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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식지 않는 인기의 '다빈치 코드', 진실과 허구는?

baromi 2005. 6. 22. 10:01

식지 않는 인기의 '다빈치 코드', 진실과 허구는?

우태영 조선일보 출판국 기획위원 tywoo@chosun.com
입력 : 2005.06.19 14:06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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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미국의 소설가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는 2003년 4월에 출간됐다. 이후 이 소설은 50주 이상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에서 베스트셀러 수위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이 책이 번역돼 세계적으로 얼마나 팔렸는지는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록적인 판매를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빈치 코드’가 국제적으로 수퍼베스트셀러가 되자 처음에는 “영화를 방불케 하는 출판사 측의 대형 마케팅이 성공을 거둔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한 화려한 광고와 독자들의 참가를 촉진한 퀴즈대회 등 각종 이벤트 광고가 성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다빈치 코드’는 ‘출판계의 블록버스터’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면서 발간된 지 2년이 지난 요즘에도 이 책은 국제적인 베스트셀러로서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실제로 ‘다빈치 코드’의 해설서라고 할 수 있는 책만도 10여종 이상 출판됐다.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의 현장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걸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등에는 올 여름에도 책의 내용과 현장을 대조해보려는 관광객들로 넘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인들도 대학생이나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유럽을 여행할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빈치 코드’를 떠올리며 현지답사를 계획한다.

 

대중소설 ‘다빈치 코드’가 이처럼 장기간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통 기독교에 대한 통념을 뒤흔드는 내용을 그럴 듯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는 물론 강력한 경고가 나오기도 했다.

 

이 책에서 영국인 티빙은 정통 기독교를 부인한다. 티빙은 여주인공인 소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아버지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말해주던 내용은 모두 거짓이다. 성배(聖杯)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이어 저자 댄 브라운은 티빙과 로버트 랭든의 입을 통해 이른바 바티칸에 의해 은폐되고 숨겨졌던 진실을 제시한다. 소설은 추리물답게 암호해독이나 음모론을 적절히 배합한다. 그리고 얼핏 풍부한 사료를 제시해 작가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그 내용들이 근거가 있는 것도 있지만 황당한 것도 있다. 때문에 기독교와 서유럽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을 위험성도 있다.

 

막달라 마리아

이 소설의 배경을 이루는 이야기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주장으로부터 전개된다. 그리고 그 근거로 크게 두 가지를 든다.

첫째, 신약성경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기록에 ‘그리스도가 다른 제자보다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해 종종 입술에 키스를 해 다른 제자들이 이에 항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이 기록들에는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가 ‘동반자(companion)’라고 기록돼 있는데 이는 당시 부부관계를 뜻했다는 것이다.

둘째, 예수는 유대인이었다. 당시 유대인은 성년이 되면 반드시 결혼해야만 했다. 독신은 사회적으로 지탄받았다. 아버지는 당연히 아들에게 적절한 신부를 찾아주어야 했다. 만약에 예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성경의 복음서들 가운데 어딘가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약에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기록이 몇 군데 나온다. 그 중 주요한 것은 다음 두 대목이다.

 

1)(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직후) ‘멀리서 바라보던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마가복음 15장 40~41절)

2)‘안식 후 첫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쪽에 하나는 발쪽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한복음 20장 1~18절)

 

이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두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세상에 전한 인물이다.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이다. 이러한 분명한 기록에 외경(外經)에 나타난 각종 서술들이 더해져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제자 중의 하나, 나아가서는 예수의 후계자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독립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일반인은 창녀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도 주인공인 소피아는 “막달라 마리아를 아느냐”는 티빙의 질문에 “창녀 말입니까?”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라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막달라 마리아와 돌팔매로 죽을 위험에 처했다가 예수가 구해준 창녀를 동일인물로 혼동하게 된 기원은 1500여년 전 그레고리 교황이 처음이다. 교황 정도의 인물이 이러한 착각을 했다는 데 대해 후세 사람은 어떤 의도가 들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에서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결혼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교황청의 비난을 받을 만한, 진실을 가장한 허구가 속출한다. 어차피 소설이므로 이러한 허구를 문책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니케아 종교회의

