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레1(18)]번제(18):날개를 완전히 찢어 내지 않음의 의미

baromi 2007. 7. 21. 13:18

어젠 틈틈히 이번 주일에 있을 여전도회회원들을 위한

가정특강을 준비하면서 '정서'의 문제를 음미해 보았다

지금까지 '지성'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는데,

'지성'이 '지성'으로서의 그 능력과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되기 위해서는

'정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지성'과 '정서'의 문제는 어느 한쪽도 무시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이다

 

교회에 자꾸 빠질려고 하는 어느 자매에게 전화를 해서 격려하였다

남편이 병약한 중에 있는 이 형편이 오히려 그 자매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진지하게 기도하라는 권면에

눈물을 훌쩍거린다

내가 영적으로 협박했던 것일까?

주께서 위로하시고, 그 마음에 빛을 더하시길 기도하게 된다

 

오늘 아침묵상의 말씀에는 어떤 빛을 비추실까?

 

 

   *     *     *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회막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니라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 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드릴찌니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단으로 가져다가 그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고 피는 단 곁에 흘릴 것이며

 멱통과 그 더러운 것은 제하여 단 동편 재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 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1-17)

 

머리를 자르고(비틀어 끊고), 피를  뿌리며, 내장(먹통과 그 더러운 것)을 내어 버리고,

이제 남은 것이 있다면, 숫소와 숫양, 그리고 염소의 가죽을 벗기는 것에 해당되는 일이 남아 있겠다

그것이 바로 '날개를 ?는 것'에 해당되는 일로 여겨진다

이 모든 일들이 제물을 바치는 사람의 언약을 맺(거나 갱신하)는 행위의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각을 뜨는 것(머리를 비틀어 끊어 자르는 것)은

예배자의 모든 사지를 절단시킴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내장을 내어버리는 것은, 내적인 모든 죄를 청산하는 것이며,

가죽을 벗기는 일은 옛사람의 벗어버리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비둘기제물의 경우, 머리를 비틀어 끊어 자르고, 먹통과 더러운 것을 직접 내어버리는 등

다른 제물의 경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제물을 처리하기 때문에, 혼동이 될 수 있지만,

일일이 왜 그렇게 다를 수 밖에 없는 지를 묵상하였다

 

이제 가죽을 벗기는 일에 해당되는, 날개를 찢어 내는 일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마치 가죽을 벗기다가 마는 것 같이, 날개를 찢되 아주 찢지 말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이것도 비둘기예물을 가지고 온 그 사람의 극빈한 상황과 연관되는 것일까?

다른 짐승의 경우에는 그 가죽이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있지만,

이 비둘기예물의 경우에는, 제사장의 몫이 하나도 없다

날개를 찢어서 그 날개죽지를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지도 않는다

[하기사 그것을 가지고 제사장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단지, 날개죽지를 찢되 아주 찢어내어 절단이 되기까지 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 KD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P.H.Eveson도, H.W.Soltau도, R.K.Harrison도, C.H.MacKintosh도, J.Calvin도, 이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일까? 이미 죽은 비둘기인데, 날개죽지를 반쯤 찢어낼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날개를 찢지 않은 채로 그냥 불에 태워도 되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찢되 아주 찢지 말라'고 한 것일까?- 주여, 주께서 영감을 주어 기록한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빛을 비춰 주소서!]

 

짐승의 본질은 가죽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새의 본질은 날개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날개는 새가 새로서 날아다니는데 없어서는 안될 그 무엇이다

그렇다면, 이 날개를 찢어내는 것은, 새의 새로서의 본질에 무언가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물을 드리는 그 예배자의 죄인으로서의 본질에 무언가 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곧, 날개로 상징하는 모든 노력의 행위, 모든 죄의 행위,

그 모든 것의 본질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것이 날개를 찢는 행위에 상징된다고 보겠다

새의 날개를 찢어내는 것은, 새의 염통을 끄집어 내는 것과 또 다른 의미에서의

새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내장을 끄집어 내는 것은, 새의 짐승으로서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지만,

날개를 찢는 것은, 새의 새로서의 본성을 죽이는 것이다

[완전히 절단시키지 않는 것을 단순히 자비의 상징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내장까지 끄집어 내었는데, 날개를 완전히 절단하지 않는 것에서 자비를 상징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 아닐까? 좀 더 적합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할 듯 싶다

[그런데, 왜 숫소나 다른 짐승의 제물들에게 있어서는 이런 차이를 두지 않았을까? 가령, 소의 소됨을 나타내는 상징이나, 양의 양됨, 염소의 염소됨의 본질을 나타내는 부위를 처리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새의 새로서의 본성에 대한 타격!

 

왜 극빈자들에게 허용된 제물이 다른 어떤 조그만 짐승(가령, 다람쥐나 물고기 등)으로 하지 않고

하필이면, 이렇게 날개가 있는 짐승인, 비둘기였을까?

이것이 가난한 자의 상황을 가장 적실하게 나타내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날개'로 상징될 수 있는 그 어떤 것에로의 '희망' 같은 것이 아닐까?

가난한 자의 그 가난의 가난됨의 본질이라면, 바로 이러한 '희망'일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이뤄가려는 그 희망의 상징이 이 비둘기의 날개인 것이다.

 

 

바로, 그 날개를 찢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 희망조차도 찢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곧, 그 희망조차도 포기하고,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너무 억지일까! 누구도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데, 나 혼자서만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너무 풍유적인 해석이 되는 것은 아닐까? 오,주여, 극단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분별하게 하소서!]

 

바로 이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찢어버리되, 완전히 절단하지 않은 채로 두어서,

이것을 상기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     *

 

벌써 토요일이다

내가 포기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나를 죽인다 하면서도 찢어버리지 못한 날개는 무엇일까?

나의 앞날의 소망까지, 나의 비젼과 계획까지 과연 나는 주님께 맡기고 있는가?

언약을 맺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렇게 미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의 날개를 찢어버리지 않은 채로

주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 것일까?

 

오늘도 주님께 맡기자

길거리전도, 가판전도도 주님께 맡기자

앞날의 계획도, 장래의 소망도 주님께 맡기자

 

오, 주여, 주께서만 저의 '미래'입니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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