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의심자료

[스크랩] 최고의 선지자 "신사도 예언"의 현주소

baromi 2009. 2. 2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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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선지자? 신사도'예언'의 현주소

김삼, 2008/06/28, 조회 : 7,409


'신사도/선지자' 밥 조운즈를 아버지처럼 추앙해온 변승우 목사

신사도운동가들 특히 '캔저스예언자그룹' 사람들이 소위 '예언'이란 것을 엄청 남발해 왔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예언자학교'라는 사뭇 구약적인 개념의 훈련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요 며칠 전 뉴스에 따르면, 주권운동(dominionism) 배후를 지니고 신사도개혁운동(NAR)권을 대표해 온 C. 피터 왜그너가 플로리다 부흥의 타드 벤틀리를 '신사도'로 공인했다고 한다. 이것은 신사도운동권이 기존의 캔저스그룹 및 (신디 제이콥스 류의) '중보기도'운동권 외에도 플로리다 부흥권 사람들까지 공식 추가/포괄하게 됐음을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예언'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하련다.

이들 '신사도'운동가들, 대언자들에게서 '예언' 내지 '대언'에서 우리는 치명적인 결점 몇 가지를 발견한다. 우선 한 가지는..비진리를 진리처럼 몰고 간다는 것. 성경과 기독교를 이용하는 작태가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는..서로 신격화하고 상대방을 교계 '명사'로 띄워 주기. 그러기 위해 성경 말씀 뒤틀기/왜곡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진리에 대한 매우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배후와 비성경적 특성을 볼 때, 신사도운동 지지자들의 입장은 어쨌든 간에 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 혐오스런 행위다.

주님께서 사도 파울에게 계시로 주신 교회시대 대언 은사를 보면, 중요한 특징 하나가 있다. 신약시대 예언은 이스라엘에 국한됐던 구약시대 예언과 달리 전(全)교회적, 포괄적이고, 세우기(建德, build-up) 중심이어서 권위적(勸慰的)이며, 따라서 구약식 미래 예언이 상대적으로 현저히 줄어 들었다는 점이다. 신약성경에 묵시록이라곤 오직 요한계시록 뿐이다.
줄어든 이유는 당연하다! 메시아 예언을 중심한 모든 구약 예언은 예수 크리스토의 수난/부활/승천과 성령강림으로써 완결됐기 때문.

따라서 교회시대엔 개인을 '대언자'라고 무게를 잡아 호칭하기보다 '대언은사자'라는 명칭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물론 파울은 흔히 '5중 사역'(fivefold ministry, 에페소 4:11)이라고 불리는 것을 강조하긴 했으나, 그것은 코린토A서 12-14장의 맥락과 조화 안에서 논해질 수 있는 것이지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은사를 향한 부르심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뜻이지, 소위 '사도학교'와 '선지자학교'를 세운다고 누구나 사도가 될 수 있고 선지자가 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미래 예언이 퍼부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경의 뜻도 어긴 채 마구잡이식 사도/선지자들을 양산해 내는가 하면 마구잡이 미래 예언을 남발하고 있다.  

'선지자학교'라는 구약적 시스템(왕들B=왕하 2장, 6:1-7 참조)도 현대교회엔 걸맞지 않다. 은사는 성령님의 뜻이 개인에 따라 다르므로, 인위적 시스템을 통해 강제훈련 내지 주입될 수 없다. 다만 9은사가 뭔지 개인이 어떻게 성령님을 통해 발견하고 활용할지만 가르치면 된다.

[실상 오늘날의 '신사도'/'캔저스그룹'(예: 밥 조운즈, 폴 케인, ? 조이너)식 대언자들을 무차별 양산해 내는 '예언자학교'란 개념 자체가 퍽 위험한 발상이다. 그 많은 예언자들을 복제해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결국 자기네 어젠다에 동조하는 엘리트그룹을 늘려 주권운동에 써먹겠다는 게 아닌가.
조운즈/케인/조이너가 모두 유럽의 '기사단' 등 정체모호한 비밀집단에 깊이 연루된 것만 미뤄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을 하늘처럼 받들어 모셔 온 서울 K교회 등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주권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싸탄의 메이트릭스에 뿌리박은 관련자들의 거대한 배후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파울의 계시에 의하면, 마땅히 신약대로 대언 은사를 비롯한 여타 은사들의 함양과 고취, 그리고 그에 대한 검증으로 끝나야 한다. 모든 대언은사자들은 다른 대언은사자들의 검증을 받아야 마땅하다.

대언 검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한 가지는 어떤 대언의 '권위'도 성경 말씀을 넘어 갈 수는 없다는 것. 이 말은 개인의 '예언'을 성경말씀처럼, 성경 권위와 대등한 양 절대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위 개인적 '예언', '계시'를 주장/유포하는 사람들 중 자신의 말에 은근히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경우가 그다지 드물지 않다. 단적으로, '천국은 확실히 있다'의 저자, 주남 토머스가 그런 예.
이것은 이미 파울의 대언은사에 관한 교훈 밖으로 넘어간 경우다.  

