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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녀의 창조/존 칼빈

baromi 2008. 4. 26. 08:22

남녀의 창조

 

 

이 설교는 지난 1559년 9월 23일 토요일에 행한 것이다. 설교에 붙여진 소제목과 괄호 및 주는 원문에 없는 것으로,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첨가해 번역, 편집했다. 박건택 교수가 번역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5-17).

 

1. 여자의 창조
(1)사람의 독처를 좋지 않게 여기심-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2)확대된 의미-인류의 하나 되게 하심
2.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1)같은 하나님의 형상 그러나 돕는 배필
(2)타락으로 인한 질서의 파괴
(3)경외함 없이 이뤄지는 세속적 혼인
(4)바람직한 부부 관계-부양과 도움/가장(家長)됨과 복종
3. 아담과 짐승들과의 관계(남녀 관계의 대조로)
(1)창조 시: 짐승들이 절대 복종
(2)타락 후: 짐승들이 사람의 수하를 떠나 대적함
(3) 구속/회복: 하나님의 통치 회복=창조 질서 회복
4. 남녀가 하나 되게 하신 의미
(1)서로 도움
(2)일부일처제
(3)상호 존중과 협력
5. 결혼을 제정하신 까닭
(1)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2)실제적인 용도-우리 정욕의 제어 방편(*혼전 동거에 대한 입장)
6. 정리

 

1. 여자의 창조
모세는 창세기를 통해 인류의 완벽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그는 이미 간략하게 언급했던 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남자와 여자를 지으셨다고 했습니다.1 그분께서 친히 남편과 아내를 만드셨으나, 특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일 모세가 지금부터 우리가 보게 될 내용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자의 창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배려와 예비를 잘 설명하기 위해, 남자가 혼자 있을 수 없음을 알고 표명했습니다.

 

모세가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온갖 종류의 짐승들을 만드신 후에 그것들을 아담에게 데려 오셨습니다. 아담은 모든 짐승들을 영주와 주인처럼 소유했으며, 그에 대한 징표로 모든 짐승들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홀로 있었습니다. 비록 모든 짐승들이 아담에게 복종했지만, 그는 짐승들과 친밀하여 짐승들이 어떻게 유용한지에 대해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언제나 반쪽처럼 불완전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그의 곁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여자를 만들어 주셔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록된 첫 번째 내용입니다.

 

동시에 여자가 만들어진 방식이 기술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흙으로 만들기 원하시지 않고 아담의 신체에서 취하셨습니다. 이것은 온 인류에게 거룩한 결합이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고, 상호간에 사랑의 유대가 있게 하기 위함이며, 한 인간에게서 만들어진 이상 각자가 서로를 이웃으로 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인류가 한 인간에게서 나왔듯이, 인류는 여자에 의해 존속됩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 중에서 하나를 취하셔서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비록 그 자리에 살로 메워지고 그로 인해 아담의 힘이 약해지지 않았다고 해도, 아무튼 그의 일부가 여자에게 주어졌던 것은 우리가 말한 대로 즐거움과 쾌락을 위한 연합을 목적으로 할 뿐 아니라 그렇지 않을 경우에 자연 질서가 훼손됨을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2 이런 이유에서 바울 역시 자신의 육체를 거부하지 않았다(말라)고 주장합니다.3 이와 같이 결혼은 사랑과 존경을 내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여자가 결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1)사람의 독처를 좋지 않게 여기심-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무엇이 좋고 유익한지에 대해 절대로 잊지 않으심으로써 그분께서 참 아버지로 나타나셨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분께 영예와 존경을 드리도록 고무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으로 세상을 채우신 것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인간이 만족할 상태를 주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고독보다 인간 본성에 반대되는 것은 없습니다. 설령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한다고 해도, 즉 온종일 식탁이 우리에게 차려지고 누울 수 있는 침대가 갖춰지며 우리의 필요에 속하는 모든 의복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혼자서 살아야 한다면 그런 삶은 거의 죽어 있거나 슬픔으로 가득한 것이 됩니다. 이런 복에 우리는 지루해 할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친절이 나타났습니다. 그분께서 사람에게 동반자가 있기를 원하셨고 따라서 질서가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이브의 창조에서 얻는 교훈은 우리의 조상인 아담을 통해 만들어지고 그의 씨로 인류가 생식되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 하나가 돼야 하며 각자는 이웃에게서 자신의 살과 뼈와 본질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치하지 못하고 서로 섬기지 못한다면 유죄일 뿐 아니라, 너무도 끔찍한 배은망덕이 입증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에 대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을 위해 명하신 것을 우리가 사용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듯, 철회될 수 없는 확정 판결4입니다.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합시키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한 채, 서로 떨어지기를 원합니다. 첫째, 변경될 수 없는 질서를 뒤집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까요? 둘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과 유익을 위해 명령하신 것을 거절한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너무도 크고 사악한 죄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결이 어떤 것인지 주목해야 합니다. 이미 부분적으로 말했듯이, 우리가 (누군가와) 동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슬프고 쓸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홀로 되지 않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이는 이브의 창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의 동반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짐승들 중에서 동반자를 찾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말한 대로, 사람은 결혼에 의해 완전하게 됩니다.

