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자료

안식일과 주일 문제의 연구 -신대원교수회

baromi 2005. 7. 21. 13:11
LONG

B. 칼빈의 안식일 신학


성화의 교리로서의 제 4 계명

        칼빈은 [기독교 강요] 제 2권 8장에서 도덕법, 즉 십계명을 해설하는데 그 장 28-34항에서 그는 제 4 계명을 강해하면서 안식일 신학을 전개한다. 그는 자신의 안식일 신학의 대주제를 첫 문장부터 천명한다. “이 계명의 목적은 우리 자신의 성향들과 일들에 대해 죽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고 그 분에 의해 제시된 방식으로 그 묵상을 실천하는 것이다.”25) 그러므로 칼빈에게 있어 주일 성수의 본질은 자아를 죽이는 것(mortification)과 하나님 일의 묵상이다. “우리는 전적으로 안식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육신적 욕망들을 버려야 한다.”26)

        칼빈에게 있어 주일을 올바로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세상적 욕망들과 죄악된 행위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칼빈은 “성화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죽이는 데 있다”고 말하므로 칼빈의 안식일 신학은 성화 교리에 관련되어 있다.27) 실제로 칼빈은 안식일을 “성화의 상징”이라 묘사한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성화시키는 자”(sanctifier)가 되실 것(겔20:12)이라는 “약속의 표지”였다.28)


제 4 계명의 모형적 요소들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제 4 계명에는 모형적(typical) 요소들이 있다. 그는 안식일 계명을 “예표”(figure)라고 부른 초대 교부들에게 동의했다.29)

         

         그 분 자신이 진리이며 그 분의 임재로 모든 모형들이 사라진다.

         그가 몸체이며 그의 출현으로 그림자는 뒤로 제쳐진다.

         그는, 감히 말하건데, 안식일의 참된 성취이시다.30)


창세기 2:3 주석에서도 칼빈은 제 4 계명에 의식법적(ceremonial) 성격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이 점에서 그것은 십계명의 다른 아홉 계명들과 구별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율법에서 안식일에 관한 “새로운 명령”이 주어졌는데 그 새로운 요소는 유대인들에게만 일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 안식을 예표하는 율법적 의식으로서 그것의 진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밝히 드러났기 때문이다.”31)  갈라디아서 4:9-10은, 칼빈에게 있어,  제 4 계명의  모형적 요소들이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 본문들 중 하나이다. 그 구절에 근거하여 칼빈은 어떤 날들도 “그 자체로서 거룩한” 것은 아니며 날들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일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반대로 생각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양심에 올무를 놓는 것”이었다.

  골로새서 2:16-17도  제 4 계명의 외적 모형적 요소가 폐기되었다는 칼빈의 주장의 가장 중요한 성경적 근거들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아무든지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런 것들은 장차 올 일들의 그림자이나 실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느니라.” 칼빈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옛날에 의식들(ceremonies)이 예표했던 것들의 실체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눈 앞에 제시되었다”고 해석했다.

먼저 칼빈은 제 4 계명에 나타난 문자적 안식이 의식법적 요소에 속한다고 생각했다.32)  즉 육체적 안식은 제 4 계명의 실재와는 무관한 요소였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주일 노동을 금지했던 것은 “원리”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 때문이었다. 즉 일요일 노동이 그 자체로서 악한 것이 아니라 “거룩한 학습과 묵상”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는 일요일에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33)  칼빈이 볼 때 노동이 주일을 더럽힌다는 생각은 일종의 미신적 “신비”였다. 그는 우리가 주일에 노동을 중지하는 것은 정부의 명령 때문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마치 특정한 날에 일하는 것이 불법적인 것처럼 날들을 지키지는 않는다. 우리가 존중을 표하는 것은 정부와 질서에 대해서이지 날들에 대해서가 아니다.”34) 


제 4 계명의 첫 번째 실체: 영적 안식

제 4 계명에는 의식법적 요소들이 있다는 교부들과 견해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그들이 그 안에 담긴 진리를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단지 진실의 절반만 건드렸다”는 것이었다. 칼빈의 관점에 의하면 십계명은 “영원히 남아 있을 규범”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제 4 계명이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그 “표상들”(figures)이 계속 유효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이 예표하던 진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35)  우리는 제 4 계명 안에 있는 “고대의 표상들”과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주신 영구적인 지침을 구분해야 했다.36) 그리스도가 오신 후 우리는 더 이상 “날”을 지키는 옛날의 “굴레”에 매여 있지 않다.37)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일 계명은 그  “실체”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에게 관련성을 가진 세 차원이 있다.

