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신학자료

도르트 신조에 대하여

baromi 2005. 3. 10. 14:33

 

1. 도르트 총회의 배경

  1) 알미니우스와 알미니안 주의(신학적 배경)
야곱 알미니우스(Jakob Arminius) 는 1560년 네덜란드 오우데봐터(Oudewater)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립 운동을 한 친족들과 사별하는 비극적인 젊은 시절을 보낸 후 라이덴(Liden) 대학과 제네바(Geneva) 대학에 갔다. 제네바에서 그는 칼빈의 후계자인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에게 서 수학했다.  그리하여 그는 엄격한 칼빈 주의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는 1587년 암스텔담(Amsterdam) 으로 돌아와 이듬해 그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토니 레인, 복음주의 입장에서본 기독교사상사. (나침반사, 7), p. 296..

1589년에 코른헤르트(Dirk Coornhert) 라는 교육을 많이 받은 평신도가 나타나 베자의 신학적 입장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베자가 말하는 바와 같이, 만일 하나님이 죄를 짓게 하신다면, 하나님은 사실상 죄의 창작자이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중대한 과오를 가르치고 있지 않다.” 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논증은 더욱 더 많은 사람을 매료시켜, 그들을 강력하게 감동시켰다.  그 당시 교회와 국가는 코른헤르트의 주장이 중대한 위협이 되었다.  그리하여 알미니우스는 코른헤르트의 논박에 대한 칼빈의 예정론을 변호하도록 부탁 받았다.  하지만 상대의 논거를 신중하게 다루던 알미니우스는 자신이 코른헤르트의 입장에 서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보편적인 은혜와 의지의 자유 교리를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1602년 역병이 만연하여 몇몇 라이덴의 교수들이 병사하자, 알미니우스는 프란시스 유니우스의 뒤를 이어  라이덴 대학의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그의 임명은 라이덴의 최고참 신학 교수요 엄격한 칼빈주의자였던 프란시스 고마루스 (Francis Gomarus)의 거센 반발을 샀다. 결국 알미니우스는 자기에 대한 비난을 해명하기에 이르렀고, 그는 1603년에 정식 임명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타락전 선택설을 주장하는 고마루스와 공공연하게 정면 충돌하게 되었다.. 알미니우스와 고마루스의 논쟁의 초점은 예정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예정의 근거에 있었다.
  *알미니우스: 예정은 후에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할 것인가를 미리 알았던 하나님의 예지에 근거.
  *고마루스: 신앙자체가 예정의 결과로 세계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가 누가 신앙을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 자체를 결정.

알미니우스는 예정론에 대한 그의 견해를「소감의선언」(Declaration of Sentimens, 1608년)에 진술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의 네 가지 ‘작정’을 말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은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한 중보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임명하기로 작정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다고 한 모든 자를 용납하시며 구원하기로 작정하셨고 그리고 완고한 불신자를 거절하기로 작정하셨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자를 위하여 필요한 수단을 제공하시기로 작정하셨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한 개인들의 구원을 작정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저들이 끝까지 믿고 참을 것을 예견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알미니우스는 어거스틴적, 칼빈주의적의 무조건적 선택의 사상을 거부했다.. 토니 레인, p. 297.

중생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先行하여 일으키시는 계속된 협력적 은혜가 없이는 전혀 어떤 善을 생각하거나 품거나 행할 수 없고, 어떤 유혹에 저항할 수도 없다” 라고 그는 계속 강조하였다. 알미니우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전적 의존을 강조하는 점에 대해 조심성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핵심적인 문제에서 어거스틴과 입장을 달리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되어 있지만, 그 은혜란 그것에 대한 사람의 수납 여부의 결정에 따라 주어진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할뿐이지 결정적이게 하지는 못한다. 이리하여 구원에 관한 궁극적인 선택이란 사람 자신에 의한 것으로 귀결된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개인의 택정은 그분의 주권적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권 안에서 그분의 예지에 있게 되었다. 즉 어거스틴이나 칼빈에게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택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진리인 반면, 알미니우스에게는 그 逆이 진리였다. 이런 문제가 사람들을 계속 알미니안주의자(Arminians)와 칼빈주의자(Calvinist)로 나누게 되었다. Ibid., p. 297.