소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원래 태양을 숭배하는 인물이었다. 마지막 죽음에 직면해서야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당시 로마의 공식 종교는 태양숭배였다. 그런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난 뒤 300여년이 지나자 로마에서는 기독교신자가 급증했다. 기독교도들과 태양을 숭배하는 이교도들 사이에 갈등이 심화돼 로마 제국은 양분될 위기에 처해졌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서기 325년에 로마를 기독교라는 단일 종교로 통합시키기로 결정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적인 전통을 강화시키기 위해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aea)를 소집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제국의 내적 통합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는 정설이다. 그러나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교회의 권력 강화를 위해 예수의 신성성을 조작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격하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5년 소집한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비로소 예수가 신성(神聖)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교회가 권력을 얻기 위해 예수에게 신성성을 부여하고 이를 위해 예수가 인간이며 결혼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니케아 회의 이전까지는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단지 위대하고 강력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추앙됐다.” “예수는 니케아 회의에서 투표에 의해 ‘하느님의 아들’로 결정됐다.” “예수의 신성성은 로마제국의 통합과 바티칸 권력의 근거를 이루는 결정적인 사항이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공식 인정함으로써, 예수를 인간세상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신성한 존재인 동시에 도전할 수 없는 권력으로 만들었다. … 이로 인해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확립된 신성한 채널을 통해서만 그리스도 신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성경도 막달라 마리아의 지위를 각하시키는 방향으로 마음대로 편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선 성경은 니케아 회의가 열리기 이전에 이미 수백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체계를 잡아왔다. 물론 이 회의가 개최될 즈음에는 여러 종파에서 수백 가지의 기록을 복음서라고 주장했다. 니케아 회의는 저자가 분명하고 의견이 일치되는 것을 중심으로 성경을 구성했다. 이들 대부분이 예수의 신성을 공통적으로 증거하는 것들이다. 이는 니케아 회의 이전에도 예수는 이미 신자들 사이에서 신성성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때문에 순교자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다빈치 코드’의 내용은 오히려 니케아 회의에서 부정된 아리우스파의 주장과 일치한다.

 

템플기사단

소설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막달라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아리마대 요셉의 도움으로 프랑스(당시 지명은 골·Gaul)로 비밀리에 탈출했다. 이곳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유대인 공동체에 자리를 잡았으며 딸을 낳고 ‘사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라의 후손이 5세기 경에 프랑스의 귀족가문과 결혼해 메로빙(Merovingian) 왕조를 건설했다. 메로빙 왕조의 한 후손이 나중에 ‘시온의 수도회’를 만들었다. 이들이 템플기사단에게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 밑에 숨겨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기록을 찾아내 메로빙 왕조와 예수와의 혈연관계를 입증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이 주장은 모두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꾸준히 내려오는 음모론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비밀결사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음모론은 서양에서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거나 세상이 불안해지면 반드시 등장한다. 특히 음모론의 주인공은 단연 유대인이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이 발생했을 때 이를 유대인 비밀 단체회원의 음모로 모는 문서들이 나돌았다. 가깝게는 9·11테러가 났을 때도 ‘미국의 이슬람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유대인의 음모’라는 설이 아랍세계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실제 ‘시온의 수도회’는 1956년에 프랑스 정부에 공식으로 등록된 단체다. 단체의 목적은 프랑스에 기사도와 군주정을 부활시키자는 것이었다. 영화감독 장 콕토가 회원이긴 하지만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것처럼 소설가 빅토르 위고는 물론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국의 뉴턴 등이 이 단체의 회원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템플기사단은 제1차 십자군 전쟁 이후인 1118년 십자군이 건설한 예루살렘과 성지를 찾는 유럽의 순례자들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구성됐다. 막달라 마리아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다빈치 코드’에서는 ‘교황이 템플기사단을 탄압했다’고 하지만 실제 템플기사단을 학대한 사람은 프랑스의 국왕이었다. 1307년 국왕 필립 4세는 템플기사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이들을 고문하고 동성애자 등으로 몰았다. 당시 130명의 템플기사단원이 화형당했다. 프랑스 군대가 템플기사단을 급습한 날이 13일의 금요일이었고 그로부터 서양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템플기사단에 얽힌 전설과 음모는 끝이 없다.

 

이 소설은 사실과 허구를 혼합한 이른바 팩션(faction)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성경의 내용을 모독하는 것이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반향을 일으키는 데 대해 미국의 기독교 평론가인 산드라 미젤은 “소설시장에서 여성이 주요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설에서 랭든 교수의 말대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고 막달라 마리아가 후계자가 될 뻔했었다”는 주장을 늘어놓음으로써 여성독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광주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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