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교회와 논쟁

[스크랩] Re:과정을 거쳐 완결된 삼일 하나님?-그 비평(3-성육신?)

baromi 2012. 2. 27. 17:42

In Incarnation

When fundamental Christians speak of the incarnation, the Word becoming flesh (John 1:14), they are typically–and accurately–referring to the human birth of the Son of God. Strictly speaking, however, the incarnation is not only that of the Son, but of the Word, who is God (John 1:1). The Son is certainly the subject of the incarnation, as He was begotten by the Father of the Holy Spirit (Matt. 1:18, 20), yet John 1:1 gives us ground to say that God–that is, the entire Triune God–was incarnated. While admittedly the Son was sent by the Father (John 7:29), the Son was nevertheless alsowith the Father, who never left the Son alone (John 8:29). The Son and the Father are one (John 10:30). The Son shares with the Father not merely a oneness in purpose, but also an intimate coinhering oneness, in which the Son was able to say, “Believe M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John 14:11). In Christ dwelt all the fullness of the Godhead bodily (Col. 2:9). Hence, the entire Triune God was included in the Son’s incarnation.

 

성육신 안에서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성육신, 즉, 말씀이 육신이 되심(요 1:14)에 대하여 말할 때, 대체로 그들은 엄밀하게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태어나심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성육신은 단지 아들만이 아니라 하나님인 말씀이 육신이 되심을 의미한다 (요 1:1).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성령으로 잉태된 (마 1:18, 20) 성육신의 주체임에 틀림이 없지만, 요한복음 1:1은 우리에게 하나님, 즉, 삼일 하나님 전체가 성육신 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 입지를 준다. 아들이 아버지에 의해서 보내심 받은 동안에도 (요 7:29) 아들은, 결코 그를 혼자 두지 아니하시는 (요 8:29)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10:30). 아들은 아버지와 목적에서 하나일 뿐만 아니라, 아들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요 14:11) 라고 말할 만큼 친밀한 상호내재적 관계를 가진 하나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격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 (골 2:9). 그러므로, 삼일 하나님 전체가 아들의 성육신에 포함되었다.

 

 

*     *      *       *    홀리죠이의 비평(3)

 

저와 같은 천학비재의 비평을 너무 높은 산으로 생각할 정도라면, 정통신학계의 기라성같은 수많은 고봉들을 결코 넘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평이 좀 쓰더라도, 한 "과정"쯤으로 여기시면 약이 될 듯도 싶습니다. ^^

 

 

* 번역에 대해서

 

 

1) fundamental Christians 을 "정통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번역합니다. 글쎄요?

 

 

*신학적 의문점에 대해서

 

1) 과연 요한복음1:1의 해석이 삼일하나님 전체가 성육신했다고 하는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입증해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이 왜 삼일 하나님 전체가 성육신했다는 전제가 되는지 말입니다. 아마도, 다른 저서들을 참고해야 하겠지만, 위 문장들의 맥락을 보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으니, 상호내재관계를 설정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래 댓글에 라마드님이 원어로 나름 분석해 놓은 것만 참고해도, 이 구절에서 삼일 하나님 전체가 성육신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구절은 말씀이신 성자가 성육신하신 것을 1장14절과 함께 강조해야 할 구절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합당합니다. 

 

2) 더욱 놀라운 위트니스 리의 해석은, 골로새서2:9의 "신격"에 대한 것입니다. 한글번역에는 그 어감이 분명치가 않지만, 영어로 보면,  In Christ dwelt all the fullness of the Godhead bodily (Col. 2:9). Hence, the entire Triune God was included in the Son’s incarnation.라고 해 놓았습니다. 신격의 모든 충만이 그리스도안에 육체로 거하셨다는 개념과 삼일하나님이 아들의 성육신에 포함되었다고 하는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개념들을 연결시키고 있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신격의 모든 충만이 거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단순히 신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신 자체, 완전한 하나님이 되신다는 선언입니다.  천사같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 신 자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성부나 성령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보다는 성자 스스로 존재하셨다는 개념이 연상됩니다. 성자는 영원자존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자는 삼위일체의 2위로서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상호내재하시는 분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골로새서2:9은 상호내재성보다는 자존성을 오히려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위트니스 리는 이 골2:9을 삼일성이 성육신했다는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셈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려면, "신격"이라는 개념과 "삼일성"이라는 개념이 무언가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신격"이란 단어에 원래 없던 새로운 개념을 잡아 넣어야 합니다. 위트니스 리가 "신격"과 "신성"의 차이를 그렇게도 강조하고, "신격"에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강조하는 이유를 조금 알듯도 싶습니다. "신격"이란 개념 자체야 물론 대단하지요. 하지만, 이 단어는 예수님이 하나님 자체라는 개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나님 자체로부터 방출되는 어떤 영광이나 특성이 아니라, 바로 그런 영광이나 특성을 방출하는 원천으로서 하나님 자체가 되신다는 것이 바로 "신격"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바울사도의 의도인 셈입니다.

 

이런 의도를 고려한다면, 위트니스 리가 이 단어와 삼일성을 연관시키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한 일입니다. 오히려 삼일성과는 대립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자존과 삼일성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지만, 그 단어 자체들만 본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위트니스 리의 신학은, 전혀 성경적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데도, 성경구절을 끌어대면서 억지로 맞추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드는 것입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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