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제자료

[스크랩] 가짜신앙, 진짜신앙 8/언약교회에서 펌

baromi 2011. 7. 4. 10:26

이상한 교회” ‘한심한’ 목사는 “하나마나 금식 기도원” 원장으로부터 강사로 초정을 받았다. 강사로 초청을 받은 이후, 그는 성경책을 뒤적뒤적 거리면서 설교 본문을 무엇으로 정할 것인지를 놓고 몇 일 동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한심한’ 목사는 다른 곳도 아닌 금식 기도원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니 만큼, 거기에 합당한 설교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모두에게 감동과 신유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본문을 택하여야 할텐데 하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였지만, 설교 본문을 쉽게 정하질 못했다. 그래서 자기와 가장 친한 친구 목사인 ‘나강도’ 목사에게 전화를 했다.

어이 ‘나강도’목사! 나야,
나 ‘한심한’ 목사인데, 내가 “하나마나 금식 기도원”으로부터 강사로 초청을 받았는데 말야, 설교 본문을 무얼로 정해야 할지 영... 생각이 나질 않아서 그런데, 뭐 좋은 설교 본문 없을까?라고 물었다.

그 때 ‘나강도’ 목사왈 “정말 한심한 친구이구먼 그려, 설교 본문을 정하기 어려울 때 쓰는 방법은, 하나님께 설교 본문을 달라고 기도를 해야지 기도도 하지 않고, 어찌 좋은 설교 본문을 정할 수 있겠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좋은 설교 본문을 주실 것을 믿고, 성경책을 열어보면 좋은 본문이 나타날 수 있을 꺼야! 나도 가끔 그런 방법을 쓰는데, 의외로 좋은 본문이 눈에 보이더라구! 자네도 한번 시도해봐!”

이 말을 들은 ‘한심한’ 목사는 참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나강도’목사의 말대로 한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설교 본문을 달라고 하는 특별 기도를 시작했다. “주여! 저에게 좋은 설교 본문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의 능력만 의지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심한’ 목사는 기도를 마치자 마자, 성경책 중간 부분을 확 열어 보았다, 그 때 눈에 금방 들어오는 본문이 나타났는데, 그 본문은 이사야서 58장6절로부터 9절 상반절 말씀이었다. 그런데 그 본문은 과거 ‘한심한’ 목사가 한 번쯤 설교를 한 적이 있는 본문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한심한 목사는 한 번 설교한 본문은 꼭 빨간 싸인펜으로 줄을 쳐놓는 버릇이 있는데, 그 본문에는 빨간 싸인펜으로 줄을 쳐 놓은 것을 보니, 틀림없어 보였다. 그 때 ‘한심한’ 목사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는 나의 과거에 한번 써먹은 본문까지도 생각나게 하는 구먼, 오! 주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심한, 목사는 과거에 한번 써먹은 설교 원고를 찾느라고 책상 서랍을 온통 다 뒤졌다. 그리고 한참 만에야 옛날에 써먹은 원고를 찾았다. 그 때 그의 얼굴에는 희한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초청한 날짜가 도래되어 “이상한교회” ‘한심한’ 목사는 “하나마나 기도원”을 찾았다. 그리고 집회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강대상 뒤에 있는 의자(옛날 왕들이나 앉아 있을 법한 화려한 의자)를 앞에 두고 무릅을 꿇고 앉아서 무언가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강대상 앞에 놓여있는 작은 강대상에서는 젊은 남자 전도사 한 분이 준비 찬송과 함께, 그 날 말씀을 외칠 ‘한심한’ 목사를 위해서, 그에게 「말씀에 능력을 달라고, 우리 다함께 기도합시다」라고 눈먼 신도들을 향하여,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찬양을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입추의 여지없이 꽉 들어찬 집회장에는 중간 중간 어여뿐 여전도사들이 헌금 봉투를 눈먼 신도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헌금을 넣은 봉투를 눈먼 신도들로부터 받아서 강대상 앞으로 나르는 일들을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그 날 “하나마나 금식 기도원”을 찾은 눈먼 신도들 중에는 오랫동안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 그리고 사업에 실패한 분들, 또한 결혼을 하지 못한 노총각 노처녀들도 있었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이,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간절한 심정으로 그 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또한 어떤 신도는 강대상 제일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것이 금싸라기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아주실 것이라는 인도자의 코멘트에 의해 많은 신도들은 강대상 앞을 서로 차지할려고 애쓰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였다.

