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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현대의 '다른 복음' 들 속에 있는 근현대철학적 기초(1)

baromi 2005. 3. 22. 18:07

양무리칼럼

 

              현대의 “다른 복음”들 속에 있는 근현대철학적 기초(1)

 

  오늘 설교 중에 간단하게 언급하게 될 근현대철학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곳에 소개하겠다. 먼저, 대륙의 합리론. 그 대표자는 르네 데카르트. 데카르트는, 모든 것을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자아의 확실성에 대해서 확신하게 되고는 코기토 에르고 섬(cogito ergo sum), 곧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선언한다. 그리고 그것에 기초해서, 신의 존재, 자연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한다. 이런 데카르트의 연역적 사유는, 베이컨의 귀납적 사고와 함께, 현대에까지 이르도록 현대과학의 사유방식의 중요한 패턴이 된다.

 

  이런 데카르트의 철학이 이신론(Deism)을 낳게 한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 인간의 정신과 육체가 이원론적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에 근거해서, 신은 물질세계를 시계처럼 만들어서 작동하도록 가만 내버려두신다는 식의 신론이 바로 이신론. 이 이신론으로 신이 존재하되, 우리들의 현재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신앙패턴을 낳게 된다. 참 편리한 신개념이다. 그에게 복종할 것도, 예배할 것도 없다. 일종의 법칙일 뿐이기 때문이다.

 

  경험론은 어떠한가? 경험론은 영미철학, 특별히 미국인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의 뿌리가 되는 것인데, 우리가 가지게 되는 모든 지식의 기초를 우리의 감각경험에 두고 있는 것이 그 특징. 존 로크가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우리의 오관을 통해서 주어지지 않는 것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고 하는 이런 철학이 모든 것을 경험하고서야 믿겠노라는 경험주의를 낳게 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런 철학은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것이 사실인 지 아닌 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으로 이어지는데, 데이비드 흄이나 버클리 같은 철학자의 입장이 바로 이런 것이다.

 

  경험한 것을 최고의 기준으로 보는 이런 견해는, 신비주의형태의 신앙패턴을 낳게 된다. 신비적인 것에 대한 체험이 진리의 기준이 된다는 것. 체험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렇게 체험이 절대적인 가치기준으로서 작용하게 될 때, 이런 철학은 일종의 유아론(solipsism)으로 이어지게 된다. 체험이 체험이되 누구의 체험이냐는 것. 바로 ‘나 자신’의 체험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유아론. 싯달타가 태어날 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는 불교철학이 이런 유아론을 대표한다. 이런 경험론적 철학이 불교철학을 받아들인 것이 현대경험주의철학인데, 데렉 파핏(Parfit)이라는 옥스포드대학의 철학교수는 ‘나’라는 존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경험론이 향하고 있는 그 끝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미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을 결합한 사람이 바로 임마누엘 칸트.하지만, 절대로 ‘임마누엘’이 아니다. 결합하고 종합했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그는 바로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라는 책을 쓴 사람. 이성의 비판(순수이성비판), 윤리의 비판(실천이성비판), 미적 판단력의 비판(판단력비판)을 행한 그의 3대저서로 인해서 그의 철학을 “비판철학”이라고도 하는데, 가장 심각한 그의 철학의 문제점은, 자신의 비판능력을 비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쉽게 말하면, 칸트의 비판철학은, 현상계와 이념계를 구분한 플라톤철학의 이원론의 아류. 그래서 버트란트 러셀이란 철학자는 서양철학은 플라톤철학의 주석(footnote)이라고 평했다던가…

 

  칸트의 이 비판철학은, 현상계와 물 자체(Ding an sich)를 구분하는데, 심각한 문제점은,현상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성의 역할, 물 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미학과 종교의 역할로 구분하되, 물 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 파악에 언제나 개인의 편견과 가치가 개입된 것으로 보고, 과학은 현상계의 객관적인 것, 종교와 예술은 주관적인 영역에 속한 것을 다루게 된다고 서로를 구분하게 된다는 점. 이런 구분은, 현대인의 삶이 단편화되고 왜곡되는 아주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현대철학에서 칸트비판이 유행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칸트 정도는 비판해야 현대철학을 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 칼럼은, 쪼깨 어렵나? 설교를 쉽게 하려니, 어쩔 수 없이 칼럼이 어렵게 되었다.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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