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안 땅 다시 정의하기(4) | ||||||||||||||||||||||||
②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땅에 속해 있지 않았다 | ||||||||||||||||||||||||
| ||||||||||||||||||||||||
"시나이반도는 1967년 이스라엘에 의해 침공 당하기 전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점령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은 애굽 땅"이거나 "상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 시내산은 예전에 애굽 땅이었다"는 저자의 시각은 역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시나이반도가 이집트 영토 안에 있다고 보는 시각은 성경적이거나 역사적 근거가 없다. 물론 오늘날의 시나이반도나 시내산이 이집트 영토 안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3500여 년 전 출애굽 당시 시내산이나 시나이반도는 이집트 땅에 속하지 않았다. 출애굽 여정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곳을 떠날 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로 언급한다. 이미 이집트 땅을 벗어났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출 13:18~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로 몰려 살던 고센 땅은 이집트 본토의 동쪽 경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전방 부대 믹돌들은 이집트의 동쪽 경계와 시나이반도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집트 제국에서 종종 사용하던 구리광산이나 터키석 광산은 이집트 영토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집트 경계 밖 광야에 있었다고 이집트 문헌들은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이집트의 시나이반도에서의 구리광산이나 터키석 채광이 연중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장소가 세라비트 엘카뎀이다. 이곳에서의 채광작업은 주기적이었고, 대개의 경우 1월부터 4월 사이에 진행되었다. 출애굽 시점이 4월 초에 일어난 것과 출애굽 여정을 고려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당시의 시나이반도는 진공상태였다. 이집트의 무력이나 통제력이 미치지 않았던 시기였던 셈이다. 이집트 제국은 광산 지역에 수비대를 상주시키는 대신에 거나 원정부대를 파견했을 뿐이다. 메렌프타 왕 시대에 단지 한번 주둔군을 파견한 것이 전부였다.
"하나님은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산에서 다시 모세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까지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동안 애굽 땅인 시나이반도를 떠돌아 다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애굽을 떠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의 시내산이 아닌 다른 곳에 시내산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광야 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이집트 군대와의 충돌이 없었던 것을 두고 그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집트의 영토는 시나이반도를 포함하지 않았던 시대였음을 고려하면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 이집트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볼 때 이집트 땅의 경계가 최대로 확장된 경우에도 이집트 남서부의 광산 지역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 이때가 메렌프타 시대였을 것이다. 이 같은 역사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면 동쪽 홍해인 아카바만을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넌 홍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다. 홍해가 수에즈만 쪽이 아니라 아카바만이라는 주장도 너무 근거가 부족하다. 아울러 고센을 떠나 이어지는 출애굽 여정의 일반적인 맥락을 도외시하는 인상이 짙다. 이것은 다음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김동문/ 선교사 |
'성 서 고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Re:사해사본, 천년의 시간을 설명해주다 (0) | 2007.12.05 |
---|---|
[스크랩]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구약성서 확인하세요" (0) | 2007.12.04 |
[스크랩] 소돔과 고모라의 재발견 (0) | 2007.10.22 |
[스크랩] 에덴의 4강-피숀,기혼,히데켈,페라트 (0) | 2007.10.20 |
[스크랩] 이스라엘의 성막 개념도 (0) | 2007.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