드디어 그 날 집회를 인도할 ‘한심한’ 목사가 강대상 위에 모습을 들어내자, 모든 눈먼 신도들은 “할렐루야”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면서 그 날의 강사를 맞이했다. ‘한심한’ 목사 역시 눈먼 신도들을 향하여 “할렐루야”로 답하면서, 말하기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이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임하는 성령의 시간이 되어 질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소원과 질병에 대한 치유의 역사가, 여러분의 믿음대로 이루어질 줄 믿는 분들!, 모두 한번 일어 나 보시길 바랍니다.”라고 ‘한심한’ 목사가 눈먼 신도들을 향하여 외치자 영적으로 눈먼 신도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아멘” “아멘”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한심한’ 목사는 또 다시 외치기를 “여러분들의 간절한 믿음대로 여러분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

이 날도 역시 한심한 목사는 강대상위에 올라온 수많은 헌금 봉투를 들고서, 일일이 헌금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간단한 기원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헌금기도가 마친 후에도 혹시 헌금을 빠뜨린 분이 있으시면, 지금이라고 헌금 봉투를 가져오라고 독려하기 까지 했다.

마침내 “이상한 교회” ‘한심한’ 목사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성도 여러분! 제가 오늘 설교할 본문을 제가 봉독해 드리겠습니다. 설교 본문은 이사야서 58장 6절로부터 9절 상반절까지입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꺽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이사야 58:6-9상반절)"

‘한심한’목사는 드디어 설교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설교한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본문 6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준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금식을 하면서 여러분의 소원을 아뢰면, 지금까지 여러분을 억누르고 있는 흉악한 사단의 결박을 하나님께서는 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이 때 눈먼신도들은 “아멘”을 외친다.)

여러분들을 억압하고 있는 사단의 흉악한 결박은 무엇입니까? 바로 그 것은, 여러분들이 안고 있는 불치의 병, 사업의 실패, 각종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들일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단이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께서 어찌 우리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모든 일들은 사단의 역사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이 사단의 흉악한 결박을 끊고 이 문제를 해결 받을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금식하는 것이 우리의 목숨을 하나님께 내어놓는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은 죽는다는 것을 의미이기 것이며, 따라서 우리가 금식기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인데, 성도 여러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성도 여러분들이 목숨을 내어놓고 금식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물질을 꽉 쥐고 있으면서, 생명을 걸고 금식기도를 하고 있다고 하니, 무슨 기도의 응답이 있겠습니까?

만약 성도 여러분들이 생명을 걸고 금식기도를 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받을려고 결심했다면, 먼저 여러분들이 생명 다음으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질을 하나님께 여러분의 믿음대로 바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 여러분들을 묶고 있는 사단의 흉악한 결박을 주님께서 풀어주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 모든 물질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더 큰 축복으로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또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이 없어서 여러분에게 물질을 요구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여러분의 믿음을 보시기 위하여 여러분의 물질과 생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 금식기도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기도이며, 여러분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 지름길임을 아셔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기도를 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하여 사단의 흉악한 결박을 풀어 줄 뿐만 아니라, 멍에의 사슬을 끌러주며 자유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멍에의 줄을 끌러 준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며,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겠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당하고 있는 모든 질병과 고통과 슬픔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길 바랍니다.(이 때 눈먼 신도들은 ‘아멘’ ‘아멘’하면서 울부짖는다.)

‘한심한’ 목사는 계속해서 외쳐대기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기도를 하는 자들에게는 주린자, 곧 가난한자와 유리하며 방황하는 빈민들을 도와줄 수 있는 물질의 축복을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 8절을 보면, 금식기도를 하는 자들에게는 질병 치료가 급속하게 나타날 것임을 약속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호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기도를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항상 곁에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적용되어 져서, 그동안 사단의 흉악한 결박에서 고통 당했던 질병과 악한 것들이 모두 물러가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참된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마지막으로 성도 여러분들에게 한번 묻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 중에서 질병으로 고통 당하시는 분들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질병을 즉시 고쳐 주신 것으로 확신하는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이때 눈먼 신도들 중에서 대부분의 많은 환자들은 “아멘” 하면서 벌떡 벌떡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혹시 자신들의 믿음이 없어서 고침을 받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와 의심 속에서 말이다....)

‘한심한’ 목사는 자리에서 일어선 환자들을 향하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여러분의 질병이 이 시간 고침을 받았다고 믿습니까?”(이 때도 많은 사람들이 “아멘”을 연호하면서, 자신의 질병이 방금 나은 것처럼 기뻐하면서 두 손을 하늘 향하여 흔들고 “아멘”“아멘”을 부르짖는것이다)

또다시 ‘한심한’ 목사는 다시 외쳐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의 모든 소원이 이루어 졌다는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길 바랍니다. (이 때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몇 명만 제외하고는 다 일어서서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 댄다)”

계속해서 ‘한심한’ 목사는 신도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돌려드립시다.(이 때는 집회에 함께 참석한 모든 눈먼 신도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하늘을 향하여 영광의 박수를 치기 시작함)

이 후 ‘한심한’ 목사는 눈먼 신도들의 후한 박수갈채 소리를 들으며, 무대 뒤로 사라지고, ‘영광 영광 할렐루야’라는 찬송가 반주에 맞추어 눈먼 신도들은 찬송을 부르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하면서 요란한 기도소리와 함께 그 날의 집회는 막을 내리는 것이었다.

