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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오순절주의의 성령세례

baromi 2006. 3. 22. 17:53
 

오순절주의의 성령 세례


이재범 Ph.D. 풀러신학/철학박사/순신대 교수 역임/현, 교회성장연구원장



 1901년에 전통적 오순절운동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는 신오순절운동 즉 은사 운동으로 일어나고, 1980년대 이후에는 제 3의 물결(the Third Waves)로 나타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급속히 퍼져가고 있습니다. 오순절 신학에 대한 연구도 활발합니다. 오순절운동은 20세기의 여명이 밝아오면서부터 시작되어 20세기의 문을 닫고 21세기로 진입하려는 현재의 기독교 세계에 놀라운 영향을 주었고, 성장을 하였습니다. 어떤 그룹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하여 약간은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먼저 선교 단체로서 이 운동의 영향을 받은 단체는 Youth With Mission, the Christian Broadcasting Network, Oral Roberts Evangelistic Association, Teen Challenge, the Full Gospel Businessmen's Fellowship International 등의 기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으로서는 C. B. & University, Oral Roberts University 가 있고, 은사적인 교단으로서 영향을 받은 단체는 Rema Bible Church, Binyrd Christian Fellowship, Maranatha mini Stage 등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운동으로는 Faith Movement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루터교에서 영향을 받은 분으로는 래리 크리스텐슨이 대표적이고, 장로교와 개혁 주의에서는 로드만 윌리암스(Regend College의 조직신학 주임교수), 톰 스마일, 바브라 퍼세이 등 이런 사람들이 영향을 받고 있고, 감리교에서는 밥 토튼, 침례교에서는 하워드 어빈, 레리 하트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개신교가 아니지만, 천주교에서는 클락, 학킹, 레원 조셉, 하디날 세네스, 에드워드 워커너와 같은 분들이 여기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 심리학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1906년도 미국 아주사 스트리트에서 일어났던 부흥운동을 심리학자들은 흑인들의 감정적, 열광적, 종교적 폭발 (Negro spiritial emotionalism) 이라고 평가절하 하였고, 교회 지도자들도 이 운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운동이 1960년대에 주요 개신교에서 일어나게 되고, 성령운동을 다루고 있는 책 '십자가와 깡패', '성령 세례와 방언' 등을 카톨릭 대학에서 보기 시작 하여 특히 1967년에는 페니완 루덴이 두번에 걸쳐 오순절운동을 기독교 세계의 '제 3세력'(the Third Force)이라고 했던 예언적인 말이 그 당시에는 당황함을 주었으나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카톨릭에서도 이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복음주의자들도 서서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특별히 이 운동을 통하여 서구 신학이 소홀히 다루었던 성령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오순절 신자들 외에 기독교 세계의 문제점으로 남아있는 오순절의 신학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많은 논쟁점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그들의 "성령 세례론"입니다. 이 성령 세례의 중심은 신자의 삶 속에 은사적인 성령의 활동과 이 활동에 영향을 주는 '성령의 구별된 役事'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세례는 중생과 구별된 성령의 역사로 보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봅니다.

첫째, 오순절주의에서 성령 세례라는 용어를 어떤 의미로,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둘째, 오순절주의의 성령 세례는 어떤 것인가?

셋째, 오순절주의의 성령 세례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에 관하여 몇 가지로 지적을 해보고, 마지막으로 오순절주의의 건전한 방향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함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순절주의의 '성령 세례'라는 용어 사용에 대하여


첫번째 전통적 오순절주의입니다.

