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자료

[스크랩] 양무리 마을 카페의 라마드님께 정식으로 근거 있는 토론을 제안합니다.

baromi 2012. 7. 10. 21:54




전부터 라마드님은 후크마의 구원론을 근거로 하여 피터마스터스의 연속적중생관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라마드님이 피터마스터스의 연속적 중생관을 비판하는 근거가 없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정식으로 라마드님께 연속적 중생관에 대한 근거 있는 논쟁을 제안합니다. 


1.

이미 밑의 게시물에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의 한글 번역본에 나와 있는 글들 특히 중생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후크마의 중생의 결정적인 부분인 중생의 결론(중생과 목사)의 설명이 피터마스터스가 언급한 연속적 중생관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기본 뼈대를 갖고 있음을 확인 했습니다.


그런데 라마드님은 후크마의 연속적 중생 개념과 피터마스터스의 중생개념이 서로 틀리다고 말합니다. 물론 왜 틀린지 설명은 없습니다. 그냥 틀리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틀린지 근거를 제시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저도 라마드님이 갖고 있는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을 갖고 있고 오늘 이 문제로 인해서 열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크마 개혁주의 구원론의 중생의 결론 부분을 영문과 번역본을 같이 올렸고, 하단에 후크마의 연속적 중생의 개념인 "새로운 영적 생명은 하나님에 의해 즉각적으로 부여된다. 그러나 새로운 출생은 말씀을 통하여 차우적으로 일어난다."는 개념이, 피터마스터의 연속적 중생과 같은 개념이라는 근거이기에 먼저 올렸습니다. 


이제는 라마드님께서 후크마의 연속적 중생개념과 피터마스터스의 연속적 중생 개념이 어떻게 틀린지 그 근거를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2.

후크마는 좁은 의미의 중생 개념에서 루디아와 고넬료에 대한 해석을 했습니다. 당연히 연속적 중생관의 의미에서 루디아와 고넬료에 대한 해석과 일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루디아와 고넬료에 대한 해석이 좁은 의미의 중생관으로 해석하나, 연속적 중생과으로 해석하나 같은 해석이 나온다는 그 자체가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루디아와 고넬료의 회심에 대한 본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두 중생관 중에 하나로만 해석해야지만 하는 입장에서 라마드님은 순간적 중생관 입장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는 후크마의 해석이 옳다는 전제를 이미 내버리고(물론 후크마의 해석이 옳다는 근거 없이 여기까지 오셨습니다), 연속적 중생관으로 해석한 것이 틀렸으며 이는 피터마스터스의 연속적 중생관이 문제라는 쪽으로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후크마의 성경해석이 옳다면 후크마는 다른 성경해석자들과 같이 루디아와 고넬료가 회심하기 이전에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한 것에 대해서 적절한 해명의 해석을 꼭 첨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후크마는 이 부분을 해석하지 않고 "회심의 순간"의 구절만을 해석하고 넘어갑니다(참고: 후크마는 회심의 때에 중생과 회개와 믿음 이 3가지가 순간적으로 동시에 일어났다고 주장. 그러나 이 회심 이전 이들의 경외와 공경은 그럼 무엇인지 해석하지 않음) 즉 후크마의 이 본문에 대한 성경해석은 잘못된 성경해석임이 여기서 드러난 것입니다. 그가 정상적으로 본문을 해석했다면 당연히 의문이 드는 회심 전의 루디아와 고넬료가 하나님을 믿은(공경과 경외) 행위는 대체 무엇이라는 것입니까?(물론 이에 대한 답변 역시 라마드님은 제공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후크마의 이런 해석대로 하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오순절 이전에는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건과 공경은 그럼 어떻게 해석합니까? 후크마처럼 해석이 없는 것입니까?


그럼 다른 주석가들도 후크마처럼 해석했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이미 박윤선 박사와 멘튜헨리와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이 말한 그 구절의 경외와 공경에 대한 단어의 용례를 올렸습니다. 모두 후크마와 전혀 다른 해석입니다. 로이드존스 역시 성령세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오순절때의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에 이미 중생한 자들이라고 언급합니다. 오순절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회개와 믿음의 돌이킴이 없었겠습니까? 공관복음에는 이 점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유명한 성경해석자들은 고넬료와 루디아가 회심하기 전에 하나님을 믿었던 행위들을 전부 구원과 연관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러한 해석 자체가 후크마의 그 본문의 해석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라마드님이 후크마의 성경해석이 옳다면 "순간적 중생=효과있는 부르심" 이전에 고넬료와 루디아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한 것이 거짓된 것(즉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인과 같은 경외와 공경)이었다는 해석을 근거 자료로 올려주시면 후크마의 해석이 올바른 해석이 됩니다. 과연 외적 부르심 상태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경외하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이들의 공경과 경외를 받아주셨을까요?


라마드님의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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