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신학자료

중세 전성기(AD 1200-1300)의 기독교 사상 (3)

baromi 2005. 3. 10. 14:19

창조

 

   신의 존재증명과 신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통해서 아퀴너스는 창조론을 세운다. 위의 논의들에 의하면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는 존재를 도출할 수 없으므로 원동자, 제1원인, 필연적 존재, 완전한 존재, 우주의 총괄자로부터 그것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것이 곧 신이기에 만물은 필연코 신으로부터 나오게 된다는 것이며 이것이 곧 창조이다.

   이상과 같은 논의에서, 아퀴너스는 세계가 무로부터, 자유로이, 선을 제공하기 위하여-

(무한한 완전성으로서의 하나님은 선을 얻기 위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선을 제공하고 확산하시기 위해 창조하셨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할 경우, 그 말이 하나님이 아직도 자신이 필요로하는 그 무엇을 가지셔서 창조했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서는 않된다. 이 말은 마땅히 하나님은 그의 본질인 자신의 선(존재)을 제공하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다고 이해되어야 한다.)-시간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세계가 시간 속에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단지 계시에 의해서 알 뿐이지 철학적으로는 세계가 시간 안에서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영원으로부터 창조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퀴너스는 이렇게 창조된 세계에는 피조물들의 거대한 질서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신의 완전성에 합당하게 구성된 위계질서들로서, 신은 자신의 완전성을 최고로부터 최하에 이르도록 여러 단계로 나누어서 피조물들에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예컨데 천사들 밑에는 인간들이 있고, 그 다음 동물, 식물 등등이 있고 마지막에는 공기, 흙, 물 등의 원소가 있다. 그러나 이들 간에는 아무 간격이 없다고 했다. 곧 식물 중 최고의 형태는 동물 중 최하의 형태와 포개져 있으며, 동물 중 최고의 형태는 인간 본질의 최하의 형태(물질적 형태)와 대응하고 인간본질의 최고의 형태(영혼적 형태)는 천사의 구성요서에 대응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상의 천사는 신과 가까이 있고, 최하의 천사는 인간과도 가깝다.

 

 

악의 문제

 

   아퀴너스에 있어서 악이란 어거스틴을 따라서 선(존재)의 결여(privation)일뿐 그 '어떤 것'(aliquid)은 아니었다. 즉 악은 그 어떤 적극적인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계는 창조하셨지만 악은 창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해서 악이란 하나의 환영(illusion)에 불과하고 '악한 실체(예컨데 악마나 악한 인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 아퀴너스는 악을 '자연적 악'과 '도덕적 악'으로 구분하는데, 자연적 악이란 피조물들의 소멸과 같은 것으로써 이것은 변화라는 창조의 질서로서 동반되는 부수적인 것이며, 자유의지에서 생기는 도덕적 악은 인간의지가 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선을 추구하려는 데에서 생긴다는 것이다.(예컨데 간부(姦夫)는 악을 행하기 위해 간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기 위하여 간음한다) 따라서 비록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허락함으로써 악을 유발시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악의 원인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자유의지를 통하여 내재하는 선한 요소로 하여금 자유로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게 하는 보다 큰 선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인간과 지식

 

    아퀴너스는 인간을 육체와 영혼의 통일체로 보았다. 이것은 독특한 개념으로서, 플라톤은 인간을 영혼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았고, 어거스틴은 영혼을 정신적 실체라고 보았으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복합체로 보았으나 육체가 영혼에 의지해 있듯이 영혼이 육체에 의지해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영혼이 없다면 육체는 어떠한 현상도 갖지 못하고 육체가 없다면 영혼은 어떠한 감각도 갖지 못하므로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상호작용하는 통일체라고 했다. 인간은 육체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경험을 하며, 육체에 형상이 되는 영혼은 이러한 감각과 지성 그리고 의지의 요인으로서 인간의 최고 능력은 지성 속에 내재한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정신이 현실의 개개의 대상들을 감각기관을 통해 경험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했다. 즉 지성이 개체적 사물 안에서 보편자를 추상한다는 것이다. 이때 보편자는 실재적인 것이긴 하나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이 개개의 대상 밖의 그 어떤 곳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 안에 있어서, 인간의 지성은 그것을 대상으로부터 형상화하여 개념으로서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견해(감각 안에 없는 것은 지성 안에도 없다, hihil in intellectu guod prius non fuerit in sensu)로서 아퀴너스는 감각 경험이 없이는 지식이 없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존재증명도 감각경험을 기초로 하였던 것이다.

 

 

     도덕론

 

   아퀴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론을 따라 도덕을 행복의 추구로 파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인간의 목적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곧 인간은 행복을 위하여 자신의 본성에 합당한 목적을 성취시켜야 한다는 자연주의적인 윤리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아퀴너스는 여기에 인간의 초자연적인 목적을 첨가했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신 안에서 찾으려 했다. 따라서 아퀴너스의 도덕론은 인간의 자연적 목적과 초자연적 목적에 대응하는 이중적인 구조를 갖는다.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에 의해 인간의 자연적 목적(본성)을 달성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보았지만, 아퀴너스는 인간이 추구해야하는 영원한 행복은 이것 이외에도 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에 의해서 주어진 신법을 지켜야 하는데, 이것은 인간 이성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써 가능하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은 이성으로서 자연법을 지키고, 신의 은총으로서 더 고귀한 덕목인 믿음, 사랑, 소망을 성취함으로써 초자연적인 목적을 이루게 된다. 이렇듯 아퀴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넘어서 어떻게 계시가 이성의 지침이 되는가? 또는 어떻게 인간은 초자연적인 최고의 덕목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자세히 고찰했다.

 

결국 아퀴너스는 어거스틴전통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아간 보나벤투라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극단적으로 받아들인 그의 스승 대 알버트의 중간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초월적이고 신율적인 어거스틴전통이나 자연적이고 자율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를 성공적으로 접합시킴으로써, 아퀴너스는 하나님의 초월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와 역사에 구체적으로 계신다는 성경적 내재성의 원리를 서구문명 속에 뿌리박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