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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롭게 지음 받은 `교회`(엡 2:1-10)에 대한 이해/송영찬

baromi 2008. 9. 13. 09:15

새롭게 지음 받은 '교회'(엡 2:1-10)에 대한 이해
송영찬, 기독교개혁신보 편집국장

 

첨부파일 새롭게지음받은교회.hwp


에베소서 2장 1-7절은 원문에서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이 문장의 주어는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4절)이며 '함께 살리셨고'(5절) '함께 일으키사'(6절) '함께 앉히시니'(6절)라는 세 개의 주 동사를 가진다. 그리고 이 동사들의 목적어는 '너희' 또는 '우리'라고 하는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다(Bruce B. Barton). 이 장문은 1-3절의 파격 구문과 4-7절의 서로 대조되는 진술로 구성된다.

 

이때 1-3절은 수신자들의 과거 상태 그리고 실제로는 모든 인류의 죄 있는 상태를 묘사한다. 반면에 4-7절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을 위해 일어난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이어 8-10절은 하나님에 의해 성취된 구원의 본질을 요약하고 있다.

 

또한 1-10절의 문장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그때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1-2절)라는 구절은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5절)를 중심으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0절)의 구절에서 각기 사용된 동사 '행하다'(          )를 통해 서로 극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 1:20-22)는 말속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영원한 기초이며 유기적 통일과 성장의 원동력임을 강조한 바울은 에베소서 2장 1-10절에서 성도들의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 죄의 죽음 아래 있는 인류

 

에베소서 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과 관련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귀에서 절정을 이루었음을 감사했다. 그리고 2장의 이 단락에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은 회심한 성도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능력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바울은 교회의 옛 상태를 가리켜 "(또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엡 2:1)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고 있다(본문의 역본들에서 '살리셨도다'는 동사는 5절에서 취한 것이다).

 

본문에서 '또한'(   , 개역성경에서는 생략됨)은 하나의 긴 문장인 1-7절의 내용은 바로 앞 절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는 결론을 가져온 앞선 단락(엡 1:15-23) 전체에 대한 연결어로서 기능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성도들은 자신들의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다. 이 죽음에 대한 묘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역사의 전환점이었다는 점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오는 세대에 생명을 가져왔다면 아직 부활의 삶에 참여하기 이전의 각 사람의 상태는 죽음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죄의 삯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오며(롬 6:23) 최종적인 형태로서 육체적 죽음과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배제된 심판을 포함하는 그 죽음은 이 생애에서도 부분적으로 경험된다. 이것을 가리켜 '죽음에 대한 실현된 종말론적 개념'이라고 한다(Andrew T. Lincoln). 이미 구약에서도 질병, 죄, 소외, 포로, 혹은 원수의 통치 아래 놓인 각 사람의 삶은 스올의 삶이나 혹은 죽음의 영역으로 여겨졌었다(시 13:1-3; 호 13:14; 욘 2:6).

 

이 죽음의 상태에 대해 바울은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고 밝히고 있다. 바울 신학에 있어서 죄와 죽음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롬 8:10; 고전 15:56). 이 상태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 풍조, 즉 이 세상의 세대에 속하게 하여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해악한 종교나 미신의 희생물로 전락시킨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지배 아래 있다.

 

당시 헬라 세계의 우주관에서는 행성간의 공간 특히 지구와 달 사이의 공간은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악마의 끊임없는 활동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Ralph P. Martin). 바울은 이러한 헬라 우주관을 도입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키려 하기 위해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대적하도록 일하고 있는 사탄의 정체를 밝힌다. 이 사탄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다(고후 11:13-15). 이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에 불순종함으로써 도덕적 타락이라고 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에 대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라고 바울은 밝히고 있다. 그들의 뒤틀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람의 본성이나 이성의 이끌림에 따라 사는 열매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고 지적한 목록에서 확인된다(롬 1:18-32).

 

이런 악덕을 행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 밖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이것들이 증거하기 때문이다(엡 4:17-19). 때문에 바울은 이처럼 도덕적 타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생래적으로, 즉 모태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상태에 있다(J. Calvin).
 
2.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교회

 

죄에 사로잡히고 사탄의 힘에 억눌려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고 소망 없는 인간의 상태를 제시한 바울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크고 사랑이 풍성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그 앞에서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인간을 죽음으로 끝나게 될 무익하고 소망 없는 삶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행동을 취하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긍휼에 풍성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행동하셨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1-7절 문장의 주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이 문장의 주어는 앞서 인간의 상태를 고발하고 있는 내용을 전적으로 부정함으로써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소망이 없는 어둠과 자포자기한 인간의 상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다 더 밝게 해 주는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사랑이다(엡 1:4).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한 분이다"는 이 말은 하나님의 진노, 즉 심판을 상쇄시키는 구약의 말씀이다(시 145:8; 합 3:2). 인간이 파멸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하나님의 애정 어린 이 관심은 두 가지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죽은 자를 살리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에서 오는 소외로 야기되는 노예 상태에 매여 있는 그들을 살리신다.

 

바울은 이 극적인 변화를 "그러나 하나님이 긍휼에 풍성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가 허물로 죽었을 때조차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4-6)라고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는 구절은 갑자기 등장해서 전체 문장의 흐름을 끊고 독립된 문장으로 마치 삽입된 구절처럼 나타난다(이 구절은 8절에서 재확인된다).

