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자료

C. 칼빈 이후의 안식일 논쟁

baromi 2005. 7. 21. 13:10
LONG

D. 현대의 안식일 논쟁


개혁교회 국제 기구의 연구

        호주 개혁교회 (The Reformed Churches of Australia)는 내부적으로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오랜 논란 끝에 196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개혁주의 에큐메니칼 대회 (Reforemd Ecumenical Synod)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올렸다. “제 4 계명의 연구를 위해 RES가 위원회를 선임하여 그 문제와 관련된 모든 주석적, 교리적, 목회적 측면들을 검토하게 함으로 다양한 개혁주의 전통들 사이에 합의를 위한 기반을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86) 이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RES는 다음의 사실을 인정했다.


1. 주일 성수는 기독교회에 중차대한 문제이다.

2. 제 4 계명과 주일 성수와의 관계는 많은 나라 교회들에서 관심사가 되었다.

3. 제 4 계명의 해석 문제는 많은 관련된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하는데 그것은 RES의 회원 교회들의 공통된 관심을 요구한다. 대회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4년간 이 문제를 연구하여 차기 대회에서 보고하게 결정했다. 1968년의 대회에 의해 지명된 위원회는 1972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RES에 다수와 소수 보고서 두 개를 제출했다.87) 다수 보고서는 이렇게 보고했다. “안식일 문제에 관해서 개혁주의 전통 안에도 다양한 견해들이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그러합니다.” 소수 보고서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종교개혁 이래로 다른 신학적 입장들이...개혁주의 교회들 안에 존재해 왔으며 그러한 상이점들은 각 시대에 작성된 신조들 속에 표현되고 있습니다.”88) 다수설과 소수설 양자의 차이를 낳은 중심되는 문제는 역시 안식일과 주일 성수가 창조 규례인가 하는 것이었다. 자문 위원회도 이 점에서 양쪽으로 갈리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개혁주의 전통들 사이에 합의의 기반을 제공”하는 데 실패한 것임이 분명해졌다.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RES는 문제 전체를 대회 임원들에게 맡겨 처리하기로 했는데 임원들은 논의 끝에 대대적인 연구위원회를 새로이 임명할 것을 대회에 추천했다.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연구 위원들이 임명되어 4년 간에 걸친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4년 간의 연구 결과 위원들은 다시 의견의 일치에 실패하고 다수설과 소수설의 두 보고서를 대회에 제출했다.


다수 보고서

        다수 견해는 먼저 주일 성수와 관련된 최대의 위험은 다양한 개혁주의 교회들 사이의 상이한 안식일 주일 전통보다도 전 세계에 걸친 세속화의 물결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RES가 다음의 결의안들을 채택해 줄 것을 권고했다. 첫째, 세속화의 노도에 대항하여 주일의 즐거운 성수를 수호해야 한다. 둘째, RES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개혁교회들의 고백적 기초를 형성하는 개혁주의 신조들은 통일성 안의 다양성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즉 개혁주의 공동체들은 안식일과 주일에 대한 성경 원리들을 상이하게 이해하고 지키고 있다. 셋째, 안식일과 주일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이다. 넷째, 우리는 계속해서 주일을 안식과 예배와 축하의 날로 지켜야 한다.

