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스크랩] 천국제자들아카데미III(1기):3강-하나님과 현대성

baromi 2016. 10. 15. 16:38

천국제자들아카데미III(1):2016101~1217

 

3: 하나님과 현대성

 

서론1: 기존 조직신학과 웰스교수의 문화조직신학의 구조와 순서비교

 

서론2: 포스트모던적 관점에서는 우주가 텅비어 있고 중심이 없다고들 한다. 우리가 이 중심도 없고 무질서해 보이는 세계를 줄곧 경험하게 될 때,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1. 성경적 답변

 

1)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것: 사실 중심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고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 앞에 절하고 그것에 비추어 우리 삶을 재정리하는 우리의 능력을 상실한 것임. 그리하여 우리는, 인생의 진정한 중심을 우리가 만든 것으로 대체했고, 우리의 이익을 하나님의 이익인 양, 우리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인 양, 우리의 잣대를 하나님의 잣대인 양, 우리의 의미를 하나님의 의미인 양, 우리의 사적인 진리를 하나님의 절대진리인 양 여기고 있는 것.

 

2) : 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라도, 하나님을 전제하는 죄의 개념은 부인하고, 대신 악이란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사유화된 악(본질적으로 나빠서 그것을 악이라고 보지 않고 나에게 나쁜 것으로 느껴지고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악)의 개념이 대세가 되어버림. 성경의 관점은 악의 뿌리는 바로 죄라고 여기면서 죄를 더욱 근원적으로 봄.

 

3) : 현대인들은 죄를 하챦은 것으로 여기고 오히려 악을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음. 성경적으로 죄는, 선의 부재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능동적인 반항을 포함함.

 

4) 죄의 중심: 자만심(그 본질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을 자기 속에서 찾는 것-‘자율적 자아의 핵심/자아운동: 우리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자기를 높이 평가하도록 부추김-자아가 현실의 중심에 굳게 자리잡으면, 자신의 판단이 아무리 엉성해도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게 됨. 파치 하나님의 것인 양 절대시함/해체하는 경향이 있음 인생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을 해체시켜서 그 의미를 빼앗아 버림)

 

* 중심이 실종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우리 중심적(자아 중심적)으로 재정의하고 재편성시켰을 뿐임.

 

2. 문화적 답변

 

* 중심이 실종되었다는 곡해로, 중심이 없는 바람에 우리는 인생을 마음대로 정의할 자유를 얻었고 우리는 우리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하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책임을 지고 있는가?

 

1) 공허함: 무의미함과 함께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

 

2) 그 뿌리- 몰려오는 폭풍: 진화론과 현대화의 결과 사회적 재편이 일어나면서, 하나님의 섭리의 개념, 하나님이 인생을 주관한다는 생각, 개인보다 더 큰 의미가 존재한다는 관념 등이 사회의 복잡화와 다변화 등으로 야기되는 고통과 재난의 문제와 더불어 와해되어짐/미국의 경우는 특별히 남북전쟁 등으로, 불행한 인간비극의 현실에 주목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섭리개념보다는 행운의 개념을 선호하게 됨. 이런 생각을 계기로 19세기에 출범한 보험회사가 번창(보험을 든다는 것은, 지혜롭고 신중한 대책이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무시할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것은 단순한 인간적 대책에 이르게 됨)

 

3) 포트스모더니스트들의 등장: 1960년대에 계몽주의(모더니즘)에 등을 돌리고 자기에게로 향한 혁명적 방향전환이 시도됨(고정되고 보편적인 의미에는 등을 돌리고 사적이고 주관적인 의미를 선호함- 인생의 의미를 자아와 그 직관으로부터 끌어내고 우리의 위치를 확인해주었던 초월적 지점이 내면으로 옮기게 됨. 자아는 이제 초월적 규범의 역할을 맡게 됨-버거울 수 밖에 없다!-현대적 불안증의 근본 원인)

 

4)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외부의 기준과 지침도 없이, 단지 우리의 느낌에 의존하여 더듬거릴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 느낌(감정)이란 것이 결국 자기욕망과 합리화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서 믿을 수 없는 존재임. 결국 절망과 허무의 종착점에 이른 듯 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한 태도는 다양함: 유럽과 비교해서 미국적 반응은, 그 허무를 직시하기 보다는 외면하고 다른 여흥거리들로 채워서 무시하려고 함. 소비주의와 더불어 비신성(세솎적)동맹을 맺음. 교회마케팅주의자들이 이런 의식을 이용하고 있음.

 

5) 하나님이 죽고 우리도 죽고: 외부의 중심과 기준이 소멸된다고 여겼을 때, 그 중심과 기준을 떠맡은 자아도 스스로 공허하고 허약하여서 와해되어짐. 우리가 궁극적으로 책임져야 할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우리의 정체성, 목적감 등도 상실될 수 밖에 없다.

