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자료

[스크랩] 바른 성경번역의 전제[1]

baromi 2008. 4. 25. 08:41

바른 성경번역의 전제[1]     2008.4.19

 

 

 

간단하게 생각해보려고 한다. 자세하게 다루려면 범위가 너무 넓어진다. 손쉽게 알 수 있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을 다루려고 한다. 성경번역 그러면 삼척동자도 아는 것처럼 여겨지는 때이다. 심상치 않은 현상이다. 그런데도 인기나 돈벌이나 골목대장 노릇하려는 이가 설치기에, 많은 이들이 우습게 여기고 나아가 가볍게 받아들인다. 이는 배교에 직결되는 일로서 올바로 알아야만 한다. 일반언어학부터 자연, 인문과학에 이르기까지 바탕에 깔고, 주경학과 교의학에 대한 끝없는 연마를 전제하고, 성경번역사와 교회역사를 한몫에 잡고, 교리역사를 일반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직시하면서, 마침내 우리 겨레의 말글과 문화를 깊이 성찰해야만 한다. 한자와 외래어로 벌창난 때이기에, 온누리가 의식주에 하나로 된 때이기에, 작정하신 대로 구속경륜을 펼치시는 섭리 가운데 현실을 잘 바라보면서 성경번역에 다가서야 한다. 성경관과 교회관, 사관이 하나되어, 오직 성령님의 내주 가운데 진리를 깨닫게 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오늘은 성경번역에 쓰이는 연장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번역을 하려면 제 나라 말글을 잘 아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지난날 여러 나라에서 성경을 번역했기에 그 역본들 가운데 바른 것을 참고한다. 종교개혁 이후 제대로 된 번역이 갈수록 사라진다. 이미 에덴의 동산에서 부터 언약의 말씀을 그릇되게 번역하고 해석해 오기에 늘 조심해서 가려내야 한다. 17세기에 이미 큰 속임으로 여러 방면에서 성경을 무너뜨린다. 원수가 쓰는 가장 큰 무기는 언어이다! 종교개혁의 완성은 성경번역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신학과 신앙의 종합이요 교회에서 성령님이 일하신 열매이기에 성경번역을 깊고도 넓게 생각해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이 거저 제 잘난 맛에 끄적거려서 만들어지는 게 성경번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빗나간 전제를 가지고, 사탄의 흉계 가운데 배교하는 상태에 속하여 번역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사탄이 얼마나 간교한 속임과 짓누름으로 번역분야를 삼켰는지 생각하면 더욱 사명감을 붙들게 된다. 교회에게 맡기신 보편한 사명의 대표는 언제나 성경번역으로 나타난다.

 

 

 

 

지금은 거짓 무리들이 성경을 원문비평부터 별별 방법을 동원하여 갈가리 찢어놓은 때이다. 이것을 대대로 굳히려고 성경번역의 대본인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본문을 비롯하여 원어 관련한 모든 분야를 자유주의 현대신학에서 이미 석권했다. 여기에 고고학이니 사본학이니 하면서 역사 철학 종교 따위로 올무와 늪을 만들어서 한 번 빠지면 나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교회 강단과 신학교 강단에서, 나아가 성도들의 삶을 보면 성경에서 얼마나 멀리 가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개혁신학 조차 지리멸렬이요 뒤죽박죽이다. 그릇된 사본을 가지고 무슨 신학의 발전이 있겠는가? 이성을 앞세워 세상의 다수를 끌어다 휘젓고 있으니 이 큰 세력을, 무서운 대적을 맞서서 바르게 성경번역을 한다는 것은 오직 은혜에 속한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유식한 문자를 쓰고, 합리주의에 속한 멋진 인간미를 곁들여서, 귀에 듣기 좋은 말로 녹여대니 누가 걸려들지 않겠는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이 총동원하여 성경번역 분야를 틀어쥐고 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가려내기도 어렵지만 가려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마음을 추스려 생각해내야만 한다.     

 

 

이제 신학계는 성경원문을 전통사본을 거부하고, 비판신학에서 편집한 거짓 사본으로 쓴다. 신학의 모든 분야에서 진보보수 할 것 없이 그러하다. 초대교부부터 종교개혁자에 이르기까지 교회에게 맡기신 원어성경을 이제는 구하기도 쉽지 않다. 히브리어성경이건 헬라어성경이건 죄다 비평판이다. 이것을 놓고 2세기 넘게 자유주의 신학은 차츰차츰, 야금야금 특유의 궤술로써 원어사전부터 주석에 이르기까지 도배를 해버렸다. 성경 텤스트와 렠시콘, 콘코단스, 각종 그래머... 원어성경과 관련한 어느 것 하나 남겨두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바른 것을 찾아보려면 도서관에서 먼지 가운데 구석에 있는 것을 보아야 하리라. BDB, KB, Gesenius, Thayer 어느 신학자의 어떤 책을 보더라도 도무지 바른 신앙과 바른 신학으로 보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다른 것임을 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이끄셔서 미혹의 영이 속여서 만든 작품들을 가려내게 하신다. 그러나 강단을 거짓무리들이 장악했기에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들에게 맞서봐야 서로 전제가 다르니 논쟁에 지나지 않는 형국이다.     