신사도운동권, 대언자학교운동에서 우리가 보는 '예언'이라는 것은 이같은 성경적 원칙과 거리가 멀며, 오히려 구약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더 든다. 그렇다면 이것은 통째로 진리가 아닌 것이다! 밥 조운즈를 비롯한 신사도운동권의 예언을 들어보면, 사도 파울이 강조한 대언은사자들의 건덕 중심 방향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미래'에 관한 것들이며, 그래서 오히려 교계 '점술가들'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과연 신사도들과 노스트라다무스, 에드거 케이시, 진 딕슨과의 차이가 뭔지 궁금해진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명사들 중의 명사 빌리 그래엄은 점술가 딕슨을 '하나님의 여종'이라고 부른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신사도운동은 일찍이 1940년대에도 초자연적인 은사를 추구하는 성향으로 보면 과히 멀지 않은 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을 일부 오순절 교단으로부터조차 경고 받은 문제인사들 중의 문제 인사 윌리엄 브래넘 류의 '제2물결' 운동과 흐름을 같이 한다.

이같은 '예언'들이 낳는 막대한 추정과 과오, 과대포장 등은 최근 필자가 분석해 본 대로 벤틀리의 일급 동역자라는 제레미/미란다 넬슨 부부가 큰믿음교회의 변승우 목사와 그 동역자 일동에게 뿌린 '예언'에서도 성경모독/신성모독 등 치명적인 열매로 나타난다. (필자의 글 '넬슨/변승우의 엄청난 신성모독' 참조)
이들은 여러 모로, 신/구약 예언, 구약시대와 교회시대의 예언의 차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경적/신학적 무지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아니면 고의적으로 간과하고 있든지.

넬슨의 '예언'은 단지 그럴 듯한 짜깁기성 모방일 뿐, 성경적 정격성이 철저히 결여됐음을 반증해 준다. 넬슨의 '예언'은 큰믿음교회 뿐 아니라 벤틀리, 그와 비슷한 노선의 캔저스 대언그룹까지 모두에게 성경적인 검증이 부재하며 사실상 그들에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여지 없이 밝혀 주고도 남음이 있다! 그들은 나름대로 '검증'/'분별'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성경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위 들머리에 비친 것 같은 목적과 어젠다를 위해선 성경적인 검증 즉 사도 파울이 그토록 강조한 대언은사에 대한 검증도 사실상 불필요로 한다는 논리적 귀결이 나기 때문이다. 파울은 대언은사자의 영이 대언은사자의 영들에게 규제를 받고 검증을 받아야 함을 명언했다(코A 14:29). 그러나 신사도/대언자들의 검증이란 것은 어젠다에 따라 서로 입을 맞추고 서로 추켜 세우는 데 그친다.    

특히나 이들은 세력 규합을 위해 '예언'을 통하여 서로의 신격화, 명사 만들어 주기 내지 "붕붕 띄워 주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독자 누구나 느끼게 된다. 이를 위해 성경을 원의와 적용 범위, 컨텍스트 등을 무시한 채 아무렇게나 원용하므로, 교인들은 진리/비진리 분간에 큰 혼동을 겪는다. 실로, '엿장수 맘 대로' 하던 시절인 판관시대를 연상시킨다(판관들=사사기 17:6, 18:1, 21:25 참조).  

이에 따라, 큰믿음교회나 플로리다 부흥권 일각에서 벤틀리와 그와 노선을 함께 해 온 (근본주의자 밥 조운즈가 아닌, '캔저스대언그룹'의) 밥 조운즈가 얼마나 우상화 돼 있음을 우리는 절감한다. 상대적으로 이들은 자신들을 열렬히 추앙하고 절대 지지해 주는 한국의 변승우 목사의 신격화/우상화에 분분하고 있다.

주님 말씀대로, 우리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이 참 대언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또 처음엔 그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옛 이방인 대언자 발람을 기억하는가?    

그에겐 실로 일종의 탁월한 대언 영감이 있었다(민수기 22:8-13). 심지어 그의 대언에는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표현들의 일부도 없지 않다(민 23,24장 참조). 그러나 그는 결국 바?의 물질 공세에 승복해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미쯔라임 출국 시대 이후 최악의 종교적/육체적 간음 사건을 유발시킨다(25장 참조). 오죽하면 짐승에 불과한 자기 나귀에게조차 책망을 듣고 천사에게도 책망을 들었겠나(22:21-35)? 그러나 끝끝내 불순종하더니 끝내는 비참한 운명에 처해진다(예슈아=수 13:22).

