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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론, 어떻게 볼 것인가? Ⅱ

baromi 2006. 8. 20. 18:01
상급론, 어떻게 볼 것인가? 2 | 신약신학 2004/12/2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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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론, 어떻게 볼 것인가? 

 

                                                                                                 정훈택

 

“상(賞)의 신학”

 

1. 그 진술

 

 “상(賞)의 신학”은 흔히 “상급론(賞給論)”, 또는 “차등상급론(差等賞給論)이라 불린다. 한국교회에는 아주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어서 교인들 중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고 교리적 차원에서 신봉(信奉)되고 있다. 필자도 어릴 때 어떤 부흥회에서 이런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감명이 컸던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면 대부분이 알고 있는 소위 천국의 개털 모자 이야기이다.

 

 어떤 장로님이 꿈에 죽어서 천국에 갔다. 천국 문에서 천사가 개털 모자를 주기에 얼른 받아 머리에 쓰고 기쁘게 천국에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천국에는 개털 모자를 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금 면류관 아니면 은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 장로님은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어 그를 안내하던 천사에게 “왜 나에게만 개털 모자를 주었느냐”고 항의했다. 천사가 그에게 “당신은 세상에서 믿기만 했을 뿐 상을 얻을 만한 어떤 일도 한 적이 없어서 금이나 은으로 만든 면류관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수를 잘 믿고 상을 얻을 일들을 많이 한 신자들은 화려한 면류관을 쓰지만 그렇지 않고 겨우 믿음만을 지킨 신자들은 영원히 개털 모자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끄러운 구원이며 겨우 자신의 영혼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그 장로님은 그 다음날부터 열심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았고 교회에서도 헌신적으로 봉사했다는 이야기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이 개털 모자 이야기는 아직도 한국교회에 맹렬히 회자되고 있다. 여기 저기 조금씩 다르게 손질된 여러 버전들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청년들에게, 미래의 설교자나 목회자를 꿈꾸는 신학생들에게 교육용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이야기에 내포되어 있는 내용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천국(천당)에 간다. 한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게 되는 근거는 예수님을 믿음에 있다. 누구나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죄인을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의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이며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인간의 공로는 크든지 작든지, 혹은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구원을 얻음 혹은 의인으로 간주됨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구원(영생)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그의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대속하셨기 때문에 - 예수님의 대속은 구원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므로 - 어떻게 살아도 삶이나 행동 자체는 신자의 구원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현실적인 죄는 매일의 회개를 통하여 정리할 수 있다. 즉 구원론적인 관점에서 신자들이 무슨 죄를 지어도 구원을 얻는 그의 신분에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신자들은 자신의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죄도 짓지 않는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신자들이 삶에 대한 어떤 경각심도 없이 아무렇게나 살고 마구 죄를 지어도 좋다는 자유나 방종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 삶은 구원 얻음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천국에 들어가서의 상급과 관련되어 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성경이 교훈한 대로 산 신자들은 천국에서 큰 상급을 받는다. 금 면류관 내지 은 면류관을 쓰는 영광스러운 구원이다. 그렇지 않고 매일 죄나 짓고 또 회개하고 말씀에 완전히 순종하지 못한 신자들은 구원을 얻기는 하지만 마치 불에서 타다 남은 숯검정을 건져 올리는 것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얻는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이 결정하지만 천국에서 어떤 상을 받을지 그 영광의 차등은 그의 삶, -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되는 - 인간의 일, 노력, 공로가 좌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국에서의 영광스러운 상을 바라보며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더 큰 상, 더 많은 상, 더 화려한 영광을 얻으려는 것은 이 땅에서 구원을 이미 얻은 사람들의 거룩한 삶을 감독하는 하나님이 주신 자극제, 즉 윤리적 동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상급론을 다루면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읽어내려는 해석(exegesis)보다는 성경 구절들 안에 개인의 특수한 생각을 몰아넣는 자기 해석(eisegesis)의 위험이다. 그래서 종종 상급론을 긍정하는 글들을 보면 인간의 노력이 (차등)상급의 근거라고 말하면서도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공로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설명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써두었다. 그러나 이런 자기 해석은 헬라어와 히브리어 단어의 잘못된 번역에 근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2. 논거

 

 성경이 천국에서의 (차등)상급을 말한다고 인용되는 구절들은 상당히 많다.

 한글 개역 성경에 “상급(賞給)”, “상(賞)”, “상주다(授賞)”, “상받다(受賞)” 등 상과 연관된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모두 마흔 넷이다. 이 중 서른여덟 구절이 상의 신학/상급론을 지원하는 구절로 다루어진다. 면류관(冕旒冠), 관(冠), 화관(花冠) 등은 상징적 의미로 상을 지원하는 구절로 취급되는데 한글 개역 성경에 이 단어들은 모두 일흔 일곱 번 나온다. 그 중 상의 신학/상급론이 그 지원 구절로 취급할 수 있는 구절은 모두 열다섯이다. 이런 직․간접적인 증거 이외에도 아래와 같은 논거가 제시된다.

 

 신약성경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언급된 곳은 모두 천당과 지옥, 영생과 영벌이 아니라 천국 안에서의 (차등)상급을 말하는 구절로 해석된다. 상급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렇게 마태복음 12장 36-37절: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판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16장 27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고린도후서 5장 9-10절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받으려 함이라”를 차등 상급을 말하는 증거구절로 꼽았다. 또한 고린도전서 3장 10-15절은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터전 위에 금, 은, 나무, 풀, 짚으로 건물을 짓는데 마지막 날 나타날 불에 그 공력 즉 일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불 가운데서 건짐을 받는 것 같은 구원을 받는 것을 말하는 차등 상급론의 아주 강력한 증거구절이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천국에서 누가 큰 지를 다루는 마 18:1-4; 눅 19:11-27의 므나 비유; “선지자의 상”, “의인의 상” 등이 언급된 마 10:40-42도 “차등 상급의 증거구절들”이다.

 

 요약하면 상급론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한글 개역 성경에 “상”, “상급”이란 용어가 사용된 모든 구절들, 심판이 언급된 많은 구절들, 면류관이 상징적, 신학적 의미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모든 구절들을 천국 안에서의 상, 상급의 차등을 말하는 증거구절로 열거한다. 천국과 관련하여 “크다”나 “작다”는 형용사가 사용되면 이에 비교될 만한 다른 상태가 계단의 각 단계처럼, 상의 차등을 전제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심판, 벌 등을 구원, 천국의 반대어로 이해하지 않고 천국 안에서의 상급에 대한 반대어, 즉 작은 상급 내지 부끄러운 구원을 결정하기 위한 천국 안에서의 심판으로 분석한다. 가장 강력한 증거구절로 제시되는 것은 고후 3장 9-15절과 고전 9장 16-27절이다.

 

출처 : 목회와 신학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