 교부들은 보지 못하였으나 칼빈 자신은 간파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제 4 계명의 실체들 중 첫째는 “영적 안식”이었다. 일곱번째 날의 휴식을 통해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영적 안식” 을 제공하고자 하셨는데38) 그 영적 안식이야말로 안식일의 그림자 속에 감취어 있던 실체였다. 제 4 계명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있어 핵심인 “영적 안식”이란 ,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일들을 내려 놓음으로써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의 내적 실재인 “영적 안식”은, 다른 말로,  “우리 자신의 모든 도모를 중지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사역하시게 하고 우리는...그 분 안에서 쉬는 것”이었다.39)

 칼빈은 “우리 자신의 일들”에 대해 철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일들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는 한 참된 안식은 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그처럼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종교개혁적 교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는가? 다시 말해 제 4 계명에 대한 그의 해석은 단지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이라는 종교개혁의 모토에 대한 계속적 강조에 불과했는가? 여기서조차도 그는 로마 교회의 “공로” 사상을 반박하고자 했는가? 그랬을 수도 있다. 갈4:9-10의 안식일에 대해 주석하면서 그는 “성일들”을 “공로라는 마귀적 인식”과 연결시키는 로마교회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그러므로  칼빈이 “영적 안식”을 우리 자신의 일을 포기하는 것이라 말할 때  “우리 자신의 일”이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율법의 행위들”을 지칭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은 안식일에 대한 그의 신명기 설교를 볼 때 더 확실해진다. “만일 인간이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 가능했더라면 그[하나님]는 그들에게 ‘일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는 ‘쉬라!그리하여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라’고 말했다.40)

한편, 창세기 주석에서 칼빈은 영적 안식을, “육신을 죽임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더 이상 자신을 위하여 살거나 자신의 성향에 몰두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라 정의했다.41)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칼빈에게 있어 영적 안식의 핵심은 자아를 죽이는 것과 자기 의에 대한 불신 및 하나님에 대한 전적 의존이라 말할 수 있다. 결국 제 4 계명을 설명하면서 칼빈은 자기 신학의 대주제인 자기 부정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율법의 핵심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셈이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의 주된 부분을 형성하는 그것, 즉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성향들이나 이성이나 지혜를 따르지 않는 것을 생각지 않는다면 우리는 율법 전체를 범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셔야 하기 때문이다.”42) 신명기 설교에서 그는 그 점을 재확인해 준다. “영적 안식을 지키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신 것에 대한 모든 말씀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모든 것과 우리 본성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행하기를 중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칼빈의 견해에 따르면, 육체적 무위(inactivity)를 포함한  안식일의 가장 엄격한 성수조차도 이 영적 안식의 요소가 없으면 허사다. “만일 우리의 정욕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또 우리 자신의 모든 생각들과 욕망들을 포기하기까지 함으로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오직 그 분 안에 쉬기를 원한다고 엄숙히 선언할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모두 허사가 될 것이다.”43)

칼빈은 주일 에 묵상하는 일의 긴요성을 강조했다. 제 4 계명의 의도는 “단지 육체적 무위”를 격려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두말할 것 없이 하나님은 빈둥거리는 것과 게으름을 전혀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단지 노동을 중지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44) 안식일 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맹목적으로 일을 쉬는 것 이상의 것인데 그 중 하나는 묵상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여유와 일로부터의 자유를 통한 긴장의 이완(relaxation)이나 기분 전환 (refresh)같은 것을 게으름이나 태만과 거의 동일시한 듯하다. 주일은, 그의 표현을 따르면,  “나태한 휴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와 묵상에 바쳐야 할 시간”이었다.45) 평일에도 그렇게 해야 하지만 특별히 우리는 주일에 “그의 창조와 세상 통치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 지혜, 능력, 그리고 선하심을 묵상해야” 했다.46)  하나님이 천지 창조 후 쉬셨던 것은 휴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로 그의 작품들을 명상하는 데 집중하도록 초청하시기 위함”이었다.47)


공적 예배: 제 4 계명의 두 번째 실체

칼빈에게 있어 안식일 계명의 두 번째 실체는 공예배와 묵상을 위한 날을 정기적으로 가지는 것이다. 안식일 제도를 통해 하나님은 “정기적인 날”을 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모여 율법을 듣고 예배 의식을 거행하거나 최소한 특별히 그 날을 그 분의 하신 일들을 묵상하는데 드림으로 이러한 기억을 통해 경건의 훈련을 하게 하셨다.”48) 예배 의식에는 물론 성찬과 공적 기도가 포함되었다. 이것은 안식일 계명의 영구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에 속하므로 칼빈은 그것을 “옛날의 그림자들”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그것은 “영적 안식의 최고 최적의 표현”이었다.49) 그리하여 “어떤 점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예배와 종교 활동을 위한 날을 가지는 “이 목적을 위해 주일이 유대인의 안식일을 계승했다.”50) 이런 점에서 칼빈이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를 연속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지 아니면 단속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해야 할지 애매하다. 외적 문자적 차원에서는 단속적이나 내적 영적 의미에서는 연속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쨌든 예배를 위한 특정한 날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그리스도인들도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과 “동일한 필요”를 가진다고 그는 생각했다.51) 안식일 제도는 “우리의 매우 자상하신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의 필요 못지 않게 우리의 필요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셨다”는 증거였다.52) 

당시 칼빈의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 주일을 지키는 제네바 교회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날들을 지킨다”는 것은 유대주의의 잔재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제네바가 날들을 지키는 것은 사실이나 그 동기가 다르다고 답변했다.53) 유대인들은 “영적 신비가 그것에 의해 상징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가장 경직적인 꼼꼼한 의식”으로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제네바는  질서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주일을 지켰다.54)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들의 구별”이 아니라 “성도의 교제의 평화에 기여하는 합법적 선택”이라는 것이었다.55). 칼빈이 주일마다 집회를 가진 이유는 신학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이고 교회적인 것이었다.  “만일 정해진 날들이 없다면” 교회가 어떻게 모일 수 있느냐고 그는 반문했다. 교회 회집을 위해 한 날을 지정하는 것은 “질서와 품위”를 지키기 위한 것이며 만일 그것이 없다면  교회는 당장 혼란과 파멸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56)

