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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으로 인한 참된 회개

baromi 2016. 7. 4. 08:42

'회개의 상태'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히 복음적 회개에 속하는 은혜와1) 의무만 의미하지는 알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적 회개는 참된 믿음과 절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참된 믿음만큼이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탁월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일지라도 죄를 참되고 진실하게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결코 참된 신자일 수 없습니다......참된 회개는 결코 두 가지 종류로 나뉠 수 없습니다.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의 상태는 전혀 다른 두 가지 상태로 나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회개의 상태' 라고 부르는 것은 복음적 회개이긴 복음적 회개인데, 그 기질이나 그 근원에 있어서, 또 그 모든 열매와 그 결과에 있어서 탁월한 수준에 올라 있는 복음적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의 상태는 부패한 본성과 여러 가지 시험의 강력하고도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고 큰 죄를 범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참된 신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부패한 본성과 여러 가지 강력한 시험을 인해서 여러 가지 큰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여러 가지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죄들입니다.


도덕적 부정을 저지르는 죄
술 칠하는 죄
탐식하는 죄
도적질하는 죄
의도적으로 거짓말하는 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다른 사람을 압제하는 죄
박해의 시기에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는 죄 등등.


초대 교회는 이 마지막 죄의 경우회개의 상태에서 믿음이 자기 자신을 행사하지 않는 한 결단코 회복될 수 없는 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죄들은 크나큰 슬픔을 유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경우가 그랬고, 근친상간의 죄를 범했던 고린도교회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자신들이범한 죄로 인해 얼마나 슬퍼했는지 과도한 슬픔에 빠질 위험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던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저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저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2:7).


만일 참된 신자 중에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죄에 빠지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 있는 참된 믿음은 철저한 겸비함과 회개를 통하여 그 사람의 회복을 위해 즉각적으로 역사하기 마련입니다. 베드로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죄에 대한 충분한 자각이 없어서 죄의 권세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고 더 오래 그 아래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에는 그 사람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대부분 믿음은 하나님의 진노로 꺾여진 자신의 배가 다시 맞추어지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자기 자신의 양심에 화평을 주는 회복만으로도 만족하지 않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은 그들이 범한 죄의 본질, 그 죄를 범할 당시의 여러 가지 정황, 그 죄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 그죄 안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을 향한 부끄러운 무정함, 성령을 근심시킨 일, 그 죄로 인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실추된 것 등등을 올바르고 합당하게 기억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은 영흔으로 하여금 겸손히 통회하는 심령으로 자신의 죄를 슬퍼하면서 행하며 평생동안 회개를 전반적으로 실행하도록 만듭니다.


2) 역자주 - 구약성경을 보면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취하는 외적 태도의 한가지로, 슬퍼하는 심령으로 걸음걸이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령 ,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한지라" (왕상 21:27),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 (말 3:14)에 그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믿음이 이런 식으로 행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큰 죄로부터 회복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정말로 참된 신자인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그 회복을 의심해 보아야 마땅합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큰 죄로부터 고침을 받은 것처럼 행세하다가 다시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타락에 빠져 이전 생활로 되돌아가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믿음의 이 같은 행함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부패한 본성과 온갖 시헙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함락되어 실제로 큰 죄를 범하게 되었는데. 겸손과 회개를 통해서 겉으로 보기에도 멀쩡하게 다시 회복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런데 만일 이 사람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회개의 상태라는 멍에를 벗어서 내던져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제는 이전보다 더욱 심각해집니다. 회개의 상태를 벗어서 내던져버린 이 사람은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죄에 빠지게 될 것이 분명하고 어쩌면 이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떨어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죄를 슬퍼하며 행보를 천천히 하는 사람만이 안전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입니다.


회개의 상태는 과실을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구원 얻는 믿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과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실추되고 다른 사람들이 실족케 된 것 때문에 회개의 상태를 매우 충실하게 유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윗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와 같은 과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여러 죄 중에서도 하나님을 특별하게 격분시키는 죄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삼하 12:14)


"그들의 이른 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겔 36:20)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롬 2:24).


이런 사실로 인해서 참된 신자는 꾼임 없이 자신의 죄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고 자신의 죄를 항상 자신의 눈앞에 놓고 보게 됩니다. 또한 이런 사실은 은혜를 받은 영혼으로 하여금 회개에 속하는 모든 행동과 모든 의무를 이행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다윗은 평생 정말로 그랬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과실을 범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있는 믿음은 겸손하고 통회하는 심정을 그 사람 안에 지속시켜 주며, 교만과 마음의 높아짐과 부주의와 태만을 끊임없이 경계하도록 만들어 주기 마련입니다. 또한 믿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크게 낮춘 가운데 죄에 대한 분한 마음과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마음과 함께 경건한 슬픔과 부끄러움을 다시 갖도록 만들어 주기 마련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제가 말하는 회개의 상태에 포함되는 것들입니다.


자신들의 과실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실추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마음 속에 그리스도인다운 정직함이 거의 없는 사람들입니다.


회개의 상태는 여러 가지 혼란케 하는 정욕과 부패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욕과 부패함이 자신들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더럽히지 못하도록 그것들을 제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회개의 상태가 꼭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와 같은 정욕과 부패함은 모든 시험과 결탁하여 자주 우리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상처를 입히며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당한 영혼은 괴로움을 겪게 되고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름 7:24).


영혼이 이런 상태에 있을 때, 믿음은 영혼이 감쪽같이 속이는 죄의 기만성과, 강력하게 쳐들어오는 죄의 난폭함을 막을 수 있도록 영혼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고 신중히 처신하도록 만들며 부지런히 움직이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믿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믿음은 이정도만 해놓고 그것으로 안주해 버리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믿음은 한걸음 더 나아가 영혼의 궁핍하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을 마음 안에 심어주어 마음으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경건한 슬픔을 충만히 가지게 하며,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게 하고 회개에 속한 모든 의무를 꾸준히 감당하도록 만듭니다.


회개를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치고, 아니, 뒤에 가서 말할 내용이지만 회개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치고, 정욕이나 부패함을 대상으로 벌이는 싸움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그런 사람치고 올바른 근거 위에서 자기 자신의 평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도무지 길들여지지 않는 부패한 본성이 여러 가지 상상과 생각과 정서를 통하여 자신의 마음 안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상태 그대로 모든 의무를 이행하려고 생각하며 그 상태 그대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들이 그런식으로 생각하면서 승리나 평강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야말로 회개의 상태를 반드시 소유해야 하고 회개의 의무를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필요가 가장 각별하게 있는 사람들입니다.

- 존 오웬(참됨 믿음의 특징과 능력)


출처 : 예수안에 하나교회
글쓴이 : 다니엘(정성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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