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제목 : 나는 주 안에 주는 내 안에/손성은목사님

baromi 2008. 6. 16. 08:19

제목 : 나는 주 안에 주는 내 안에
말씀 : 요한복음 15장 5~7절
설교 : 손성은목사

 

 

 

 

http://www.samil.org/board/vod.php?Code=J&No=215  동영상

 

 

 

 

삼일교회주일설교/2008년6월15일

“나는 주 안에 주는 내 안에”

(요한복음15장5-7절)

 

예수님께서는 참포도나무가 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로 상징된 이스라엘백성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참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가지로 삼으셨습니다. 그 가지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 가지들인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너희 안에 내가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다.” 이 말씀은 곧 참 그리스도인들 되어 있는 바로 우리들을 향하신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리스도인된 가지들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특권은,참 가지로 예수님 안에 들어오게 되면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보살피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글성경은 오해를 불러오게 합니다. 2절에,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신다”고 합니다. 이때 ‘제거해 버린다’는 말은 잘못 번역된 말입니다. 이 잘못된 번역에 기초해서, 참 그리스도인이 한 번 얻게 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되었습니다. 이 ‘제거해 버린다’고 번역된 말의 헬라어원어로, ‘아이레이’인데, 원래의 뜻은, 들어올린다, 집어올린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제거해 버린다’는 뜻이 파생되기도 하지만, 본문의 맥락에서는 ‘들어올린다’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포도원에서 포도나무가 자랄 때에 철사나 줄 같은 것으로 잡아 올려 주어야 합니다(사진). 가지가 땅을 따라서 기어가게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적당한 높이로 가지가 공중에서 편편하게 펴져 있도록 가지를 잡아서 올려주어야 합니다. 포도원농부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열매맺지 못하는 나무가 없도록 손질하시는 모습이 2절의 모습입니다. 참된 가지가 된 사람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시는 것은, 그 가지를 올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다가 낙심하신 일이 있습니다. 열매맺지 못하며 살아가십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옛자아와 욕심과 정욕을 못박았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어떤 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들어 올려 주십니다. 열매맺게 하십니다.


본문의 6절도 오해하기 쉽습니다. 6절의 ‘가지’라는 말은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중간의 ‘그것’이란 말은 원어로 복수(아우타)로 되어 있습니다. 가지를 제거해서 내버린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가지는 계속 두는데, 그 가지의 열매맺지 못할 부분을 제거한다는 것입니다. 곧 참신자들이 열매를 맺지 못할 때에 그 신자를 끊어내어서 지옥의 불에 살라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무엇입니까? 참신자된 자의 삶 속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행실들을 잘라 내어버리고 정리를 해서 그런 것들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거짓된 일을 하고 악한 일을 행할 때에 그런 것으로 인하여 이룬 그 어떤 일들도 천국에 들어갈 때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농부되신 아버지께서 그런 것들을 잘라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그리스도인된 자들의 첫 번째 특권입니다.


둘째 특권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응답받게 되는” 특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은, 14장13절에서, 그리고 15장16절에서도 하셨습니다. 이 말을 우리는 자칫 오해하기 쉽습니다. 번역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이용해서 자칫 ‘긍정의 힘’ 같은 것을 주장하기 쉽습니다. 우리 인간 안에 무슨 대단한 힘이 있는 것처럼 이런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머리 속으로 상상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빌어야 할 지 모를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여길 때에 어떻게 3단기어자전거가 나에게 필요할지 6단기어자전거가 필요할지를 모르시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구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 안에 너희 안에 내가, 곧 나의 말이 거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도가 응답되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에 일치되는 것을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1억원이 필요하십니까? 승진이 필요하십니까? 새로운 직장이 필요합니까? 아니면 건강이 필요합니까? 먼저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것들이 필요한가 하고 말입니다. 나의 구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에 합당한가?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일치해서 말한다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열매입니까? 여러 가지 열매 중에서 성령의 열매라고 하면 틀릴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이것을 막을 법이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의 생활에 성령의 열매를 맺히기 위해서, 1억원이 필요합니까? 승진이 필요합니까? 건강이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과 말씀에 나의 소원이 일치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할 때까지 그 뜻을 여쭤보는 것이 기도의 첫단계입니다. 그 뜻이 확실하다면 낙담하지 말고 끝까지 구하십시오. 저는 삼일교회의 담임목사로서만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 한 기독교인으로서 삼일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과 말씀에 합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삼일교회가 부흥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리가 왜곡되는 것 아닙니까? 삼일교회가 부흥되어야 하나님의 영광과 진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놓았던 그 뜻이 옳았다고 증명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이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지금 하나님의 진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교회가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주에는 성찬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을 준비하기 위해서 연속특별기도회를 가집니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실 때에 이번 성찬이 너무나도 특별한 성찬이 될 줄로 믿습니다. 경기가 하수상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질문해 보십시오.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가”,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가?” 예수님 안에서 맺는 열매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모두 제하여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님이 있을 때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께 영광이요 제자로서 인정받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예수는 참포도나무 우리는 가지이니/성령의 열매 맺고저 주님 안에 영원히 살리라/주 안에 살리라 주안에 살리라 사랑과 기쁨 건강과 평화/영원한 행복과 능력과 승리와 모든 것 더하여 주시리”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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