 

(2)확대된 의미-인류의 하나 되게 하심

 

이것은 온 인류에게로 더욱 확대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결하셨을 때, 이는 남편이 아내를 갖도록 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화합과 일치가 유지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다”5는 바울의 원리가 우리를 이끌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결합시켜 놓으신 나머지 온 인류에게 한 몸만이 있고 우리의 큰 자와 작은 자가 그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한 육체이며 나아가 각자가 이웃을 섬겨야 한다는 거룩한 유대감으로 있을 수 없다면, 우리는 사나운 야생 짐승임에 불과하다고 말한 셈입니다. 그리고 그 기원은 우리를 선한 평화로 행하도록 이끌어야 하는 바, 이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침해할 수 없는 권위에 의해 결합된 사람들과 더불어 일치하는 것이 우리의 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다”라는 구절의 본래 의미입니다.

 

2.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

 

(1)같은 하나님의 형상 그러나 돕는 배필

 

이제 하나님께서 가까이 있어 돕는 배필을 그에게 만들어 주길 원하신다고 첨가된 말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와 직무가 무엇인지,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질서가 지켜질 때 그에 대한 유익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분명 “그를 위하여 돕는”(창 2:18)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모세가 앞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했을 때처럼, 복수 동사를 사용하지 않고 여기서 “내가 만들리라”고 쓰고 있는 이유는 여자가 아담 안에서 이미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6

 

‘사람’이라는 말이 있고 ‘남자’와 ‘여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이미 아담 안에서 준비되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취한 형태를 상세하게 기술하려는 이유에서 “내가 만들리라”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여자는 존엄성과 영예에서 결코 제외되지 않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 어떤 공상가들은 여자가 남자와 마찬가지로 존중되지 않는다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기 위해 “만들자”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가 만들리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7 아무튼 이미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와 여자에게 공통적입니다. 단지 여기서 부수적인 것에 대해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연유로 하나님께서 단지 “내가 만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여자/아내가 갖는 직무에 대한 교훈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즉 아내는 남편을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자를 그런 조건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가 어떤 목적으로 창조되었는지 알면서도, 자신의 의무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합당한 피조물이 아닌 것이 됩니다. 만일 여자가 하나님께 대해 창조주이심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세상에 어떤 상태와 신분으로 두셨는지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반목 없이 평온하게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매우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을 우리는 실제로 목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형상의 표지를 가진 여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커다란 수치입니다. 모세가 덧붙인 내용, 즉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고 남자들을 돕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말입니다.

 

(2)타락으로 인한 질서의 파괴

 