 그러자 “날들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매일 모이면 되지 않는가?” 하는 반론이 대두되었다. 이에 대해서도 칼빈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라고 동의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안식은 영속적인 것이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충분한 열심이 있다면 일 주일에 하루만이 아니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더욱 더 성장해 가야 할 것이다.”57) 완전한 세계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공예배를 드림으로써 “날들의 구분”을 제거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영적 열심도 부족한 데다 각자의 생활이 워낙 복잡하고 일이 바쁘다보니 공적 집회를 매일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이해하시는 하나님이 이레에 하루를 안식일로 할애하시고 그 날에는 모든 세상 일과 근심들을 쉬게 하심으로써 자기 백성들이 “저 거룩한 일” 즉 공예배와 사적 묵상, 그리고 “각자의 집에서 쉬는 일”에 자유로이 전념할 수 있게 하셨다.58) 그러므로 이레에 하루의 예배일 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연약성을 현실적으로 고려하시고 양보하신 결과였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천사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하루만 그 분에게 할애하더라도 만족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레에 하루를 요구하신 것은 아주 합당한 처사였다. 왜냐하면 그는 나머지 엿새나 되는 날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세상적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게 하셨기 때문이다.59) 그런데 겨우 이레에 하루를 하나님께 할애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이 질서”를 과하다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칼빈의 논리였다.60) 칼빈은 기독교의 존재와 흥왕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예배를 위해 모이는 열심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제 4 계명 강해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 교리를 특별히 고수해야 한다. 즉 우리 중에서 기독교가 사멸하거나 쇠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성스러운 집회들을 부지런히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예배를 진흥할 수 있는 외적 보조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61)


“이레에 하루”의 원칙에 대한 칼빈의 입장

  “칠일에 하루”의 리듬에 대한 칼빈의 입장은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바로 앞에서 우리는 칼빈이 이레에 하루 공적 예배일로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질서”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또 그는 이레에 하루를 예배와 종교 활동에 바쳐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주일이 안식일을 계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칼빈의 창세기 2:2-3절 주석에는 이레에 하루의 원리가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일시적 제도가 아니라 창조의 규례로 언급된 부분들이 있다62). 예를 들면, “매 칠일째가 매일의 묵상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히 선택되었다.” 하나님은 “매 이레 째를  안식에 바치심으로 그 자신의 모범이 영원한 규칙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마치 그가 사람들의 나태를 기뻐하시는 것처럼, 이레마다 그저 공휴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안식일]이 태초부터 인간들에게 명해졌으므로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는 것이 옳다”63)등이 그것이다. 그러나[강요]의 다른 부분에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요일에 예배드리기 위해 모이는가 하는 것은 안식일 계명의 실체를 준수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명기 설교에서도 예배드리는 요일 문제와 시간의 문제는 인간의 판단에 일임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경우든 일 주일 중 어느 날을 택하는 이 질서는, 그것이 하루든 이틀이든,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64) 예배 요일의 문제는 아디아포라에 속하지만 일단 정한 이상은 교회의 질서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예배드리는 날을 꼭 일주일마다 잡을 필요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 나는  “칠”이라는 숫자에도 매달리지 않으며  교회들을 그 수자에 얽어매지 않는다.

그리고 미신화되지만 않는다면 어떤 교회들이 집회를 위해 다른 엄숙한 날들을

지키더라도 나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을 것이다.65)


로마 교회는 제 4 계명 안에 있는 유일한 의식법적 요소가 “일곱번째 날의 지정”이라 이해한다고 칼빈은 지적한다.  “이레에 하루를 고정한 것”은 도덕법적 요소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이 볼 때는 그것도 역시 의식법의 부분에 속한 것이었다. 제 7일을 제 1일로 바꾼 것은 안식일에 대한 유대교적 견해에 반발해서 “단지 날을 바꾼 것”에 불과했다. 그러는 중에 로마 교회는 은연 중에 유대인들과 같은 인식, 즉  일요일이 모종의 “신비” 혹은 “거룩함”을 지닌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칼빈이 볼 때 그것은 “미신”이었다. 그에게는 어떤 날도 그 자체로서 성스럽거나 특별한 날은 없었다. 그런데 로마 교회는 이 “조잡하고 육신적인 안식일적 미신”에 있어 유대인들보다 “세배”는 더하다고 칼빈은 비난했다.66)