필자는 과거에 이와 같은 광경을 목격하고는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한심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진짜 병 고침을 받고, 그들이 바라던 바 엄청난 숫자의 모든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 받았단 말인가?...참으로 놀라울 뿐이었다. 필자야말로 믿음 없는 나 자신을 한탄할 수밖에... 당시에 본인도 지병을 고쳐야 되겠다는 절박한 심정을 안고, 한동안 말씀에 눈먼 신도가 되어 그들과 함께 모여, 집회에 참석했으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은 여전히 아픔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주여 믿음 없는 나 자신을 용서하소서”라는 고백 밖에는 할 수 없었으니 믿음 없는 나 자신이 한탄스러울 수밖에...........

이와 같은 방법으로 “하나마나 금식 기도원”에서는 다음 날에도 ‘한심한’ 목사가 강사로 출연하여 비슷한 설교의 내용을 외쳐대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오늘이야말로 기도의 응답을 꼭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 생각하고는 강한 집념과 의지의 믿음을 불태우면서 집회에 참석했었다.

집회가 점점 더 마지막 절정에 다다르자, ‘한심한’ 목사는 어제와 똑 같은 방법으로, 병 고침과 소원의 응답을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일까?....어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질병이 치유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일어선 사람들이, 오늘 또다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참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회가 끝난 후 눈먼 신도 한 사람을 불러서 물었다. “당신은 어제 ‘한심한’ 목사께서 묻기를, 질병을 고침 받은 사람 일어서보라고 할 때 일어섰던 분 아니세요? 근데 오늘도 왜 일어나십니까?

그 사람왈, “아니 내가 어제 고침을 받았다면 말여, 오늘 내가 무엇땜시 또 일어났겠는가 말여, 병을 고침 받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 때문에 일어선 것이랑께, 근디 나는 아직 믿음이 없는가벼, 벌써 여기에 온지 몇 달이 지났는디 아직도 요모양 요꼴이랑께.”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한탄 하면서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화장실을 가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한심한 집회의 결과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 같아서 씁쓸함을 금할 길 없었다. 썩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간절한 소원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내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직 자기들의 욕심을 따라 ‘한심한’ 목사의 지시하는 대로 최면에 걸린 듯 꼭두각시 놀음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과연 ‘한심한’ 목사가 설교한 본문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대로 설교를 했는가 말입니다. 문제는 전혀 아니라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심한’ 목사가 설교를 하기 전에 본문과 관련된 주석을 단 한 번만이라도 읽어보았던들 이러한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을, ‘한심한’ 목사는 아직도 자신이 설교한 내용이 엄청난 기적의 사건을 만들었다는 자신감으로 상기되어있었으니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심한’ 목사가 선택한 설교 본문은 그가 설교한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서 설교를 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한글 개역 성경을 보면, 이사야서 58장의 내용이 오해하기 쉬운 문맥으로 편집이 되어 있어서 언 듯 보면 ‘한심한’ 목사가 설교한 내용들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사야서 58장 전체 본문을 조금만 눈여겨보고 살펴보면 전혀 다른 의미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심한’ 목사는 중간 토막 구절만을 인용해서 설교를 함으로서 전혀 다른 설교를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이사야 58장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참뜻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신하며, 악을 행하는 그들을 장차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주면서, 당시 남유다가 처한 정치적 위기와 혼란의 원인이 그들의 종교적 도덕적 타락에 있음을 지적하고, 그들이 당면한 위기에서 구원을 얻기위해서는 신속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그들의 거룩성을 회복해야함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길 원하는 남은자(Remnant)들을 통해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 가실 것임을 일깨워 줌으로서, 장차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아니라 오고 오는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도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참 믿음을 소유하는 자들에게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구원의 축복을 하사하실 것임을 예언적으로 밝히면서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사야서의 전체적인 윤곽 속에서 이사야서의 본문 58장을 해석할 때 바른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8장은 66장까지 계속되어지는 연관된 기사의 첫 부분으로서, 이의 배경은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의 순수성은 외면 한채 종교적 외식주의에 빠진 선민 유다 백성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책망을 하시면서, 그들의 표리부동한 신앙을 회복하도록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임을 알아야합니다.