이제 확실한 것은 최초의 조상이 받았던 조건을 우리가 유지했다면 하나님의 복이 도처에 비췄을 것이고 모든 결혼에서 평화와 화합이 보였을 것이며, 남편은 용의주도하게 우두머리로서 아내를 다스렸을 것입니다. 아내 역시 남편과 화합하고 그를 돕는 성향에 대해 아무런 반감 없이 가졌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세상에서 보는 불화와 다툼과 반목과 이혼은 아담의 저주받은 타락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모든 것들을 일소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토록 신성한 혼인이라는 연합은 소멸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그 흔적을 남겨 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혼인이 너무도 엉망이 되는 바람에 하나님께서 혼인에 두신 은혜가 심히 모호해졌으며 이미 널리 퍼져 있는 계시의 작은 불씨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남편들이 방탕하되, 어떤 사람들은 경솔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위도식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호색과 문란을 일삼을 때마다 아내들도 그들의 편에서 맹렬히 대들며 반역할 것인 바, 같이 문란하거나 아무런 조신함이나 정숙함이 없을 정도로 남편을 반대하고 괴롭히기 위해 행동할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우리의 조상인 아담이 혼인의 창설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데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을 경우에 이미 밝힌 것처럼8, 우리는 하나님께서 혼인의 창설자이시기에 혼인을 통해 다스리며,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치 천사의 멜로디가 있을 정도로 모두를 축복하시리라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 혼인은 독자적인 것이 될 수 없고 이웃들은 서로 도와야 하며, 모든 아내는 이웃 친척을 불러 의무를 행하게 하며 모든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이 타락하지 않았을 경우,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일반적인 관계가 존재했을 방식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 있는 악이 우리에게 전가되었음과 하나님께서 만사를 제대로 배치하시지 못했다며 비난하고 반박할 수 없으며 오히려 모든 것들이 우리 조상의 죄로 인해 뒤죽박죽돼 모두가 유죄하다는 사실을 항상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담을 정죄하고 우리의 무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안에서 모두 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9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모든 은혜들을 베푸신 것처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와 함께 동일한 정죄에 포함되었고 타락했습니다. 사실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논쟁으로 들어가선 안 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가 이미 독과 악의만을 가진 작은 뱀과 같음을 경험을 통해 확신한다면 말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과 전투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타당합니다.10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성향은 그분의 원수요 그분의 정의에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3)경외함 없이 이뤄지는 세속적 혼인

 

그러므로 온 인류의 만사가 그토록 뒤죽박죽임을 볼 때, 심지어 남편들과 아내들이 점점 더 악을 증대시킴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신음하며 겸손해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모든 혼인이 윤택하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다른 모든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혼인을 실행해야 합니다. 실로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스리시게 하기 위해, 우리는 손가락을 까딱거려 하나님을 불러내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바른 목적과 관련되지 않는 것을 마음에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과 상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발걸음과 행위들을 절제 중에 유지하되, 특별히 중요한 결혼에서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그런데 혼인이 어떻게 이뤄지나요? 우리는 하나님을 화나게 하기를 원하는 듯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세상을 따라서 이익과 이득을 추구하기만 바란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아내를 취하는 남편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부 관계로 신망을 얻기 위함이거나 아내가 무엇인가 가져올 것이 있다고 여겨질 때 한 밑천을 잡기 위함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명하셨기 때문에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물론 모두 자신들이 이런 목적을 지향한다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실제로 결혼을 왜 제정하셨는지, 남편이 무슨 목적으로 아내를 취해야 하는지 바른 마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백 명 중에 한 명 정도 발견할까 말까입니다. 이런 것들은 전혀 고려되지 않으며 오히려 당사자들만 옮겨 놓는 미친 사랑, 탐심, 야망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과 그분께서 주신 규칙이 망각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을 취하나요? 오직 속이고 거짓을 말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이 매사에 커다란 불성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영역에서 결혼은 압도적입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세상의 모든 공장과 시장에서 행하는 것 이상으로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기와 악한 거래 없이 더불어 살지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수치스런 일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직물, 냄비, 신발, 밀, 포도주, 농산물 등을 팝니다. 그런데 도처에 거짓과 거짓 선서가 있기 때문에 함께 계약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혼인이 악용되는 것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끔찍하고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거룩한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2장에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라”고 기록돼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11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물론 다른 것들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 사실이지만 혼인에 특별한 위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들보다 여기서 더 파렴치하게 잘못을 저지릅니다. 모두가 마술에라도 걸린 듯, 결혼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고 거짓 선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실 (결혼 전) 남자들로 말하면, 그들은 작은 천사들일 것입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결혼하고 혼인식을 치른 다음날부터 악마들입니다. 그들은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할퀴고 물어뜯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지만 결코 놀라선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처럼 맹렬한 반역으로 하나님을 화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다음의 원칙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비록 우리 조상 아담의 타락으로 우리가 방탕하고 야수처럼 되었고, 인간들이 극도로 강퍅해지며, 하나님을 가까이 바라보지 않고선 단정한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방종하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바람직한 부부 관계-부양과 도움/가장(家長)됨과 복종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돌아갑시다. 즉 아내는 남편을 돕기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항상 남편 앞에 있어 돕는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사용하는 단어12는 아내가 항상 남편 가까이 있으며 소통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은 짐승을 지배했으며 짐승들은 인간과 같은 반열에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에게 도움을 줍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도움은 여자의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움이라는 말은 여자가 남자에게 복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모든 법에서 면제된다거나 아무런 의무 없이 아내를 지배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남편의 권위는 하나님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듯이, 남편은 우두머리가 되고 연약한 아내를 부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묵상해야 하는 내용이며, 결혼할 사람들이 항상 기억해 둬야 할 내용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자를 남자 가까이에 있도록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든 이것을 고려할 때, 참된 경외로 행하며 하나님을 부르는 상태에 있을 때, 결혼에서 자신의 책무를 행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을 때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자가 도움이 되리라는 말씀은 남자를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의 시작부터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변덕스럽고 경박한 욕구가 있었던 사람들, 따라서 이런저런 일로 어떤 것이든 도에 지나쳤던 사람들은 “아, 만일 내가 지금까지 많은 슬프고 유감스런 일을 당했다면 그 잘못은 내게 있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내 역시 남편을 방해하기 위해 있어선 안 됩니다. 아내가 남편의 걸림돌이 되어 방탕하거나 바른 길에서 이탈하면 안 되며 오히려 서로 잘 어울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맨 먼저 주목해야 할 내용입니다.

