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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제자리라도 '내 집' 마련하려면 16년?"

baromi 2005. 9. 3. 14:21
"집값 제자리라도 '내 집' 마련하려면 16년?"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 일반 서민이 열심히 저축해 서울에서 25평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2005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시골에서 살던 어린시절, 서울로 이사를 한 이웃집 아저씨가 모처럼 찾아와서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자기 집 한 채 있으면 부자소리 듣는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서울은 참 희한한 곳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내가 살던 고향에는 비록 대부분 초가집이었으나 자기 집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향을 한번도 벗어난 적 없는 어린 시골소년이 도시인의 삶 속에 있는 '집 한 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무 살 넘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옮기기 전까지는.

스무 살 넘어 '집 한 채'의 의미를 이해하다

생활전선에 뛰어든 지도 십여 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내 집이 없다. 그동안 결혼도 했고 귀여운 자식들도 두었지만 아직도 내 집 마련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96년, 아내를 만나 결혼할 때 우리는 결혼 전에 모아두었던 돈을 몽땅 털어 경기도 안산에 1800만 원짜리 전셋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의 권유에 따라 언젠가는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장만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청약저축통장'도 만들었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집을 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 사태가 온 나라를 휩쓸던 98년, 나는 청약통장을 해약할 수밖에 없었다. IMF는 조그만 사업을 하던 나에게도 치명적 타격이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몽땅 털어 급한 불을 꺼야 했다. 그 시절, 첫째 하영이가 태어났지만 분유조차 사기 힘든 형편이었다.

나는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던 2002년 여름, 다시 청약통장을 만들었다. 사업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하영이가 커가면서 다시 내 집 마련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몇 년 동안 얼마간의 돈을 꾸준히 통장에 넣었다. 통장의 잔고가 불어나는 만큼 우리의 꿈도 그만큼 커졌고, 내 집 마련의 시기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사실에 들뜨기도 했다.

청약통장과 함께 시작된 '내 집 마련'의 꿈

▲ 서울에선 집만 한 채 있어도 부자란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갈아타기'해야만 집을 빨리 구할 수 있다면 부동산 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2005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나는 몇 달 전에 또다시 통장을 해약했다.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아파트 값을 보고 기가 질렸기 때문이다.

처음 통장을 만들 당시에 내가 목표로 세웠던 25평형의 아파트 분양가(경기도 안양, 의왕, 군포, 부천 등의 지역)는 1억2천만 원 정도였다. 순진했던 걸까. 나는 그 당시의 가격이 주택가격의 최고조라고 판단했다. 96년 결혼할 당시 25평형 아파트의 분양가가 8500만원 정도였기에 아무리 '부동산 불패'라는 신화(?)가 존재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그 이상 집값이 오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1순위 청약통장을 보물이라도 되는 양 끌어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던 우리에게 끝을 보이지 않고 치솟는 아파트 가격은 그야말로 좇을 수 없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아파트 가격 폭등'이라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우리부부는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이제는 멈추겠지! 어쩌면 거품이 꺼지면서 가격이 내릴 수도 있을 거야!' 별의별 생각을 다해가며 위안을 삼았지만 그건 한낱 꿈이었다.

아파트 가격은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치솟기만 했다. 더더욱 희한하고 기가 막힌 것은 강남의 아파트 값이 올랐다는 보도가 언론에서 흘러나오면 그곳과 별다른 관련도 없는 경기도의 아파트까지 들썩들썩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내가 목표로 삼았던 25평형 아파트 분양가격은 1억9천만 원 정도까지 오른 상태다. 처음 청약통장을 만들던 때에 비해 7천만 원이나 상승한 것이다. 일정치는 않지만 아껴 쓰면 어느 정도 저축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버는 나였지만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푼 두푼 저축해 아파트를 장만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이 청약통장을 해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내 수입으론 어림없는 일이었다

 
▲ 공인중개사 김영남씨.
ⓒ2005 이민선
저축해서 내 집을 장만하려 했던 게 미련한 일이었을까. 남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답답한 마음에 지인의 소개를 받아 부동산 실무자 김영남(공인중개사 46)씨를 만나서 의견을 들어봤다.