특별히 ‘한심한’ 목사가 설교 내용으로 선택한 58장의 본문은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모습을 가지고, 금식하며 열심을 다하여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들의 기도에 대하여 알아주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3절 상반절)?라고 하나님께 반문하는 내용에 대하여, 하나님은 지적하시기를 그들은 금식하면서 오락을 즐기기도 하고 일하는 역군들에게 온갖 일을 시키기도 하면서(3절 하반절), 다투며, 싸우고 폭력을 일삼으면서,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는 금식기도가 어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되겠느냐고, 질책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4절과 5절의 내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금식 기도를 한답시고 하나님께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너무나 위선적이어서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없음을 하나님은 경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5절 하반절).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요구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금식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흉악의 결박을 풀어 준다라고 하는 말씀의 의미는 ‘한심한’ 목사가 설교하면서 해석한 내용과는 전혀 상반된 개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심한’ 목사가 설교한 내용처럼 무조건 금식 기도를 하면, 사단에게 얽매여 있는 자신들의 질병이나, 이루지 못한 소원들이 풀어져서 해결되어진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 금식기도 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오히려 남을 억압하고 흉악한 사슬로 결박하기도 하며, 사슬로 멍에의 줄을 씌우기도 하면서 같은 동족을 압제하는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지 아니하면서 금식하는 기도는 헛된 것임을 본문은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본문이 의도하는 바, 자신들의 모든 권력이나 지위와 부(富)를 가지고 남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들을 포기하고, 자기가 가진 것으로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유리하며 방황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들의 집을 개방하여 맞아들이고, 벗은 자들을 입히고, 자신들의 친척(골육)이나 한 피를 나눈 동포의 어려움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는 사랑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라는 사실임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본문7절).

그러나 당시의 유다 백성들은 그들의 또 다른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실천적인 삶은 외면한채,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면서, 슬픈 기색(자신들의 마음을 스스로 괴롭게 하는 모습)을 띄우는 모습(본문5절)으로 금식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외면하시자, 그들은 하나님께 반문하기를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고 있는지(본문3절)를 모르겠다는 반응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금식기도의 모습을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금식기도는 어떠한 것이어야 함을 말씀하시는 내용이 본문의 전체적인 윤곽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한교회” ‘한심한’ 목사의 설교는 본문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 반대의 내용으로 일관하며 외쳐대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까울 지경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영적으로 눈먼 신도들은 본문을 조금만 눈여겨봐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법한 내용을, ‘한심한’ 목사의 잘못된 설교를 무조건 맹종하며, 받아들이면서 열광하는 모습은 참으로 비참할 지경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산상수훈에서, 기도하는 자의 참된 모습은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주님의 말씀(마 6:6)을 우리는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보여주는 기도는 주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라는 사실쯤은 이미 우리는 알고 있으리라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금식 기도원”이라는 간판을 내걸면서 까지, 자신이 거기에서 기도하고 있노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밝혀지기를 원하면서 기도하는 눈먼 신자들의 기도, 과연 하나님은 들어 주실까?

주님은 올바른 금식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16-18)󰡕

그러나 금식기도원이라는 간판까지 내걸고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하고, 또한 자신들의 기도 제목과 자신들의 이름까지 써서, 헌금 봉투를 내밀면 ‘짜가 부흥사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강복까지 기원하는 그러한 금식기도원의 실태 과연 성경적인가 말입니다.

그런데 '한심한' 목사가 집회를 마치고 난 후, 깜짝 놀란 사실은 실제로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가끔 나타나 간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믿음이 부러울 정도 였습니다.

왜? 나는 간증하는 저들처럼 믿음이 없었단 말인가? 나의 마음은 순수한 심정으로 얼마나 간절한 기도를 드렸는데, 왜 이 모양일까? 참으로 의문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잘못 해석한 설교를 듣고도 거기에 치유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까지 한것 입니다. 보통 우리의 상식으로는 원인이 잘못되면 결과도 잘못되어야 할 터인데, 엉터리 같은 설교를 듣고도 기적 같은 일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금방 머리에 떠올리는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7장22-23말씀(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일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보면 주님의 이름을 통해서 얻어진 기적의 역사가 때로는 사단의 전략으로 사용되어 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13:13-14)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것을 요구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어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주셨지만, 그들의 영혼은 파리하게 하신 사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시편106편15절;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 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 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신명기 13:12-3)󰡕

󰡔악한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못함이니라(살후 2:9-10)󰡕

아무튼 우리는 “이상한 교회” ‘한심한’ 목사의 설교를 통해서 한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의 내용이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모습을 가지고 가식적이고 외식적인 기도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고해야할 것입니다. 특히 다른 이웃들과의 관계는 무시하고 자기의 욕심만을 채우려는 기도는 근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기도는 나로 인하여 고통 받는 자들이 없는가를 살펴보고 우리의 삶의 내용이 항상 하나님 앞에 서있다는 모습 속에서 자신의 죄악된 모습을 드러내어 놓고 신실한 용서와 간구를 드릴 때 하나님의 귀하신 섭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의식하면서 가식적으로 꾸며대는 기도가 아니라 심령 깊숙한 곳에서 말씀의 깨달은 바를 감사함으로 간구 할 때 우리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체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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