        이어서 다수설은 회원 교회들이 주일 성수하는 것을 돕기 위해 다음의 목회적 지침들을 제시했다. 첫째는 안식의 원리였다. 다수설은 이것을 근본적으로 믿음의 문제로 보았다. 나아가서 다수설은 칼빈이 주장한 바, 영적 의미에서의 안식이 주일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죄의 짐을 덜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가 영의 안식과 소생을 맛보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과 자신의 일에 대한 모든 신뢰를 포기하고 죄책과 죄의 능력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쉴 때 우리는 주일을 올바로 지킨다 할 수 있다고 그들은 선언했다. 그 뿐 아니라 다수설은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과 육을 망라하는 전인의 구속이라는 성경적 관점에 따라 이 구속의 표지로서의 안식이 인간의 영적 육적 필요들에 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식일과 주일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내포하는 것은 주일 성수가 육체적 안식, 즉 우리의 매일의 노고로부터의 놓임이라는 요소로 특징지워진다는 점이었다. 주일은 구약 시대의 안식일과 같이 죄의 저주로부터의 최종적 구원에 대한 보증인데 그 저주는 아직도 우리의 일에 따라다니는 좌절들을 포함했다. 마지막으로 그 설은 주일이 전인과 온 피조물들의 궁극적 재창조에 대한 종말론적 표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러한 원리적 선언 위에서 다수설은 구체적 주일 성수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주일에는 우리의 일과를 제쳐 두어야 한다. 즉 제 4 계명의 안식의 명령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했다. 그것은 (1) 우리가 자신의 죄악된 일들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다는 공적 고백이요 간증이며 (2) 일상사로부터 우리 자신들을 해방시켜 하나님의 사역들에 보다 온전히 참여하고 그것들을 기뻐하는 수단이다. 주일의 신성함이 광범위하게 무시당하는 이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리고 점점 더 부와 세상적 성공의 추구에 정신을 빼앗겨 가고 있는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일 업무와 일을 중단함으로 주님의 소수파로서 손해를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예배의 의무였다. 안식일의 휴식은 (비록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은 아니나) 게으름이나 나태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 주일은 우선적으로 개인이나 가족의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에 속한 것이다. 다수설은 교회와 개개 신자들의 생존이 주일 예배라는 사도적 패턴의 존속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이유 때문에 사업, 레크레이션, 혹은 다른 어떤 활동들도 주일 예배를 방해하는 것은 거부해야 한다고 믿어졌다.

        셋째, 기쁨의 중요성이다. 지루하고 피곤하며 엄격한 안식일 습관을 지지하는 성경은 없다고 다수설은 강조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즐거운 축제일로 지켰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사건을 축하하는 날은 기뻐하고 노래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샘에서 영혼이 소생하는 날이다. “우리는 주일을 비참한 무위도식의 날로 바꾸어 버리는 규칙들과 제약들을 경계해야 한다.”89) 다수설은 아직도 주일을 유대 바리세인들의 안식일로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엄격주의는 분명 안식일과 주일의 연속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그들은 못박았다. 새 언약의 “보다 큰 영광”에 의해 도입된 급진적 변화에 대한 적절한 인식이 없어 그러한 오해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일은 의식법적 규례들의 굴레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선언되었다.

        마지막은 선행의 실천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인의 자유 안에서 주일을 지킬 때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영육간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일에 행해지는 자비의 행위에 우선적인 지위를 주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안식일에 치유와 구원의 행위들에 의해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친 분의 구속의 은혜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 선행들 중 가장 적합한 것들은 병자와 약자들 심방,  우는 자들의 위로, 빈민 구제, 그리고 복음 전도였다.


소수 보고서

        소수 견해는 먼저 구약의 십계명이 여전히 신약 교회에도 유권적인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그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십계명의 두 번째 돌판(제 5계명-10계명)이 신약에서 반복적으로 일종의 윤리의 요약판 기능을 하고 있지만 제 4 계명은 아무데서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십계명이 기독교 윤리의 원천으로 무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의 의미가 과대평가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소수 의견이 두 번째로 정리한 내용은 구약의 안식일 계명의 요점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이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가 예배를 위해 그것을 따로 떼어 두셨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신명기28:9-11; 고후 4:23 이하 및 겔46:1 이하 등의 본문으로부터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광야 시절 이후로 이 “안식의 날”은 동시에 “공적 예배”를 위한 날이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셋째, 소수설은 주일과 안식일의 단절성을 강조했다. 현재로서 제 4 계명과 주일 사이에 연관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그들은 “직접적” 연관은 없다고 답했다. 양자 사이에는 기껏해야 간접적 연관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주일을 안식일이라 부르는 것이 부당하며 안식일과 주일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라 답변했다. 안식일은 창조 사역과 출애굽에 근거한 것이나 주일은 한 주의 첫 날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것이었다. 일요일은 공중 회집의 날이며 그 날 일상적 노동을 금지하라는 것은 신약 본문에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명령이었다. 신약 성경에 주일에는 일하지 말라는 명령이 한 군데도 없지만 “모이기를 소홀히하지 말라”(히10:25)는 명령은 있다는 것이었다.