발람은 역사에 길이길이 사악한 대언자의 표본으로 남아 있다(네헤미야 13:2, 미카 6:5, 페트로B 2:15-16, 유다 1:11, 요계 2:14). 그가 현재 지옥에 가 있음은 말할 나위 없겠다. 언뜻 탁월해 보이는 대언자도 잘못 까불리면 종국이 이렇게 된다. 그래서 대언자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발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유다-이스라엘 남/북 연합군 출병 전 대언 사건도 기억하는가(왕들A 22:1-40, 연대기B=역대하 18장 참조)? 본래 슈무엘(사무엘)이 창건했고(슈무엘A=삼상 10:5) 북 이스라엘 대언자 엘리야-엘리샤 등이 이어 나갔던 대언자학교 출신인 제데키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국내의 내노라는 수많은 대언자들이 서로가 자신이 받은 영감을 갖고 사악한 왕 아합이 이끄는 연합군이 승리할 것이란 긍정적 예언을 신나게 발표했다.

그러나 의로운 대언자 미카야는 바로 이 수많은 대언가들 속에 미혹의 영이 들어가 작동했음을 밝히면서 주/야웨님이 알려 주신 아합의 결말을 목숨 내놓고 올곧게 예언한다. 미카야는 동료 대언자 제데키야에게 뺨까지 맞고 아합의 명령에 의해 아픔의 쓴 떡을 먹으며 지내야 했지만 결국 그의 예언이 성취됐다.  
여기서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은 미카야를 제외한 모든 대언가들이 북왕국의 선지학교 출신이라는 점.  

그래서 중요한 것이 검증, 검증 또 검증인 것이다.

본격적인 신약시대인 교회시대 초기에도 우리는 종종 대언자들을 발견하곤 한다.  
아카보(행11:28, 21:10,11)는 그 대표적인 예. 그는 분명히 예루샬렘에 임할 극심한 가뭄과 예루샬렘에서의 파울 체포 사건을 예언했고 성취됐다. 그러나 아카보의 예언은 파울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치긴커녕 오히려 파울의 반대 반응을 낳는다.
그뿐인가. 파울이 안티?을 방문했을 당시 집사 필?의 네 처녀 딸들이 모두 예언을 했다(행 21:8,9). 하지만 사도 파울은 그 예언 내용을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는다. 사도 파울은 이 예언자들을 추켜 주거나 신격화하거나 명사로 쳐주긴커녕 적당히 간과해 버린 듯 싶다. [교회 지도자들과 명사들에 대한 파울의 태도는 대범했다.]  

왜 그럴까. 그 중요한 이유는 성경을 우선으로 삼아, 모든 예언을 바른 대언자의 영이신 성령님과 및 성경을 통해 대조/검증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파울의 계시인 코린토A 14장에서 명백해진다.  

'최고의 선지자'? 대언개념의 남용

이제 문제인사들인 신사도들의 구체적인 예언 실례를 다뤄 보련다.

신사도들의 '대언'의 실례로서 큰믿음교회(변승우 목사) 또는 그 사이트 공식 회원으로부터 떠난 일부 성도들로부터 연락과 제보를 받아 인용하되, 원문을 입수할 수 없어 해당교회측 자체 번역문만 옮긴다. 성경 진리를 위협하는 교계의 중대한 범과로써 지적하기 위해 비평/검증/경고 차원에서 인용하는 바이다.

큰믿음교회는 "세상 신문에 거론되지 않는 영적 특종을 소개하는 난"(혹시 세상 언론에 문제점이 공개되는 것이 두려워서는 아닌가?)에서 밥 조운즈 부부를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이 시대 최고의 선지자, 이 시대 최고 레벨의 선지자로 지극히 경하한다. 살아있는 전설? 시대 최고의 선지자? 조운즈의 많은 예언들이 엉터리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무엇으로 그런 표현이 보장되는가? [-이 점에 대해선 댓글로 추후 보충하련다]

지난해 6월경 변 목사 일행이 미국 뉴저지/애틀랜타 등을 방문했을 당시, 밥과 바니 조운즈 부부와 첫 만남과 대담을 나눴다. 또다른 신사도/대언가인 숀 볼츠의 소개 이메일을 통해서였다. 이 대담에서 조운즈는 변 목사, 그 여동생 변애경 전도사, 서순형 목사, 오벤자민 목사 등을 위한 '예언'인가를 해 주었다.

이 내용에서..조운즈 예언에 담긴 자화자찬과 허장성세를 보라.

"제가 우크라이나에 가도록 허락을 받게 되면 당신들도 역사상 가장 큰 물결이 몰려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하여 전세계를 덮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게 될 주님의 때가 언제인지를 25년이 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로 주님께서 저를 통해 만지실 다른 나라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 전체와 르완다, 그리고 한국입니다. 때가 있고 저는 그 때를 기다려야합니다. 어떤 곳은 제가 벌써 35년 이상을 기다려온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가 아주 가까와졌습니다."