이 전통적 오순절주의는 1901년 1월 1일에 일어난 미국의 캔사스시의 토페 카의 벧엘 성경학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사람은 찰스 팜입니다. 이 분은 감리교 전도사로 계시다가 성결교로 가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찰스 팜의 제자인 씨 모어의 인도로 말미암아 1906년 도에 아주사에서 그 부흥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그들의 교회가 형성되고, 교리가 형성됩니다.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역사학자인 윌리암 맨지스에 의하면 이들 교리의 뿌리는 "개혁신학과 성결신학의 일부분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통적 오순절주의 안에서도 세 부분으로 세분하여 성령세례라는 용어를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케직 오순절주의(Baptistic Pentecostalism 침례 오순절주의라고도 함)와 성결 오순절주의, 오직 예수 오순절주의의 해석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케직 오순절주의 즉 침례 오순절주의에 대해서 알아보면 이들의 성화 교리는 개혁주의와 같고, 교회의 정치는 회중적입니다. 케직 오순절주의에 중심을 이루고 있는 목회자들이 1914년에 교단을 형성할 때 침례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넘어와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케직운동과 케직 오순절주의가 역사적인 교제(Contact)를 하게 되지요. 이런 역사적인 접촉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케직 오순절주의와 침례 오순절주의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신학적인 유사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헤롤드 헌터는 '케직 오순절주의'라고 하고, 헨리 레들리는 '침례 오순절주의'라고 부릅니다. 이들의 가르침은 웨슬레의 두 단계(중생,성화)를 받아들이기는 하나, 완전 성결을 거절하며, 성령세례를 그리스도인들의 규범적 체험 (Normal experience)이라고 주장합니다.


 성령세례는 시험과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으로 승리로운 삶을 살기 위한 능력이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케직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H. A. 아이언싸이드 혹은 그램 스코르지 같은 분들은 이 같은 오순절주의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통적 오순절주의자들은 구원 序程에 있어서 두 단계를 취하고 있습니다. 두 단계 오순절주의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표적인 인물인 더함(Durham)은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1단계는 중생, 2단계는 방언을 동반한 성령세례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두 단계에서의 성화는 일생동안 계속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2) 성결 오순절주의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이들의 교단에는 처척 갇 인 크리블런드, 펜티코스탈 홀린스, 처척 갇 인클라이스트 등 주로 흑인 그룹들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세례는 중생 다음에 온다는 것을 주장하고, 여기에 덧붙여 3단계의 구원순서 즉 구원 序程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3단계의 구원 서정은 찰스 팜과 씨 무어가 주장을 하게 됩니다. 1단계는 중생이고, 2단계는 제 2의 축복이라고 말하는 성화의 단계를 말합니다. 3단계에서는 방언을 통한 성령세례라고 주장합니다. 구원서정에 있어서도 중생과 성화와 성령 세례를 주장하는 분들입니다.


(3) 오직 예수 오순절주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합 오순절주의”가 여기에 속한다고 봅니다. 이들은 케직 오순절주의와 마찬가지로 성령세례는 중생 다음에 온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 운동을 이끌고 있는 데이빗 리드는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 여러 이름으로 나타나신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미국 오순절 신자들 중 약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주는 데서 발단이 됩니다. 성경 말씀에 의거하여 오직 예수의 이름으로만 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합니다.(행 2:38)


 제 3의 물결은 제 1의 물결인 정통 오순절운동과 제 2의 물결인 신 오순절 혹은 은사운동 다음에 일어난 성령운동으로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세례를 받는 조건으로 세례자가 회심을 해야 되며, 성령세례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령 세례는 방언을 동반하고, 방언 받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구원을 받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오순절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과의 사이에 큰 걸림돌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들을 가리켜 삼위일체의 부끄러운 멤버들이라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는 오순절 계통에서도 서로 형제 교단으로 친교를 나누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신오순절주의 혹은 은사운동입니다. 신오순절주의는 1960년 캘리포니아의 벤나이스에 있는 Saint Marks Episcopal Church 를 담임하고있는 데니스 바녀 신부에 의해 확산이 되었습니다. 신오순절주의는 성령 세례가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일(Regenarative Activity)로부터 구별하는 것에는 동의 합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주장에는 견해를 달리합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과 성령세례를 분리하되 성령 세례의 증거가 방언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은사도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이 분들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제 3의 물결입니다. 제 3의 물결은 자신들을 오순절 신자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거부합니다.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여기에 많이 참여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능력적인 사역에 있어서 적극적인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 3의 물결은 제 1의 물결인 정통 오순절운동과 제 2의 물결인 신 오순절운동 혹은 은사운동 다음에 일어난 성령운동으로 1980년대부터 활발하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죤 웸버, 피터 와그너, 찰스 그레트를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의 신학'에 기초를 둔 죠지 엘든 레드의 [Kingdom of God Theology] 에 영향을 받아 "능력전도"(Power Evangelism)로서 교회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들은 교회성장에 대한 관심이 지대합니다.