        소수파는, 주일에 어떤 종류의 레크레이션이나 스포츠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다수설과는 달리, 수 세기동안 일요일이 레저 시간이 되어 온 것은 인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보았다. 비록 “신적 명령”은 아니지만 일요일의 안식은 “신적 선물”이었다는 것이다.

        다수설과 소수설 사이의 공통점은 주일을 공중 예배의 날로 이해한다는 점이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로서의 주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양자의 견해가 일치되었다. 한편 양자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안식일과 주일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대한 것이었다. 다수설은 연속성을 강조했고 소수설은 불연속성을 강조했다. 전자는 안식일이 우리에게도 관련이 된다고 생각했고 후자는 그것이 신약 시대의 성도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계명이라 믿었다. 다수설은 주일에 문자적으로 일을 중지하고 육체적으로 휴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소수설은 주일의 노동 중지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수설이 주일에 노동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주일의 안식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했다. 단지 주일에 일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명이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것을 정죄할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연구

        1970년대 초 캠브리지의 틴데일 하우스에서 연구하던 박사 과정 학생들과 박사 후 과정 신학자들 10여명은 후일 세계의 복음주의 신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되었는데 이들이 안식일과 주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이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해서 자기 전공대로 혹자는 신학적 접근, 혹자는 성경적 접근, 혹자는 역사적 접근을 시도했다. 성경적 접근은 다시 복음서, 서신서, 사도행전, 구약으로 나뉘어졌고 역사적 접근은 초대, 중세,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현대로 나뉘어 시도되었다. 신학 각 분야의 탁월한 학자들이 동원된 이 연구의 결과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신약 교수 칼슨(D.A. Carson)에 의해 [안식일에서 주일로]라는 제목의 책으로 편집, 출판되었다. 그 책의 종합적 결론은 제 4 계명에 나타난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사이의 불연속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안식일과 주일은 별개의 것으로 주일에 육체적으로 안식해야 한다는 것은 계시적인 사항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들이 주일과 관련하여 인정한 요소는 그리스도가 부활한 그 날 기독교 공동체가 함께 예배드려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 방대한 연구의 총요약과 결론 집필의 책임을 맡은 신약학자 링컨은 신약 성경에는 주일에 일하지 말아야 한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신약 성경 뿐 아니라 제 2 세기 문헌에도 주일에 육체적으로 안식했다는 언급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한다. 신약에 세 번 언급되는 “안식 후 첫날”에 관한 본문에는 육체적 안식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으며 당시 아직도 유대적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고 있던 유대파 기독교인들이 안식일 다음날을 다시 안식일처럼 지키느라 쉰다거나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기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도행전 20:7에 나타난 안식 후 첫 날의 행습은 정규 일과가 종료된 후 단지 하루의 일부에 관해 언급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는 하나님께서 이레의 첫 날을 안식일로 지정하셨다는 웨스트민스터식 이해는 적어도 신약 성경에서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90)

        링컨은 교회사적 연구를 시도한 보캄의 역사적 고찰에 근거해서 속사도 시대에 안식 후 첫 날이 종종 유대인들의 제 7일에 비유되었으나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겨졌으므로 일요일을 문자적 휴식의 날로 지켜야 한다는 신학, 즉 안식일 전이 신학( Sabbath transferrence theology)의 명백한 근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반면 오히려 게으름과 무위(inactivity)로서의 안식일의 문자적 준수를 반대하는 교부들의 글은 자주 발견된다고 지적했다(참조, Justin, Dial. 12:3; Iraenaeus, Epideixis 96; Ps. -Ignatius, Magn. 9:2).