 

3. 아담과 짐승들과의 관계

 

(1)창조 시: 짐승들이 절대 복종

 

이제 한걸음 나아가 모세는 하나님께서 온갖 짐승들을 창조하시고 그것들을 아담에게로 데려오셨다고 우발적으로 덧붙이고 있다. 이는 모든 풍요함은 인간을 만족시킬 수 없으며, 반려자가 있어야만 인간이 활기를 잃지 않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비록 모세의 의도가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들을 인간들의 용도에 복종시키시고 인간들로 하여금 짐승의 주인과 상전이 되게 하셨다는 점에서 그분의 호의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앞서 부분적으로 다뤄진 적이 있습니다만, 본문의 말씀을 위해서 몇 마디를 남겨두었습니다.

 

사실 모세는 어떻게 아담이 모든 종류의 짐승들 위에 주어진 통솔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인가요? “하나님이 그들을 아담에게 데려왔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방식으로 짐승들을 모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짐승들이 처음 사람에게 복종하고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으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짐승들을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모자라서 종종 흑백을 가릴 줄 모르는 것은 죄에 기인한다는 점,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 안에 있던 것과 같이 그리 순수하지 못하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겸손하게 할 근거를 주시는 방식이며, 우리에게 겸손하게 되는 일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혐오스러운 교만과 자만으로 가득 차 있는 한 말입니다.

 

(2)타락 후: 짐승들이 사람의 수하를 떠나 대적함

 

따라서 기록된 대로 아담이 모든 짐승들에게 단번에 이름을 붙여주었을 때, 그가 놀라운 이성과 지혜를 가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짐승들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로,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짐승들은 이런 복종에 머물렀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야수들이 우리와 전쟁을 벌이고, 많은 유독성 짐승들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며, 우리는 몇몇 야수들에게 벌벌 떨어야 하고, 어떤 짐승들을 길들이고자 할 때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변화는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무엇에 기인합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땅의 불쌍한 벌레인 우리가 최고의 권세와 영향력을 가지신 분을 따르지 않고 그분께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짐승들은 우리에게 복종한다고 생각합니까? 무슨 근거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만일 짐승들이 우리에게 복종한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탁월한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탁월함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섬길 정도로 우리를 탁월하게 만드셨다면,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그분의 장중에 있다는 조건 하에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멍에를 걷어내기를 원했고 지금도 마음대로 하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짐승들이 우리를 대적하여 전쟁을 벌인다는 점에서 우리의 반역이 가져온 불행을 응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법칙을 짐승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만일 변화가 인간 편에서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항상 지속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쉽게 우리를 섬기는 짐승들을 가졌을 것이며, 다시 말해 그들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별히 필요하지 않더라도 짐승들은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경의를 표했을 것입니다.