위에서 조운즈는 자신이 우크라이나에 가도록 허락 받으면, 역사상 가장 큰 물결이 몰려 온다고 선언한다. 사상 최대의 이 물결은 도대체 무슨 물결인가? 왜 조운즈가 그 물결을 이끌고 오는 것인가?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를 덮을 것이라고? 조운즈와 우크라이나가 도대체 뭐기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의아스럽고도 시건방진 소리다. 그런데도 조운즈를 모든 선지자의 아버지로 모시는 사대주의자들은 이 예언을 성경과 거의 다름없이 받아들이고 만다.

조운즈의 이런 허장성세는 계속된다.
주님이 조운즈를 통해 "만지실 다른 나라들"도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조운즈를 통해 만져? 왜 하필 조운즈를 통해 만지셔야 했는가? 만지시면 어떻다는 것인가? 러시아 전체와 르완다, 한국을 조운즈를 통해 만지신다는 말인가? 조운즈를 통해 만져지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가?

때를 기다리다니 어떤 때 말인가? 때를 기다린다는 따위의 소리는 누구든 할 수 있는 소리다. 함부로 말해 놓고는 그 때가 오는지 이뤄지는지도 모르게 책임 안 지고 그냥 넘기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안 그래도 신사도들의 사후(事後) 오리발 내밀기 식 무책임성 예언들이 남발돼 왔기에 하는 소리다. 조운즈를 '최고대언자'로 받들어 모셔 온 사람들은 조운즈의 불발 예언에 대해서도 성경적으로 적절히 해명하고 변호할 수 있어야 한다.  안 그렇다면 최고의 쪽집게 예언이라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성령님의 그릇과 도구가 아니다!    

"조만간에 북한과 중국을 향한 문이 열리게 될 것이고 그 나라의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란 따위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내던질 수 있는 말이다. 다만 조운즈 같은 명성만 결여됐을 망정.

조운즈는 이어, 중국이나 한국에 대한 '마지막 장'이 아직 쓰여졌다고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마지막 장'의 내용이야 어떻든 감히 그로서 언급이 가당키나 한 말일까? 자신이 다니엘 또는 사도 요한 아닌 다음에 말이다. 조운즈가 누군가? 여러 불발 예언과 성 추문으로도 얼룩진 문제성 예언가요, ? 조이너에게 비밀단체 가입을 '예언'으로 권했던 사람이다.  "제가 믿기는 교회가 자신들이 가는 방향을 정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들이 주저앉게 되면 그들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을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일어나게 된다면 바로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같은 말은 대언자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조운즈는 또, 한국이 "중보와 계시 영역에서 부르심"이 있다며 지금이 그 부름에 반응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어떤 중보와 계시 말인가? 주권운동권이 밝히는 도시 '정복'과 소위 '성시화' 차원에서 하는 신디 제이콥스류의 신사도적 중보?

조운즈는 특히 "계시에 의한 중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사도/대언가들의 '계시'가 쐐기로 박혀 들어 갈 자리를 만들어 놓는 듯한 인상이다. 이 중보는 '단순기도'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 그럴 듯 하지만 성경엔 없는 문구다. 사도는 그 대신 성령이 시키셔서 영이 하나님께 비밀을 아뢰는 방언기도를 하라고 권한다.  

거듭난 신자는 누구나 주님과 함께 한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대들과 함께.." 라고 주님은 못 박는다. 그렇다고 혼자 주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곳에 주님이 안 계신다는 말씀이 아니다. 공동체로만 아니라 각 자 있는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관상가 벤틀리처럼 신사도운동권 일각에서 횡행하는 관상기도와 다양한 '천사'들의 영이 발현한다는 그런 만남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인지도 묻고 싶다.    

조운즈는 이어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가 많이 행해져 과거 황폐됐던 것들이 회복되는 일들이 있어 왔다"고 주장한다. 공중바람처럼 막연하다. 무엇이 황폐됐고 무엇이 회복됐다는 말인가.

조운즈는 또 기도해 왔던 것을 응답 받는 '에스테르(에스더)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2년 내로 응답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향후 2년간이 전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인다.

'에스테르 기름부음'

에스테르 시대? 아마도 에스테르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놓고 모르데카이가 행한 금식기도를 뜻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구약적 금식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기도의 응답은 누구나 받는 것이다. 신사도운동자들의 기도만 응답된다는 법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조운즈가 이제 언급하려는 다음 이것을 뜻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전술한 대로 조운즈는 조이너에게 비밀집단 가입을 '예언'으로 적극 권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말기예언비전'(ETPV)의 샌디 워너는 중보운동을 위한 소위 '에스테르 기름부음'을 강조해온 사람이다( http://www.etpv.org/1999/behind.html ). 아울러 다이앤 브리스톨과 함께 고대 아둘람 동굴에 머문 다? 군대와 같은 '동굴머뭄이들'의 기름부음도 강조한다. 아둘람 굴 언급은 변 목사를 위한 신사도 대언에서도 발견한다.