        주일 노동을 금지한 최초의 입법은 콘스탄틴 황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입법에도 불구하고 주일에 노동하지 않도록 만든 것은 교부들이 아니라 중세의 산물임에 분명하다고 보캄은 주장한다.91) 말하자면, 처음에는 자유로이 예배드릴 수 있기 위해 주일에는 일을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간주되었던 것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리고 콘스탄틴의 칙령 영향도 있고 해서, 7세기 경이 되면 종일토록 노예적인 일을 삼가야 한다는 의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보캄은 안식일 전이의 신학, 즉 주일이 안식일에 비견될 수 있으며 제 4 계명의 요구 사항들이 주일 성수로 전환되었다는 주장은 주일 예배를 위한 안식의 사상에 신학적 이유를 제공하고 성경적 근거에서 그것을 의무화하기 위한 시도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어거스틴이 기독교 윤리의 근거로 십계명의 지속적인 유효성과 중심적인 위치를 인정함으로써 토마스 아퀴나스가 안식일 전이 신학을 전면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을 닦았고, 아퀴나스의 견해는 후대 청교도 안식일주의와 19세기 영국 안식일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한다.92)

        이와 유사한 식의 사고가 기독교 집단에 널리 퍼져 있다고 지적하면서 링컨은 그 근본적 접근과 전제들에 있어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자연법 사상이다. 안식일이 자연법의 일부이므로 주일 성수는 특별 계시의 도움 없이도 인간 이성만으로 발견할 수 있는 도덕적 계명이라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예배를 위해 정기적으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자연법의 요구라고 주장했다. 장키우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레에 하루를 공적 예배에 바치는 것은 자연이 가르치는 바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자연법이 그 존재를 위해 하나님에게 의존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법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둘째, 자연법에 근거한 논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은 자연법이 십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안식일주의 신학은 항상 십계명에 호소해 왔으나 링컨은 자연법과 계시된 도덕법 양자의 요약으로서 십계명의 중심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도들의 가르침 안에 그의 도덕적 성격을 보다 온전히 드러내셨다고 주장한다. 또 십계명 속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은 부분적이고 역사적 제약을 받기 때문에 오직 그것이 신약에 의해 재확인되는 경우에만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십계명의 다른 주된 부분들은 그런 식으로 재확인되고 있으나 제 4 계명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그 전체로서 구속력을 가지는 도덕법은 아니다. 십계명 속에 “의식법적인 것이나 모형적인 것은 전혀 없으며 따라서 폐기된 것도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바운드같은 안식일주의자들은 제 7일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 했다. 십계명 전체가 도덕법이므로 제 4 계명도 영구적 구속력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주장에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 7일 안식교 신자가 되는 것이라고 링컨은 못박는다.93)    

        셋째, 제 4 계명과 관련한 의식법과 도덕법의 구분이다. 제 7일 안식교 신자가 되는 것을 피하면서도 안식일 전이 신학을 고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제 4 계명의 의식법적 측면은 “제 7일”이라는 요소이며, 그 도덕법적 측면은 “이레에 하루”의 원리로서 그 날에는 모든 “노예적 일”을 삼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속사도 시대에 발전된 의식법과 도덕법의 구분은 율법에 대한 신약의 태도를 정당하게 평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로서의 율법에 대한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상호 작용라는 관점에서 요약될 수 있다. 거기서 결정적인 요소는 모세 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의 새로운 표현에 대해 가지는 관계이며 그의 죽음과 부활에 의해 일어난 새로운 상황이다. 만일 예루살렘 공의회의 사도들이 제 4 계명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도덕법과 의식법의 구분을 주장했더라면 그것의 구속력있는 도덕법적 성격에 대해서 언급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법과 의식법 구분만으로는 안식일 전이의 신학을 확립하기에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한편, 이 연구는 주일 예배의 규범성 여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결정적 단서라 본다. 루터나 칼빈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요한계시록 1:10에 나오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안식 후 첫날에 대해 “주의 날”이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것이 단지 편리와 실용성보다 훨씬 더 큰 중요성을 가진 문제임을 시사한다는 것이 이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의 판단이다. 이 어구는 최소한 요한의 교회들의 관습에 있어 전례가 이미 확립되었으며 요한이 그것에 동의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주일 예배의 경우, 신약 성경에 반복되는 패턴이 나타나며, 계1:10에서 보는 대로, 그 패턴은 확고해졌다. 그리하여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는다. “주일 예배의 관습은 단지 고대성의 권위를 지닌 것이기 때문에 추천할만한 것일 뿐 아니라 정경적 권위의 표를 지니는 것이라 주장할 수 있다.”94)