 

(3)구속/회복: 하나님의 통치 회복=창조 질서 회복

 

또한 만물을 회복시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대해 언급될 때, 오늘날 어린 아이가 흉측스러운 짐승들을 데리고 다니고 그들을 어렵지 않게 조치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더 이상 해치지 않는 뱀들과 함께 놀 것이라고 기록돼 있는 이유입니다.13
사실 우리 안에 죄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 동안 그 열매를 거두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짐승들에게 오만과 잔인함이 있고 인간과 적에게 그토록 반항적이라는 사실이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한 도리를 돌려드리지 못했기 때문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했다는 것이 우리가 모든 복을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증거였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선, 그분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우리도 당연히 짐승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짐승들이 하나님의 보복을 수행하고자 한 것처럼 이성으로 행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런 성향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의지가 그들이 인간에게 복종하는 것임을 듣지 않고서 이해했고 또 그 일에 몰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그들을 부추겨 우리와 싸우게 하는 충동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진노의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셨음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짐승들이 우리의 조상인 아담에게로 이끌려 왔고 아담이 그들에게 각각 이름을 부여했다고 말한 모세의 기록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4. 남녀가 하나 되게 하신 의미

 

(1)서로 도움

 

모세는 아담에게 더해진 반려자에 관해 말하면서, 혼인에 대해 높이 평가합니다. 이로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이요, 하나님께서 인류를 아름다운 관계로 연합시킴으로써 지극히 후덕한 모습을 드러내셨음을 인간이 깨닫지 못할 때 배은망덕하고 눈먼 자들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결혼을 인간으로 하여금 그 신분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시고, 남자에게 자신을 위한 특별한 도움을 가지게 하시며, 여자도 남편이라는 동반자를 갖도록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연합을 지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 상대가 있는 것과 같이 한쪽이 다른 쪽을 이끌어 상호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두 당사자보다 더 멀리까지 확대돼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축복이 모두를 위한 것이요, 심지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남자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그는 이웃들과 더불어 서로 도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이들은 창조의 질서와 목적을 알아야 하며, 쇠약해진 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결혼을 통해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복을 망각해선 안 되고 발로 짓밟아서도 안 됩니다. 이는 하나님을 화나시게 하며, 경험으로 보듯이 그분의 복을 불행으로 바꿔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일부일처제

 

하나님께서 특별히 “돕는 배필을 만들자”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가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 이미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여자들이 돕는 배필임은 사실입니다. 이는 바울이 말한 바, 남자가 여자로 말미암아 존속하기 때문입니다.14 하지만 혼인 문제에선 “그의 모양을 닮은 돕는 배필을 만들자”라고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충분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행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결혼에 대해 언급하면서, 하나님에게 영이 모자라지 않으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원하셨다면 아담에게 두세 명의 아내를 만들어 주셨을 것이지만 단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음을 특별히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온전한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 명의 남녀라고 되어 있지 않고 한 남자와 한 여자라고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제도화된 혼인 결합이 있습니다. 바울이 “각 남편은 자기 아내를 두고 각 아내는 자기 남편을 두라”고 선언하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한 남자가 여러 여자를 갖지 않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돕는 배필로 만족하는 것은 방탕한 욕망을 제어하는 고삐가 됩니다. 여자도 자신이 남편과 결합했음을 알아야 하며, 시선을 더 멀리 확장해선 안 되고, 하나님께 반역하기를 원치 않는다면 마음을 남편에게 둬야 합니다. 마귀가 혼인 질서를 부패시켰기 때문에, 이 점을 우리는 더욱 유의해야 합니다. 여러 여자들을 갖는 일이 항상 있어 왔기 때문에 마귀는 적법한 일로 믿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처 제도는 관례였습니다. 오늘날 터키인들 사이에 이런 야만 행위가 지속되고 있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한계 속에 구속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남자에게 한 여자를 마련해 주셨다면 그것에 머물러야 합니다. 여자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한 하나님과 싸우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돕는 배필”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더욱 명심해야 할 내용입니다. 이제 우리는 혼인 규칙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그것은 남자가 머리요, 여자는 그와 너무도 잘 일치해 바울이 말하듯이 둘은 오직 하나라는 것입니다.15