알미니우스가 죽고 나서도 결코 논쟁을 종식케 하지는 못했다. 그는 그의 많은 추종자들을 남겨 두었으며, 1610년에 알미니안파 목사들이 고우다(Gouda)에 회합하여「항론」(Remonstance)이라는 신앙 고백서를 내놓게 되었다. 이것이 도르트 회의의 원인이 되었다.

  (2) 정치적 배경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고, 개신교도들은 로마 카톨릭에 의해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었다. 이때 윌리암(William the Silent)의 영도아래 7주가 독립하였다. 또한 그는 스스로 칼빈주의자임을 자처하였고, 공직에 임명되자 폭군에게는 등을 돌리고 국민의 편에서 싸워 화란독립의 큰 기반이 되었다. 이에 1585년 네덜란드의 북쪽 지방들은 사실상 카톨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칼빈주의가 번영하기 시작했다.  1584년 윌리암이 암살 당한 뒤 두 지도자가 떠올랐는데, 그 중 한사람이 윌리암의 아들로서 국가 원수이자 사령관이었던 모리스(Maurice)였고, 다른 한사람은 정치가 올덴바르네벨트(Jan van Oldenbarneveldt)였다.  1609년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 두 사람은 의견차이로 갈라섰다. 모리스는 해방 전쟁을 이끌 강력한 중앙집권 정부를 좋아하였고, 네덜란드 지방을 장악하고 있던 올덴바르네벨트는 지방자치와 평화를 원하였다.
올덴바르네벨트는 항론파를 지원하였고, 모리스는 반항변파를 지원하였다.  정치적인 갈등이 가열되는 가운데 올덴바르네벨트가 자기 휘하의 지방군대를 일으키자, 모리스는 군대를 보내 그를 체포하였다 (후에 올덴바르네벨트는 반란죄로 처형당하였다).  도르트교회 회의는 이러한 상황에서 열렸다.  모리스의 승리는 다른 여러 사실들 중에서도 교회들이 반항론파 대표들을 선출하였음을 뜻하였고, 올덴바르네벨트의 강력한 지원을 기대하던 항론파는 교회회의에서 소수파로 고립되는 상황을 맞았다.. 교회사 대사전. (기독지혜사, 1994), p. 448.

  (3) 사회적 배경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이 완전히 보장된 것이라고 볼 수 없었고 네덜란드 내에는 아직도 이전의 압박 자와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일부 도시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상인들로 스페인과는 교역을 개선하여 이익을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성직자 대부분은 스페인과의 직접접촉으로 교회의 교리적 순수성이 오염될 것을 두려워하여 이에 반대하였다.  또한 이런 교역을 통해서 아무 유익을 기대할 수 없었던 하층계급도 상인들에게 반대하였다.  그리하여 상인들은 알미니우스편의 항론파를, 다른 계층들은 고마루스의 반항론파를 지지하였다.

  (4) 항의각서 (Remonstrance)
1609년에 알미니우스가 죽자 1610년에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은 자기들의 신조를 다섯 항목으로 구체화시켜 「항의각서」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와 서 프리스란드의 국회에 제출(위텐보가르트가 작성) 하여 무조건적 예정을 주장하는 정통파(칼빈주의자)를 반박하였고, 이에 대해 1611년 칼빈주의자들은「반항의 각서」를 제출하여 정통파 입장을 재확인하였으며, 그들과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에는 예정 외에도 다른 쟁점들이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항론파는 교회가 다른 교파를 관용하되 국가의 감독을 받게 되기를 원하였는데, 반항론파는 이를 교회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 여기에 정치적 쟁점들이 신학적 열기와 맞물려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항의각서에 제시된 다섯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제1항 : 조건예정 -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에 관해 믿고 끝까지 견디는 모든 자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기로 선택하셨다.

