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자료

[스크랩] 에덴에 계시된 하나님나라-전개1

baromi 2006. 4. 24. 09:25

Ⅱ. 전 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 영원하신 작정과 목적을 따라 천지로 대표되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십니다(창 1:1). 이는 하나님의 마음의 깊은 곳에 품으셨던 영원하신 목적을 본격적으로 이루시기 위한 무대가 일차적으로 마련됐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갖 피조물들을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서 주권적으로 창조하시는 가운데, 마지막 피조물로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십니다. 그리고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왕적 통치권을 이들에게 위임하고자 다짐하십니다. 이는 다른 피조물과 비교해서 특별한 존재로 사람을 창조하셨음을 시사함에 다름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를 다른 피조물들과 확연히 구별시켜 설명하고 있는 ‘형상과 모양’이라는 표현(창 1:26) 속에서 이런 하나님의 차별화 된 심정을 극명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이란 표현은 다른 피조물들에게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인격 속에만 특별히 내재 된 하나님의 공유(共有)적 속성을 총체적으로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을 아담과 하와에게만 반영시키는 것을 통해 이들을 창조의 면류관으로 삼아 주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길 수 있는 유일한 인격적 교제의 대상으로 삼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에게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대리적 통치권이 맡겨진 사건도 이런 사실의 전제 속에서 해석돼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적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자평(自評)하시면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 1:31)고 만족을 표명하십니다. 이는 지으신 만물의 존재와 상태가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작정하신 영원하신 목적을 세상 가운데서 집행하기 위한 현장과 무대로서 완벽하게 조성됐음을 알리는 만족감의 표현이십니다. 이는 달리 인간의 타락 전 처음 에덴이 그 자체로서 하나님 나라를 가장 완벽하고 강력하게 표상하고 있음을 시사함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가 제 2 강론의 주제를 ‘에덴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로 선정한 이유가 이에 있습니다.  

  1. 타락 전 에덴에 계시 된 하나님의 나라

   창세기 1장에서 저자는 거시적(巨視的) 계시안목으로 전(全)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사역의 내용과 순서를 소상하게 소개합니다. 반면 창세기 2장에서는 미시적(微視的) 계시안목으로 창조의 면류관인 인간의 창조 내력을 보다 세밀하게 기록함으로써 인간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조명합니다. 사실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이들의 혼인 속에 담긴 계시의 비밀은 신약에서 바울의 논증에 의해 밝혀진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출현한 교회와의 비밀스러운 관계(엡 5:31∼32) 속에서 그 구속사적 실상을 드러냅니다. 이보다 앞서 호세아 선지자는 그의 예언서에서 하나님과 장차 회복될 이스라엘의 관계를 ‘하나님의 장가들기’(호 2:19)라는 표현으로 자신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신부로 묘사하며 신약의 실체적 관계를 예표적으로 계시(호 2:14∼20)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저자가 아담과 하와의 창조의 내력과 부부의 과정을 별도 지면에 소상히 소개하며 독자의 관심을 유도함은 이들이 단순한 창조의 면류관으로서의 존재 이상 이런 하나님의 구속사적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최초의 가정으로서 아담과 하와의 창조와 부부 됨의 연합 속에 담긴 구속사적 계시에 관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애정과 관심의 표명입니다.

   후에 이런 구속사적 계시의 점진적 진행과 발전은 결국 신약시대의 지역교회공동체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지상적 임재방식으로 표현하기에 이릅니다(눅 17:20∼21; 빌 3:20).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 세상 속에 침노해 들어온 현재적 하나님 나라의 통치(마 12:28; 막 2:1∼12)가 가장 권세 있게 천상적 능력을 발휘하는 유일한 기관으로서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과 하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최초의 가정은 이미 그 자체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계시적 방편으로 현시 되고 있습니다.

   이제 본 강론과 관련해 타락 전 에덴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의 주제에 대해 몇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 보면서 그 실상을 규명해 보겠습니다.  

