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제자료

[스크랩] SFC가 스킬더를 아는가? 와 스킬더의 <그리스도와 문화>번역시안제시의 글

baromi 2005. 3. 22. 18:06

SFC가 스킬더를 아는가?

한국교회개혁을 위해서 애를 많이 쓰는 모습이 저의 생각을 보태고 싶어서 한 줄 씁니다.

 

이제 그 전략을 모색할 때입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개진해 봅니다. 이곳에 SFC간사님들도 들어오곤 하신다는 말을 듣고 금방 이 글을 씁니다.

 

저의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장자는 고신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자론을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겠습니다. 한국교회의 부패와 왜곡에 고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고신조차 부패해 있습니다. 이 고신부패의 문제점을 갱신하는데 힘이 될 수 있는 단체는 어디입니까? 저는 젊은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꿈이 있습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동기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사로잡으시면, 사용될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의기도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이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힘의 표현을 우리들은 1970-80년대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런 식의 표현이 아니라 하더라도 학생운동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파워를 능히 계산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젊은이들이 가장 많은 곳이 바로 SFC입니다. 그런 면에서, SFC야말로 고신개혁의 핵심이 될 수 있고,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SFC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다른 구체적인 현장에 대해서는 저는 잘 모릅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이기 때문에,그 현실감을 충분히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논의되고 있는 것을 지켜볼 때, SFC간사들과 지도부의 SFC운영철학과 방향의식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단도직입적으로 그 문제의식은, 바로 SFC의 운영방향의 방향타가 바로 카이퍼신학같다는 느낌에서 옵니다. 카이퍼의 신학은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합니다. 마치 한국교회사를 볼 때 고신이 태동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 배경이 된 교회가 한국장로교회라면 장로교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고신의 역사와 신학을 조명할 수 있는 것처럼, 카이퍼의 신학은 현재 고신과 자매관계를 맺고 있는 화란자유개혁교회(31조파)를 태동시키는 배경이 됩니다. 일제때 한상동목사와 주기철목사가 옥중성도로 순교자의 반열에 있었다고 한다면, 다른 장로교회는 일제의 정권하에 타협했습니다.  카이퍼신학을 추종하던 사람들은, 2차대전당시 나찌정권에 타협했던 교회의 지도자들과 관계됩니다. 이것에 대해서 저항했던 사람이 바로 클라우스 스킬더이고, 이 스킬더에 의해서 설립된 교단이 바로 31조파입니다.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왜 고신과 31조파가 "자매교단"이 되는 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고신교단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매교단을 맺게 된 한상동목사 등의 고신교단초창기 설립정신을 비웃고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증거는, 고신대학에서, 그리고 고려신학대학원(혹은 고신대학원? 이런 명칭문제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겠지요. 왜 "고려"라는 말을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사용하고 있는 지도....)에서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스킬더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카이퍼에 대한 연구는 제법 되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설이고, 아이러니입니다. 자매교단의 설립자의 정신이나 신학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그 배경이 되는, 그 교단이 튀쳐나온 교단의 신학자, 카이퍼의 신학에 더 큰 관심이 있고 심지어는 그 신학을 SFC의 방향타로 삼고 있으니깐 말입니다. 마치, 현금 고신이 고신의 설립자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통합측, 기장측의 신학자나 신학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면서 접근하는 것과 거의 맥이 연결됩니다.  

 

이런 흐름들을 어떻게 바꿔볼 수 있겠습니까? 바로 SFC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그 한가지 가능성, 그 한가지 전략을 구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이 글을 SFC간사님들이 읽으신다니 호소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야 말로 바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쥐고 있다고 말입니다. 과연 SFC가 카이퍼의 신학을 따르느냐 스킬더의 신학을 따르느냐?

 

카이퍼의 신학이 무엇인 지도, 스킬더의 신학이 무엇인 지도 모른다면, 이런 얘기는 우스개이야기일 것입니다. 또 다시 서양신학, 화란신학을 소개하면서, 그 신학을 따라서 한국교회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논의들을 통해서, SFC의 향방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의식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킬더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의 책 Christ and Culture라는 책을 아십니까? 니이버의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은 알고, 본훼퍼의 신학은 아는데, 스킬더의 문화관을 아시느냐는 것입니다.

 

, 슬픔이 몰려 옵니다.

 

이근삼박사는 카이퍼를 고신교단에 소개하였지만, 스킬더를 소개하는데는 게을렀습니다. 그를 탓할 수 있는 것은, "사조이사회"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학자적 양심과 역사감각입니다. 조금만 화란교회의 역사를 안다면, 그가 무엇을 먼저 소개했어야 하는 지 뻔합니다. 특별히 그가 고신교단의 설립자였던 한상동목사의 양아들이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신학교건물이 중요하고, 복음병원건물이 중요한 줄은 알았지만, 고신사람들의 정신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그 책임을 바로 그가 져야 하는 것은 아닌 지...그러나 지금 책임을 논할 때가 아닙니다. 그것은 학자들이 할 일....