폴 주잇의 [주의 날]

        풀러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 있던 폴 주잇은 70년대에 쓴 [주의 날]이라는 연구서에서 바른 주일 성수법을 믿음으로 자기 일을 쉬는 것이라 주장하여 제 4 계명의 문자적 안식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고 구원과 생존을 위해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는 의미에서의 안식이지 이런저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적 금지의 의미에서의 안식은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오히려 그는 주일이 기쁨의 날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저런 금기 사항과 금지에 얽매여 단지 지루하고 할일 없는 날로서의 율법주의적 안식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주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주일은 예배의 날이어야 한다는 점을 주일의 본질적 핵심으로 제시했다. 주의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서로 서로 그리고 부활의 주와 교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95) 모든 날을 같게 보는 종교개혁가들과는 달리 쥬잇은 주일의 특수성을 인정했다.

        그는 자기 저서의 주제를 “소망 속의 성취”(fulfillment in hope)라는 말로 정리하면서 제 4 계명의 안식 가운데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성취된 부분이 있지만 아직 종말적 완성을 기다리는 부분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종말의 완전한 안식의 예표로서 주일의 문자적 안식이 아직도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주일의 육체적 안식이 아직도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어야 할 제 4 계명의 실체적 요소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앞에서 소개한 카슨이나 링컨을 비롯한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차이가 있다.

       한편,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의 조직 신학 교수 개핀은 자기가 섬기는 학교의 설립 목적에 충실히 부응하여 60년대부터 줄기차게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안식일관을 옹호하는 글들을 발표해 왔다. 그의 저서 [칼빈과 안식일]에서 그는 칼빈의 안식일 신학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또 80년대에 쓴 논문에서도 그는 히브리서 3-4장을 근거로 아직 성취되지 않은 안식의 측면을 강조하면서 종말적 미래에 완성될 안식의 예표로 매주 첫 날을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ARTICLE

C. 칼빈 이후의 안식일 논쟁



        주로 [기독교 강요]를 통해 우리가 이상에서 고찰한 칼빈의 안식일관은 대륙 쪽 개혁교회들의 신앙고백인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에 많이 반영되었다. 그것의 제 103번째 문은 “제 사 계명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답은 루터 이후 안식일의 의미를 말씀 교육에 두던 전통과 예배에 대한 칼빈의 강조를 계승하고 있다. “첫째, 복음 사역과 그것을 위한 교육이 계속되는 것인데 특별히 안식의 기쁜 날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집회에 정규적으로 참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배우며 성례에 참여하며 공적으로 기도하며 빈민들을 위한 기독교적 헌물을 드린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이 가르치는 제 4 계명의 두 번째 의미도 어거스틴, 아퀴나스, 루터, 칼빈으로 이어지는 안식일관의 핵심인 영적 안식에 관한 것이다. “둘째, 내 평생의 매일 나는 나의 악한 길로부터 안식함으로 주님이 그의 영을 통해 내 안에서 일하시게 하여 이 생에서 이미 영원한 안식을 시작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칼빈은 제 4 계명의 세 번째 의미를 노동자들을 위한 육체적 안식에서 찾았으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그 대신 빈민을 위한 구제 헌금이라는 자비의 행위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두 방안은 모두 가난하고 고달픈 하층민들을 위한 배려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교도 안식일

        종교개혁자들의 견해의 확산은 제네바의 실제보다는 칼빈의 저술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한 가르침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어떤 지역에서는 주일 성수의 모습이 방종에 가깝게 되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일세는 주일 노동을 금지하는 로마 카톨릭에 대한 반발로 예배 후의 노동을 명령하다시피 했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다른 날들보다 주일에 하나님이 더 모욕을 당하시고 마귀가 영광을 받는다는 불평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청교도주의의 안식일관이다.83)