그러므로 칼빈은 굳이 이레에 하루가 아니더라도 교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며칠에 한번을 모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규율과 선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그러하다는 것이었다.67) 공예배로 모이는 요일 문제와 관련하여 칼빈이 줄기차게 관심을 가졌던 유일한 사항은 “예절, 질서, 그리고 교회의 평화”였다.68)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 7일 대신 제 1일이 “옛 사람들”에 의해 지정되었다. 그러므로 칼빈은 안식일로부터 주일로의 전환이 이중의 목적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대한 미신을 제거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로마 카톨릭의 율법주의적 주일 성수에 대한 반발로 칼빈은 공예배 날을 정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주일마다의 회집에 대해 이의를 가진 재세례파의 어떤 “소란스러운 영혼들”에 대항해서는 주일 제도를 변호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칼빈의 견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엄격히 말해서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꼭 일요일에 예배드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로마 교회처럼 특정한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소위 “미신화”를 그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므로 날들의 미신적 성수는 절대 피해야 한다.”69) 그러므로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요일들에 정기적으로 질서있게 모일 수만 있다면 그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의미를 신중하게 고려하여 일요일에 모이기로 결정했다고 그는 판단한다. 또한 그는 그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반대가 없었다. 즉 예배일을 다른 날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는 어떤 학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그는 일요일 예배에 대해 아무 이의가 없었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꼭 그 날이어야만 한다거나 일요일 예배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것이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가 현대 성경학자들만큼  “주의 날”이라는 표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깊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칼빈은 최소한 일주일에 하루는 예배와 묵상을 위해 떼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70)  그러므로 칼빈이 팔일에 한번이나 열흘을 공적 사적 예배일로 할애해도 좋다고 생각했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그러나 꼭 “이레에 하루” 라는 리듬과 일요일이라는 요일 문제가 신적 기원이나 계시성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그는 생각했다.71)


노동자들을 위한 고려

칼빈은 제 4 계명의 세 번째 실체를 육체 노동자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고려라고 해석한다. 안식일 제도를 통해 하나님은 “종들과 남의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 “노고로부터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긴장을 풀 수 있는 날을 하루 제공하고자 하셨다는 것이었다.72) 그것은 “자비의 원칙에 관계”된 것이니만치 안식일 계명은 영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73) 그러나 제 4 계명은 십계명의 첫 번째 돌판에 포함된 것이므로 일차적으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종들에게 주어진 안식은, 칼빈의 표현에 의하면, “단지 부속물”(accessory)이거나 “부대적 유익”(extrinsic advantage)에 불과했다.74) 사회경제적 위상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한 몸으로 엮어져” 있고75)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으므로 다른 인간을 압제하거나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침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나님의 형상이 모든 인간들 안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이를 압제할 때 나는 단지 나 [자신]의 육체를 멸시할 뿐 아니라 내 힘을 다해 하나님의 형상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76)


주일 성수 방법

        안식일에 대한 칼빈의 진보적인 이론들을 볼 때 우리는 주일 성수 방법에 대해서도 칼빈이 아주 자유롭고 느슨한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라는 점으로 인해 독자들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그의 주일 성수 방법론은 사실상 안식일주의자들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리하여 그의 입장은 “실제적 안식일주의”(practical Sabbatarianism)라 불리운다. 말하자면 안식일 신학의 이론에 있어서 그는 아주 진보적이나 적용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는 것이다. 먼저 칼빈은 올바른 주일성수의 방법이 주일 하루 종일을 종교적 활동에 바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우리 주님이 어떻게 이 날을 오직 그의 말씀을 듣고 공기도를 올리고 신앙을 고백하고 성례를 거행하는 데만 사용할 것을 요구하시는가를 생각해 보라!” 77) 공예배를 드리고 남는 시간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칼빈은 주장했다.78) “주일이 제정된 것은 단지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 뿐 아니라 남는 모든 시간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바치게 하기 위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79)

공적이고 사적인 예배를 드릴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칼빈은 주일에 일상적 업무를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아가서 그는 주일에 레크레이션이나 스포츠를 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다. “만일 우리가 주일을 기분내고 게임하는 데 사용한다면 그게 하나님을 제대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을 놀리는 것이요 그의 이름을 아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80)  이쯤되면  칼빈의 안식일관은 실제적으로 청교도들의 그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복수종교 사회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제안이겠으나 칼빈은 주일에 상점들이 문을 닫아야 하며 여행은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면 그것이 우리가 한 주간 내내 하나님의 일들을 묵상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만일 우리가 그것을 범하면 우리는 한 주간 내내 “짐승처럼 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81)


칼빈 견해의 요약과 질문

        요컨데, 칼빈은 제 4 계명의 거의 모든 요소들을 의식법적, 모형적 요소로 간주한다. “7일째”라는 요소, “이레에 하루”의 리듬, 문자적 휴식이 모두 그리스도 오신 이후 폐기된 예표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제 4 계명의 “실재들”, 즉 제 4 계명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지니는 의미는 영적 안식의 차원이다. 영적 안식은 신자들이 자기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묵상하는 것이며, 죄악된 성향과 욕망과 일들을 중지함으로 하나님이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다. 즉 자기 부인, 육체와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음, 구원과 성화를 위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 등이 칼빈이 본 제 4 계명의 본질이었다. 영적 안식은 공적 예배와 사적 묵상으로 표현되었으며, 그 부수적인 요소로 제 4 계명에는 육체 노동을 하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한 보너스, 즉 문자적 휴식의 요소가 포함되었다.

