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아내가 원했던 삶 (펌)

baromi 2009. 1. 8. 09:25

아내가 원했던 삶 - San Diego에서 있었던 일 | 은혜의 나눔

전체공개 2008.12.14 23:53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글을 쓰는 것을 항상 기대하며 살아가는 한 청년입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미국 샌 디에고 전투기 추락사건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 어느 개인의 이름이 들어간 글인데 혹시 명예가 훼손되거나 개인의 신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남길 수 있다고 판단되시면 삭제 부탁드립니다.

 

 

 

아내가 원했던 삶

 

먼저 아래 영상을 본 뒤에 글을 읽어 주십시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13721 


“이사 온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이런 날벼락이….”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주택가에 미국 전투기가 추락하면서 한인 일가족 3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참변을 당한 이영미(36) 씨 가족은 불과 한 달 전에 이사 왔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현지 한인동포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이 씨와 각각 15개월과 1개월 된 그녀의 두 딸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딸의 산후조리를 위해 한 달 전 미국으로 왔던 친정어머니는 아직까진 실종으로 발표됐으나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크리스마스가 결혼 4주년 기념일이라는 윤 씨는 "아내가 평소 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했는데 저는 아내를 정말 사랑하면서도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못해줬던 것이 한이 된다"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윤 씨는 또 "손녀들을 끔찍하게 아껴 주셨던 장모님도 변을 당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윤 씨는 "큰 딸 하은이는 '하나님의 은혜', 둘째 딸 하영이는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뜻으로 아내가 이름을 지었다"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고 밝혔다.

윤 씨와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샌디에이고 연합감리교회 신영각 목사는 "윤 씨 가족을 위한 추모예배를 갖기로 했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많은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 많은 집들 중에, 그 넓은 땅에,, 하필이면 왜 그의 집이었는가?

  3억이 넘는 인구 미국이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 그의 집이었는가? 새집으로 이사 온지 한 달, 꼭 한 달 되었고 둘째 딸이 얼마 전에 태어났다. 애기를 보기 위해 한국에서 장모님이 오셨다.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태평양이 가로막을 수 없는 기쁜 잔치가 순식간에 장례식으로 바뀌었다! 일터에 나갔던 남편만 빼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 그리고 장모님 모두 생명을 잃은 것이다. 

 

  하늘나라 컴퓨터에 저장/기록되는 악플 

  이 기사가 나오기 전에 사이월드 뉴스에 올라온 '때리는 사이비 교회' 기사에는 엄청나게 기독교를 욕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12월 11일 저녁 8시 56분까지 4542개의 댓글이 달렸다. 나는 댓글 전쟁에 잠깐 참여하여, 이곳은 교회가 아니라, 기사에서도 밝혔듯이 '사이비'이며, 또 이곳은, 확인해본 결과,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다락방’에 소속되었었으며, 심지어 다락방에서 조차도 관계를 끊어버릴 정도의 사악한 곳임을 밝혔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런 사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 기사는 나오자마자 뉴스랭킹 1위에 랭크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전투기 추락사건과 피해를 입은 윤동윤씨의 성숙한 신앙적 용서의 사건이 소개 되었다. 현재 470개의 댓글이 달렸고 이 기사에 대한 댓글도 그다지 영양가는 없다. 단지 내가 우려하는 것은, 사이비 교회를 들먹이면서 기독교를 욕하든, 전투기 추락사건 기사에까지 기독교에 대해 비아냥거리든 과연 그들이 남긴 댓글 하나하나를 하나님께서 못 읽으시겠는가 하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두려움이다.

  카투사로 복무했을 때 대대(Battalion)로 어떤 서류를 확인하러 간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어느 사람이 미국에서 무엇을 몇 개 주문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인쇄된 종이가 쇠로 된 큰 컨테이너를 가득채운 작은 상자들 안에 빼곡히 쌓여있었다. 기록들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군대도 이렇게 정확하게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보관하는데, 저장 용량과 검색 속도 등에 제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을 사건들이 어디 있겠는가! 너무나도 흔하고 무감각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이 범죄가 두려운 것은 죽을 때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비웃는다면 진실로 그가 당할 심판이 두렵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군대라는 인간의 조직도 어느 사람의 잘못이나 성과 혹은 그 밖의 세세한 행적에 대해서 기록을 남겨두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기록을 찾지 못하시겠는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스르는 기록된 빚의 문서들을 우리 가운데서 취하셔서 그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깨끗이 없애주(골로새서2:14)”신 그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는 회개하고 그리스도가 주시는 죄 용서를 받는 것 외에 사함을 받을 길이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는가?

  윤동윤씨는, 아니, 윤동윤 형제님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발언을 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과 우리 가족의 시신을 찾아준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아내와 딸, 장모님을 데려간 것으로 생각한다.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 그는 미국에 소중한 사람으로 (사고를 막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그를 탓하지 않으며 용서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계산이 빠른 어느 사람은 어떻게 하면 더 큰 보상을 얻어낼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지만 어찌 (소송을 통하여)미국 정부 혹은 비행기 제조회사 혹은 해병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큰 보상이 단 하나뿐인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의 웃음과 음성과 피부와 얼굴과 호흡을 보상할 수 있겠는가. 그의 발언에서는 전혀 이런 세상적인 이익을 고려한 느낌을 주는 부분이 없다. 오히려 거대하게 밀려오는 슬픔 가운데서도 그의 마음은 무언가 붙들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 무언가가 그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주고 있었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 무언가란 무엇인가? 대체 어떻게 그는 극한의 슬픔, 아니, 비통,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애곡의 신음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순복할 수 있었는가? 갑자기 구약의 익숙한 한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동방의 거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재산뿐만 아니라 일곱 아들과 세 딸마저 잃게 되었다. 윤동윤 형제님과 비슷하게 일어난 비극이었다. “갑자기 사막에서 강풍이 불어와 집의 네 모퉁이를 덮쳐” 자녀들이 깔려 죽은 것이다. 그렇다. ‘갑자기’ 일어났다. 인간은 이해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갑자기’였다. 윤동윤 형제님도 이처럼 ‘갑자기’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마치 욥이 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렇게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내 어머니 태에서 벌거벗은 채로 나왔으니, 벌거벗은 채로 그 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요,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쉬운성경 욥기 1장 21절”