        청교도 안식일 신학의 창시자요 완성자라 할 수 있는 니콜라스 바운드의 [안식일 교리]라는 안식일 신학의 결정판격인 저서의 핵심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안식일은 창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제 4 계명은 창조의 규례(creation ordinance)이다. 즉 그것은 자연적이고 영속적이며 도덕적인 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을 가진다. 그것은 단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는 의식법이 아니다. 주일은 교회가 만든 실용적 규정이 아니라 모세의 십계명 중 제 4계명에 직접 근거한 것이다. 4 계명은 천지 창조에까지 기원을 추적할 수 있으므로 오늘 우리는 “유대인들만큼이나 정밀하게 안식을 지켜야 한다.”

        바운드는 어떤 계명이 도덕적인 동시에 의식적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인간인 동시에 짐승일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84) 바운드 이후 청교도들은 제 4 계명에서 어떤 그림자나 상징적 요소의 존재를 부정했다. 즉 제 4 계명은 제 7일이라는 요소만 제외하고 액면 그대로 현대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운드는 주일을 범하는 것이 만악의 근원이라 보았다. 주일에 대한 불신실은 반항적 자녀들, 불순종하는 종들, 바람피우는 아내들 등 가정과 직장의 타락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바운드는 제 4 계명이 십계명 중 핵심적인 계명이라 보았다. “그것을 준행하는 것에 모든 다른 것들의 준행이 달려 있으며 그것을 소홀히하면  종교 전체를 소홀히 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왜 단지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사형에 처할 정도로 심한 벌을 주셨던가 하는 질문에 대해 바운드는 칼빈의 에스겔서 20장 주석과 이사야서 58장 주석을 인용해서 대답했다. 그 이유는 안식일 계명에 “하나님께 대한 모든 봉사가 망라”되기 때문이었다. “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는 것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 과실은 아주 가혹한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다.85) 

        바운드는 안식일이 제 7일에서 첫째 날로 전환된 것이 결코 초대 교회의 자의적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신적 권위에 근거한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와서 그의 사도들을 통해 전달된 것이었다. 한 주의 첫 날은 다른 날들과 구별되며 모든 다른 날들보다 우월한 날이었다. 이처럼 날에도 구별이 있다는 주장은 칼빈의 견해와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단지 교회에 편하다고 해서 어떤 다른 날로 그것을 대치할 수는 없었다.

        바운드의 해석에 의하면, 제 4 계명이 명하는 안식은 문자적이며 육체적 안식이었다. 제 4 계명의 안식을 단지 영적 안식으로 이해한 칼빈과 대조적으로 그는 4계명의 안식을 죄악으로부터의 구속적 안식이나 영생으로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일상의 업무와 유희를 중지하는 것으로 그 날은 농부들도 심지어 파종 때나 추수 때라 하더라도 일하지 말아야 한다고 바운드는 주장했다. 안식일에 사람들은 시장이나 상점에 출입하지 말아야 하며 거기에는 왕에서 하인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또한 이사야 58장에 근거하여, 바운드는 안식일에는 “정직한 레크레이션이나 합법적 즐거움”조차도 삼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레크레이션이 “우리가 받은 소명의 일에서 우리를 진보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것이 먹고 마시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라 보았다. 왜냐하면 레크레이션은 “단지 즐거움을 위한 것인데 인간은 그것 없이도 그럭저럭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레크레이션을 금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수단이므로 그러한 활동의 중지가 필요하다고 그는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주일에 테니스, 펜싱, 볼링 등은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운드는 주일 온 종일을 하나님께 바쳐야 할 의무를 강조했다. “하루의 한 조각”만 하나님을 섬기는 데 바치는 것을 그는 아간이 여리고의 전리품 일부를 훔친 것에 비유했다. 주일 전체가 주님의 것이므로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24시간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다. 바운드의 이러한 주일관이 가장 분명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1640년대에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안식일 조항이었다.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보다 85년 뒤에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21장, 7-8항에 의하면 청교도들은 안식일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었다.


