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서적추천

[스크랩] (06-1학기, 설교학) "목사와 설교"(로이드 죤스)를 읽고

baromi 2006. 6. 29. 13:26

 

           No Substitude

                       - Preaching & Preachers (by D.M.Lloyd-Jones)를 읽고


                                                              학  번 : ********   

                                                              성  명 : 손  재  익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고대 라틴교부 키프리안(Caecilius cyprianus, AD 200~258)의 말을 차용하여 “목사가 없이는 교회가 있을 수 없다(the church can not exist without pastors)”라고 하였다.1) 이는 ‘목사’라는 인간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목사직’이 가지는 직분상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다시 말하면 목사가 교회 안에서 감당하는 역할인 “말씀선포(설교)”가 교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는 말이다.2) 교회가 있는 곳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늘 설교되어져야 하는데, 설교자는 자기의 체험이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해야 한다.3)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죄인을 구원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들은 오늘날에 들어와 퇴색되어져 가고 있다. 포스트모던의 영향과 반지성주의의 영향으로 설교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들이 사라지고 그것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낼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청교도 설교를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인 목회자인 김남준 목사는 “설교가 목회를 위한 수많은 수단들 중의 하나로 전락해 버리고 있다”고 지적한다.4)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교회도 많고 설교자도 많으나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를 찾기 힘들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설교자를 찾기란 바닷가의 모래밭에서 동전을 찾는 일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때에 영국의 대설교가였던 마틴 로이드 죤스의 “목사와 설교”(Preaching & Preachers)5)를 통해서 설교의 참된 본질에 대해서 살피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1969년 미국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The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행해진 강연을 모아 출판한 이 책은 30년이 훨씬 넘은 오늘날에도 매우 적실성(relevance)있는 것들이다. 로이드 죤스는 책 전체에 걸쳐서 설교의 본질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1-3장에 걸쳐서 설교가 무엇이고, 설교를 그 어느 것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아마도 로이드 죤스가 명설교가로 활약하고 있던 당시에도 설교의 중요성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3)6) 저자는 설교가 퇴색되어감에 따라 나타나는 요소들로써 흥미의 강조, 분위기의 강조, 찬양사역자의 등장, 간증, 유명인초청, 상담, 설교단 위치의 변경 등을 지적하고 있다.(20-22) 저자의 이러한 지적은 마치 2000년대 초반의 한국교회를 미리 예견한 듯한 지적이라서 큰 공감이 간다. 필자는 이 책을 대학 3학년때였던 2002년에 사서 앞부분만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저자의 통찰력있는 지적에 대하여서 깊은 인상을 받은 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에 찬양사역자가 판을 치고 있고, 치유상담이 활개를 치며, 설교단들이 많이 바뀌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도행전 1-8장을 살피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설교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참된 말씀전파의 부흥은 언제나 교회 역사상 위대한 부흥운동을 가져왔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30)

     저자는 설교가 목회자에게 필요한 모든 사역들을 채워주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설교가 얼마나 중요하며, 목회자가 다른 어떤 사역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보다 설교 한편에 쏟아붓는 열정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저자의 이러한 견해는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인간관에 기초한다. 저자는 “인간의 참된 고통은 그가 하나님께 반역했고 그래서 부단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34)고 보며, “성경적 인간관에 다르면 불행이나 참상, 육체적인 질고까지도 그리고 우리들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것들은 다 원죄와 아담의 타락의 결과이며 열매입니다.”(35)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간관은 ‘구원에 관한 지식’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써의 설교를 절대적이고 유일한 것으로 강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뿐 아니라 교회만이 감당할 수 있는 근본적인 역할인 말씀전하는 일로 말미암아 이 시대와 세상이 요구하는(11)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1-3장에 나타나는 저자의 주장은 본 저서의 논지라고 할 수 있으며, 본 서 전체에서 설명하고 있는 ‘설교’에 관한(about) 모든 설명의 주요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4-7장까지는 설교를 구성하는 설교자와 회중, 그리고 설교의 형식과 설교행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설교라는 것은 언제나 신학적이어야 하며 신학적인 토대를 보편적인 명제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84) 그렇다고 설교가 신학강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교자의 설교는 신학적인 것을 다루어야 하며 전도설교를 다루어야 하고 있어야 한다. 복음을 설교하면서 인간에 관한 지식, 타락, 죄,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구원 등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서 사도바울이 잘 표현하고 있는 바와 같은 하나님의 전(全)구원계획을 나타내야 한다. 저자는 성경본문을 그저 jumping board 정도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한다.(97) 저자는 회중에 대한 설명에서 설교자가 회중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독특한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그는 설교자가 회중에 관한 개인적인 상황을 알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한다.(175) 단지 설교자가 알아야 할 것은 회중들이 공통적인 질병인 ‘죄’라는 것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앞서 언급한 그의 인간관에 기초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 8-12장까지는 설교의 준비와 예화사용과 같은 것을 다루고 있으며, 13-16장까지에서는 ‘전도설교’의 필요성과 ‘강단초청’의 문제점과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이 밖에 이 책의 전반에는 ‘평신도 설교의 문제점’을 비롯하여 심방에 대한 견해, 교리문답설교에 대한 입장, 소명확인방법, 원어공부에 대한 입장, 원고를 모두 작성하는 문제 등 오늘날 우리가 동일하게 고민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어서 매우 유익하다.


