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문: 당신은 자신의 비참함을 무엇으로 깨닫습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을 통해서입니다.
-Unde tuam miseriam cognoscis ?
-Ex lege Dei.
(참고성경구절) 마 5:17-18; 롬 3:19-20; 시 90:8; 롬 7:7
(토의문제)
1. 여러분의 현재의 입장이 따분하고 비참하다고 여겨 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 무엇을 통해서 그러한가?
2. 영적으로 비참하다고 여겨진 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해설)
1. 비참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비참”이 무엇인지 알아 봐야 한다. 일반 사전적 의미는 “불행한, 억압받는, 가난한, 궁핍한, 가련한, 질병에 걸린, 편치 못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성경적 의미는 “肉의 상태 또는 사망의 상태” 곧 사망이 내뿜는 독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 스스로의 힘으로는 율법을 이룰 수 없는 상태, 자아중심의 상태, 병들고 죽음을 당해야 하는 상태, 서로 물고 뜯고 싸우며 시기 질투하는 상태 등을 말한다. 인간이 처참하게 전쟁하는 것은 이런 상태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을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절규하는 상태이다. 오늘날 인류가 당하는 모든 불행은 바로 이 “육 또는 사망”에 기인한다. 전쟁, 마약, 거짓, 패역 등등 탐심의 지배 아래에 있는 모든 비참한 것을 의미한다.
2. 양심으로 알 수 없는가?
良心은 인간의 악한 소원에 대하여 하나님의 음성으로 어느 정도 저항한다. 그러나 양심도 못 믿는다. 그 이유는 양심도 “육의 상태” 속에 있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양심은 이 상태에서는 중립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옳은 일인 줄을 알면서도 자기의 욕심에 따라 결단을 내릴 때가 많은데 양심이 불안한 상태 속에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시작은 합리적으로 무슨 일을 추진하나 그 결과는 항상 불합리한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현대사를 통해 이런 사실을 명백하게 볼 수 있다.
3. 율법을 피상적으로 알아서도 이 비참을 알 수 있는가?
율법을 피상적으로 알아서도 못 깨닫는다. 마 19:16-26에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께 나아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17절에서 계명을 제시하시고 그것을 지키면 된다고 하셨다. 그 청년은 어릴 때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했다. 주님은 그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자기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때 그 청년은 슬픔에 찬 채 떠나갔다. 그는 율법의 핵심을 모르고 피상적으로만 지켰음이 드러난 것이다.
4. 율법만이 이 비참함을 고발한다
단순히 현재의 삶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고민만 한다고 구원의 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얻는 것은 아니다. 율법이 명백하게 제시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율법이 무엇인지 대강이나마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지 거기에 맞도록 標準자(尺 )를 주셨는데 바로 이 자(尺)가 율법인 것이다. 이 표준 상태에서 떨어져 사망의 상태에서 사망의 독을 먹으며 사는 것이 비참함이다. 이 율법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의 비참한 모습을 비추어 준다(약 2:10이하).
(설교 자료)
-던져진 인간실존
-자연인의 양심도 믿을 수 있을까?
-율법의 핵심 없이 선을 행하는 자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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