        칼빈의 안식일 신학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칼빈은 제 4 계명을 영적으로 해석해서 그것을 성화 교리와 연결시키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나 타당성있는 해석인가? 성화와 자기 부인이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아우르는 명제이다. 반면 십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러 의무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구절들이다. 그런데  열 가지 명령들 중 하나에 불과한 제 4 계명이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대변할 수 있는가?82) 둘째, 문자적 안식, 즉 육체적, 정신적  안식의 요소를 제 4 계명의 실체에서 배제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셋째, 칼빈은 공예배의 의무가 제 4 계명의 실체들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그 계명의 표현 속에는 그것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에서, 혹은 어떤 해석의 과정을 통해 칼빈은 그러한 주장에 이르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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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주일 문제의 연구



                        


주일 문제의 긴박성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전 세계에 걸쳐 세속주의의 물결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화되고 기술 문명이 발달된 거의 모든 사회는 현재 주 5일제 근무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가용 승용차의 보편화로 인해 주말은 여행, 휴가, 그리고 여가 선용의 기회로 인식되는 경향이 점증하고 있다. 현대 생활의 복잡성, 경제 각 부문의 상호 의존, 서비스와 전기, 수도 등의 중단없는 흐름에 대한 의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공장에서는 이제 주말에 최소한 모니터라도 되어야 하는 기계들이 도입되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전기, 난방, 냉방, 전화,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 신문 등을 한 주간 내내 요청하고 있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실제로 복음 전파라는 기독교적 목적을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동 중인 사람들은 주일에도 비행기, 택시, 철도, 정거장, 호텔, 식당 등의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많은 상업 시설들이 일 주일 내내 문을 열고 있으며 때로 그리스도인들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주일 영업의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목회상의 많은 문제를 의미하는 동시에 주일과 안식에 대한 교회의 새롭고 분명한 지침이 제공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는 안식일과 주일 문제에 대해 대단히 엄격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국 땅에 처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앙의 표준으로 소유한 자들로서 주일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교회에 가장 엄격한 청교도적 주일관을 이식해 주었다. 그러한 역사적 배경은 고신의 보수적 신학과 영적 분위기와 합세하여 고신으로 하여금 한국 장로교회들 중에서도 가장 엄격한 안식일 전통을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수도권을 기점으로 타 교단들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리 교단 내의 교회들에서도 전통적인 주일 성수의 방식으로부터 떠나는 경향이 노출되고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교단 교회들에서도 교회적으로는 아닐지 모르나 개인별로는 이미 주일성수의 모습이 과거와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암암리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과거와 같은 엄격한 안식일관과 주일 성수의 방식이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감각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러한 전통적 이해와 관행에 결함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작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교단의 전통적 안식일관을 객관적으로 재점검하면서 그것을 개혁주의적인 안식일관, 나아가서는 성경적 안식일관과 비교 평가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주일에 대한 입장들의 스펙트럼

        주일 성수와 관련해서 생각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제 사 계명과 주일의 관계 문제이다. 주일은 제 4 계명의 연장인가 아니면 완전히 별개의 것인가? 제 4 계명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여전히 문자적 구속력을 가지는가 아니면 모형이요 “그림자”인가? 교회사적으로 제 4 계명에 대한 입장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1)

        첫째, 제 4 계명 전부가 모형이요 그림자로서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에는 폐기되었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또 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집단을 풍미하던 견해로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의 전제 하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제 4 계명은 폐기되었다고 믿는다. 안식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다. 모든 날이 주의 날이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날과 절기의 구분을 금지하는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대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과 꼭 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입장을 취하는 교회로 영국 국교회가 있다. 그들은 제 4 계명과 안식일은 그 기원이 모세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출애굽시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명하신 특별한 조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구약 시대가 끝나면서 제 4 계명에 대한 의무는 중지되었으며 안식일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일, 혹은 일요일은 기독교회의 완전히 별개의 제도이다. 그것은 안식일이 아니며 안식일의 계승도 아니다. 주일은 어떤 식으로도 제 4 계명에 의존하지 않는다. 즉 안식일과 주일 사이에는 절대적 단절이 있다. 재세례파와 이들의 차이는 전자가 주일을 지키는 것조차 부정하는 데 반해 후자는 그것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영국 국교회 멤버들 사이에 있는 견해 차이는 주일의 권위의 최종적 원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제 2세기 초반이나 기껏해야 제 일 세기 말엽에 고대 교회가 만든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주일 제도가 최소한 사도적 기원을 가진 것이거나 아니면 그리스도의 기록되지 않은 지시에 근거한 것이라 믿는다. 영국 국교회는 그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주일의 중요한 순서이기는 하나 일차적으로 주일은 육체적 정신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흔히들 안식일주의(Sabbatarianism)라 부르는 입장이다. 이것은 제 4 계명이 문자적으로 복음 시대에도 전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핵심적 주장은 제 4 계명이 단지 모세 율법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십계명의 다른 요소들과 함께 창조의 규례(ordinance)라는 것이다. 안식교도들과 청교도들이 이 견해의 주창자들인데 그들에 의하면 안식일 제도는 단지 유대인들을 위한 제도가 아니며 신약 시대에 폐기된 것도 아니다. 주일을 성수하는 것은 보편적이고도 영속적인 의무이다. 사실상 안식일은 타락 이전에도 존재했다.

        함께 두 번째 입장의 기본 노선에 동의하지만 안식교와 청교도들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전자가 제 7일이라는 요소까지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청교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 안식일이 제 7일에서 한 주의 첫 날로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제외하면 제 4 계명의 나머지 다른 부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안식일주의 입장은 종교개혁 직후에 대두되어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영국 청교도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었다. 미국에서 안식일주의는 19세기까지 대부분의 주요 교단들이 흔들림없이 견지하는 신념이었으나 그 후부터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안식일을 합당히 지키는 방법이 온 종일을 공적 예배나 사적 경건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 믿는다. 

