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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난주간 메시지>욥기에 나타난 `부당한 고난`에 대한 이해/송영찬목사님

baromi 2009. 4. 1. 08:56

고난주간 메시지>
욥기에 나타난 '부당한 고난'에 대한 이해
송영찬 목사, 서울개혁신학원 구약신학


시작하는 말

 

욥기는 고난의 문제에 대해 신정론에 근거한 합리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욥기는 고난의 문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고난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초월한다. 현세적인 인과응보의 교리로서는 욥의 고난을 결코 해석해 낼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욥기는 무고한 자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찾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왜 무고한 자가 고난을 당하는가?" 하는 질문은 마침내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욥기에 나타난 '부당한 고난'에 대해 욥기는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의 답을 더욱 확실하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1. 욥기의 핵심적 스토리

 

욥기는 어전회의에서 발생한 사탄의 고소 사건을 그 배경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현세적 인과응보 교리에 따라 욥의 고난을 해석하려 했던 친구들의 변론을 침묵으로 끝나게 한다.
대신에 하나님의 지혜를 대변하는 엘리후를 등장시켜 자기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욥을 제압하게 한다. 엘리후의 네 번에 걸친 변증은 욥으로 하여금 침묵하게 만들었다(6:24, 25; 19:4; 33:31, 33).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33:17-18).
이 말은 엘리후가 논증한 변론의 핵심이자 주제이다. 욥기 기자는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싸움터에서 돌진하는 용사처럼 욥으로 하여금 맹렬하게 적진을 향해 나아가게 하였다.
욥은 마침내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을 향해 대항하는 것처럼 보였던 욥은 공의로우신 절대자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 앞에서 철저하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욥기가 계시하는 하나님의 사랑

 

욥이 갖혀 살고 있던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세계, 즉 하나님 앞에서 알게 된 인간의 고난 문제는 그가 하나님을 만났다는 현실 앞에서 볼 때 지극히 작은 피조계의 현상에 불과했다. 오히려 욥은 자신의 고난으로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욥은 인간이 만든 정의의 범주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담아둘 수 없다는 사실을 보았다. 우리가 말하는 아가페적 사랑은 실상은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다. 그것은 우리의 논리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언약(창 3:15) 안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아가페를 감지할 뿐이다.
이 아카페 언약은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범죄한 상태에서 주어진 것이며,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을 통해 점진적으로 계승되었고, 마침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 결과 이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은 십자가와 죽음의 경험을 통해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욥기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즉 욥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와 증거에서 그 핵심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우심에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욥기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유일한 '진리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길은 인간의 역사를 정화시키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사랑의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을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분이시다.

 

3. 욥을 통해 증거되는 하나님의 사랑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버림받은 사람의 고통과 외로움을 대변한다. 이것은 또한 경건한 성도들이 겪은 지독한 고독의 외침이기도 하다(시 22:1-3). 욥은 그와같은 경험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외면치 않고 구원하는 분이시다(시 22:4-6).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자신의 길을 따르도록 초청하신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30).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십자가의 길이다. 그리고 그 길에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남아 있다(고전 1:26-29).
인간의 고난과 고통은 그 원인이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그밖에 또 다른 것이든 신학적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세상의 구조, 즉 수많은 부조리와 불합리의 구조 속에서 억압과 고통을 받아야 하는 우리와 우리 이웃들에게 어떻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주장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는 질문이며 교회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그런데 욥기는 그 문제에 대해 한줄기의 빛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욥이라는 인물이 당한 고난과 하나님을 향해 끈질기게 전진하는 신앙의 결과 마침내 욥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사실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욥기는 우리에게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증인으로서 욥을 제시하고 있다.

 

4. 십자가의 길과 신자가 누릴 영광

 

이 세상에서 부당하게 고난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은 욥과 같은 심정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마음의 아픔을 인하여 말하며 내 영혼의 괴로움을 인하여 원망하리이다"(욥 7:11).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3). 그리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의 빛 가운데 있어야만 '부당한 고난이라고 하는 허망한 논쟁'(욥 16:3)으로부터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욥과 같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와 정의로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
이것은 신비스럽게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복이었다. 그리고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는 바울 사도의 선언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마치는 말
 
야고보 사도는 욥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욥의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자랑하신 것처럼 욥은 하나님에 대한 신실성을 증명함으로써 사탄의 참소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신실한 욥에게 복을 주심으로써 욥의 신실성을 온 천하에 나타내셨다.
이로써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하고 욥을 고소했던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패배하고 말았다. 욥기는 결국 욥을 비롯해 욥기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사탄 외에는 아무도 패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하나님 나라의 주권과 영광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욥기의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교회와신앙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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