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찬양자료

[스크랩] 소위 신유운동에 대한 한 전문의료인의 관점/Verna Wright교수

baromi 2007. 5. 2. 09:23

소위 신유운동에 대한 한 전문의료인의 관점

 

Verna Wright교수[1]/손성은 역 

  

  몇 가지 의료적 측면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치료의 기적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평가하기 위해서 그 의료적 측면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요소는, 의사들이 사용하는 언어(language of doctors)에 대해서입니다. 어느날 밤 리즈(Leeds)에 있는 어느 복음주의교회에서 제가 설교한 뒤, 어떤 부인이 내게로 와서 정답게 저와 악수를 나눈 뒤 말했습니다. "교수님, 저는 당신 환자이기 때문에 오늘밤 당신 말씀을 들으러 왔습니다. 내 손목의 관절염이 사라졌어요. 그것은 기적이예요." 기적은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인생에 치료의 과정을 일으키셨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이, 우리들에게 알려진 자연적 치유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사건 이라는 의미에서의 그런 기적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치료과정을 통해서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환자들이 상담실에서 오곤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에게 "여보세요, 이것은 기적이예요"라고 느슨한 의미로 말할 순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앞에서 정의한 의미에서의 그런 기적이란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빨리 진전이 있다든지 차도가 있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환자는 집에 돌아가서 아주 정확하게 말할 것입니다. "의사가 말했어요. 이것은 기적이래요." 그러나 만일 그 사람이 우리가 지금 고려하고 있는 의미에서의 기적이란 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의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 째 요소로서 우리가 기적적인 치료를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어떻게 환자들이 자기들의 질병을 지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환자들이 말하는 것 가운데에 절대 믿을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첫째, 그들이 마신다고 하는 알콜의 양, 둘째, 성병이 있는 지 없는 지에 대한 보고, 셋째, '다른' 의사들이 자기들에 대해서 말하였다 한 것이 그것들입니다. 환자들이 의사가 말한 것에 대하여 무엇을 믿고 있는 지 알면 당신은 놀랄 것입니다. 런던병원관절염치료분과(London Hospital Rheumatology Clinic)에서 이것에 대하여 재미있는 연구가 하나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 그 연구에서 (환자들의 허락 하에서)환자들과 인터뷰한 것이 녹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그들이 인터뷰한 내용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환자는 상당히 젊은 사람인데, 그녀가 불평하고 있는 증상은 그렇게 심각한 관절염이 아니어서 회복의 전망이 아주 좋다라고 재차 의사에게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상담실을 나간 채 2분도 되지 않은 중에 재차 인터뷰를 받았습니다. 그 중의 질문 하나는, "회복전망이 어떻다고 의사가 말하던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대답입니다: "오, 내가 40살이 되기 전에 다리를 절게 될 것이라고 하더군요." 이 처녀는 그녀의 머리 속에 어떤 고정관념 지닌 채로 상담실로 들어갔었는데,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보고한 것에 대해서 그녀 자신은 절대적으로 신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녀가 전적으로 잘못된 보고를 하였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환자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 지, 그 상황의 본질을 때때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치유사역에 상당히 강조를 하고 있는 어느 영국국교회에서의 한 예를 들어 이 점을 설명하겠습니다. 이 교회에 다니는 한 부인이 장기복통을 앓고 있었는데, 기도모임에서 그녀가 말하기를, 다음 주일이면 종합수술을 위해서 입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자연히 그들은 그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2주후에 그녀는 퇴원을 했고 기도모임에서 그 수술 결과 아픔이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큰 구원하심으로 인해서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한 외과의사가 있었습니다. 치유사역운동에 무척 공감을 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환자의 허락을 받고는 그 외과의사는 진단챠트를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갖고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토론을 했습니다. 집도의사는 수술하기를 대단히 꺼려 했었답니다. 그런데도 수술한 것은, 환자와 지역의사가 계속 압력을 가해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복부를 열어 보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췌장이 얼마간 흔들거리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봉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복통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점점 심한 편두통을 앓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관점의 차이를 주목하십시오: 치유사역을 옹호하는 집단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이 환자의 증언을 듣지 않았었던가요? 그녀는 복통을 앓았었고 복통을 앓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밀수술을 하는 것이 필요했었던 것입니다. 그녀를 위해서 기도했고, 의사가 수술을 했지만, 어느 것도 발견되지를 않았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집도의사는 대단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인의 증상이 복통에서 편두통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보면서, 이 부인이 지금 자신의 고통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단서를 발견하였다고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출처 : ImagoDei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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