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2:5-12, 기도와 하나님의 주권, 04.2.15, 박홍섭 목사
지난 두 주간에 걸쳐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가 하는 것을 예루살렘 교회가 당한 흉년과 야고보의 죽음, 그리고 베드로의 극적인 구출사건을 통해 확인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신자의 인생을 주관하실 때 개인의 세상적 형통이나 복락의 차원이 아니라 천국복음의 확장과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그들이 거룩과 영광의 차원에서 완성되어져 가는 방향으로 쉼 없이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것을 더 분명히 하기 위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베드로가 자기의 구출을 확인하고 독백처럼 뱉어내는 감탄이 등장합니다. 11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베드로가 한 이 독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피는 것이 오늘 설교의 요지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베드로의 구출 사건과 그의 독백이 교회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결과처럼 등장하지만 또 바로 뒤에 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베드로가 구출된 것을 믿지 못하고 있는 장면으로 연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그리고 감옥안의 놀라운 기적의 사건들이 펼쳐집니다. 천사들이 잠들어 있는 베드로를 깨우고 베드로는 그 천사의 인도를 받아 극적으로 탈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봐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을 허락하신다’로 이 본문을 해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인 12절 이후를 보면 정작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던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이 행하신 베드로의 구출사건을 믿지 못하는 장면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믿음의 기도였기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아 베드로를 극적으로 감옥에서 이끌어냈다는 식의 생각이 본문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해석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간절한 기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믿음의 기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베드로의 구출사건을 기도와 무관한 독립적인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고 기도와 연결시켜서 펼쳐나갑니다. 그렇다면 과연 여기에서 기도는 어떤 의미로 등장하는 것입니까?
겔36장을 보면 이런 차원에서 기도의 의미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바벨론 포로 중에 기록된 선지서입니다. 그 내용은 그들이 이렇게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무너진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다는 소망의 예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이 회복시킬 이스라엘은 더 이상 혈통이나 민족단위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이스라엘, 다시 말하면 신약의 교회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겔36:24-32절을 보십시오. 여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겠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스스로 정결케 하고 스스로 회개해서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혼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깨끗케 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이키십니다. 그래서 주어가 전부 하나님을 의미하는 내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열국중에서 취하여 내고 하나님이 모으시고 하나님이 돌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맑은 물로 그들을 뿌려서 정결케 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새 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그들의 속에 두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고 그들의 하나님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든 더러운데서 구원하시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나중에 하나님이 이렇게 구원의 역사를 베푸시고 나면 그제서야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는 참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죄 밖에 지은 것이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셨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케 하셨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 자신들의 과거의 소위를 부끄러워하고 한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회복,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그럴 만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다시 겔36:33-36절을 보십시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모든 죄악에서 정결케 하는 날에 성읍들에 사람이 거접되게 하며 황폐한 것이 건축되게 할 것인즉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지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구원의 사역을 이루시기 때문에 구원의 일과 회복의 일들이 일어나지 너희가 그럴만하게 굴어서 그렇게 해준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언제나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입니다. 우리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7절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이 전부 다 하시는데 이상하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전부 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하는 이 구원의 사역에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동원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그래도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오늘 행전 본문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교회가 옥에 갇힌 베도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결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베드로를 극적으로 구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과 기적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원인으로서의 기도가 아닙니다. 여기 기도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향한 그의 계획을 한 순간도 놓지 않으시고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죄인에 불과해요. 기도하는 내가 대단하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기도해도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깨끗하지 않고 정결하지 않고 믿음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계획을 이루어가시고 거룩과 영광의 차원에서 나를 만들어 가시는 그 열심을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것이 기도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도 너희가 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겔36장에서 확인하는 것이고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2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건인 것입니다. 교회가 간절히 기도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일을 믿지 못하고 있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그것을 믿는 신자에게 허락된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주관자이며 그의 뜻을 위해서라면 나 같은 사람도 사용하시고 구원하시고 거룩과 영광스럽게 만들어가시는 구나. 하나님은 그의 뜻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구나 야고보를 죽일 수도 있고 베드로를 살게 할 수도 있으시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언제나 여기에 대한 감탄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시구나.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같은 분이 없으시군요. 제가 하나님 앞에 항복합니다. 이 온 천하에 하나님 같은 분이 어찌 있겠습니까? 어떻게 나 같은 것을 구원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거룩과 영광의 자리에 불러내십니까? 그리고 나 같은 것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추적하시고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어가십니까? 왜 거기에 그토록 하나님의 사랑과 열심과 자비를 동원하십니까? 내가 봐도 나는 이런 사람인데 왜 그러십니까? 라는 감탄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오늘 본문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살아난 베드로가 터트린 고백이 이 정도라면 죽은 야고보야 오죽하겠습니까?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그는 천국에서 비교할 수 없는 더 놀라운 감탄과 고백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왜 나같은 사람을 이 천국에 입성하게 하는 것입니까? 왜 나같은 사람에게 순교의 영광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하면서 찬양과 감사와 경배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깨달음과 감격이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바로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이 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기도라는 채널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때문입니다. 기도안하는 것은 그런 차원에서 이 감격을 깨닫고 누리는 은혜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한다고 하면서 기도안하는 사람 판단하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하나님이 만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기가 의롭게 여겨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분들은 분발하십시오. 그래서 이 놀라운 신앙의 감격을 누리십시오.
지금 나라가 참 어렵습니다. 경제가 어렵습니다. 기도할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우리도 베드로처럼 천국의 야고보처럼 이런 감탄을 배울 수 있는 기회입니다.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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