 

  이어서 성경은 기록한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욥은 죄를 짓거나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1장 22절”

 

  그 무엇이란, 욥의 신앙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주권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이었다. 다시 한 번, 두 딸과 장모님, 무엇보다 누구보다 사랑했을 하나뿐인 반려자를 하루아침에 잃은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과 우리 가족의 시신을 찾아준 사람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하나님이 아내와 딸, 장모님을 데려간 것으로 생각한다. 아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해달라. 그는 미국에 소중한 사람으로 (사고를 막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그를 탓하지 않으며 용서한다.”

 

  만약 누군가 이 사람의 고백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실재(real)하심과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매우 불행한 사람이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세상도 이 남자의 이런 태도에 매우 감동한다. 하지만 세상 뉴스는 이 사람의 고귀한 신앙보다는 조금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 원할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한 구체적인 판례가 흔치 않아 보상액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유족 윤 씨가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이 큰 부분을 차지해 거액의 소송이 전망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만이 그를 달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여자와 한 달 전에 이사했던 집보다 더 넓은 집을 준다고 해도, 어떻게 그의 아내와 두 딸을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러나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죄인을 구원으로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그분만이 위로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은 그를 강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불신이 팽배하고, 고의적인 악이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에 이 인간적으로 보면 가슴 아픈 사건을 통하여 큰 소리로 말씀하신 것이다.


  “세상아 보아라!

  네가 나의 사람을 보았느냐?

  네가 어느 한 이름 없는 신앙인을 보았느냐?

  네가 자기의 모든 소유보다 나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한 사람을 보았느냐?”

 

  흡사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말씀하신 일을 떠올리게 한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기 1장 8절”

  

  불신자들은 그의 고백 - 조종사도 최선을 다했으니 용서해달라는 고백에 감동하며 숙연해진다. 윤동윤 형제님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하나님 앞에 욥과 같은 모습을 보임으로 한국의 기독교인들 및 안티 기독교뿐만 아니라 미국의 모든 국민, 나아가 이 소식을 들은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외치신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은 우리의 신뢰를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목숨보다 귀하며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은 아주 큰 무언의 외침이었다. 그 들리지 않는 외침을 통하여 하나님은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이 사건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셨다.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이 각기 다른 교파에 속해 있을지라도 공통된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에베소서1:6)”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 한 가족의 생명을 빼앗아가셨으면 하나님은 이기적인 하나님이십니까?”

 

  불신자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혹 어느 신실한 신앙인도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기독교란 인간의 이해력으로 다 따라갈 수 있는 종교가 아니란 사실이다. 또, 인간은 하나님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신앙인은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선하고 은혜로우시며, 하나님께 사랑이라는 성품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이렇게 말하는 것 외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욥기 1장 21절” 


  윤동윤 형제님이 사람들의 눈에는 분명히 재앙과 같은 것을 잠잠히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던 것은, 크신 하나님의 은혜요, 그에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천국의 거처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구원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구원의 사건은 그저 추상적인 신학적 관념이 아니라 실제로 그에게 그리고 죽은 가족들에게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어느 악플러(고의적으로 악한 댓글을 다는 사람)가 하나님이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면 미안하지만 우리의 가장 친절하고도 정확한 대답은 오직 이 말씀이다. 그 악플러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대단히 의문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유익을 위해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성도들에게 가장 유익한 길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길이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이다.  

  오직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우리의 아픔을 결코 모른 체 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 그리고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조금씩 드러나 언젠가는 깨닫게 될 하나님의 깊고 놀라운 사랑의 섭리를 우리가 믿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사람의 이성이 다 따라잡을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누가 이 사건을 설명하겠는가?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다. 크신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라. 진실로 진실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믿는다. 우리의 애통함보다 더 크신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위로하고 붙들어주시며 강하게 하실 것을 믿는다.  

  그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 하나님을 신뢰한 윤동윤 형제님처럼, 나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어떤 극심한 고통과 재난의 순간에 역시 이분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

  주님의 품으로 간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아이들... 하나님께서는 당신(하나님)이 사랑이심을 그에게 확신시켜주시리라. 결코 그를 외롭게 두지 않으시리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통치와 살아계심은 결코 그분의 사랑을 아끼시지 않으리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너무나 크고 광대하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받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얻은 우리가 잃을 것이 무엇이겠는가? 윤동윤 형제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분의 믿음을 본받고, 이삭보다 하나님을 사랑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윤동윤 형제님이 기자 회견에서 말한 [아내가 원하는 것]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심지어 가족의 죽음 앞에서나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삶일 것이리라. 그녀가 원하던 것,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원하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하늘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어떤 힘이나, 가장 높은 것이나 깊은 것이나, 그 밖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8장 38, 39절”

정재헌(thefusionblu)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하나님 사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