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서 고고학

[스크랩] 미디안 땅 다시 정의하기(4)

baromi 2007. 10. 30. 08:42
미디안 땅 다시 정의하기(4)
②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땅에 속해 있지 않았다
입력 : 2007년 10월 29일 (월) 16:00:04 / 최종편집 : 2007년 10월 29일 (월) 16:28:37 [조회수 : 70] 김동문

   
 
  ▲ 고대 이집트는 오늘날의 수에즈 운하가 지나가는 지역을 벗어나면 이집트 땅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했다. 시나이반도 지역과 이집트 본토 그 사이에 전방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국경관리요원들도 배치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집트 땅의 경계를 남북으로는 (북부) 믹돌에서 (남부) 수에네라고 일컬었다. 동서 개념은 별도로 정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나일강 좌우편이 동서의 경계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내산이라고 부를 만한 산을 찾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노력이 없었다"는 <떨기나무> 저자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감이 있다. 그런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시내산의 위치를 둘러싸고 6~7가지 장소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전통적인 시내산도 그 많은 후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시나이반도는 1967년 이스라엘에 의해 침공 당하기 전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점령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애굽 땅"이거나 "상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 시내산은 예전에 애굽 땅이었다"는 저자의 시각은 역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시나이반도가 이집트 영토 안에 있다고 보는 시각은 성경적이거나 역사적 근거가 없다. 물론 오늘날의 시나이반도나 시내산이 이집트 영토 안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500여 년 전 출애굽 당시 시내산이나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땅에 속하지 않았다.

출애굽 여정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곳을 떠날 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로 언급한다. 이미 이집트 땅을 벗어났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출 13:18~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로 몰려 살던 고센 땅은 이집트 본토의 동쪽 경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전방 부대 믹돌들은 이집트의 동쪽 경계와 시나이반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집트 제국에서 종종 사용하던 구리광산이나 터키석 광산은 이집트 영토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집트 경계 밖 광야에 있었다고 이집트 문헌들은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에서의 구리광산이나 터키석 채광이 연중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세라비트 엘카뎀이다. 이곳에서의 채광작업은 주기적이었고, 대개의 경우 1월부터 4월 사이에 진행되었다. 출애굽 시점이 4월 초에 일어난 것과 출애굽 여정을 고려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당시의 시나이반도는 진공상태였다. 이집트의 무력이나 통제력이 미치지 않았던 시기였던 셈이다. 이집트 제국은 광산 지역에 수비대를 상주시키는 대신에 거나 원정부대를 파견했을 뿐이다. 메렌프타 왕 시대에 단지 한번 주둔군을 파견한 것이 전부였다.

   
 
  ▲ 세라비트 엘카뎀은 시나이반도에서 가장 대표적인 구리와 터키석 광산 지역이었다.  
 
시나이반도에 요새에 수비대를 주둔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비대는 시나이반도 북부 지역에 국한되었다. 그것을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믹돌로 불렀다. 믹돌은 이집트 제국이 원정에 나설 때 전진 기지 역할을 하기도 했고, 외부 적의 침입이나 유입되는 난민들을 통재하는 통제선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 요새들은 주로 시나이반도 북부의 호루스의 길로 불리는 도로 주변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 요새성들의 존재 파악을 통해 이집트 본토와 가나안 땅 사이의 중개 도시들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성경(출 13:17)은 이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묘사하고 있다.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본문 역시 시나이반도는 애굽 땅 경계 밖이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산에서 다시 모세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까지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동안 애굽 땅인 시나이반도를 떠돌아 다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애굽을 떠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의 시내산이 아닌 다른 곳에 시내산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이집트 군대와의 충돌이 없었던 것을 두고 그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집트의 영토는 시나이반도를 포함하지 않았던 시대였음을 고려하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이집트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볼 때 이집트 땅의 경계가 최대로 확장된 경우에도 이집트 남서부의 광산 지역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 이때가 메렌프타 시대였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면 동쪽 홍해인 아카바만을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홍해가 수에즈만 쪽이 아니라 아카바만이라는 주장도 너무 근거가 부족하다. 아울러 고센을 떠나 이어지는 출애굽 여정의 일반적인 맥락을 도외시하는 인상이 짙다. 이것은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김동문/ 선교사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