(1) 이들은 성령세례는 중생 시에 받는다고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기초하여 주장함으로 전통적인 개신교 혹은 개혁주의와 같이 합니다. (2) 성령 충만은 중생 후에도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봅니다. (3) 방언을 성령 세례의 첫 육체적 증거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체험은 영적 체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위한 능력으로 보았습니다.


 제 3의 물결은 자기 자신들을 오순절주의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고, 거의 대부분이 그것과 상당한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오순절주의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복음주의 개신교 전통(Tradition of Evangelical Protestantism)입니다. 사도행전 2장 1절로부터 4절 말씀에서 '여기에 성령 세례를 받은 120문도는 바로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었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특별히 오순절 전에 예수님의 핵심 추종자들은 신자였다고 보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성령 세례를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생과 같이 봅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는 죄의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이클 그린은 성령 세례를 '회심'(Conversion)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리차드 게핀은 그린의 주장과 기본적으로는 같이하고 있으나 성령 세례의 체험적인 의미를 주지 않고 있으며, 오순절 사건은 반복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인 [성령은사론] 에 보면" 오순절 사건은 구원의 서정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구속 역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오순절 성령세례는 오늘날에도 계속 적용되는 사건의 일부가 아니라 단회적으로 성취된 구속 역사의 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서정과 구속 역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 둘을 혼동하면 그리스도의 사역의 절대 충분성과 완전성을 위태롭게 한다. 본인은 누차 강조한 대로 오순절 성령 세례는 구속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독특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계속 반복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하지요.


 이 책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이와 같은 주장을 계속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제임스 던의 [Baptism in the Holy Spririt] 라는 책과 프레드릭 데일 부르너의 [Theology of the Holy Spirit] 이 두 책은 중생 이후의 제 2단계의 '성령세례'라는 개념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오순절주의를 부인하고 있는 대표적인 신학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던은 성령세례에 대한 그의 주석적인 연구서인 [성령세례]에서 은사적인 논쟁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보여 집니다. 여기에 대한 오순절주의자의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하워드 어빈(오랄 로버츠 대학의 교수) 같은 분들인데 제임스 던의 견해에 대해 계속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순절 주의의 성령세례란?

 오순절주의자들은 제 3의 물결을 제외하고는 성령 세례가 중생 다음에 오는 체험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어떤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주장을 하는가하면 누가의 저작들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예에는 성령세례의 시기 문제, 성령세례의 계속성 문제, 성령세례의 반응들에서 그들의 견해들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 먼저 성령세례의 시기에 대해서 그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세례를 중생사건으로부터 구분시킵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사도행전의 선례들을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 성령 세례를 받은 120문도는 바로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었다 ' 라고 주장을 합니다. 특별히 오순절 전에 예수님의 핵심 추종자들은 신자였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 예로서 가이사랴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던 같은 분은 [성령세례] 같은 책에서 바로 오순절 사건 이전에는 신자가 없었다 라고 주장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주장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8장 14절로 부터 17절 말씀에서 보면 사마리아에 복음이 증거되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았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오순절주의의 성령세례론의 확실한 근거로 주장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던은 빌립의 메세지가 불충분했다고 하면서 안수하여 성령 받기 전에는 진정한 신자가 아니었다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은 18절에서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라는 말을 보면 "보고" 라는 말을 통해서 어떤 현상이 분명하게 일어났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17절로부터 18절 말씀에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아나니아가 안수 할 때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래서 그 시기가 중생과 구분이 된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또 이에 대해서 제임스 던이나 마이클 그린, 프레드릭 데일 부르너 같은 분들은 여기에 대해서도 반대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3일간의 모든 성령의 활동은 한 과정이었지 중생이 먼저 되고 성령 세례를 나중에 받은 것이 아니었다고 반대를 하지요. 사도행전 10장 44절에서부터 47절에서 "베드로가 이 말씀을 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사람들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임을 들음이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줌을 금하리요." 하는 말씀입니다.