 

(3)상호 존중과 협력

 

이제 모세가 이 가르침에 대한 보다 큰 주장을 위해 덧붙이는 말로 가봅시다. 여자는 짐승이 만들어진 것처럼 흙으로 지음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수캐나 암캐는 인간에게만 특별한 것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그런가요? 이미 지적한 대로 주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시면서 걸작품을 만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는 그분의 형상이며, 인간은 이 땅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다스리며, 그분의 모든 재화를 소유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취해졌으며, 이런 점에서 여자는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과 (이런) 본성에 따르지 않을 경우에 그것과 전투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의 의무에 대해 경고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상호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도울 의무가 있으며, “여기에 나의 일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각 여자를 만들기 위해 매일 각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옛적에 행해진 것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우리가 하나라는 침해될 수 없는 법칙을 세우셨다는 것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에 대해 자신의 반쪽으로 여겨야 하는 바, 누구도 자신의 육체를 미워하고 버리지 않습니다.16 남자는 여자를 돕되, 마치 자신의 몸의 일부를 돕듯이 해야 합니다. 여자 편에서도 자신의 존재 기원이 남자에게서 받는다는 것을 앎으로써 절제 있게 행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힘으로 존속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부친들이 우리를 낳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의 모친들도 뱃속에서 우리를 잉태하고 양육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가 변덕스럽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어 두고자 했음을 알아야 하며, 각 사람은 타인의 손해를 통해 자신의 이득과 이익을 구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의무를 나머지 것들보다 더 좋아하도록, 모세가 가르치는 것을 바르게 실천해야 합니다.

 

5. 결혼을 제정하신 까닭

 

(1)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성경에 여자가 남자에게 소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필요한 돕는 배필을 마련해 주셨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여자가 남자의 본질에서 취해졌음이 알려지지 않은 채 있었다면 이 사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교훈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그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 했습니다. 곧 아담이 자신의 본질에서 여자가 취해졌음을 알았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갈비뼈에 대해 알고, 자신의 모든 혈통의 주인이고 교사가 되며, 하나님의 명령이 세상 끝까지 실행되고 모든 인류가 그것을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2)실제적인 용도-우리 정욕의 제어 방편(*혼전 동거에 대한 입장)

 

이제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제정되었을 때는 온전한 성격이 아니고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말합니다. 사실 오늘날 결혼이 우리에게 유익한, 심지어 우리의 구원에 필요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결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에서 제외시키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17 바울은 결혼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결혼을 무절제에 대한 처방으로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 이후 과도한 애정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순수하고 질서 잡힌 상태에 머물렀다면, 남자들과 여자들은 노골적인 애욕으로 자극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거의 욕망이 이성과 지성보다 짐승에 더 가까운 오늘날처럼 말입니다.18

 

결혼은 죄에서 오는 무절제를 치유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바로 치유의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비록 남녀의 동거가 수치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결혼이 개입될 때는 죄의 탓으로 돌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분께서 결혼을 명하심으로써 결혼이 우리를 혼동시킬 수 있는 이 파렴치함을 덮기 위한 영예로운 베일과도 같기를 원하셨습니다. 고로 이것이 오늘날에 있는 필연이며 우리는 이것을 우발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필연은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에서 유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브를 창조하신 것은 평생 남자를 수행하고 자손을 과도하지 않게 생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모든 애정은 잘 억제되어서, 만일 우리가 최초의 온전함에 머물렀다면 세상에서 우리에게 속할 그 어떤 것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잔재를 남겨두신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풍부히 가질 수 있었을 그것을 다만 맛만 볼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결혼을 제정하면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결을 내리신 것은 오늘날 우리의 육체에 있는 부패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 결혼이 남녀에 유익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즉 그들이 서로 한 마음으로 살고, 교제와 가락이 있으며, 각자 자신의 살과 뼈를 알고, 남편은 자신의 일부가 아내임을 알며, 아내는 자신이 남편에게서 취해져서 그와 결합되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혼의 첫 번째 교훈입니다.