   ⑴ 창조언약(창 1:28) 속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모든 피조물 중 유일의 인격적 교제의 대상으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라는 차별화 된 표현은 이들의 창조과정 속에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는 설명 속에서 그 본래적 의미의 절정을 이룹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생령체(living bei-ng)로 창조됐기에 하나님의 공유(共有)적 속성을 반영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특별한 영적 교제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신약은 생령체로서의 아담의 존재를 산 영(living soul, 고전 15:45)으로 표현함으로 무죄(無罪)한 아담과 하와의 영적 상태가 하나님과 막힘 없는 교제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만물의 영장(靈長)으로 지음 받았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만물에 대한 절대 주권적 통치권을 위임하심으로 이들을 하나님의 대리적 통치권자로 삼아 주십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한을 대행한다니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당신의 대리권자로 임명하시는 과정에서 이를 보증하기 위해 수여하신 위촉장의 내용이 다름 아닌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입니다. 비록 위임의 내용이 구두로 전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결코 파기될 수 없는 불변의 절대적 가치와 집행력을 갖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인준(認准)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본문의 내용이 복으로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의미상 약속과 동질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비록 전면에 아담이 통치권자로 나서고는 있으나 실권은 여전히 하나님께 귀속돼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청지기의 신분으로 만물의 통치권을 대행할 뿐입니다. 그래서 사실상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대리적 통치권의 시행을 통해 창세기 1장 28절의 약속 속에 담긴 당신의 본래적 목적을 이루신다는 관점 말입니다. 이 계시적 관점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이후 성경 전체를 관통해 진행되는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를 정당하게 해석하는 척도로 작용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창세기 1장 28절의 약속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 약속이 가리키는 궁극적 실체가 하나님 나라인 사실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나라의 개념 속에는 이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살아갈 장소로서 ‘땅’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을 선의적으로 구속(拘束)하고 다스릴 ‘통치권’의 발휘가 요구됩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나라의 3요소’라 부릅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좇아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복의 형식을 빌어 언약을 맺으십니다. 이 복의 언약이 다름 아닌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굳이 복으로 주신 내용을 언약(言約)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언어적 동질성은 물론 그 궁극적 성취가 하나님의 의지에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창세기 1장 28절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한 주권적인 행동을 통해서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명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이 철저히 신적 기원에 근거하고 있기에 본문의 내용은 때가 찰 때 그 최종적 성취가 이미 보장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28절의 언약은 내용상 쌍무(雙務)적이 아닙니다. 편무(偏務)언약의 성격을 띱니다. 이는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아담에게 베푸신 은혜언약의 성격을 내포합니다. 우리는 이 언약적 복의 성격을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적 통치권을 아담에게 대리적으로 위임하신 것으로 신학적으로 소위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 아담 부부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만물을 그분의 선하신 뜻 가운데서 다스리고 관리하고 보존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본 문화명령의 내용을 세밀하게 음미해 보면 보다 본질적인 어떤 심오한 사상에 접촉하게 됩니다.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 사상입니다. 그 구체적 해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② 하나님께서 아담부부에게 주신 복으로서의 언약의 내용(창 1:28)을 분석해 보면, 첫째,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이들 부부를 통해 주실 수많은 ‘자손’을 가리키고 있음을 봅니다. 둘째, 땅을 정복하라는 내용입니다. 이는 내용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듯이 아담의 수많은 자손들이 거주할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십니다. 그러나 이 땅의 확보는 정복의 방식을 통해 얻게 되는 바 투쟁의 결과로 주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셋째,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하십니다. 이는 만물에 대한 왕으로서의 ‘통치권’의 약속을 가리킵니다. 창조자로서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적 통치권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향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비롯해 열방의 왕들이 본질에서 하나님의 창조주로서의 왕적 권한을 대행하는 자들로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 받게 됩니다(롬 13:1; 벧전 2:13∼14).  
        
   ③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아담 부부에게 위임해 주신 언약적 복의 내용(창 1:28)은 결과적으로 ‘자손’과 ‘땅’과 ‘왕적 통치권’에 대한 약속의 보장으로서 곧 ‘나라’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들을 통해 ‘어떤 특정한 한 나라’를 궁극적으로 세워서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신탁(神託)의 약속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일방적으로 맺으신 주체가 하나님이신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인 사실을 간파하게 됩니다.
       