 

이러한 문맥의 흐름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받은 성도들에게 1-3절의 상황으로부터 극적인 변화가 나타났음을 강조하고 있다. '구원을 얻었다'는 단어는 완료 수동태 분사로서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사용된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가 구원과 관련되어 사용될 경우에는 미래 시제로 나타나거나 미완료 시제로 나타난다. 유일하게 우리 주님께서 각 개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막 5:34; 10:52: 눅 7:50; 17:19)고 말씀하실 때 과거 시제로 사용하셨다.

 

바울이 '구원받았다'는 과거 완료 시제를 여기에서 구원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신자들에게 은혜로 복을 주셨다고 찬송하는 베라카(엡 1:3-14)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성도들을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앉히시는 행동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Andrew T. Lincoln).

 

3.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교회

 

하나님께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신 결과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는 하나님의 행위로 연결된다. 이 내용은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 1:20-21)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행동'이 이제 직접 성도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모두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모두 하늘의 영역에 앉아 있다. 이 극적인 변화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바울은 성도들의 회심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일으키심을 받은 그 죽음이 육체적인 죽음이었던 것처럼 성도들은 그들의 죄악된 행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존재의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성도들이 이미 죽은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었던 존재들을 살리셔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새로운 '천상의' 실존으로 이끄심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는 성도들은 하나님에 대해 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I. Howard Marshall). 이로써 지상의 교회들은 하나님의 완성된 구원에 대해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바울은 한걸음 더 전진하여 악의 영역에서 교회를 천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으로 끌어올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행위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7).

 

이 구절은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엡 1:21)라고 밝힌 그리스도의 승귀가 구체적으로 성도들에게 구현되는 것과 관련된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현재적 높이 올리우심이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그의 백성에게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오는 여러 세대(      , 세대들)에서'란 구문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고 하늘에 앉히심을 받은 교회가 새로운 질서의 세계에 속하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높이 올리우심의 사건'에 포함되는 것처럼 이제 교회는 새로운 변화를 받은 그 순간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종말 이후의 영원한 세계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의 풍성함을 증거하는 실재가 되었음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모든 행동의 결과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즉 전 역사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신적 경험은 교회가 그 적대 세력들, 즉 이 세대의 신과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불의한 세력들에 대적하는 일에서 보다 분명하게 증거된다.

 

4.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

 

교회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의 풍성함을 증거하는 실재라는 사실은 ① 구원이 전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도권과 행위로 인한 것이며 ② 구원받은 자들에 의해서 행해진 그 어떤 행위에도 의존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은혜일 뿐이며 결코 구원받기 위한 행위의 보상이거나 보수가 아니다(J. Calvin).

 

이에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고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1-7절에서 전개된 논리적 결론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 은혜'는 7절의 은혜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5절에서 강조하고 있는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를 첨가하고 있다.

 

이 선언은 기독교 역사에서 한 획을 긋는 바울의 '이신칭의' 신학 사상의 완결편이다. 종교 개혁자들의 기치인 '오직 은혜, 오직 믿음'(sola gratia, sola fide)이라는 표어는 바울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누구도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어떤 공헌도 할 수 없다. '은혜로'와 '믿음으로'는 인간의 공로를 암시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의 행위는 구원의 근거가 된다. 그리고 믿음은 그 은혜에 의해 효과를 가져오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 믿음은 결코 자랑이나 공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칭의와 관련해 자신을 의롭게 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나님께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인간의 행위이지만 그것은 특별한 종류의 행위이며 구원이 작용되도록 허락하는 하나의 응답이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해 성취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Andrew T. Lincoln). 이런 점에서 바울은 구원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선물은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이때 '행위'는 '은혜'와 대조된다. 이 행위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모든 인간의 노력을 의미한다. 이 행위를 구원에서 배제하는 것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어떤 자랑도 용납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에 바울은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고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구원이 인간적 기원이나 인간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적인 선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은 존재라고 한다면 그들의 선한 행위가 그들에게 구원을 받는 원인이 될 수 없다. 구원이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은 그 구원이 인간의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의미한다(J. Calvin).

 

5. 마치는 말

 

구원받은 성도들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받은 결과이며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거룩하고 흠 없는 백성이 살아야 할 새로운 삶의 일부로서 선을 행하도록 계획해 놓으신 것을 행하는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성도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하신 구원을 새 창조로 이해하고 있다(갈 6:15; 고루 5:17).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그리스도 함께 일으키시고 또한 그들을 높이 올리시는 행동은 세상의 역사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타락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이것은 창조 전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이며 인치시는 하나님의 영을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엡 4:30).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통일시키는 것을 포함하는 가장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새 창조(엡 1:9-10)는 이미 역사 안에서 성도들에 의해 하나의 행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선한 일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목적이 된다. 이것은 성도들이 하나님 한분에게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지음받은 존재임을 강조한다(Andrew T. Lincoln).

 

이 사상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성도들을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했다'(엡 1:4)는 말씀에 의해 더욱 강화된다. 하나님께서 미리 그분의 주권적 목적으로 선한 일을 준비하셨다는 것은 신자들의 선한 행위조차 그들 자신의 결심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적인 은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들이 교회 생활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선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모든 자원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이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모든 선한 행위는 곧 하나님의 작품(workmanship)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구원과 새 창조라는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죄악된 일을 넘어뜨리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은 어떤 노력이나 지적인 선택이나 개인적인 성품이나 섬김의 행위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호의를 통해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단순히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섬기고 교회를 세우기 위해 구원을 받았으며(엡 4:12) 그 안에서 비로소 소위 믿음과 행함 사이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행위는 구원을 낳지는 않지만 구원받은 자의 증거(약 1:22; 2:14-26)이기 때문이다(Bruce B. Barton).

 

 

교회와 성경에서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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