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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화평,「신시티」- 황효식

baromi 2005. 9. 15. 15:24
영화평,「신시티」- 거인의 전설
신시티,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는 곳
 
황효식
 

엄청난 재미, 의식의 허를 찌르는 거칠고 둔탁한 비주얼, 잔혹과 충격을 특유의 만화적 생략과 과장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빼어난 연출, 오랜만에 정말 감탄할만한 영화가 등장했다. 영화「신시티」를 감독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이거 아주 웃기는 물건이다. ´펄프픽션´ ´저수지의 개들´ ´킬빌´로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가「황혼에서 새벽까지」란 시나리오를 썼을 때 그걸 영화로 만들어 성공시키더니 마침내「신시티」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로드리게즈´는 이 영화 한편으로 스승인 ´타란티노´를 저 멀리 따돌리며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영화 \'신시티\'의 한 장면     © 자료사진

영화「신시티」는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거인들이 여럿 등장한다. 특히 이마와 콧날의 굴곡이 전혀 없는 ´마브´는 중세로마의 검투사를 연상케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동물적 감각으로 악당들을 처단하는 과정이 무식할 정도로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마브´는 오히려 관객들에게 산뜻한 통쾌감을 선사한다. 거인 ´마브´는 세상의 악과 부조리에 분노하는 우리들의 적개심을 대변한다. 우리같은 쫌팽이들이 상상으로나 가능한 것을 ´마브´는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걸 보면서 기대, 흥분, 감탄이 절로 나온다.
 
보통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거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십여년 전, 선배가 집 앞 도로에 세워둔 승합차의 옆구리 전체가 왕창 찌그러졌다. 술 취한 오토바이가 45도 각도로 들이받고 튕겨져 나간 것이다. 오토바이는 작살났고 사람은 붕 떠서 40여 미터나 떨어진 도로 위에 헝겊처럼 풀썩 나뒹굴렀다. 등치가 아주 좋은 청년이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가망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청년은 놀랍게도 그 이튿날 깨어났다. 그는 어제 집안 일로 화가 나서 술을 마셨고 소주를 열병쯤 마시고 오토바이를 탄 이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소주 열병? 왠만한 사람은 교통사고와 관계없이 그 정도의 과음만으로도 그 이튿날 깨어나기가 힘들다. 소주 열병을 마시고 온 몸에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청년은 멀쩡했다. 놀라웁게도 그는 삼일째 되는 날부터 절뚝거리며 병원복도를 걸어 다녔고 일주일 후에는 퇴원을 하여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다녔다. 그 청년은 방통대의 무슨 간부를 맡고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선배의 승합차 수리비용을 물어주었다. 그 청년의 친구 하나는 그 청년의 별명이 ´슈퍼맨´이며 상상할 수 없을만큼 모든 일에 적극적이라고 귀뜸했다.
 
영화「신시티」를 보면서 나는 갑자기 그 청년이 떠올랐다. 김승옥의 매혹적인 단편소설 ´역사´(力士)에는 낮에는 노동일을 하고 밤에는 힘이 남아돌아서 동대문에 몰래 잠입하여 담에 쌓인 거대한 돌을 무슨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옮기는 거인이 나온다. 고래(古來)로부터 전설처럼 내려오는 장군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일본놈들이 조선의 유명 산마다 쇠말뚝을 박아놓은 것은 바로 그런 장군의 탄생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에서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호칭하지만 김정일은 장군은커녕 쫌팽이도 못되는 인물이다.
 
그런가하면 진저리를 칠 정도로 사악한 악당들의 출현도 이 영화의 감칠맛이다. 식인사이코의 잘려진 목을 껴안고 "천국으로 가자!"며 마지막 독백을 읊조리는 사악한 추기경, 그리고 모든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채 "거짓으로 세상을 속이고 사람들이 그것을 믿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권력이야!" 라고 부르짖는 상원의원의 음험한 목소리.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사단의 복화술이다. 그 끔찍한 악당의 아들은 그 삶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온 몸에서 악취가 나는 노란 악귀로 변해버렸다.
 
내일이면 은퇴하는 퇴물형사 ´하티건´은 상원의원 아들에게 납치된 11살 소녀 ´낸시´를 구하려다 온 몸에 총을 맞고 사경을 헤멘다. 소녀 ´낸시´는 죽어가는 ´하티건´의 품에 안겨 운다. ´하티건´은 죽어가면서 "늙은이는 죽고 소녀는 살았다... 이만하면 공평하지 아니한가..." 라고 독백한다. 그러나 ´하티건´은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다. 상원의원이 하티건을 잘근잘근 괴롭히기 위하여 엄청난 돈을 들여 일부러 살린 것이다. 독방감옥에서 8년의 세월이 지난 후, ´하티건´과 ´낸시´는 다시 만난다. 70살 노인과 19살의 ´스트립댄서´로.
 
´하티건´과 ´낸시´는 서로를 목숨처럼 사랑하였으나 그 질이 사뭇 달랐다. ´하티건´의 사랑은 부성애였고 ´낸시´의 사랑은 이성애였다. ´낸시´가 ´하티건´에게 애정공세를 퍼붓자 ´하티건´은 잠시 혼란을 느낀다. 그러나 곧 자신도 낸시를 미친듯이 원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티건´은 자신의 마음을 ´낸시´에게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끝까지 절제를 잃지 않는다. 마치 레옹과 마띨다를 연상케 한다. ´하티건´은 ´낸시´를 노리는 상원의원의 아들, 노란 악귀를 짓뭉게버리고 ´낸시´를 피신시킨다. 그리고 자신을 미끼로 기어이 ´낸시´를 괴롭힐 상원의원의 후환을 없애기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퇴물형사 ´하티건´의 자살은 마치 일본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고 대신 숨진 고(故)이수현씨의 살신성인을 연상케한다. 여자와 아이들에 대한 동정심, 그리고 악(惡)에 대한 분노가 영화「신시티」의 기본틀이다. 게다가 정치적, 종교적 최고권력자가 ´악의 화신´ 이라는 설정은 얼핏 성경의 복음서를 연상케 한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공생애를 사는 동안 그를 가장 따랐던 사람들은 여자와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예수를 가장 핍박했던 부류는 그 당시 정치적, 종교적 최고 권력자들이었다. 신시티(Sin City), 죄악의 도시... 그러나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한 것이다.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7만명의 팬이 운집한 가운데 유명 록그룹의 야외연주가 있었다. 장장 열두시간동안 록그룹의 귀를 때리는 연주가 이어졌고 술과 마약에 취한 군중들은 거의 미친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 날 제일 마지막 순서가 흑인여가수 ´제시 노만´의 독창이었다. 이윽고 무대에 기품있는 흑인여가수 ´제시 노만´이 등장했고 그녀는 아무런 반주도 없이 엄청난 성량(聲量)으로 천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 날 밤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록밴드에 맞춰 악을 쓰던 칠만명의 관중들이 ´제시 노만´의 그 은혜로운 아리아 앞에 돌연 침묵에 잠긴 것이다. 노래가 2절에 이어 3절로 접어들자 수천명의 군중들이 기억을 더듬으며 ´제시 노만´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한우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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