 

 

 

 

여기에 유대 랍비문서와 고전 헬라문학 따위까지 내세우면서 사람의 이성에 호소하니 누가 먹히지 않겠는가? 예사로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미련함 중에 어디를 선택하겠는가? 히브리어로 신약을 적는다든가, LXX를 권위 있는 것으로 여긴다든가, 나아가 라틴어, 근동언어니 하면서 이런 것들이 원어성경을 연구하는데 절대라도 되는 양 혹세무민한다. 성경 히브리어와 성경 헬라어를 연구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성경 밖의 다른 것에 더 권위를 두든가 동등 삼거나 하면서 성경본문을 파괴하고 뒤바꾸고 야단이다. 말로 히브리어니 원어성경이니 사전이니 문법이니 번역이니 말한다고 모두 같은 말로 보면 안 된다. 신앙고백과 성경번역은 맞물려 돌아간다. 이것을 등한히 여기면 신앙고백 자체가 죽은 신앙에 지나지 않으리라. 성경해석과 그것을 믿게 하심으로 고백이 생기는데 바로 번역성경을 해석함으로 비롯하니 제 고백에 따라서 번역된 성경을 보는 것이 맞다. 무식하거나 게으른 사람은 아무 거나 같다고 여기고 받아들이지만, 성경번역은 그렇지 않음을 조심해야 한다.

 

 

이른바 보수신학은 성경원어에 무지하고 관심도 적다. 학문으로 자유주의자를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원어분야와 성경번역 분야를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다른 잇속만 챙기려고 하니 한심하다. 무엇이 개혁신학인지 다시한 번 두렵게 생각해야 한다. 비평신학자들이 원어를 쓰고 라틴어와 독일어를 쓰면  보수파에서는 굉장한 실력자로 지레짐작해 버린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닌데, 너무도 모르다 보니 너무도 무관심하다 보니 이들의 주장과 번역을 비판하지 못하고 수용하기에 급급하다. 그래도 성경번역할 정도면 대단한 실력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보수파는 보통 아무 생각없이 비판주석의 한 구텡이나 논문 쪼가리에서 건진 토막 원어지식을 함부로 써먹으면서 으시댄다. 원문분야가 어떻게 망가졌고 어떤 짓으로 성경을 짓밟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외쳐야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신학교에서 사용하는 원어분야의 모든 책을 보면 거의 모두 자유주의자들이 쓴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고 요식 행위로 신학교에서는 원어문법의 기초를 가르친 뒤에 명색이 성경원문으로 원강을 한다고 야단이니 우습다. 책도 책이지만 어떤이가 원어를 가르치는지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가르치는이의 신학과 성경관이 묻어 들어간다. 오늘날 누가 원어성경과 그 관련분야 책에 대하여 바른 신학으로 분별하면서 골라가면서 볼 수 있는가? 대한성서공회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손질한다고 할 때 누가 제대로 대변한단 말인가? 신학자니까 잘 하겠지 하면서 구경만 한다면 무책임이다. 그래서도 정통교리에 대한 고백이 성경을 근거로 확고해야만 한다! 이것을 가지고 원문분야 전체를 바라보아야 한다. 흔히 조직신학자를 성경번역에 참여시키지 않는다. 그럼 이른바 성경신학자들은 교리학에 교의신학자 만큼 정통해있는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성경원문에 정통해야 바른 조직신학자이고, 바른 조직신학자라면 성경번역에 마음쏟는것이 마땅하다. 이런 자세와 능력을 갖지 않은 교의학자라면 거짓이다! 주경학을 한다면 마땅히 번역에 마음쓴다. 교리학에 정통한다. 성경과 교리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사전이고 문법이고 모든 게 성경원문에서 만들어진다. 성경의 권위를 깔고 원문분야 서적들이 다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요즘 원어분야 책이나 논문을 보면 무슨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성경원문을 직접 보려고 배우는 것인데, 나아가 성경번역에 직접간접으로 참여하는 사명을 위하여 배우는데, 주변 과목만 뒤적이다가 손놓게 된다. 그러나 사람이 일반학을 힘입어 만든 문법으로 성경본문을 해석하려고 하니 어찌되겠는가? 문법이, 고고학으로 발견한 사본이, 비판신학이론이, 세상언어이론이 성경원문을 재구성하고 뜯어고친다. 그리고 이것이 성경번역에 반영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바른 신학과 신앙으로, 바른 교회에 속한 신자로서, 말씀을 가르치는 일꾼으로서, 겨레말에 정통하고, 바른 원문성경을 가지고 비판신학으로 만든 모든 원문관련 자료를 가려낼 수 있어야 성경번역이 가능하다. 현대 개혁신학은 원문분야를 자유주의에게 빼앗겼는데 결국 빈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격이다. 이런 무서운 타락과 원수의 공격을 두렵게 여기고, 돌이키는 싸움에 앞장서야만 진정한 개혁신학이요 성경번역의 사명을 감당한다.  

 

 

출처 : 부흥과 개혁
글쓴이 : 어오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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