   ④ 때문에 아담에게 주신 언약적 복(창 1:28)의 구체적 내용은 모든 창조의 면류관으로서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만물을 하나님을 대리해서 다스리게 하시는 것이 최종적 목적이 아닙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이들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신정왕국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

겠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 담긴 계시적 언약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주신 복으로서의 언약의 내용 속에 담긴 ‘나라의 삼 요소’가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합니다. 결국 창세기 1장 28절의 문화명령 속에 담긴 언약의 실체는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 사상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문화’의 성경적 의미란 하나님의 뜻의 궁극적 성취를 위해 집중되는 인간의 제반 창의적이며 창조적인 활동으로서 그 중심내용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날 인류의 문화활동은 궁극적 목적을 인간의 행복과 세속적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집중돼 있음으로 해서 본래적 성격과 방향에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자연이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며, 각종 산업의 무계획한 추진은 온갖 공해를 유발시킴으로 오히려 인간의 생명을 극도로 위협하는 수준에 이른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인간의 타락한 죄성으로 말미암음입니다. 로마서 기자가 이를 잘 증언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하나 우준 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이 말씀이 지적하고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는 유일한 영적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인격을 소유한 교제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후 아담의 삶은 총체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분으로 즐거워하는 신앙적 삶을 유지 보존 발전시켜 나가는 데 최선을 경주해야 할 책임적 존재(전 12:13; 고전 10:31)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단의 미혹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인으로 전락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 금령 법을 어긴 것입니다(창 2:17; 3:1∼6). 불순종의 근원인 욕심이 죄로 성립 돼 마침내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단절을 넘어서 원수지간으로 전락합니다. 인간의 최대의 비극은 이들의 범죄 안에서 모든 인류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생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과 이로 인해 하나님과 영원한 단절의 관계에 놓여졌습니다. 성경은 이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고 기술함으로써 죄의 기원과 영향 및 비극적 결과를 소상히 밝힙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원죄라 부릅니다. 이후부터 죄인 된 인간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전인격은 하나님을 향해 항상 적대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자원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거나, 감사한다거나, 하나님의 선을 행한다거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적 삶을 살아가는 데 전적으로 무능한 자로 타락해 버립니다. 위에서 로마서 기자가 지적하는 말씀(롬 1:21∼23)의 진의가 이렇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뒷부분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하여튼 이런 식으로 아담은 하나님의 대리통치권자로서 고도의 영화로운 신분에서 한 순간에 하나님과 원수 된 비참한 죄인의 신분으로 전락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최초의 신탁언약(창 1:28)의 수혜자로서 하나님의 신정왕국을 이룰 자격을 상실해 버립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다루는 문제는 아담의 타락 전 얘기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의 언약의 내용 속에 담긴 본의(本意)를 통해 하나님 나라 사상에 대해 살펴보는 중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모든 창조물에 대한 대리적 통치권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의 후손을 통해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신정왕국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아담에게 복으로 주신 언약의 본질이 이를 명백히 증명합니다. 곧 자손과 땅과 왕적 통치권 말입니다.

   ⑤ 우리는 이상의 일련의 논증을 통해 ‘에덴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 하에서 특별히 창세기 1장 28절의 은혜언약 속에 담겨진 하나님 나라 사상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는 창조사역에 계시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다름 아닌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완성(계 21:1∼3)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처음부터 지향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제 1강(총론)에서 이미 살펴봤듯이 세상역사의 본질이 구속사인 것으로 인해 그 최후적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마침내 실현될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인 사실과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계시의 총화는 하나님 나라 사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시고 우리가 그의 백성이 돼 다스림을 받게 되는 신정왕국으로서 임마누엘의 궁극적 성취 말입니다(계 21:3).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 사실의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오늘도 세상역사 속에서 만물과 만사를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섭리적으로 주관해 가시는 가운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됩니다.     
          