김씨는 94년부터 현장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실무 전문가다. 주 업무가 아파트 분양인 그는 현재 경기 부천 중동신도시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물었다.

"자녀가 있고, 월 350만~400만원 정도 버는 맞벌이 부부가 금융권의 대출을 받지 않고 25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까요?"

"현재 시세가 약 1억9천만 원 정도니까 더 이상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면 16년 정도 걸리겠네요.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 자동차 한 대정도 유지하려면 200~250만원정도는 지출해야 되고 나머지 100만원정도를 꼬박꼬박 저축한다면 1년에 1200만원, 10년이면 1억2천."

결국 집값이 현재 상황을 유지해도 10년이 넘게 걸린다는 이야기다. 집값이 오르는 것을 감안하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단기간(?)에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대부분 처음에는 은행융자를 끼고 오두막 같은 집을 삽니다. 운이 나쁘지 않다면 몇 년 후 집값이 오릅니다. 그 다음에 그 집을 팔고 좀더 나은 집을 구합니다. 이런 식으로 차차 늘려 가면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요즘 아파트 사는 분들 대부분 이 방법을 이용합니다. 은행융자를 충분히 이용하고 부동산 정보에 귀를 기울여야겠지요. 이런 식으로 한다면 빠르면 7년 안에 25평형 아파트도 장만할 수 있습니다."

공인중개사 김영남씨와의 대화를 나누고 난 뒤 돌아오는 길에 곰곰 생각해보니 '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답답해진다. 무엇인가 실마리를 찾고 싶어서 그를 만났지만 결국 참담한 현실만 다시 확인한 셈이다.

나 같은 서민이 내 집을 마련하려면 빨라야 16년?

하지만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이번에는 금융권에 있는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국민은행 모지점의 주택담당 직원을 찾아갔다. 그에게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물었다.

"주택담보대출을 내는 분들은 대부분 재력이 있습니다. 대출규모는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금리가 낮아서 그런지 연체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집을 사려는 분들은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도 뭐가 있어야 낼 수 있는 것이다. 김영남씨에게 물었던 질문을 주택담당 직원에게도 던져보았다.

"월 4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는 가족이라면 10여 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저도 사실 2002년도에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직장생활 시작한 후 12년 만에 장만한 것입니다. 처음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게 IMF 사태가 터졌던 97년이었는데 중도금을 못내 중도포기하고 분양권을 전매했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도에야 아파트를 장만할 수 있었죠. 저라고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 한 것은 아니에요. 그저 절약해서 한 푼 두 푼 모으고 부족한 돈을 대출받았죠."

집값이 제자리면 16년, 과연 집값이 그대로 있어줄까

▲ 집값에 제자리일때 매월 100만원 씩 저축하면 25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는데 '16년'이 걸린단다. 그런데 16년 동안 집값이 오르지 않고 그대로 있을까.
ⓒ2005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결혼한 이후 우리부부는 벌써 집을 세 번씩이나 옮겼다. 내 집을 장만하려는 이유 중에는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전문가를 통해서 알게 된 '내 집 장만'하는 최선의 방법이 이사를 다니며 시세차익을 보면서 자금을 불리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극히 정상적인 방법인 저축을 통해서는 내 집을 장만할 수 없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한 셈이다. 월 100만원씩 저축해서 25평형 아파트를 장만하는데 16년이 걸린다는 말은 '불가능'하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지켜질 수 있으리라고 보여지지 않으니 말이다.

8월31일, 정부의 부동산 종합정책이 발표됐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정책이 집값을 잡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과연 이번 부동산 정책이 제대로 집값을 잡아 16년 후 내게 '내 집'을 안겨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