워너는 자신에게 강한 기름부음이 임하면서 안수한 대상에게 (안수는 안수자 자의로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반드시 대상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중보기도를 위한 '에스테르 기름부음'이 부어졌고 비밀리에 준비됐기에 에스테르서를 읽으라는 대언을 했다고 1999년 3월 초순 올린 포스트에서 밝힌다. 그런데 올린 그날(3월2일)이 푸림제 날이었다.
푸림은 본래, 에스테르 왕후와 유대인들에게 도전한 페르시아-메데 총리 하만의 가문을 비롯한 7만5천명을 도처에서 집단 학살한 뒤 맘껏 축제를 즐겼다는 에스테르서 기록에 따라 유대인들이 지금껏 지켜 오는 기념명절로 현대의 전통 내용은 자못 세속적이다.

[푸림 축제의 핵심은 한마디로 반쉠족주의에 대한 유대인들의 보복이다. 즉 시온주의와 일치한다. 흥미로운 것은 에스테르 서에 단 한 번도 주/야웨/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 노래들의노래(아가)도 거의 그렇다. 그래선지 모르나 가장 늦게 정경화 된 이 두 권서는 성경의 다른 권서에 전혀 인용된 바 없다.]      

아무튼 워너가 언급한 날짜와 동일한 99년 3월2일. 캐티 월터즈의 포스트에 따르면, 월터즈가 전날밤(3월1일) 밥 조운즈와 나눈 통화에서 조운즈가 식탁에 나타난 '주님'의 비전 속에서 주님이 "나와 함께 기도해야 한다"면서 그해 7월1-22일 사이에 이스라엘 파괴를 노리는 '바실리스크' 영을 대적하는 중보기도그룹을 필요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조운즈의 이른 바 '주님과 함께 하는 기도'라는 특수표현과 아울러, '에스테르 시대' 용어의 출처를 느끼게 된다. 또 겸손하고 숨은, 아둘람 용사들이라는 표현이 신사도그룹에 자주 회자되는 것을 본다.  

이에 따라 우리는 신사도운동가들이 전반적으로 히브리적/유대적/구약적인 것을 유난히 강조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신사도운동가들이 여러 비밀집단에 연계돼 있다는 것과 비밀집단이 과거부터 찌온주의(Zionism)와 무관하지 않음도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조운즈는 향후 2년간이 전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중국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왜 아주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런 광역적인 '예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런 것이라면 왜 밥 조운즈의 예언 같은 예언이 필요한지, 왜 그의 '예언'만이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는 또 올해(2007년)는 시편 107편 2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 지어다"라는 '말씀이 강하게 주어지는 해'라고 선언한다. 흔히 듣는 이 성구의 말씀 자체가 귀할 뿐이지, 별 깊은 의미는 없는 표어이다. 과연 말씀이 강하게 주어졌는지 어쩐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 모르지만, 이들에겐 매년이 진리가 강하게 무시되는 해인 것 만은 분명한 것 같다.  

개인을 위한 예언 남발

대담의 이 부분에서 변 목사의 통역자/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는 듯한 서순형 목사는 조운즈에게 "모든 선지자들의 아버지 되시는 당신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일등석 항공권을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제안을 한다.  
이같은 아부성 대우는 우상숭배에 가까운 찬사이고 대우이며, 지금껏 미국 영성이라면 엄마 젖을 빨듯 열심히 흡입해 온 한국 교계 특유의 사대주의 정신을 극적으로 반영한다.
이 제안에 대해 조운즈는 하나님이 한국으로 저를 초청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웃으며 지금은 미국 교회를 깨워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또 "한국만큼 위험한 곳이 미국"이라고 말하여 한국의 '위험'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 같은 것이 은연 중 스며난다.  

조운즈는 또 이렇게 말을 잇는다.

"..저는 한국은 (주님께) 현재 필요한 적절한 반응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살아 남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서 현재 일어나는 것으로 보면 미국은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변화의 시기 가운데 놓여져 있는 것이지요."

한 나라가 살아남는다, 살아남지 않는다는 말은 일개인으로서는 매우 거만하고 위험한 말이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큰믿음교회 측이 이처럼 대가 중의 대가, 고수 중의 고수로 알아주는 선견자/선지자/예언자/대언가인 조운즈가 변승우/서순형 씨가 목사인지, 변 목사와 변애경 씨와 남매 간인지 부부인지 같은 한국인인지, 같은 교회사람인지 첫 눈에 알아보진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일반인도 눈치껏 때려 잡아 알 만한 센스가 조운즈에겐 결여된 듯 보인다. 너무 영적이고 고상해선가? 족집게(?) 같은 '대언자의 아버지'라면서 오누이와 부부도 쉽게 구분 못하는가?

그런 '아버지'의 첫 말씀은 변 목사에 대한 인상이다. 눈이 아주 맑기에 명확한 말씀을 갖고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명확히 알고 있다고 짚어 말한다. 가르침과 목사로서의 사역이 아주 정확하다고 말한다. 역시 누구나 눈치껏 할 수도 있는 말이다. 다만 구루 같은 말씨가 특이하다.

