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회 논쟁들

[스크랩] 좌파들은 "박근혜 높은 지지율 이해못해"

baromi 2009. 1. 7. 18:26
▲ 주대환씨는“이렇게 예의가 없고, 반(反)지성적인 사회로 어떻게 선진국을 만들 수 있는가. 좌·우파 모두 자기 모습을 상대화하고 객관화시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주대환(55)씨는 작년 한해 좌파 진영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민주노동당이 분당(分黨)으로 치닫던 작년 2월, 그는 “나는 김정일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한다. 잘못된 노선으로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도 물러나지 않는 김정일 정권을 비난하면 진보가 아닌가?” 라며 민노당(黨)내 주류인 친북 성향의 NL(자주파)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뉴라이트 운동 기관지인 〈시대정신〉겨울호 기고에서는 좌파로서는 드물게 “사회민주주의자는 대한민국을 긍정한다”고 선언했다. 지난 달 출간한 저서 《대한민국을 사색하다》(산책자)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사의 진보적 시대에 탄생한 위대한 민주주의 나라”라며 건국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좌파 내부에서는 이런 그의 행보를 ‘전향’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회민주주의자임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논쟁의 복판에 있는 그를 5일 만났다.

◆“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


―좌파로서는 드물게 건국과 대한민국을 긍정했다는 게 화제가 됐다. 좌파 쪽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1946년 대구 사건, 여순 사건, 4·3 사건 등 유혈 사건을 거치면서 이뤄져 뭔가 건국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주의자다. 현실의 선택은 언제나 불편하다. 대한민국 건국과 성장 과정에서 모든 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일만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삼권 분립, 다당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의 길을 선택했다. 우리는 건국의 주역인 이승만 대통령까지도 독재를 할 때는 쫓아낼 수 있는 제도를 택했다. 반면 북한은 소련식(式) 1당 독재체제를 택했다.”


◆“난 5·16의 밥을 먹고 자랐다”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도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했던 것처럼 부국강병을 추진하면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고 복지제도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산업화의 공(功)은 인정하지만, 독재와 부패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 4·19의 시(詩)만 읽고 자란 게 아니라, 5·16의 밥을 먹고 자랐다. 나는 좌파라는 사실을 항상 강조하는데, 국민·근로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는 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5·16에 대해서도 역사적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좌파들은 왜 박근혜 지지율이 높은지 이해 못한다”


―5·16은 어찌됐건 쿠데타 아닌가.


“5·16이 절차적으로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농민들이 박정희를 지지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무지해서 박정희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좌파 지식인들이 농민들이 몽매해서 박정희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고, 지식인들의 오만이다. 나 같은 사람이 박정희 체제에 대한 호감을 가지면 얼마나 가지겠는가. 그러나 박정희 체제의 공과는 고루 봐야지, 일방적으로 부정하고, 긍정할 순 없다. 진정한 좌파가 되려면 대중이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박근혜 지지율이 이렇게 높은 현상을 이해 못한다.”


◆“그때 ‘촛불’들은 이명박 퇴진을 정말 원했을까?”


―작년 촛불집회는 미국산(産) 쇠고기 안전 문제와 검역주권 상실을 우려한 국민들의 순정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과격 시위로 바뀌었다. 촛불 시위는 계속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 지식인들도 있었다.


“촛불집회 때 운동권이 끼어든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운동 단체들이 주도하면서 자발적 대중들이 많이 빠져나가고 변질됐다. 자발적 시민들의 요구를 국민투표에 부쳤어야만 했다. 설사 대통령일지라도 위임된 권력은 대다수 국민의 요구가 있을 때는 국민의사를 다시 물어야 한다. 시위대가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헌법 제1조’, 즉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아니었던가. ‘이명박 퇴진’은 재협상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대한 대중의 분노가 담긴 표현이지, 운동권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권 퇴진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從北主義者들의 말도 안 되는 핑계들”


―당신은 민노당 내의 ‘종북(從北)주의’를 비판하면서 김정일 정권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민노당 뿐 아니라, 진보 좌파는 북한 인권문제나, 북핵 문제, 김정일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닫는다. 그게 진보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지난 정권 때 직접 남북대화를 해야 하는 당국자들은 공개적으로 북한을 비판할 수 없는 입장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민노당이나 노동단체들이 대화 당사자도 아니면서 남북 관계를 위한다든가, 자존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다.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문화처럼 돼 있다. 이 때문에 국민들이 좌파에 대한 신뢰를 철회했다. 우파측에서 ‘친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좌파 전체를 링 바깥으로 내몬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친북 좌파·반북(反北) 우파 구도는 깨야 한다.”