오순절신자들은 고넬료베드로를 만나기 전에 구원을 받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부르너와 던은 이 사건을 단일화된 하나의 체험으로 봅니다. 사도행전 19장 1절로 7절 말씀에 에베소교회에 나타났던 성령 체험을 오순절신자들은 중생과 성령 세례로 구분합니다. 특별히 2절에 나오는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말은 이미 믿음이 종결된 사건 후에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고, 제자들이라는 용어는 이미 예수를 믿는 신자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이므로 바로 중생 후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라고 주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 세례를 중생과 구분시켜서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다시 사도행전 4장에서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저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더라 그래서 성령의 재충만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 세례의 계속성을 주장합니다. 성령 세례의 계속성에서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 세례가 단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인 체험임을 주장하면서 에베소서 5장 18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계속해서 오순절의 성령 세례는 계속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임스 던과 부르너 같은 사람은 이 사실을 부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디모데후서 1장 6절에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라는 말씀에서 "계속해서 은사를 불이 붓게 하라" 는 뜻으로 성령 세례의 계속성을 나타낸다고 주장을 합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의 말씀이 사도행전 2장에 120문도 중 성령의 충만한 세례를 받았던 사람들이 다시 사도행전 4장에서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저희가 다 성령 충만함을 받았더라 그래서 성령의 재충만이라고 주장하면서 성령 세례의 계속성을 주장합니다.

성령 세례의 반응은 중요한데 나중에 첫 육체적 증거를 방언으로 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순절 신자들 가운데서 성령 세례의 첫 번째 중요한 반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케직 오순절주의나 성결 오순절주의나 오직 예수 오순절주의 같은 곳에서는 동일시하고 있으나 은사주의 혹은 신 오순절주의에서는 성령 세례 받은 증거를 방언이라고 못박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 세례의 첫 번째 반응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이들은 방언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여기에 아까도 설명 드린 바 있는 사도행전 2장, 사도행전 8장, 사도행전 9장에서는 방언했다는 기록은 없지만 고린도전서 14장에 가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방언 말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사도 바울도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방언을 했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보면 고넬료의 집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고, 19장 6절에서 또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열 두 사람쯤 되더라." 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이 분들이 사마리아에서는 분명히 방언 했다는 기록이 없는데 사도행전의 다섯 경우에서 네 번의 경우가 방언을 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성령 세례를 받은 첫 번째 육체적 증거는 방언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증거로는 찬양을 들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전통적인 오순절주의가 아닌 은사주의자들에 의해서 많이 주장되어 온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신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의 부어주심에 대한 인간의 주요한 반응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일 하심에 대한 찬양이라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우리의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면서 찬양을 성령세례 받은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5, 6절에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을 높였고,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므로 찬양과 신령한 노래와 시와 찬미가 나왔다라고 주장합니다(에베소서 5장 18절 이하의 말씀) 오순절

*이 글은 기독교학술원 주최 제8차 국제학술심포지움에서 강연하였던 것을 녹음, 편집하여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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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우리성경강해
글쓴이 : 열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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