조운즈는 또 변 목사의 가장 높은 부름이 중보이고, 사람들을 가르쳐 중보자로 세우는 것이라며 가르침의 은사가 아주 강력하다고 추켜준다. 이 세대는 "계시적인 가르침이 전해져야 하는 때"라고 말한다.

성경대로의 가르침은 어떤가? 그런 가르침은 빈약한가? 안 그래도 요즘은 계시적/신비적인 가르침이 너무 많아 문제다. 말세의 말세인 이 시대는 거짓 예언과 예언자들, 거짓 이적들이 난무하는 시대란 것은 조운즈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켕겨서 적당히 무시하는 건 아닌가?

과연 변승우의 가장 높은 '부르심'이 중보인지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 혹시 변 목사의 가장 큰 '소명'은 신사도들 받들기와 명사 되기, 큰믿음교회 유일무이화, 변승우 신격화는 아닌지?

조운즈는 그러면서 계시가 변 목사의 "영으로부터" 나온다며 이 계시적인 가르침이 사람들을 일깨워 새로운 열정을 갖게 하니 여러 나라에서 그 계시적 가르침을 풀어 놔야 한다고 부추긴다. '풀어놓기'(to release)란 말은 신사도들이 애용하는 낱말의 하나다.

성경계시가 아니고? 계시가 변 목사의 '영'으로부터 나온다. 음..계시는 본래 성령님으로부터 내려지는 게 아닌가? 헷갈린다. 긴가만가한 표현이다.  

조운즈는 또 성령님이 변 목사 안에 '잉태'시키시는 것은 "영으로부터 나오는 동의"라고 추상적인 묘사를 하면서 변 목사가 가는 곳마다 적절한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 말씀이 그곳에다 강을 끌어 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강을 끌어 온다?

  Bob Jones: (Bonnie 사모님에게) 변 목사님을 위한 말씀 받은 것 있나요?
  Bonnie Jones: 변전도사님에 대한 말씀을 받은 것은 있어요.
  Bob Jones: 받은 말씀을 나눠요. 나도 변전도사님에 대해 받은 말씀이 있어요.

여기서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정말 성령님을 통한 대언이라기보다 왠지 점술가들의 대화 같다는 것.

조운즈의 아내인 바니는 변애경 전도사에게 긍휼의 은사, 치유의 은사가 있다며 그런 말씀을 전하면 치유가 일어나되 사람에게 손을 댈 필요도 없고 변 전도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치유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장담한다. 물론 신유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과연 변애경씨가 그런지 안 그런지는 두고 볼 일이고..예수님조차도 자주 손수 안수를 하지 않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어머니?

이때 밥이 끼어들어 "전도사님도 한국에서 사역하시나요?"라는, 다소 뚱딴지 같은 물음에 이어 변 전도사 속에 '이스라엘의 어머니'와 같은 것이 있는 것을 "본다"며 가는 곳마다 그곳에서 어머니들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 하와이를 가 봤냐면서 여러 섬들을 수차례에 걸쳐 가게 되고 거기서 은사들을 풀어 놓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내재되어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이스라엘의 어머니'? 신사도운동자들의 특징이 이것이다. 엄청난 말을 마구잡이로 아무 데나 쐐기 박듯 갖다 박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대언'을 듣는 사람은 기막힌 선지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조운즈 같은 신사도인사들 주된 특징은 오순절계 사람들까지도 혀를 차고 마는 그 비진리성에 있다. 비진리성 대언과 이적은 다음 두 범주의 하나에 속한다.

1. 싸탄의 모방 내지 거짓 대언과 이적
2. 일시 주님의 이름으로 했다곤 하나 심판과 버림의 대상

예언의 대가, 조운즈의 못 말리는 헷갈림은 계속된다.

"..(변 목사, 변 전도사) 두 분이 한 교회에 계신가요?

기막힌 대언자라는 조운즈는 시방 변 목사와 전도사를 부부냐고 묻는가 하면 같은 나라인가라고도 묻고 남매임이 이미 밝혀진 뒤에도 이젠 한 교회에 있냐고도 묻는다.

포승 속 추수꾼들

이제 조운즈 부부의 희한한 주장을 보자.

"두 분 모두에게 묶여져 왔던 것(holdback) 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적으로 인해서 생겨난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두 분을 묶어 두셔서 두 분이 모든 에너지를 모으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묶여져 있던 것을 풀어 놓으실 때 강력한 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Bonnie: "Lasso(올가미)가 무엇인지 아세요? 카우보이들이 쓰는 밧줄인데, 돼지 같은 것들에 씌우는 것이죠. 제게 그 올가미가 보입니다. 성령님께서 두 분을 올가미로 붙들어 두신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조운즈 부부는..성령님께서 변 목사와 변 전도사 두 사람에게 돼지 따위에게 씌우는 올가미 내지 홀드?을 걸어 온 에너지를 모으게 하셨다면서 이 올가미가 풀릴 때 큰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한다. 상상이 가는가?
우리는 성경에서 올무/올가미/함정 따위는 모두 싸탄의 도구로 은유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조운즈는 "대적으로 인해 생겨난 일이 아니다"고 올가미 변호까지 한다.  

