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설명을 유심하게 읽어보신 분들에게는 뱀다리와도 같은 글이겠지만,
시편69:28절과 계시록3:5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이런 문제를 다뤄보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원리를 적용시켜본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는 설명이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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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이 시편은 다윗을 훼방하는 대적들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일종의 저주시 중에 하나입니다. 만일, 이 구절의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라는 말을, 생명책에 원래 기록되어 있는 사람의 이름을 도말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라는 구절의 해석이 이상야릇해 집니다. 곧 원래의 구원받은 자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명단으로서의 생명책이란게 실상 있는 것 같이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이름이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명단에 등재된다는 식으로 이해해야 됩니다.
'기록된다'는 말이나, '도말한다'는 말이 모두 비유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생명책'이라는 것이 일종의 비유로 보아야 하는 것과 같이 이 말들도 비유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을 '생명책'이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앞에서 이 점을 강조하면서 설명했습니다), '도말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작정하지 않?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으로, 그리고, '기록한다'는 말은, '애당초부터 작정한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이 시편의 맥락을 고려할 때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편에서 다윗이 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자들은 바로 출애굽한 이스라앨벡성들의 후손들 중에 있었습니다. 곧 소위 시내산에서 모세와 더불어서 언약을 맺은 자들의 후손들이기도 합니다. 이 점은 바로 8절("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12절("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 등에서 분명합니다. 곧 언약의 백성인 이스라엘백성들 중에서, 외적인 언약, 곧 할례를 받았으되, 시내산언약의 후손들이되, 마음의 할례는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일 뿐인 사람들입니다. 이면적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바로 지금 다윗을 핍박하고 있는 것이고, 훼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지금 다윗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소서". 원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기록된 것을 도말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외적인 언약에 참여하였다고 해서, 혹은 시내산언약에 참예한 자들의 후손이라는 점으로 인해서, 혹은 자신들이 이스라엘백성이라는 것 때문에 스스로를 구원을 받은 자들,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있다고 확신하는 자들이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은, 한 번 구원을 받았지만, 영원한 구원에서는 탈락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절이 전혀 아닙니다.
이런 점은, 요한계시록3장5절의 앞뒤 문맥에서 더욱 분명해 집니다.
계시록3:5 : "이기는 자는...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이 본문에 나오는 '생명책에 이름을 지운다'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기는 자'가 과연 누구냐 하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기는 자'가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하든지, 그리스도인들 중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을 이야기하든지, '생명책의 이름을 지운다'는 개념을 설명하는데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홀리죠이의 주장입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들 중의 '어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할 때에, 그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성명 석자 '이름'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고, 그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평판'이 지워진다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곧, 이기지 못하게 되면 마지막 날에 그 이름의 평판이 지워진다, 혹은 흐릿해 진다는 경고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의 복음이 결코 손상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이기는 자'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석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만, 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첫번째 해석을 그렇게 반대하지 않습니다. 이것도 취하고 저것도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이기는 자'를 모든 그리스도인이라고 보는 견해를 취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번째 이유는, 첫째 해석을 따르게 되면, '이기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추측을 하도록 강요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해석을 따르는 사람들은 '불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는 경우'를 예(고전3:15)를 들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 고전3:15을 반드시 그런 식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그런 해석 외의 다른 해석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구절의 의미가 분명치 않은 셈입니다. 그렇게 분명치 않은 구절에 근거해서 어떤 신학적 주장을 하는 것은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첫번째 해석을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두번째 이유는, 아시아의 일곱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의 말미에 있는 '이기는 자들'에 대한 '모든' 약속들, 혹은 상급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짐직한 약속들입니다. 그 상급들 혹은 약속들을 다음과 같이 도표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일곱교회 |
이기는 자에게 주는 상급 |
에베소 |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
서머나 |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
버가모 |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느니라( |
두아디라 |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
사데 |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빌라델비아 |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
라오디게아 |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상급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시면, 그 약속들이 모두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 약속된 것임을 신약의 이곳저곳에 나오는 상징들과 비교해 보면 분명해 집니다(그런 작업을 시도해 보는 것은 아주 멋진 성경공부가 될 것이지 않겠습니까?)
두번째 해석을 취하는 두 가지 이유들을 들었으니, 이제는 두번째 해석을 취하는 것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주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평판이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오해부터 할 것입니다. 누구에 대해서 평판이 흐려지지 않을 것인가? 과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기는 자들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들을 던지면서 말입니다.
먼저, 이 두번째 해석을 취하게 될 때, 누구에 대해서 그 그리스도인됨의 평판이 흐려지지 않는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요? 어렵지 않은 질문입니다.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에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궁금해 하고 있는 하늘의 천사들(벧전1:12)과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될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엡3:10)이라고 보면 크게 잘못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이기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것이야말로 성도의 견인의 핵심부분인 것을 아신다면, 제가 어떻게 답변할 것인지를 능히 아실 것입니다. 아니, 사도 요한의 서신을 음미하는 자라면 충분히 답변을 긍정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1요5:4)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기느니라'라는 표현은, 바로 그가 요한계시록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기는 자'라는 표현과 동일한 어근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하였습니다. "난 자마다"입니다. "모든" 난 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그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이길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약속된 종착지입니다. 승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사도요한의 말을 새겨 보십시오: "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 있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지 않습니까? 믿음이 없이도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계속되는 사도요한의 말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더 이상 제가 무슨 말을 덧붙이겠습니까?
그렇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기는 자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그 이기는 이김이 마치 천국승강기에 올라타는 식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였거니와 '한 번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자동적이고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을 보증으로 받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구원을 받은 자 안에서 부단히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 되는 것은, 그 한 번 구원 받은 자의 어떤 노력과 열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를 구원하신 삼위 하나님의 부단한 열심으로 인해서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그 구원받은 자의 영혼과 삶 속에서 부단한 열심으로 싸워가는 삶이 가능하게 하시고, 그래서, 승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권면이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유명한 부활의 장(고전15장)에서 부활에 대해서 담대히 선언한 뒤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고 합니다. 이김을 누가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김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도바울은 곧 이어서 다음과 같이 그 이김을 받게 되는 사람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니라"(고전15:58)
저의 이 수고가 헛되지 않을 줄을 압니다.
그리고, 저와 더불어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임을 확신하는 이들 모두가 이 권면을 따라서 주 안에서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누가 세상을 이기는 자들입니까?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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