        세째 견해는 제 4 계명의 모형적인 부분은 모두 폐지되었지만 그 실체는 아직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보는 입장인데 칼빈이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주일 성수와 관련하여 더 고찰해야 할 사항들은 제 4 계명의 “안식”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청교도들은 그것을 영적이고 정신적으로만 아니라 육체적 차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칼빈은 안식의 문자적 의미는 폐기되었고 영적 의미만 남았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 관한 한 현대의 개혁주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제 4 계명에 나오는 “이레에 하루”라는 원리와 이레 중 첫날이라는 요소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적 요소인가 아니면 실체적 요소인가? 

        마지막으로, 주일을 어떻게 성수해야 하는가? 주일에 운동이나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식으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가한가? 특히 그것이 그리스도인들끼리 교제를 증진시키는 목적이라면 허용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오직 종교적 활동이나 공적 사적 예배에만 집중해야 하는가? 먼저 교회사에서 이 문제들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시대 별로 살펴 보기로 하자.


        

A. 초대와 중세


주일에 대한 신비화의 시작

        초대 교인들이 한 주의 첫 날에 예배드리게 된 것은 그 날 위대한 구원의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즉 예수께서 그 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셔서 제자들과 교제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성령이 오순절에 강림하셨다는 사실이 그것들이다. 저스틴 마터는 부활, 성령 강림 뿐 아니라 천지 창조도 한 주의 첫 날에 시작되었다고 지적함으로써 주일의 “삼관왕”적 영광을 주장했다. 오리겐도 만나가 엿새동안 내리다가 안식일에는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처음 나타난 것이 주일이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미 구약에서 안식일은 주일보다 열등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2)

        로돌프(W. Rordorf)에 의하면, 안식일-일요일 신학의 기원은 콘스탄틴 대제(284?-337)가 일요일에 공적 휴식의 날의 지위를 부여한 데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일요일에 사람들이 직업상의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3)


중세의 견해

        중세는 안식일을 율법주의적이고 미신적으로 지킨 시대였다. 빌헬름 토마스는 중세의 신학자들이 제 4 계명에 호소하여 복음을 율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4) "구원의 선물과 보증을 교회가 통제하는 율법적 제도로 바꾼 결과는 “안식일주의의 율법주의”였다는 것이다. 폴 주잇에 의하면, 유대적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유비를 위한 초석을 놓은 사람은 어거스틴이었는데 그러한 관점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해 왔다. 교리문답을 통한 교육의 목적으로 어거스틴이 십계명을 사랑의 이중 명령의 강해로 사용한 430년 경부터 제 4 계명은 그리스도인들의 윤리 의식의 일부로 영원히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5)

        중세가 진행됨에 따라 미신과 율법주의의 누룩은 주일의 신학을 더욱 더 깊이 잠식해 들어갔다. 제 8세기부터 10세기 사이 교회는 주일에 17가지의 축복이 임했다고 가르쳤다. 빛과 천사들의 창조, 홍해의 통과, 만나를 주심, 예수의 잉태, 출생과 세례, 가나의 혼인 잔치, 오천 명을 먹이심, 예루살렘 입성, 사도들의 임직, 밧모섬에서 요한이 계시를 받음, 심판주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역사의 마지막에 세상의 최종적 갱신 등이 그것들이다.6) 중세에 있어 이 전설적 일요일의 절정은 소위 “하늘로부터 온 편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된 편지의 내용은, 그가 “이전에 주신 명령대로” 주일에는 사람들이 모든 일을 금함으로써 그 날을 거룩하게 하라는 권면이었다. 사람들은 그 편지가 지상, 즉 예루살렘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역사가들이 주후 788년에 일어났다고 기록하는 이 사건은 당시 골(Gaul)과 스페인 지방에 유포되어 있던 주일 이해를 반영한다.7)

        중세에 있었던 주일에 관한 전설적 미신적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바울의 묵시록”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400년 이전에 작성되어 중세에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 문서에 의하면 지옥에 있는 자들에 대한 형 집행이 주일에는 정지되었다. 또 9세기 아일랜드에는 주일에 가룟 유다가 천국을 방문하도록 형 집행 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 어떤 전설에 의하면 주일에 이상한 새들이 나타났는데 그것들은 지옥에서 일시 풀려난 영혼들의 형상이라고 믿어졌다.8)

        이러한 경건한 미신들은 쉽게 이교의 신화적 흐름과 결합되어 538년 오를레앙 대회에서 주일 신학으로 편입되었다. [프랑크족의 역사]에서 그레고리는 자주 “주의 날”(Dies Dominicus)을 언급하면서 주일을 범한 자들에게 임한 열 두 가지의 무서운 형벌적 기적을 소개했다. 그런데 그 기적들은 게르만 민담에서 발견되는 형벌적 기적들과 아주 흡사했다.9) 9-10세기 사이 아일랜드에서는 안식일이 토요일 저녁 기도로부터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 기도 시간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에는 글을 쓰거나, 여행을 시작하거나, 물건을 팔거나, 계약을 맺거나, 소송하거나, 재판하거나, 머리털이나 수염을 짜르거나, 씻거나 목욕하거나, 목적없이 뛰거나, 옥수수를 갈거나, 빵을 굽거나, 나무를 짜르거나, 집청소를 하거나, 소나 말이나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거나, 노예의 일을 하거나, 적절한 사유없이 자기가 사는 지역의 경계를 벗어나거나 할 수 없었다.10)