        자연법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위해 적정한 비율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모든 시대에

        걸친 모든 인간들에게 적극적이고 도덕적이며 영구적인 명령으로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지정하셔서 거룩히 지키게 하셨다. 그

        날은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 주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는 한 주의 첫째 날로 바뀌었다. 성경에서 그것은

        주의 날로 불리우며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인의 안식일로 계속된다.


이어서 이 신앙고백은 주일을 성수하는 구체적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이 지킬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주일 성수 지침일 것이다.


        이 안식일은 다음과 같이 지킬 때 주님께 대해 거룩히 지켜진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적절히 준비하고 자신의 일상사를 미리

        정돈한 후 거룩한 안식을 종일토록 지켜 자신들의 세상적 업무들과 레크

        레이션에 대한 생각들과 말들과 일들을 멀리할 뿐 아니라, 공사간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필수적인 일들 및 자비의 의무에 속하는 일들에

        종일토록 몰두하는 것이다.


        일견에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안식일관은 적어도 [강요]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에 나타난 안식일 신학과 아주 대조적이다. 같은 개혁주의자 신앙고백들 사이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러한 상이한 안식일관은 그 후 수백년 간 계속된다.

        

돌트 대회

        안식일에 대한 청교도들의 견해는 점차 대륙으로 전파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다소 느슨한 주일 성수의 관행을 가지고 있던 화란 교회들이 1580년대 이후 점점 더 그 영향권 하에 들어 갔다. 그 결과 화란 교회 내에서 안식일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야기되었다. 1612년 찌릭찌 (Zierikzee)의 설교자인 우데만 (Udemans)은 청교도들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안식일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를 지지한 자는 1613년 미델버그의 설교자가 되었던 틸링크 (Teelinck)였다. 그러나 반대자도 있었으니 그는 1611년부터 1615년까지 미델버그의 설교자로 있었던 고마루스(Gomarus)였다. 고마루스는 안식일에 대해 훨씬 개방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데만스는 자기 교회 장로인 보센베르기우스 (Vossenbergius)와 함께 그 문제를 돌트 대회로 가져 갔다. 돌트 대회의 결정은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도덕법이며 부분적으로는 의식법(partim morale, partim cerimonale)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틸링크는 자신의 견해 때문에 동료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했다. 1627년에 그는 Noodwendigh Vertoogh라는 제목의 다른 책을 출판하여 자기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개탄하면서 청교도적 관점을 제시했다.

        한편 그동안 그로닝엔의 교수가 된 고마루스는 1628년에 [안식일에 대한 견해와 기원의 연구](Investigatio sententiae et originis sabbati)라는 제목으로 반대 견해를 담은 책을 출판했다. 그 책의 요지는 첫째,  안식일은 창조 때에 제정되지 않았고 신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실 때 제정하셨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제 4 계명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선택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고마루스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왈레이우스(Walaeus), 리베(Rivet), 아메시우스(Amesius) 등이 차례로 그에 대한 반박을 출판했다. 왈레이우스의 [제 4 계명론](Dissertatio de quarto praecepto)에 의하면 안식일은 천지 창조 시에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었고 제 칠일에서 첫째 날로의 변화는 사도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리베도 역시 출애굽기 주석에서 안식일은 천지 창조 시에 제정되었으며 첫째 날로의 변화는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 논쟁과 관련된 핵심 쟁점이 안식일 제도가 언제 제정된 것인가 하는 질문에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즉 그것은 창조의 규례인가 아니면 유대인들을 위한 일시적 제도인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여하에 따라 주일 성수 방법도 큰 영향을 받는다. 