     약간 껄끄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의 확신있는 주장 때문이기도 하겠는데 “『설교작성의 기술』,『설교예화의 기술』등의 제목을 붙인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볼 때 그것은 매춘행위입니다.(155)”와 같은 주장은 약간은 심하다 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심중과 의도를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주장을 무시하지는 말아야 한다. 최근 “한국기독공보”와 “백지연 커뮤니케이션즈”가 공동으로 “스피치 아카데미”라는 것을 열어서 설교의 스피치 기술을 가르치는 일까지 있었는데7) 한국교회가 본질보다는 외적인 것에 강조하는 이 때에 로이드 죤스의 말에 귀기울일 필요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된다. 


     Hermut Thilicke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가히 설교의 위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이후 한국교회에 큰 물결로 다가온 ‘열린예배’와 같은 것의 등장은 이미 우리네 설교의 권위를 실추시켰다. 그러나 설교가 유일한 희망임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동일하시며, 인간이 여전히 동일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참다운 설교는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 것이며,(65) 설교가 올바르며 설교하는 일이 제대로 될 때에 성령께선 메시지를 듣게끔 사람들을 이끌어 오고 모여들게 하실 것이다.(67) 설교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설교의 절대성을 유지시켜야 할 설교자들이 오히려 설교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간증이나 뮤지컬, 유명인 초청과 같은 것으로 대체시키려는 오늘날에 로이드 죤스의 통찰력 있는 지적들은 반드시 되새겨야 할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목사는 무엇보다도 설교를 위해 부름받았다. 설교를 위해 부름 받은 자들이 설교가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린다면 더 이상 설교자의 영광을 누릴 권리가 없다. 목사가 설교의 중요성과 절대성을 인식할 때에 설교자의 참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설교한다는 것은 사람이 종사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경이롭고 가슴벅찬 행위입니다. 그것은 설교란 것이 현실 가운데 있는 우리 모두를 붙들어 주기 때문이며 또, 영원한 미래에 있을 영광스럽고 끝없는 가능성 때문입니다.”(128)




1) 프랑스 신앙고백서 25조


2) 손재익, “신학생 추천이 곧 목사청빙”, 《뉴스앤조이》, 2005년 4월 30일


3) 고재수, 구속사적 설교의 실제, CLC, 1987, p.3.


4) 김남준 목사는 “Edwin C. Dargan, <설교의 역사>, 솔로몬, 1995”의 역자서문에서 이와같이 지적하고 있다.


5) 이 책은 오래전에 서문강 목사의 번역으로 CLC에서 출판되었고, 지난 2005년에 정근두 목사의 번역으로 “설교와 설교자”(좋은 씨앗 刊)라는 제목으로 재출판되었다.


6) 괄호 안의 숫자는 서문강 목사의 번역판의 페이지수를 나타낸다.


7) 유 헌, “백지연, 논리없는 설교 감동 못준다”, <뉴스앤조이>, 2006년 2월 7일.


출처 : 말씀사랑 교회사랑 책사랑
글쓴이 : 우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