신사도운동 대언가들의 특징이 구약 대언자들을 흉내 내어 특별한 사물을 보는 듯 말한다는 것이다. 성령님은 올가미 따위로 사람을 포박해 두실 리가 만무하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엔 자유가 있다!  
조운즈의 대언은 기독교의 것을 이용할 뿐 점술가와 매우 비슷한 바가 있다. 어떤 것은 터무니 없이 엉터리이고, 일부만 대강 맞을(?) 뿐이다.

바니의 포박설은 계속된다. 이번엔 그물을 통한 포박이다.

"그런데 그물도 보입니다. 이 그물이 네 분 모두를 함께 일하는 연합의 자리로 불러왔습니다. 그 그물 안에서 네 분(변 목사님, 변 전도사님, 벤자민 목사님, 서순형 목사님)이 추수를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함께 묶으신 것이지요. 대추수를 위한 그물을 함께 치기 위해서요."

둘은 올가미에 묶이고, 넷은 그물 안에 갇히고 묶인 채로 수확물을 거둬 들여? 참 우스꽝스런 광경이 아닐 수 없다. What an awkward and weird action! 그 추수 일이란 것, 참 하기가 어지간히 힘들겠다!  

바니가 그물 얘기와 추수 얘기를 하자 밥은 냉큼 (동석한 한국인) 네 사람이 모두 '추수꾼들'이고 변 목사와 변 전도사 모두 '대추수'를 위해 준비돼 왔다고 아내에게 가락과 장단을 맞춘다. 음, 포박을 통한 추수 준비라.. 추수를 시작하기 앞서 비틀거리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자유로우시고 인간을 자유롭게 해 오신 성령님이 왜 홀드?과 올가미, 그물 따위의 오라/포승을 통해 추수를 하려 하시겠는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대 예언자의 황당성 질문들

다음으로, 일행인 오벤자민 목사에 대해 "새 기대감"이 있는 것을 "본다"는 조운즈는 하나님이 요한복음 14장 14절 말씀을 방금 주셨다며 오 목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시라고 믿어진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14:14은 비단 오 목사뿐 아닌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다. 조운즈가 아닌 성령님께서 쓰신 성경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자 바니는 전날 아침인가 그저껜가 '이곳'으로 오는 길에 "Sea Food: all you can eat(해산물 뷔페)라고 쓰인 큰 식당 간판을 봤는데 실제로는 'see(보다) food' 라고 쓰여져 있었다고 귀띔한다. 그 식당의 아시아 음식들을 보며 "이번 집회?주제가 seer (선견자)였음?에 아시아인들에게 주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단다.

여기서 우리는, 범인(凡人)도 아닌 대 예언가가 특정 식당이 있는 도로를 자기가 걷던 것이 어제 아침인지 그저께인지도 잘 분간을 못하고 헷갈린 모습에서 대 예언가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가고 헷갈린다. 그리고 예언가임을 의식해선지 삶의 주변의 모든(?) 것을 주로 예언과 이리저리 연결시키고 갖다 붙이며 써 먹어야(?) 하는 실상이 안쓰럽다.    

그러면서 바니는 다시 예의 황당성 물음을 던진다. "모두 한국에서 오셨나요? 제가 아시아 지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둘의 황당성 물음은 끊이지 않는다. 서순형 목사를 위한 조운즈의 예언 첫머리는 이렇다.  

"목사님 아니시죠? 목사라구요? 제게는 목사보다 복음전도자로 보입니다."

거듭되는 이런 황당성 질문은 거의, 조운즈가 자신의 투시력이 평범하지 않고 남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고의적인 제스처로 보인다. 왜 그런지는 다음 문장을 보면 금방 알게 된다.  
"..제가 보기에는 현재 부르심이 목사이지만 다음 단계에서 주님이 주시는 위임은.."

방금 우리는 조운즈가 서목사를 "목사님 아니시죠? 목사라구요? 제게는 목사보다 복음전도자로 보입니다." 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불과 몇 초 후 조운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목사가 아니라면서 현재 부름이 목사인 그런 부름과 예언도 있는가?! 이건 개 몸통에다 소꼬리를 단 격이다.

조운즈는 계속해서 서 목사에게 예술의 은사가 있고 복음전도자의 사명이 있으며 말씀을 준비하지 않아도 갑자기 내려꽂히듯 순식간에 임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서 목사가 과연 그런지 어쩐지는 두고 볼 일이겠다.