보에티우스(Voetius)와 콕세이우스(Cocceius)의 투쟁

       돌트 이후 한 세대가 지난 1655년 콕세이우스는 히브리서를 강해하면서 돌트 대회의 결정과 달리 제 4 계명은 전적으로 의식법이라고 가르쳤다. 고마루스처럼 안식일은 에덴에서가 아니라 광야에서 제정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콕세이우스를 지지한 신학자는 라이덴(Leyden)의 동료인 헤이다누스 (Heidanus)였고 그를 신랄히 비판한 동료 학자들은 유트레히트 대학의 교수들인 호른베크(Hornbe다)와 에세니우스(Essenius)였다. 나다나엘 존슨 (Nathanael Johnson)은 파샤시우스(Paschasius)라는 익명으로 [안식일에 대한 소시니안적 견해와 제 4 계명] (Sententia Sociniana de sabbato et quarto praecepto)이라는 책을 써서 콕세이우스와 헤이다누스가 소시니안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리하여 안식일 문제로 인해 교회 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여기서 이 논쟁의 자세한 내용들을 다룰 수는 없다. 단 이 문제가 최고 수준의 개혁주의 정통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간단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대논쟁이 야기될 정도로 까다로운 쟁점이라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다. 이 때 이 논쟁에 자극을 받은 기스베르 보에티우스 (Gysbert Voetius)는 제 4 계명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안식일과 축제] (De Sabbato et Festis)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제 4 계명에 대한 다양한 설명들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보에티우스는 논쟁들을 개혁주의자들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논쟁, 그리고 개혁주의자들 사이의 논쟁 두 종류로 구분했다. 첫 번째 카테고리 안에 그는 여덟 가지 종류의 논쟁을 포함시켰다.

        1)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제도적 안식일이 있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재세례파와 소시니안주의자들에 대항하여, 2) 유대인들의 제 칠일 안식일은 변화되고 폐기되었다는 주장은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3) 제 칠일에서 첫째 날로의 변화는 “교회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4) 주의 날은 “전통”이 아니라 “성경”을 따른 것이라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5) 안식일은 자비의 행위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유대인들에 대항하여, 6) 단지 “노예적인 일”(opera servilia) 뿐 아니라 공사간의 예배를 방해하는 모든 일이 금지된다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7) 경건의 연습(exercitia pietatis)에 의해 단지 주일의 일부만 성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로마 교회에 대항하여, 8) 주일이 그 자체로서 다른 날들보다 더 거룩한 것은 아니라거나 그것은 구약의 안식일처럼 표지일 뿐이라는 주장은 스콜라주의자들에 대항한 것이다.

        두 번째 카테고리, 즉 개혁 교회 내의 논란에서 보에티우스는 네 가지를 구분했다.

1) 한 주일 중 하루가 하나님에 대한 봉사에 성별되었다는 사실이 “신적 법”에 근거했는가 아니면 교회 제도에 근거했는가? 2) 한 주일의 첫날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안식일로 성별되었는가? 보에티우스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다시 네 가지 입장이 있었다.

        a. 주일을 지키는 것은 관습의 문제이지 “신적 법”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입장.

        b. 이 제도가 (질서를 위해) 교회의 결정에 기원한 것인가 혹은 그것이 “하나님의 특별한 법과 명령”에 따른 것인가 하는 질문은 별개로 하고 주일을 지키는 것은 사도 교회 혹은 사도들에 의해 명령된 것이라는 입장(행20:7; 고전16:12).

        c. 사도들의 모범은 “신적 법”이며 우리에게 구속력이 있다는 입장(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견해를 선호하여 교회 직분자들, 즉 장로들, 집사들, 교사들을 뽑는 것에서 그 유비를 찾았다).

        d. (아메시우스에 의하면) 요한복음 20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자신이 그 날을 제정하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러나 보에티우스 자신은 이 주장이 명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3. 안식일이 제정된 것은 천지 창조 때였는가 아니면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였는가? (보에티우스는 전자를 주장하나 고마루스는 그것을 부정했다).

4. 이스라엘의 안식일이 모형적 (즉, 의식법적)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가? (어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그것이 전적으로 의식법이라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며 부분적으로는 도덕법(aliquid ceremoniale et aliquid morale)이라고 주장했으나 보에티우스는 안식일이 전적으로 의식법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서 보에티우스는 다른 “질문들”을 더 다루는데 우리가 다음의 점들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 설령 제 칠일로부터 첫째 날로의 전환이 교회의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신적 안식일을 지킬 의무는 여전히 남아 있다. 2) 보에티우스는 특별히 주일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이 은혜의 행위를 기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대한 보에티우스의 견해는 결국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 도덕법이며 부분적으로 의식법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전적으로 도덕법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 청교도들의 전형적 안식일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