니다. 따라서 사사건건 유대인들과 마찰을 빚으며 적대적인 관계를 갖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 사마리아에 위치한 수가성의 한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요 4:7∼9)를 보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반목과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고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됐는지를 생생하게 확인하게 됩니다. 특별히 9절에서 여인은 물을 달라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 함이러라.”
남 유다 왕국 또한 북 이스라엘 보다 대략 136년 후인 BC586년경에 앗수르를 패배시킨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당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1차(605), 2차(597), 3차(586)에 걸쳐 남 유다를 침략해서 결국은 삼차 침공 시에 유다는 완전히 패망하고 많은 유다인이 포로로 잡혀가는 치욕적인 굴욕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방인의 말발굽아래 항복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는 시내산 언약에 근거한 남북의 분열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언약적 징계와 심판의 결과입니다. 일찍이 시내 산 언약에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로 존재할 때에 이방의 신을 섬기고 율법을 신실히 청종치 않을 때, 이와 같이 열국에 흩어서 저들의 압제를 받으며 저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는 것으로 심판하실 것(신 4:23∼28)을 이미 경고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런 하나님의 심판의 구체적 시행인 바벨론의 1차 유다 침공(BC605)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1차 침공 시 포로로 잡혀온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당시 유다의 젊은 엘리트들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비록 적국이라 할지라도 유능한 인재를 등용시켜 자신의 왕위를 든든히 세우는 일에 출신배경의 차별을 두지 않은 듯 합니다. 비록 그것이 전략적인 정치적 목적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하여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이런 식으로 주님의 각별하신 섭리적 인도 아래 바벨론 왕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고급 관리의 위치에서 업무를 관장하게 됩니다. 다니엘서 기자는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나라를 포함한 세상역사를 섭리적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단 2:21, 4:17, 25. 32; 롬 13:1∼2)을 성경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본문에서 왕이 꾼 꿈의 내용을 통해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극명하게 소개함으로써 과연 인간이 누구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될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명쾌하게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시서인 이유가 바로 이 사실에 근거합니다.
2. 왕의 꿈 내용
이제 오늘 강의의 주제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먼저 다니엘서 2장 31∼35절입니다. 본 절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다니엘에게 이상을 통해 보여주신 내용이 소개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기록된 말씀으로 최종 완성되기 전, 특별히 구약계시의 역사 속에서는 꿈이 종종 하나님의 계시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최종적 계시로 완성된 성경이 주어져 하나님의 구속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완성된 이상,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구하려는 시도는 구속사 진행의 점진성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일의 계시로 완성된 성경이 주어진 이상 구약적 방식, 곧 꿈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현현이나 선지자의 예언 등을 통한 하나님의 추가적 계시의 말씀은 이 시대에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경은 스스로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오직 성경만이 유일하고도 완성된 계시로서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최종적 계시의 마침이 됨을 자증하기 때문입니다(딤후 3:16∼17; 히 1:1∼2; 계 22:18∼19).
왕이 꾼 꿈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먼저 31∼33절에서는 왕이 꿈에서 본 것이 큰 신상(神像)으로서 인위적으로 고안되고 제작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 신상의 모습은 크고 광채가 나는 것으로 기이한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고 저자는 기록합니다(31절).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신상의 구조에 있어서도 범상치가 않은 것이 머리는 정금으로, 가슴과 두 팔은 은으로, 배와 넓적 다리는 놋으로, 종아리는 철로, 그리고 발의 얼마는 철로 나머지는 진흙으로 혼합해 만들어 져 보기에 두렵고 특이한 신상이라고 소개합니다.
34∼35절에서는 또 다른 꿈 곧 뜨인 돌이 소개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제작되지 않은 것’(34절상)이라고 설명으로 그 존재와 출처가 신적 기원에 근거하고 있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위적인 신상과 신적 기원에 의한 뜨인 돌이 왕이 꾼 두 종류의 꿈입니다. 이 두 꿈은 출처와 기원과 성격에 있어서 각각 이질성을 자체에 담고 있지만 내용의 전개상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있습니다. 뜨인 돌에 대한 설명을 들어봅니다. 어디선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뜨인 돌 하나가 앞서 본 신상의 발을 무서운 속력과 힘으로 내려치니 거대한 신상은 한순간에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을 친 뜨인 돌은 이 후에 태산을 이루는 가운데 온 세계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신상으로 대변되는 인간통치 나라는 이 뜨인 돌로 인해 한 순간에 사라지고, 뜨인 돌로 인한 신적 기원을 가진 새로운 신정통치의 나라가 인간나라를 대신해 세워진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성경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역사의 진행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바르게 해석하는 가운데,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뜨인 돌로 인해 건설 될 새로운 신적 기원의 나라에 정조준(正照準) 할 것을 강력히 시사합니다(마 6:33).
그렇습니다. 역사는 방향 없이 바람 따라 흔들리는 부평초(浮萍草)가 아닙니다. 기원(起原)이 있고 과정(過程)이 있고 최종적인 목표(目標)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은 상호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지금 저자는 왕의 꿈을 계시의 도구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마땅히 섬길 자가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에 진지하고 엄숙하게 답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을 통해 주신 꿈의 정확한 해석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자세와 가치관과 신앙관을 보다 신중하게 재정립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과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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