제2항 : 보편속죄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십자가상에 죽으심으로 만인을 위한 사죄를 획득하셨으나, 단지 믿는 자들만이 거기에 참여한다.

제3항 : 구원하는 믿음 - 타락한 인간의 자유 의지는 진실로 선한 것은 어느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는 참으로 선한 그것을 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새롭게 출생될 필요가 있다.

제4항 : 거절이 가능한 은혜 - 우리는 하나님의 선행(先行)하시는, 깨우치시는, 계속되는, 우리와 협력하시는, 그분의 은혜가 없이는 어떤 선(善)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은혜란 불가항력적인 것은 아니다.

제5항 : 인내의 불확실성 - 참된 신자는 은혜로 끝까지 견딜 수 있게 되며, 구원받을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태나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상실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이 은혜란 불확실한 것이다.


2. 도르트 회의(1618-1619년)
알미니우스의 가르침 전반에 걸친 논쟁은 서로 적대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정치적 파당에까지 파급되어 내란의 위험도 있었다. 반항론파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자, 회의를 소집했는데 그것은 1618년 11월 18일에서 1619년 5월 9일까지 도르트(Dort)에서 개최되었다. 참석자는 84명의 대표와 18명의 비종교인 대표로 구성되었다.  그중 58명은 네덜란드인이었고 나머지는 외국인이었다. 이것은 이때 항론파의 주장(전국 교회회의에서 공정한 심문을 받을 수 없으며 단순히 지역적인 개인문제가 투쟁을 야기시켰다.)에 대하여 재판절차에 공정성을 보증하고 증명하기 위하여 유럽 전역에 있는 개혁교회들로부터 대표들을 초대하여 교회회의 대표단으로 조직하였기 때문이다.. 스텐포드 리드, 칼빈이 서양에 끼친 영향, 홍치모,이훈영 역,(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p. 125.

도르트회의의 기본임무는 항론파의 견해를 판단하는 것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달아나지 않은 항론파 지도자들은 이 회의에서 자신들의 관점을 밝히도록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변인 시몬 에피스코피우스(Simon Epscopius)를 통해 회의의 진행을 지연시키고 대표들을 이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계략을 이용하였다. 한달 이상 그들이 회의를 거부하면서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교회회의 의장인 요한네스 보겔만(Johannes Bogerman)은 항론파를 해임하고 그들이 쓴 저서를 근거로 결정을 내릴 것을 선언하였다.. Ibid,. p. 126.

정통 칼빈주의는 완전한 승리를 달성했다. 다섯 조항의 항의각서는 만장일치로 배척되고, 벨직 신앙고백이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함께 칼빈 5대 교리가 채택되었다.. 필립 샤프, 신조학. 박일민 역.(가독교문서선교회, 1993), p. 179.
이 회의에서는 칼빈 5대 교리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중대한 문제를 결정하였다. 네덜란드어로 성경을 번역할 것, 젊은이를 위한 정기적인 요리문답 교육을 교회에서 실시할 것, 정기적으로 예배 때마다 교리교육을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식민지의 원주민 자녀들에게 유아세례를 주기 전에 먼저 신앙교육을 실시하기로 하였고, 목사후보생의 신학준비에 철저를 기하며, 신앙에 해로운 책들은 검열을 받도록 하였다.. 오덕교, 장로교회사. (합동신학교출판부, 1995), p. 105.