 

지금 우리는, 바로, 이 방향의식이 상실되어버린 고신교회 앞에서, 무엇을, 어디로 지향하면서, 깃발을 들겠습니까? 바로 SFC입니다. SFC를 깨우는 것, SFC간사를 깨우는 것....이것이야말로 바로 2050년을 바라보는 좌표가 될 것입니다. 그 전에 주님 다시 오시지 않으신다면,무언가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죽더라도 무언가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SFC의 방향이 선회되도록 간사님들이 깨어나야 하고, 이 깨어남을 위해서,

 

호소합니다.

 

스킬더를 연구하십시오!

 

SFC를 개혁하면, 고신교회가 개혁될 것입니다. 고신교회가 개혁되면,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사님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주여, 나의 이 펄떡거리는 심장을 받으시옵소서.

 

홀리 죠이.

스킬더의 <그리스도와 문화>번역시안제시의 글

 

스킬더의 <Christ and Culture> 번역을 위한 시안

안녕하세요?

현금 SFC개혁을 위한 논의는 두 가지 방향으로 개진되어야 할 것이 선명해졌습니다. 하나는 SFC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현실파악과 이해, 곧 문제점의 정확한 진단, 그리고 둘째는 SFC개혁의 방향에 대한 분명한 감각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둘 다 동시에 병행되어야 할 작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킬더의 Christ and Culture의 번역을 시도하는 것은, 개혁의 방향에 대한 분명한 감각을 가지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방법들 중의 하나일 것임에 분명합니다. 어떻게 개혁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가지게 되면 현재의 문제점들도 더욱 분명하게 보이고 이해되어질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그 번역을 제안합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스킬더의 Christ and Culture는 영역 1977년도판입니다. 총 29절로 되어 있고 페이지수는 86페이지의 소책자입니다. 그렇게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뜻만 가지게 되면 번역이 가능해 질 것입니다. 특별히 이 소모임의 인원이 40여명이 넘었습니다. 서로가 조금씩 그 담당할 페이지를 나누면 그렇게 많은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주석형제가 언급한 고려파 초창기때 번역한 자료를 찾아낼 수 있다면, 조금씩 교정을 맡아도 될 것이고, 다시 출판할 곳을 찾아내면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 책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 출판할 곳을 찾는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고려파 초창기때의 번역자료를 찾지 못한다면, <SFC개혁을 위한 소모임>이란 이름으로 그 책을 출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소모임의 가시적인 첫번째 열매가 될 것이고, 또한 더 많은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여 아래와 같이 이 책자의 절과 그 페이지수를 올려 놓았습니다. 절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그냥 1,2,3,4….등으로 나열되어 있는 아주 단순한 책자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화란교회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충분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이퍼중심의 신칼빈주의가 주도하고 있는 현금의 SFC의 방향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또한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는데 큰 도구가 될 것입니다.

아래의 리플에 담당하고 싶은 절의 번호를 자신의 이름과 함께 올려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번역에 참여하고 싶지만, 영어실력 때문에 고민이 되는 분들은, 자기 친구들 중에서 영어실력이 괜챦은 친구들에게 부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몇 페이지 정도야 점심 한끼 사주고 부탁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투자가 주의 나라를 위한 헌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소모임의 회원들 중에 한 분도 예외없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불타오르기를 소망해 봅니다.

책의 내용은 재익형제가 소개한 사이트에 들어가서 자기가 번역을 맡을 부분만 카피해와서 사용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국내의 도서관, 아마도, 부산의 고신대학도서관에 이 책이 있지 않을까 예상이 되는데, 번역할 부분들을 카피해서 나눠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책 전체의 번역교정은 아무리 바빠도 저의 목사님께서 보아주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그럼,

주안에서

홀리 죠이 드립니다.

Ps. 이 책의 각주는 책 말미에 미주로 처리되어 있습니다. 이것 또한 그렇게 많지 않은 내용이어서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번역시에는 하단주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럼….

서문-1절/ 2 pages
2절/ half page
3절/ 4 pages
4절/ 1 and half pages
5절/ 1/3 page
6절/ 3 pages
7절/ 2 and half pages
8절/ 3 pages
9절/ 2 pages
10절 3 pages
11절/ half page
12절/ 3 pages
13절/ 1 and half pages
14절/ 1 page
15절/ 3 pages
16절/ 5 pages
17절/ 2 pages
18절/ 3 and half pages
19절/ 6 and half pages
20절/ 6 and half pages
21절/ 1 and half pages
22절/ 2 and 1/3 pages
23절/ 2 and 1/3 pages
24절/ 1 page
25절/ 3 pages
26절/ 3 and 1/3 pages
27절/ 7 pages
28절/ 2 pages
29절/ 3 pages

출처 : 양무리마을
글쓴이 : holyjoy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