        세르빌의 이시도레(570-636)는 육체 노동의 중지라는 측면에서 안식일과 주일 사이의 병행을 강조했고 789년 샬마뉴 대제는 칙령을 통해 일요일에 모든 노동을 금지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를 규명하여 이레에 한번씩 주일을 지키는 이유에 대한 답변을 주려는 시도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어거스틴이 강조했던 주일의 영적 의미를 상실하는 결과를 낳았다. 주후 700년에서 750년 사이 [클레멘트의 재판](The Judgment of Clement)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부주의로 주일에 일을 했다면, 그것이 목욕이든 면도든 아니면 머리를 감는 것이든, 그는 7일간 참회를 해야 한다. 만일 그 짓을 다시 했다면 40일간 참회해야 하며, 만일 그가 그 날을 멸시해서 그 짓을 하고 개과천선하지 않는다면 그는 유다처럼 카톨릭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11)

        주일 성수에 관한 한 14세기에 살았던 아빌라의 주교 토스타투스의 지침은 중세의 규정들을 특징지웠던 그 자의적이고 자질구레한 태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거룩한 날들에 어떤 특별한 사당이나 성자에게로 여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 날 집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범죄이다.”12)


토마스 아퀴나스의 견해

        796년 아킬레자의 바울 (Paulinus of Aquileja)에 의해 소집된 대회는 안식일 명령은 육체적 노동의 중지라는 문자적 의미와, 범죄의 중지라는 영적 의미 양자를 모두 포함한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신학적으로 알프릭(Aelfric, 955-1020)의 다음과 같은 입장이 중세를 풍미하게 되었다. “노예적인 일을 멀리하라. 즉 참으로 죄를 삼가라. 그것은 그것을 행하고 범하는 자들을 자주 노예 상태로 인도한다...‘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영적으로 지킴으로써 우리 자신이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그 날이 우리 안에서 거룩해진다....” 이 가르침은 먼저 피터 롬바르드의 표현 속에서, 최종적으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정경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13)

        중세의 안식일 신학은 다른 많은 것들처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그 성숙하고 완성된 형태를 드러내게 된다.14) 아퀴나스는 자연법인 십계명의 보편적 특성을 볼 때 제 4 계명도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4 계명이 부분적으로는 의식법이요 부분적으로는 도덕법이라 보았다. 그것의 도덕적 측면은 “우리 생의 어떤 부분을 종교적인 일들을 행하는 데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일요일은 무엇보다도 공중 예배를 드리는 데 할애되어야 하는 날이었다. 그것의 의식법적 측면들은 첫째, 이 목적을 위해 제 7일이 지정된 것은 하나님이 창조를 그치고 쉬신 것의 암시라는 것, 둘째, 이 날뿐 아니라 한 주간 내내 우리는 모든 죄악된 행위를 멀리하여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어야 한다는 것, 셋째,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을 뵙게 될 때 발견하게 될 영원한 안식의 그림자라는 것이었다.

        아퀴나스에 의하면, 일요일은 공예배의 날이므로 “노예적 노동”(opera servilia)은 금지되어야 했다. 그는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전환된 것은 사도 시대 교회의 결정이라 보았다. 어떤 학자들은 주일-안식일 문제에 관한 한 아퀴나스 이후에 추가된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후대 수 세기에 걸친 신학자들의 이론은 토마스 견해의 변주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5) 아퀴나스는 매 칠일에 가지는 부활의 신적 축제 교리를 전파했다. 이레에 하루는 하나님께 속한다는 원리 위에서 그는 고정된 시간을 하나님의 예배에 바치는 것이 자연법의 명령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배의 시간과 빈도는 성문법인 제 4 계명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루터의 견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안식일주의에 대한 반발ㄹ로서 주일 신학을 수립했다. 루터는 1520년에 쓴 [선행에 관한 논문]에서 십계명을 강해하면서 제 4 계명의 첫 번째 관심은 예배이지만 그 계명은 예배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 계명의 기초는 하나님이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쉬신 것이다. “그래서...우리는 엿새동안 하던 일을 쉰다. 이 안식일은 이제 일요일로 바뀌었다. 일요일은 안식일 (rest-day) 혹은 휴일(holiday), 혹은 거룩한 날(holy day)로 불리운다.”16) 이 부분만 놓고 보면 루터는 안식일을 창조의 규례로 여겨 주일과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인상을 준다. 이어서 루터는 일을 쉬는 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제 4 계명도 두 가지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안식의 이중적 의미를 포괄한다. 육체적 안식이 필요한 것은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함이다. 이 육체적 안식은 “옛날의 것으로서 표상(figure)”이다. "그러나”하고 루터는 어조를 바꾸면서 영적 안식의 측면이 보다 중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제 진리가 성취되었기 때문에 모든 날이 거룩한 날들이며,..., 모든 날들이 일하는 날들”이라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안식의 의미를 최소화한다.