◆“민족주의에 오염된 좌파가 문제”


―좌파는 대한민국이 통일 정부가 아니라 분단 정부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측면이 있다.


“좌파가 대한민국을 긍정하지 못하는 것은 민족주의에 오염돼 있어서 그렇다. 건국 당시, 남쪽은 북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주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좌파는 민족주의와는 상관없다. 식민지 해방운동에서 좌파가 민족주의와 결합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유산을 극복하지 못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선거 세 번 치렀더니 편을 가리지 않아”


―당신은 뉴라이트 기관지 ‘시대정신’ 같은 보수 매체에 기고하면서 우파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좌파들은 우파를 극우라고 비난하면서 한 자리에 앉기조차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불신이 누적된 것이지, 한쪽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겨레 21〉에서 최근 뉴라이트 지식인 3명을 인터뷰했는데, 비슷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난 인터뷰하는 매체가 달라졌다고 해서 말을 바꾼 적은 없다. 내가 보통 좌파 지식인들과 다른 것은 선거를 세 번 치러본 경험이다. 정치를 하려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고, 악수를 한다는 것이다. 〈시대정신〉에 기고한 뒤, 좌파 쪽에서 내용을 가지고 뭐라는 사람은 없는데, 대체로 왜 거기에 기고했느냐, 인터뷰했느냐 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내가 말한 내용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 자유주의자라면 사상의 자유 인정해야


―이승만 대통령은 사회주의자였던 조봉암을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 농지개혁을 주도하게 했다. 우파(右派)를 자처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포용력은커녕, ‘고소영·강부자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우파인 드골 대통령도 공산당·사회당 인사를 기용해 프랑스의 사회안전망을 만들게 했다. 선진국 가운데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구분하지 않는 나라가 있는가.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반대로 우리는 파시즘과 자유주의가 구분되지 않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 아직도 우리는 살고 있다. 보수에 바라는 것은 자유주의자라면 파시즘과 자유주의를 분명하게 구분했으면 한다. 자유주의자라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상의 자유까지 존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것 보고 전향했다고 하는데…


“작년 2월 조선일보와 인터뷰한 것을 보고, 내가 전향(轉向)했다는 사람이 있는데, 공산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입장을 바꾼 것은 1992년이다. 당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폐기하고, 의회 민주주의 노선을 받아들였다.


―왜 1992년에 노선을 바꿨는가.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 붕괴를 보면서 이론적 검토를 하다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를 꿈꿔”


―사회민주주의자로서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이런 말을 하면 꿈같은 얘기라고 한다. 우선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직업에 따라 엄청난 임금 격차가 생기는 게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이 때문에 과도한 경쟁이 일어나고, 개인의 소질과 취향에 상관없이 법조인이나 의사가 되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어렵다. 임금 격차가 그리 크지 않은 사회가 되면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아 형성기에 길을 찾지도 못한 채 경쟁에 매달린다. 그러다 30~40대가 되면 공허한 인생을 산다. 두 번째로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서 실업자나 노인, 장애인들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한국 사회는 너무 불안하다. 일류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더라도, 항시 불안하다. 쫓기면서 살고 있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 있기 때문에 기술 혁신도 일어나고, 사회가 발전하는 것 아닌가.


“탁월한 업적에 대해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법조계나 의학계가 사회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조리 빨아들일 만큼 중요한 직업인지는 모르겠다. 사회 보상 체계가 왜곡돼 있다. 이런 시스템으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발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태양계 바깥에 나가야 태양이 보인다.”


두 시간 가까운 인터뷰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그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했다. “태양계 바깥에 나가야 태양계가 보인다. 좌·우파 모두 자기의 모습을 상대화하고 객관화 할 필요가 있다. 지식인들이 흔히 성찰(省察)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난 회의(懷疑)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국 사회 전체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예의가 없고, 폭력적이고, 무대포이고, 극단적이고, 반지성적인 사회로 어떻게 선진국으로 갈 수 있는가.”

출처 : 난 B형 남자다.
글쓴이 : 석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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