3. 도르트 신조(본문 및 내용)

항론은 만장일치로 기각 당하였고 회의는 도르트신경 이라는 한 응답을 작성했다.  항론의 다섯 가지 견지는 다섯 가지 큰 제목아래  93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긍정적 내용(그 주제에 관한 개혁신앙의 교리 설명)이며  나중에는 부정적인 내용(알미니우스의 과오 지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셋째와 넷째 교리는 함께 진술되었다.  그것은 항론의 셋째 견지가 정통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적인 입장에서는 칼빈주의 체계라고 불리는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 형식은 처음에는 적극적인 내용을, 그 다음에는 알미니안주의의 과오를 반박하는 부정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매 항목에는 네덜란드와 외국 대표들의 서명이 적혀있다.. 필립 샤프, p. 186.

  (1) 본문

① 제1교리
(제7조) 거룩한 예정에 관하여 - 선택은 하나님의 불변의 목적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주권 적인 선한 뜻에 따라 단순히 은혜로 선택하신 어느 수의 사람들의 중보자며, 머리며, 또 구원의 토대가 되도록 영원부터 임명하신 그리스도안에서, 자신들의 과오 때문에 본래의 도덕적 상태로부터 타락한 전인류 가운데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다.
이 선택된 사람들의 본성이 버림받은 사람들보다 더 선하다거나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다 같은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을 받도록 그에게 넘겨주시고 그들이 그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부름을 받고 그와 교통하도록 이끄시며, 그리고 그들에게 참된 신앙과 의롭다는 성화를 주시고 그의 아들과 그들이 강한 교통을 가지고 드디어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며 그의 영광스러운 은혜의 풍부함을 찬양하도록 그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을 결정하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힘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 이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총을 거저 주셨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총을 찬양하자.”(엡1:4-6)  또 이밖에도 기록되기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되도록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그 부르신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영광을 베풀어 주셨다.”(롬8:30)

② 제2교리
(제8조) 그리스도의 죽음과 인간의 구원 - 그 까닭은 하나님의 아들의 가장귀한 죽음이 가지고 있는 살리며, 구원하는 효력이 의롭게 인정받는 신앙을 주시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실패 없이 구원으로 들어 가게 하시는 선택된 모든 사람에게 보급시키는 일이 성부 하나님의 가장 높은 계획이며, 가장 자비로운 뜻과 목적이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가 새계약으로 확인하신 그의 십자가의 피에 의하여 영원한 구원으로 선택되었고, 또 성부가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을 모든 민족, 종족, 국민 및 언어가운데서 유효하게 구원해 내신일, 또 그리스도가 자기의 죽음으로써 성령의 다른 모든 구원의 선물과 함께 얻은 신앙을 그들에게 주시고, 신앙이전이나 이후와 상관없이 범한 근본적이거나 현실적인 모든 죄에서 그들을 정결하게 해서 마지막까지 그들을 충실히 보존하여 드디어 그들을 모든 오점과 과오에서 해방시켜서 그분 앞에서 영원히 영광을 누리도록 인도하신 일이 하나님의 뜻이다.     ?  

③ 제3,4교리.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에게로 향한 인간의 회심 및 그 방법
(제3조) 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서 잉태되어 본래 진노의 자식들이며, 구원을 받을 어떤 선도 행할 수 없이 악으로 기울어져 죄에서 죽고 죄의 노예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성령이 주시는 신생의 은혜 없이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거나 그들의 성질의 부패를 개선하거나 그들 자신을 개혁에 맏길수도 없으며 그런 일을 원하지도 않는다.
(제11조)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의 욕구가 선택된 사람들에게서 달성되며 혹은 그들이 참된 회심을 하게 하실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바로 이해하고 인식하게 하기 위하여 다만 복음을 외면적으로만 그들에게 설명하게 하실 뿐만이 아니라 동일한 신생의 영의 능력으로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미치게 하신다. 그는 닫힌 마음 문을 여시고 단단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할례 받지 못한 자 들에게 할례를 베푸시고 이전에는 말라죽었던 의지에 새 자질을 주입하여 살아나게 하시며 사악, 불순종, 완고의 상태에서 선량, 순종, 온순으로 변하여 선한 나무처럼 그것이 선한 열매를 맺게 활기를 주며 힘을 주신다.