 

6. 정리

 

오늘날 우리는 결혼이 이것 때문에 유익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즉 인류가 존속하며 시대에 걸쳐 새롭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생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또 우리가 서로 도울 수 없다면, 삶의 특별한 상태나 조건 혹은 방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여기에 결혼이 돕는 그 무엇이 있는 겁니다.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집에서 특별하게 도움을 받는 일입니다. 동시에 절제의 은사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억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우리는 자신의 열정에 맞서 싸우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와 일을 할 때, 그들이 하나가 될 때, 마치 거울에서처럼 훌륭한 삶의 모범으로 비칠 때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지어 아내가 불만일 때처럼 상대 중에 하나가 일치할 수 없을 때도, 남편은 그녀를 돕고 온전한 겸손으로 눈을 낮추고 “아, 주님께서 내게 이 처방을 마련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깨우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남자가 무절제에 빠졌을 때, 그는 “아, 나의 아내가 비록 사악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더욱 의무감을 갖는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런 처방으로 나를 돕기 때문이며, 내가 사납고 비열한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며, 하나님 앞에서 나의 약함을 돕는 짝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깨우쳐야 합니다. 여자도 이점을 생각하고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남편을 마련해 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암캐처럼 되는 대로 추하게 몸을 던졌을 것이다”라고 깨우치며 조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각자는 유의하여 혼인에 있을 수 있는 짐과 슬픔을 나눠지고,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을 설득해 결코 방탕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서로 돕도록 애써야 합니다. 이게 이 구절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내용인즉, 우리로 하여금 주님께서 거룩한 혼인에서 영광을 받기 원하시며 그것을 세워 다스리시며 거기에 진정한 천상의 질서가 있으며 이미 세상에서 천사의 화합을 보는 거울이 있음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좇음으로써 우리는 서로 일치하는 법을 배워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영예롭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선하신 하나님의 존엄 앞에 부복해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그분께 기꺼이 우리의 눈을 열어 우리 안에 있는 초라함을 응시하게 하고 그것을 싫어하게 하며 그분께 용서와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점점 교정되고, 가증스럽게 여길 모든 악과 결함들에서 우리를 정화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사 그분의 부드러움과 부성애를 느끼면서 우리의 온 마음으로 그분께 몰두하고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와 스승처럼 존경심으로 섬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뿐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길….(*)

 

1. 여섯 번째 설교(창 1:27)
2.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자의 창조를 생식 목적에 국한시켰다(De Genesi ad litteram IX, iii, 5).
3. 에베소서 5장 29절 말씀을 참조
4. 명백한 법률 용어로서, 법률가 출신인 칼뱅은 도처에서 자신의 법률 지식을 사용한다.
5. 고린도전서 11장 12절
6. 여섯 번째 설교 참조
7. 당시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성경 역본들은 모두 복수로 돼 있으나, 히브리어 성경에는 ‘만들다’는 단어가 1인칭 단수로 돼 있다. 1559년 이전에 창세기를 주석한 히브리 학자들(뮌스터, 파기우스, 바타블, 츠빙글리) 중에 Pelikan만이 이런 구분을 지적했다. 두 동사의 차이를 구분한 루터는 그 이유를 여자에게 두고 있다.
8. 여섯 번째 설교 참조
9.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을 참조
10. 로마서 8장 7절, 9장 27절 말씀을 참조
11. 잠언 2장 17절의 “그는 소시의 짝을 버리며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12. 히브리어 ‘neged’에는 “앞에 있다”는 개념을 포함한다.
13. 이사야서 11장 6-8절 말씀을 참조
14. 고린도전서 11장 12절 말씀을 참조
15. 고린도전서 6장 16절, 에베소서 5장 31절 말씀을 참조
16. 에베소서 5장 29절 말씀을 참조
17. 고린도전서 7장 7절 말씀을 참조
18. 칼뱅 당시 제네바에 이미 혼전 동거가 있었다.

 

 

청교도사이트에서 펌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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