                영적인 안식은 하나님이 특별히 이 계명에서 의도하신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우리가 단지 우리의 노동과 사업을

                쉴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하나님만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

                함으로써 어떤 것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17)


이어서 루터는 많은 성구들의 인용을 통해, 영적인 안식은 자아에 대해 죽고 육신을 죽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루터의 안식일관은 이어서 살펴 보게 될 칼빈의 그것보다 더 과격하다. 그에 의하면, 일요일은 실제적 필요성을 가진 것으로서 교회가 정한 것이다. 이 점에서는 안식일이 주일로 전환되었다는 앞의 주장과 상충된다. 그것은 “불완전한 평신도들과 노동 계급”을 위한 배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일요일 제도의 일차적 목적은 노동 계급에게 기독교의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기회 제공이라는 교육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제들과 성직자들은 매일같이 미사를 드리고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안식일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현재로서 안식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목적 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며 명령된 바도 아니다.”18) 육체적 안식 그 자체가 주일의 목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529년에 쓴 [대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문자적 의미는 단지 구약의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함으로 그 외적 명령은 의식법에 속한 것임을 주장한다. “외적 준수라는 점에서 그 [제 4] 계명은 오직 유대인들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그것의 문자적 의미에서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다른 규례들처럼 전적으로 외적 문제이다. 그것들은 특정한 문화, 사람들, 시대, 장소들에 국한된 것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다.”19) 나아가 루터는 거의 10년 전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즉 주일 제도는 “지성적이고 학식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필요하나 약하고 무지한 자들, 즉 노동 계급을 위한 것이다. 그들은 정기적인 육체적 휴식과 레크레이션의 시간이 필요하며 주일 외에는 예배를 위해 모일 시간과 기회가 없다. 주일이 노동 계급에게 휴식과 예배의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 사상은 칼빈에게 그대로 재현된다.

        대요리문답과 같은 해에 씌인 소요리문답에서 루터는 제 4 계명의 의미를 오직 말씀 교육이라는 차원에서 발견한다. “제 4 계명의 의미가 무엇이뇨?” 하는 질문을 제기한 후 그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함으로 그의 말씀을 멸시하지 말고 그것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기꺼이 청종하고 배워야 한다.”20) 다소 엉뚱하게까지 보일 수 있지만 루터는 신약 시대 신자들에게 있어 제 4 계명이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단지 하나님 말씀을 거룩하게 여겨 그것을 듣고 배우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해석했다. 날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존중이 제 4 계명의 현대적 의미라는 것이었다.

        루터에게는 주일이 다른 날보다 특별히 더 거룩하다는 개념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매일이 거룩한 날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모든 날들을 거룩히 여겨 거룩한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것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우리 마음과 우리 입술에 간직하는 것이다.”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나은 것도 아니며 예배는 매일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그 일을 행할 시간을 유대인들처럼 특정한 날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최소한 이레에 하루”는 그 목적을 위해 할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여드레나 열흘 만에 하루를 예배에 할애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예배드리고 말씀 배우는 목적을 위해 불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이레에 하루”라는 것은 7이라는 숫자 그 자체에 신비한 영적 신학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계산에서 꼭 7일이 그 최소한의 시간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어쨌든 최소한 칠일에 하루는 예배를 위해 모여야 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배드리기 위해 자주 모일 형편에 있지 못한 “대중들”을 위해서였다. 주일의 본질적 목적은 아직 어린 자들과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므로 이 날들의 진정한 직분은 말씀의 사역의 직분이며 젊은이들과 가난한 무리들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위해 고대에 일요일이 지정되었는데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교회나 사람들이 정한 것이기는 하나 루터는 우리가 그 날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 이유는 종교적이기보다는 실제적인 것이었다. 안식일이 “통일적으로” 지켜져야 “불필요한 변화로 인한 무질서”가 야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21)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는 일요일 제도라는 것이 계시적 제도라기보다는 철저히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것이었다. "질서“를 위한 주일 개념은 후일 칼빈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또한 루터는 제 4 계명의 율법주의적인 적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일 성수는 우발적이고 불가피한 일을 금지할 정도로 편협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22)

        종합적으로 볼 때, 주일의 일차적 의미가 기독교 진리, 즉 하나님의 말씀의 교육이라는 주장은 루터와 칼빈에게서 공통적이나 그 교육의 대상이 칼빈에게서는 그리스도인 일반이나 루터에게 있어서는 보다 특정적으로 약자와 빈민들, 그리고 젊은이들이라는 점은 양자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외적으로 루터가 안식일을 창조 질서로 인정하는듯한 인상을 주는 구절들이 있다. 1535년에 씌인 창세기 2:3절 주석이 그것이다. 거기서 루터는 하나님이 제 7일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본문을 설명하면서 “그러므로 세상 시작 때부터 안식일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위해 의도되었다”고 말한다.23) 다음의 발언은 분명 안식일에 대한 루터의 일반적 관점과 상충된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이 명령이 유효한 것으로 남기를 원하셨다. 이레째마다 그는 사람들이 그의 말씀 등 그가 세우신 예배 방식들로 분주하기를 원하셨다....이것이 안식일, 혹은 하나님의 안식이 의미하는 바이다. 즉 그 날에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우리는 기도와 믿음으로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