④ 제5교리
(제3조) 성도의 견인에 관하여 - 내재하는 남은 죄와 이세상의 유혹 때문에, 회심한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힘에 맡겨 놓으신 은혜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은 성실하시며 그들을 은혜 안에 깊이 머물게 해서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붙들어 보존하실 것이다.

   (2)칼빈의 5대 교리
위의 발췌된 견지들은「칼빈주의 5대교리」로 알려지게 된 것들이다. 이를 기억하기 쉽게 영어로 TULIP이라고 한다.
① 전적 부패(T / Total depravity) : 이는 모든 사람이 더 이상 부패될 수 없다는 이상을 받게 하는 부적당한 표현이다.  분명히 표현상 부적합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입장은 도르트 신경에 의해 명백하게 거부된다. 전적 부패라는 표현은 사람의 모든 면이 타락으로 인해 영향받았으며,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께로 향하게 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② 무조건적 선택(U / Unconditionnal election) :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택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택한다.  이는 어거스틴적 칼빈주의적 전통과 알미니우스와의 쟁점에서 근본적 분수령이다.
③ 제한 속죄(L / Limited atonement) :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인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한데 반하여 그 분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오직 택한 자를 구원하는데 있다.
④ 불가항력적 은혜(I / Irresistible grace) : 하나님의 은혜는 선택 자들이 그것에 응답하려는 보증이 되는 그런 면에서 그들 안에서 역사 한다, 은혜의 효과는 의지 분쇄에 있지 않고 기꺼이 응답하게 하도록 고무시키려는데 있다.
⑤ 성도의 견인(P / Persevernce of the saints) : 진실로 회개한 자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게 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참작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인내하시기 때문이다.  

4. 도르트 신조의 특징 및 평가

도르트 총회는 개혁교회의 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준 세계교회 총회의 성격을 가진 회의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신학자들의 모임이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도르트회의의 평가는 교리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달라진다. 한쪽은 학식이나 경건함에 있어서 사도시대 이후 어떤 회의보다 뛰어났다는 평가를 한 반면 공정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항론파들은 도르트 총회가 칼빈주위 일색이었고 지나치게 편협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도르트 신조가 칼빈주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치신조가 루터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다. 두 신조는 모두 신학적 능력과 관심에서 매우 고차원적인 질서를 보이고 있다. 두 신조는 모두 일관성이 있으며 교회에 강력한 보수적 영향을 남겼고 스콜라 철학을 대치할 수 있는 길을 예비하였다.  또한 형식과 분파로 말미암아 앙상한 뼈만 남아있던 교회에 살아있는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으며, 정통주의를 택하고 자유주의를 배격하였으며 제한된 신앙고백주의를 인정하였다.  이 신조는 그 가지를 넓게 뻗쳐 종교개혁의 대 지류를 형성케 하였다..  필립 샤프, p. 181.

드르트신조는 한마디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인하여 이루어진다.  또한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만큼 인간의 어떤 조건을 보고 구원하는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단독 사역임이다. 라고 천명 하였다.  
   

【 참 고 문 헌 】

.「교회사대사전」.  기독지혜사, 1994
.「기독교대백과사전」. 기독교문사, 1992
. 레인 토니. 「복음주의 입장에서 본 기독교 사상사」. 나침반사, 1987
. 리드 스텐포드. 「칼빈이 서양에 끼친 영향」.크리스쳔다이제스트,  1994  
. 샤프 필립 「신조학」.  박일민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1993.
. 오덕교. 「장로교회사」. 합동신학교출판부, 1995.
. 이장식.  「기독교 신조사」.  컨콜디아사,  1990.
. 후스토 L 곤잘레스. 「기독교 사상사」. 이형기, 차종순 역.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국, 1992.