   ⑵ 에덴의 구조적 특징 속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우리는 에덴동산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사상을 처음 아담에게 주신 복으로서의 언약(창 1:28)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타락 전 에덴동산을 형성하고 있는 외부적이며 가시적인 구성요소들을 통해 이를 재확인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런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위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에덴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사상을 규명하는 것을 통해 성경의 총체적 계시역사가 명실상부하게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관의 본질이 하나님 나라를 선양하고 운반하며 건설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될 것과, 이를 위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는 것을 생명처럼 받들어 신앙해야 함을 강조하려는 데 있습니다.   
       
   ① 에덴 동산에는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만물의 영장이며 동시에 모든 창조의 면류관으로서 범죄하기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심히 만족해하시며 그 결과 안식하실 수 있었던 장소로서 에덴동산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하나님의 친 백성들’이었습니다.
  
   ② 이들에게 에덴동산은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저들만의 유일한 삶의 처소인 바 곧 ‘땅’을 의미합니다. 이는 나라의 삼 요소 중 국토 내지는 영토에 해당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이 범죄 하게 될 때(6절), 하나님께서는 즉시 죽음의 형벌을 죄책의 대가로 선언하시고(19절) 이들을 에덴에서 쫓아내시는 것을 통해(23절) 에덴을 죄의 세력에서 보호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도 에덴은 명실공히 아담의 기업으로서 땅, 곧 하나님 나라 그 자체를 대표적으로 표상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③ 마지막으로 나라의 삼 요소 중 왕적 통치권이 남았습니다. 에덴동산은 현실적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피조물의 통치권이 주어졌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위임된 대리적 통치권으로서 그 실체는 여전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의존돼 있을 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친히 왕의 실체로 존재하셔서 통치하심은 창세기 2장 16∼17절의 선악과에 내재된 금령법을 통해 친히 말씀하고 계신 사실로 확인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분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통치적 개념 속에서 그 나라의 본질적 특성이 가장 극명하게 표출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말씀의 권세가 능력 있게 시행되는 사실에서 찾아집니다. 지금 선악과는 이런 원리에 근거해서 자체 안에 내재 된 금령법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신하는 통치권의 표상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적으로 아담과 하와를 선의적으로 구속해서 자율적인 순종을 유도함으로써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권을 정당하게 집행하시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은혜의 은혜 됨은 수혜자(受惠者)가 시혜자(施惠者)에게 자원해서 순종하는 방식을 통해 비로소 그 본질이 드러나게 됩니다(롬 11:32). 이런 의미에서 은혜는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베풀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 속에는 나름대로의 집행적 요소로서 순종이 요구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출 20:1∼17; 골 3:1∼3).
     
   ④ 이런 사실로 인해 에덴동산은 외적인 구성 요소로 볼 때, 나라의 삼 요소인 ‘백성과 땅과 왕적 통치권’이 분명히 존재해서 시행되는 곳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아 경영되는 것으로 인해 곧 ‘하나님 나라’를 뚜렷이 현시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에게 복으로 베푸신 창세기 1장 28절의 문화 명령적 은혜언약을 통해서, 그리고 에덴에 실존하고 있는 가시적인 구성요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으로 계시되고 있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⑶ 에덴의 성격적 특징 속에 계시된 하나님 나라