이제 바니가 다시 끼어드는데..서 목사가 대언자 나탄 같고,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그런 차세대인 "슈퍼맨, 슈퍼우먼"을 길러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 슈퍼맨과 슈퍼우먼 세대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세대일까? 아니면 이들처럼 진리를 마구 유린하는 세대일까? 후자이기가 더 쉬울 터이다. 이들의 '예언'이 보여주는 비성경성을 보면 오히려 암담한 세대일 것이다. 안 그래도 미국의 젊은 떠오름교회(emerging/emergent chuch)와 떠오름세대가 그런 뉴에이지적 혼합영성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도 타드 벤틀리류의 영성과 과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합석한 일동이 기념활영을 하기 전 조운즈는 다시 황당성 질문을 던진다.

"네 분 모두 한 교회를 섬기시나요?"

대선지자라는 조운즈 부부의 예언에서 느껴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말들이 많고 그대로 성취되지 않더라도 별 책임을 지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오벤자민 목사는 조운즈가 말한 변 목사의 계시적 가르침에 대한 예언은 너무나 정확하다고 찬탄하며 변 목사의 계시적인 말씀을 쓴 책이 현재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밝힌다.

그런데 필자는 "계시에 대한 정확한 가르침"을 책으로 쓰는 변 목사와 그 일행이 밥 조운즈 같은 인물을 모든 선지자의 아버지로 받드는 점, 비진리 투성이인 벤틀리를 대부흥사로 알고 플로리다로 찾아가고 벤틀리의 파견대사 격이고 동역자인 넬슨의 황당무계한 신성모독 발언을 잠자코 수용한 점, 온갖 말세적 비진리의 표본 같은 신사도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현상, 이들의 명사 떠받들기 및 빚어주기와 서로서로신격화에 급급하는 모습 등을 볼 때, '정확한 가르침'이란 수사가 무색해 진다.    

변 목사 측근들은 나름의 '정확한 계시의 가르침'을 자화자찬하며 머물게 아니라, 시방 무엇보다 성경 진리에 대한 정확한 배움이 필요할 때라 보여진다! 필자가 듣는 큰믿음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신사도복음의 안개 속을 헤메며 누비지 말고 성경진리로 되돌아 가라"는 것이다.  

조운즈의 숫자게임

조운즈 부부와의 이 만남의 끝 무렵 변 목사는 조운즈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 내용인 즉, 조운즈가 죽은 사람들의 3%만 천국에 간다는 말을 했는데 단지 그 당시의 퍼센티지인지 아니면 평균적인 것이고 지금도 그러냐는 것.  

이에 대해 조운즈는 32년전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갔을(?) 당시, 세계 전체인구의 3% 아닌 2%가 천국에 가고 있었다고 수정해 주면서 "지금은 뒤로 더 물러났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조운즈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되돌아왔다며, 이때 주님이 조운즈가 "(땅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10억의 사람들을 돌리시는 일을 시작하시겠다고 하셨단다.
이 말이 울려 주는 변죽은 10억 인구의 구원이 조운즈의 예언 내지 언행에 달린 듯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조운즈는 전세계 인구의 6분의 1(10억 내지 10억 이상)이 갑자기 교회로 들어 올 것에 준비되고 있다며 2020년까지 일어날 그 큰 역사가 2007년 6월 6일에 이미 시작됐다고 선언한다.
[여기서..조운즈는 6이란 수를 되뇌고 있음을 눈여겨 보게 된다. 6분의1, 6월 6일 등을 이으면 666이 된다. 6은 헤르메틱스/신지학/카발라/오컬트/프리메이슨리 등에서 퍽 숭배/애용되는 숫자이다. 2007이 2+7=9가 되지만 9라는 수 역시 그렇다. 66을 6으로 나누면 11이 된다. 2020 역시 11과 무관하지 않다. 11 역시 메이슨리에서 매우 중시되는 수다. 각종 비밀집단과 연루된 신사도운동자들에게서 이런 숫자의식 현상을 우리는 자주 발견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길 32년간 기다려 왔다는 조운즈는 선언한다. [ 3+2=5, 3x2=6, 5+6=11, 이런 숫자가 오컬트에서는 매우 중시된다.]

"지금부터 2012년까지는 추수꾼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시기입니다. 2012년부터 2020까지는 한꺼번에 10억이나 되는 청소년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운즈는 2007년 6월6일부터 2020년까지 세계인구의 10억, 2012년부터 2020년까지는 세계 청소년 10억, 그래서 도합 20억이 2020년까지 갑자기 주님께로 돌아오고 교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 여기서도 20/20/20 즉 2+2+2=6이라고 합산된다. 청소년의 연도를 합하면 (2+1+2)+(2+2)=9가 나온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필자의 추정일 수도 있음을 전제한다. ]

과연 2020년까지 그런 엄청난 숫자가 한꺼번에 주님께 돌아올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 신사도운동자들이 주장하고 추진하는 그런 비진리성 복음전파라면, 매우 회의적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전도와 개종이 과연 성경대로의 순수한 것이겠는가?

 

발췌 : 김삼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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