 

6) 자아의 재발명: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사람으로 자기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성품의 문제를 강조하는 것이 포스트모던상황에서는 멸종위기의 도덕적 원천이 되어 버렸음. 그래서, 유연한 자아(자율적 자아의 한 형태로서, 언제나 진실하지 않은 자아가 됨)를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을 조작할 수 있고, 새로운 이미지를 투영할 수 있고 또한 상황에 따라 다른 배역을 담당하고 새로운 모습들을 표출할 수 있게 됨. 삶의 가벼움을 즐기면서, 우주 안에서 책임감을 갖는 무거움을 혐오함.

 

3. 복음을 믿게 된 뒤에 과연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가?

 

1) 하나님과 현대성: 하나님을 중심삼는다는 것이 포스트모던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될 수 있는가?

 

(1) 중심을 다시 잡은 삶: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을 떠났던 죄인이 하나님을 중심삼는 삶으로 회귀하는 것. 그리스도중심적이고 하나님 중심적 삶이야말로 성경의 핵심사상

 

(2) 사적인 영역에 두라: 세속화된 현대사회의 요구하는 바는, 하나님이나 신성한 것을 믿는 믿음을 모두 사적인 영역에 가두고 공적인 광장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라는 것. 모든 믿음을 버리라고 하지 않으면서도, 참된 기독교의 믿음을 무력화시키게 됨/현대화가 되었다는 것은 사적인 세계와 공적인 세계가 분리되었다는 것: 서로 다른 도덕적 표준에 의하여 유지되기 때문에, 무언가 일관된 중심이 있는 것처럼 기능하기가 참으로 힘든 세계가 현대사회. 이런 사회 속에서 양서류처럼 살아야 하는 크리스챤들에게,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의 내재성을 잇는 이음매가 느슨해질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내재성이 초월성을 무시할 정도에 이르게 되어, 현대 크리스챤(포트스모던사회의 크리스챤)들의 하나님은, 내면화된 하나님, 자아를 통해서 접근하는 하나님, 우리의 직관을 통해서 음성을 듣게 되는 그런 하나님이 됨.

 

2) 안에 계신 하나님

 

(1) 가까이 계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고 창조세계와 그것을 보존하는 손길을 통해 우리와 관계를 맺으실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다스리시고 자신의 뜻에 따라 그것을 끝까지 인도하시고, 모든 사람에게 인생의 책임을 묻는 분이시라는 뜻. 그런데, 이 진리가 현대적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변화되는가?

 

(2) 하나님의 친근성에 대한 오해: 우리가 몸담은 현대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실재가 내면에 재배치되었다고, 무엇이든 중요한 것에 이르는 길은 자아를 통하는 수밖에 없다고, 다른 소비자상품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성도 우리의 필요, 시간, 여건에 맞는 맞춤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 이 포스트모더니즘은 심히 주관적이고 도덕과 무관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고도로 개인주의적이고, 완전히 상대주의적이고, 시종일관 치료중심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나님의 친근성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왜곡하고 오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타자성에 대한 진리를 무시하기까지 하여,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음.

 

4. 성경적 대안

 

1) 밖에 계신 하나님

 

(1) 위에 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과 초월성과 위대함을 강조함

 

(2) 거룩하신 하나님: 구약에는 침묵하심으로 그 초월성이 강조되었지만 신약에서는 말씀하심으로 영원토록 함께 하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회와 타락한 세상을 다루시는 방식을 일일이 설명해주시지 않음 -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난,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29:29).

 

2) 하나님이 밖에 계시기 때문에 생긴 결과는

 

(1) (도덕적) 율법이 있다!: 이것이 없으면 사회는 혼란과 무질서로 지옥 자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옳고 그름의 차이를 유지하고 계신다. 우리가 이 차이를 알고 도움을 받아 옳은 것을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세상에 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 의미를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선악을 분별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회심.

 

(2) 죄가 있다!:죄의 죄됨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죄는 단지 외적인 규칙을 어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어긋나는 것을 모욕하는 모든 심사언행을 포함함.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런 죄의 본성을 깨닫게 될 때, 참된 현실 앞에 우리가 서게 된다. 위에 계신 하나님을 인정할 때 이런 죄의 본성을 깨닫게 된다.

 

(3)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가 만일 죄의 위반행위를 도무지 관용할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의 요구와 함께 시작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없으면 십자가도 없다. 십자가가 없으면 복음도 없고, 복음이 없으면 기독교도 없고, 기독교가 없으면 교회도 없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 사랑이 절묘하게 만나는 곳.

 

(4) 심판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없으면, 하나님은 그저 친절하고 우호적이고 접근하기 쉽고 무해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고, 그런 호감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있는 악의 문제를 다룰 능력이 없는 존재가 된다. 심판의 교리는 세상의 희망이다. 결코 당혹감을 느껴야 할 것이 아니다.

 

(5) 의무(사명)가 있다!: 하나님의 거룩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감정의 안전이나 성공보다도 하나님의 그 성품에 일치된 삶을 추구하게 되는 것 그 자체가 우리의 사명과 의무가 된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마케팅교회나, 이머전트교회를 추구하는 것보다, 밖에 계시고 또한 위에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교회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무와 사명이 있는가? 이런 하나님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가? 우리 교회의 에배와 섬김의 대상인가?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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