  이번에는 에덴동산에 내재돼 있는 하나님 나라의 특징적 성격을 통해 에덴에 계시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살펴봅니다. 신약의 로마서 14장은 신앙공동체로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도들간의 크고 작은 판단과 비난의 행동에 대해 경계시키면서 서로의 연약함을 담당하며 짐 지는 가운데 하나됨을 위해 서로 힘쓸 것을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내적인 것이 외적으로 표출되는 것을 통해서 그 진정성이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철저히 성령의 통치와 지배를 받는 삶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의와 평강과 희락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롬 14:17).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어떻게 행동하느냐보다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정체성이 보다 풍성히 현시 됨을 증거 합니다. 여기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된 사실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교제가 온전히 회복된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곧 타락 전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를 통해 누렸던 바로 그 영적 상태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내용적 속성이 세상의 관점과는 전혀 다른 것을 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분별기준은 주로 외부적으로 드러난 사실을 통해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보편적 현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의 경우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내면과 본질적 속성을 통해 그 나라의 진정성을 분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외모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살전 2:4; 히 4:12; 롬 8:27)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바른 신앙의 도리란 말씀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총체적 뜻과 계획으로서의 성경적 본의를 정당하게 추구하는 것에서 찾아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내용적 성격을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설명하는 로마서 기자의 관점을 통해 우리는 이들 하나님 나라의 특징적 성격들이 죄가 유입되기 전 에덴 동산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로마서에서 지적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내적 성향들이 에덴동산에 내재된 성격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찾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에덴동산이 처음 창조 때부터 천상적 하나님 나라를 예시적으로나마 나름대로 계시하고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 나라의 표상입니다. 적어도 죄가 침노해 들어오기 전까지 에덴의 모습은 천국의 모습과 성격을 가장 근접하게 표출해 내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의 구속사적 성격을 처음 에덴의 회복(계 22:1∼2)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는 이유가 이에 근거합니다. 이제 로마서 기자가 설명한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특징지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에덴동산을 통해 이 둘 사이의 내용적 유사점을 살펴봅니다.
      
   ① 아담과 하와를 포함한 에덴동산에 존재하고 활동하는 일체의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상호 ‘조화와 균형과 질서 유지’를 통해 상호간의 화목과 교제를 막힘 없이 이루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충만히 현시 합니다. ‘보시기에 좋으셨다’라는 표현 속에서 이런 사실이 강력히 뒷받침됩니다.

   ② 그 중에서도 창조주 하나님과 창조의 면류관으로서 피조자 아담과의 ‘정상적인 관계유지’와 이로 인한 ‘교제의 자유로움’이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화목의 특성을 극명하게 계시합니다.
    
   ③ 아담과 하와의 ‘무죄상태’는 하나님의 공의가 적극적이고 권세 있게 에덴 동산에서 시행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특징을 규정짓는 가장 강력하고 우선적인 내적 증거로 작용합니다.

   ④ 하나님의 ‘만족하심’(창 1:31)과 이로 인한 ‘하나님의 안식’(창 2:1∼2)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만족‘은 하나님의 ’안식‘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순서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만족과 안식의 개념은 상호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만족하심이 없는 곳에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사람과의 화목의 관계가 깨지고 이로 인한 불화는 급기야 온 피조물에까지 파급된 사실(창 3:17; 롬 8:19∼20)은 하나님의 만족하심이 곧 안식과 연결돼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계시하고 있음을 결정적으로 시사합니다.

   이곳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만족하심은 지으신 만물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는 데서 구체적으로 확인됩니다. 이는 일체의 피조물들이 하나님께서 당초 의도하신 영원하신 목적을 따라 차착(差錯)없이 창조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사전 계획된 설계에 따라 의도한 대로 특정한 물건이 만들어져 가동될 때, 말할 수 없는 보람과 만족과 성취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를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적용시켜 신인동형동성(神人同形同性)의 원리 하에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곧 천지의 주재(主宰)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만물이 당신의 계획과 의도대로 창조된 것을 보시면서 그 기쁨과 만족이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의 만족은 하나님의 안식과 밀접히 연결되어 하나님 나라를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에덴에서의 하나님의 안식하심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 나라를 가장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영해 내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여기 에덴에서의 창조적 안식의 개념은 만물이 철저히 하나님께 의존된 가운데 그 기뻐하시는 뜻대로 경영되고 섭리된다는 데서 찾아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쉬는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대로 만물이 처음 창조의 원리를 좇아 섭리적으로 통치되는 곳에서 실현가능하며 안식의 본래적 의미 또한 이에서 찾아집니다. 처음 에덴동산의 내적, 외적인 상태와 성격이 이랬습니다. 이때는 아직 인간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태 하에서 하나님은 진정한 천상적 안식을 만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하나님께서 취하신 안식을 이상의 배경적 설명 하에서 ‘창조적 안식’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상의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본 에덴의 내적 특성들이 로마서 기자가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과 그 특징적인 측면에서 상호 유기적인 관련성을 깊이 맺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에덴동산이 신약의 복음의 빛 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모형적이고 예표적으로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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